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284
85화 – 위기와 기회(3) >
미닫이문을 잡은 원진표 사장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길에 서슬 퍼런 불길이 일었다.
“…가치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군요.”
“주아의 친구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친구? 하하!!”
원진표 사장은 완전히 돌아서 문을 거칠게 닫고 불길이 이는 눈빛을 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 말은. 이번 주아 일에 월드가 관여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주아의 이탈.
이전 민진서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게다가 그 민진서를 데려간 월드의 사장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니…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했지만 강윤은 침착했다.
“노래에 전념해야 할 친구가 소송에 휘말리는 게 싫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쾅!!
테이블에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아와 강윤이 친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설 줄이야.
월드의 힘이 부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도전적으로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요새 이현지 씨가 우리 회사 이사들과 자주 접촉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 그 독한 여자가 어떻게 MG를 나갔는데… 자기를 쫓아낸 이사들 얼굴을 보면서까지… 이강윤 씨. 감언이설로 그들을 속일 순 있겠지만 난 어찌하기 힘들 겁니다.
“MG에서 주아에게 불리한 계약을 한 건 사실이잖습니까.”
“계약을 변경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주아는 회사의 명예이사였고, 섭섭하게 대우한 적 따위, 전혀 없었습니다. 소송에 간다 해도 이 부분을 부각시키면 불리하게 돌아갈 까닭이 전혀 없어요.”
호칭이 바뀔 만큼 감정이 상했고, 의견도 팽팽해졌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활시위처럼 기세도 날카로웠다.
차분히 눈빛을 가라앉히는 강윤과 활화산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원진표 사장은 조금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는 듯 했다.
강윤은 따뜻한 주전자를 들어 원진표 회장의 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당연히 주아 개인으로서는 MG에 불만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전체로 보면 어떨까요? 선배로서의 입장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건 무슨 말입니까?”
“주아는 MG를 대표하는 가수입니다. 후배 가수들이나 연습생 모두가 우러러보고, 본받고 싶어 하는 가수라는 말이지요. 제멋대로이고, 자기 주관도 뚜렷하지만 책임감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원진표 사장은 단번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선배, 그리고 명예직이라지만 이사로서의 책임감. 그 애는 모든 걸 책임지려 했던 겁니다. 바로.”
강윤은 손가락으로 원진표 사장을 가리켰다.
“당신들 때문에.”
“지금 뭐하는 겁니까?”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좋은 대우를 받았음에도 주아가 왜 나갔는지?”
강윤의 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던 겁니다. 스타타워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MG는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수들의 스케줄은 전에 없이 빡빡해졌고, 신인육성은 꿈도 못 꾸게 되었죠. 건물을 지을 돈도 없는데 가수에게 투자할 여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강윤 씨. 그 이야기는 월드에서 상관할 바가…”
“계속 들으십시오.”
원진표 사장은 듣기 싫다며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강윤은 멈추지 않았다.
“MG는 노래로 먹고 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건물을 짓기 위한 일반 회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거기에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연습생도 반으로 줄였지요?”
“…..”
“연습생이 가수 되기란 바늘구멍 들어가는 확률과 비슷합니다. 그것도 그나마 기회가 주어졌을 때나 가능하죠. 그런데 그 기회조차 박탈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주아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주아는 꾸준히 이야기했습니다. 내부에서도 일부가 꾸준히 이야기했던 걸로 압니다. 원 사장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걸로 압니다.”
“흠흠…”
“하지만, 변하지 않았죠. 그게 지금 사태를 만든 겁니다.”
원진표 사장의 굳게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회사의 누구, 아니 그 누구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한 사람이 없었다.
허수아비 사장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주는 조언자가 없었다는 게 정답이었다.
그나마 자주 이야기를 해주던 이한서 이사는 회사에 자주 나오지 않게 되었고, 허수아비 사장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원진표 사장은 결국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강윤은 그의 빈 잔을 채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주아, 그리고 스타타워.”
“…그쪽이 줄 것은?”
강윤은 잔을 들며 답했다.
“MG를 드리겠습니다.”
원진표 사장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간신히 강윤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가져갔다.
.
.
.
다음날, 아침.
강윤은 원진문 회장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간단한 수속을 밟은 후, 강윤은 원진문 회장이 탄 휠체어를 끌고 산책로를 거닐었다.
“…결국 일이 그렇게 되는군.”
강윤이 그동안 있었던 MG 엔터테인먼트와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일들을 이야기하자 원진문 회장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가 죄송할 게 아니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네.”
