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282
85화 – 위기와 기회(1) >
——————————
음악의 신
85화 – 위기와 기회
——————————
저녁 6시 40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컨벤션 센터의 직원들은 퇴근 직전에 날벼락을 맞았다.
“썅… 오늘 우리 애기 만나기로 했는데. 야근이라니…”
직원 중 하나가 간이 의자 여러 개를 한 번에 들며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을 흘렸다.
함께 일을 하던 직원도 카트를 끌며 투덜거리기에 바빴다.
“퇴근 1시간 전에 VIP 예약을 왜 잡아가지고선… 사장 시부럴 놈이 돈독은 더럽게 올랐어.”
“선배. 저, 진짜 관둘 랍니다. 못해먹겠어요.”
“너 그 말 저기 팀장 앞에 가서 해봐라.”
“윽.”
직원들이 난데없이 잡힌 스케줄에 고군분투하는 사이, 컨벤션 센터 안에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점검하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 김 기자!! 대갈통 좀 치워봐. 머리 때문에 안보이잖아!!”
“대갈통?! 야. 홍상태.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대갈통이라고 했다. 왜?”
라이벌 기자들 간의 신경전까지.
컨벤션 센터는 여러모로 분주했다.
오후 7시 04분.
– 안내방송 드립니다. 곧 가수 주아 양의 기자회견이….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준비를 하려는데, 뒤편에서 누군가가 또각소리를 내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아!!”
“주아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등장한 주아를 찍기 위해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테이블에 키보드를 올려놓은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도 시끄럽게 센터를 울려갔다.
‘후우.’
평소와 달리 짙은 화장과 치렁대는 머릿결을 휘날리며 카리스마를 뿌려대던 여인, 주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가운데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MG와 계약을 해지하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동안 이사들과 불화가 컸다는 이야기가 사실입니까?”“새로운 소속사가…”
궁금한 걸 참지 못한 기자들의 입방정에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시장 통으로 변해버렸다.
진행자가 기자들을 제지했지만 이미 악다구니가 낀 기자들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짧게.”
주아가 입을 열었다.
“짧게 이야기하죠. 모두 바쁜 분들이시잖아요?”
그녀의 눈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제야 아귀 같던 기자들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손에 들린 팬대도 제 자리를 잡았다.
기자회견장이 안정을 찾자 주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수 주아, 연주아는 이 시간부로 MG 엔터테인먼트를 나옵니다. 현재 거취는 아직 미정입니다.”
기자들은 타이핑, 메모 등 주아의 말을 열심히 적어갔다.
주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맨 앞에 있던 기자 하나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주아 씨!!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이강윤 사장과 친분이 있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 혹시…”
“나머지는 제 대리인과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기자의 말을 무 자르듯 잘라버리고는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
“주아 씨!!”
“주아 씨!! MG 엔터테인먼트 이사들과…”
기자들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며 거칠게 달려들 기세였지만, 주아는 검은 정장을 입은 가드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5분 후.
.
.
.
– 가수 주아, MG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 해제. 차후 거취는 미정…
연예계 전체, 아니 나라를 들썩하게 만드는 거대한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너 진짜.”
늦은 밤.
이현지의 연락을 받고 그녀의 집으로 간 강윤은 오늘의 대혼란을 만든 원흉을 보자마자 머리를 쥐어박아버렸다.
“아얏!! 왜 때려!!”
“…이런 사고를 쳐놓고. 안 때릴 수가 있냐?”
“내가 뭐뭐뭐!?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럼 저기 이사님부터 때려야 하는 거 아냐?!”
주아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눈에 불을 켰다.
그러자 이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강윤은 짧게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로 눈을 돌렸다.
“…일단 오늘 일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겁니다.”
이현지는 강윤의 가라앉은 눈을 피하며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진서가 냉장고에서 차를 내온 후, 네 남녀는 서로 마주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리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지만, 주아가 MG 엔터테인먼트를 나온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주아가 MG 엔터테인먼트를 나왔다… 이건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MG 입장에서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말이죠.”
이현지도 강윤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주아는 MG의 핵심이죠. 다른 연예인, 후배 모두를 잡아주는 핵심이자 수익을 가장 많이 벌어다주는 핵심. 분명히 MG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죠.”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고도 일을 크게 벌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민진서도, 주아도 강윤의 매서운 기세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무서울 게 없는 이현지마저 잠시 멈칫하며 애꿎은 커피잔만 만져댔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적은 스타타워를 인수하는 것이죠. 내년. 유로스 쇼핑몰이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지. 기간한정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졌다. 이걸 우리만 아는 게 아니라, 이사들도 알고 있어요. 그들을 다급하게 만들 한방이 필요했죠.”
“그래서, 주아를 끌어들인 겁니까?”
강윤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이번에는 주아가 나섰다.
“오빠. 잠깐만. 내가 하겠다고 한 거야.”
“…연주아.”
주아는 강윤과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경영진, 이사들의 능력으로는 스타타워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 들어보니까 유로스 쇼핑몰 리모델링 시기조차 제대로 몰랐다고 들었어. 정말 무서운 건 능력도 없는데 주제넘은 욕심을 부리는 거야. 분명 스타타워가 있으면 앞으로도 허공에 돈을 뿌릴 거야.”
“연주아.”
“나나… 후배들이나… 더 이상 이런 더러운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주아는 강윤의 손을 붙잡았다.
“주제에 맞는 사람이 어떻게든 해줘. 오빠라면 할 수 있잖아.”
“…..”
강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스타타워 문제가 주아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주아가 없는 MG 엔터테인먼트는 자금의 압박이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거기에 ‘MG=주아’라는 상징성까지 잃는다.
후배들이 흔들리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저들은 분명 더 지독하게 나올 터.
“…..”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윤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사님이 월드에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
“…..”
“그렇게 되면 진짜 배신을 하는 것 같거든. 뭐, 이미 배신자인가. 하하하.”
주아의 고개가 처연하게 내려갔다.
강윤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속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커. 네 일에 집중을 못하게 돼.”
“알아. 그래도 뭐… 할 수 없지.”
“…..”
강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그치지도, 그렇다고 이렇게 하라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했다.
강윤은 한참이나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2시간 후.
주아와 민진서가 졸린 눈을 부비며 잠자리에 들었다.
“애들 다 잠들었어요.”
민진서의 방에서 막 나온 이현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눈에 베란다 없는 창가에 선 강윤의 넓은 등이 들어왔다.
“이사님.”
돌아서지 않은 강윤의 부름에 이현지는 작게 답했다.
“네, 강윤 씨.”
“…이제 제가 나설 차례라고 하셨지요?”
이현지의 끄덕이는 모습이 흐릿하게 창가로 비쳤다.
괜히 사고치고 뒷수습을 부모님께 맡기는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흐릿한 잔상에 손을 올리며, 강윤은 차분히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지요.”
“네? 끝?”
“네. 끝까지.”
이현지는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언니.”
“…미안. 못난 꼴을 보이네.”
민진서는 자신보다 작은 언니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든 해 주실 거예요.”
“…그렇…지?”
“네. 선생님은 우리한테 마법사잖아요.”
“풋. 표현력 봐라.”
민진서의 따스한 품에서, 주아는 불안한 가슴을 조금씩 진정시켜갔다.
——————————
가수 주아의 MG 엔터테인먼트와의 결별 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아주 시끌시끌했다.
MG 엔터테인먼트에서 주아의 존재란 다른 가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MG 엔터테인먼트 = 주아
이런 대중의 인식을, 주아가 깨버렸으니.
거기에 너무도 짧은 인터뷰와 그동안 돌았던 불화 등의 소문 탓에 여론은…
“네,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니지요. 조만간 제가 크게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네.”
스타타워 상층에 위치한 리처드의 사무실은 드물게 분주했다.
특유의 듣기 좋은 저음으로 통화를 마친 리처드는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영어로 마구잡이로 욕을 내뱉은 그는 김진호 이사를 호출했다.
곧 김진호 이사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네. 앉으시죠.”
리처드는 김진호 이사와 마주앉고는 비서가 내온 커피잔을 들었다.
“오늘은 향이 그리 좋지 않군요. 원두를 너무 태웠는지.”
“…..”
김진호 이사는 웃는 얼굴 안에 감춘 그의 심사를 경계했다.
리처드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딱 하나일 터.
곧, 리처드는 쓴 맛만 나는 커피를 내려놓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언론은 일단 꼭지를 틀었습니다. 내부는 어떻습니까?”
“어린 애들은 동요하기는 했습니다만, 잘 진정시켰습니다. 이강윤과 주아의 그 동안의 관계를 이야기하니 오히려 애들이 배신감을 느끼더군요. 애들이 뭐, 애들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안심하면 안 됩니다. 민진서의 전례도 있고, 주아와 경영진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김진호 이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검토하며 리처드는 턱에 손을 올렸다.
“흐음. 당장 자금에 문제가 생긴다라…”
“네. 아무래도 그 동안 주아가 활동하면서 투자를 받았던 돈이나 벌어들였던 자금들이 상당해서…”
“…자금은 내가 알아보지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어떻습니까?”
리처드의 이야기에 김진호 이사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 주아 이야기 들었음?
– ㅇㅇ핵잼. 개인 사업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반대하니 나간 거라며?
– 레알? 돈 때문이었음?
.
.
기자회견 다음날.
MG 엔터테인먼트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 가수 주아, 개인 사업건으로 MG와 갈등 빚어… 회사는 가수 생활에 전념하길 원해
기자회견을 하고, 소속사와 결별한다고 큰 파장을 일으켰던 주아의 행보는 하루도 되지 않아 반전되었다.
이전에 대서특필했던 기사들이 모조리 쓸모없어진 것이다.
“MG의 언플이란… 확실히 깔끔하군요.”
인터넷 기사들을 뒤져보던 강윤은 마우스에서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윤의 옆자리에서 함께 모니터링을 하던 이현지도 쓴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MG는 MG군요. 예랑이나 윤슬과는 확실히 달라요. 사업이라… 저 기사, 주아가 가구 모델 했을 때 일부 투자한 내용을 기사화 한 것이군요. 맞죠?”
“그럴 겁니다. 상황은 파악이 됐군요. 반박을 하자니 거기서도 주아를 걸고 늘어질 테고, 아무것도 안하자니 인정하는 꼴이 되고. 역시, 여론전은 쉽지 않습니다.”
강윤은 책상에 걸터앉자 이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저들도 주아를 크게 건드리지는 못할 거예요. 상징과도 같은 존재니까요.”
“그렇겠죠. 이런 반격도 매우 드문 케이스지요. 목적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맞혀볼까요? 주아의 복귀. 아니, 정확하게는 ‘말 잘 듣는’ 주아의 복귀.”
강윤은 정답이라며 박수를 쳤다.
“맞습니다. 거기에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예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흠… 그럴까요? 거기 이사들 능력에?”
“이사들 말고, 그들을 조종하는 누군가는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제야 이현지도 강윤의 말에 동의했다.
“그 외국인 말하는 거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가 오고, MG는 아주 크게 변했으니까요. 좋든, 좋지 않든.”
“…뭐, 그것까지야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아니죠.”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였다.
‘여론전을 하면 주아가 멍든다. MG도 심하게 주아를 건드리지는 않을 거야. 이 문제는 오히려 우리가 유리해. 오히려 진짜 문제는 여론전이 아닌, 법적 공방이야.’
강윤은 책상위에 올려놓은 연습생들의 계약서를 보며 짧게 한숨지었다.
‘주아는… 명예이사였어. 그렇다고 가수로서의 계약이 없던 건 아니지. 복잡한 관계야. 명예이사가 된 건 계약기간이… 잠깐.’
강윤의 눈이 희번득하며 강렬하게 떠졌다.
“이사님.”
“네.”
“가수 주아의 계약기간이 얼마나 되지요?”
“계약기간, 계약기간이라면… 아!!”
이현지도 강윤과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손뼉을 쳤다.
끝
ⓒ 이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