그는 마치 해탈한 사람처럼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욕심을 버렸는지 그는 먼 산을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며칠 전에 주아가 찾아왔었어.”
강윤은 원진문 회장의 어깨에 외투를 덮어주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원진문 회장은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뜬금없이 와서는… 내 손을 잡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갔지.”
“…..”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원진문 회장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오후의 태양은 따스하게 두 사람을 비쳐주었고, 차갑게 부는 바람을 따스하게 녹여주었다.
“이보게, 강윤이.”
“말씀하십시오.”
“사업은 냉정한 거야.”
원진표 회장의 부드러운 말에 강윤은 숙연해졌다.
“자네는 냉정한 듯하지만, 온기가 있어.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이번일도 MG 자체를 인수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네.”
“회장님.”
“사업에 인정은 필요 없네. 가수가 노래를 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존립할 가치가 없어.”
강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진문 회장의 지금 말은, MG를 정리해달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내 아들놈은 엔터테인먼트 사를 이끌 능력이 없어. 자기만의 철학이 없거든.”
“철학…”
“녀석이 회사를 운영해봐야 사람들만 불행해질 거야. 녀석은 녀석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아. 그림쟁이는 그림쟁이로 살게 해줘야지. 후… 자네만의 철학이 무엇인가?”
원진문 회장의 물음에 강윤은 확신어린 어조로 답했다.
“노래하고 싶은 사람이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연기를 하고 싶다면 연기를 하게 해주면, 그것이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합니다.”
“맞아. 그것이 본질이지. 그런데 지금의 MG는 자네 같은 철학이 없어.”
원진문 회장은 강윤에게 손짓해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원진문 회장은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회장님.”
“아비로서 내 아들을 배려해줘서 고맙네. 하지만 더 큰걸 부탁하고 싶어.”
“말씀하십시오.”
원진문 회장의 눈이 순간 빛났다.
“MG를 대신하는 회사를 만들어주게.”
강윤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른 고목 같은 손에서 거대한 압박에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혀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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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알겠습니다.]리처드는 자리에 놓인 앤티크한 전화기를 끊으며 근심에 사로잡혔다.
MG에 함께 들어온 푸른 눈의 비서가 걱정스럽게 리처드에게 물었다.
푸른 눈의 비서는 리처드의 자리에 결재 서류를 올려놓자 리처드는 왼쪽 가슴에서 펜을 꺼내어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며 물었다.
[요새 월드와 우리 MG들 이사들이 자주 만난다지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타타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 예상은 했었으니까. 내년까지만 버티면 되는 것을.]리처드는 코웃음을 쳤다.
곧 유로스 쇼핑몰의 리모델링이 끝난다.
리모델링이 끝나고, 유로스 쇼핑몰이 개장하면 스타타워를 이용한 사업이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다.
물론 흑자로 전환하는데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 돈은 본사를 설득해서 돈을 융통받으면 된다. 본사에서 돈을 안 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니까.
리처드의 말에 비서가 결재 서류를 들며 답했다.
[월드는 쓸데없는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음반으로 얻은 수입, 행사로 얻은 수입, 거기에 드라마에… 하는 일마다 성공했지요. 스타타워를 건드려볼만 하다고 여겨집니다.] [만만치 않은 적이 됐군요. 작년에 확실히 쳐버렸어야 하는데.]리처드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미 상대는 성장을 했고, 턱밑에서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
대책을 세워야 할 때였다.
푸른 눈의 비서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리처드는 시가를 빼서 불을 붙였다.
짙은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우자, 그는 창가에 서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 유로스 쇼핑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진한 비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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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릴리!! 거기서 스탭이 왼쪽으로 돌아야지.”
연습실은 에디오스와 이혁찬 안무가의 연습으로 뜨거웠다.
휴식시간 없이 연습만 한 탓인지, 추운 날씨 속에서도 그들의 몸에는 진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에일리 정은 이혁찬 안무가의 지도에 스탭을 몇 번이나 다시 맞춰가며 안무를 교정했고, 다시 해보고, 또 해보며 안무를 익혀갔다.
이시이 아키나는 에디오스 선배들의 연습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라 옆에 앉은 일본인 언니, 이시하라 유이도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일본말을 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은 비슷했는지 양채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하하하하하…”
중국인 쌍둥이들도, 다른 한국인 연습생들도 에디오스의 연습량에는 기겁을 했다.
비록 한주연은 없어 안무의 완성은 아니었지만 언니들이 보여주는 열기는 동생들에게 강한 압박을 심어주었다.
한창 모두가 열기를 느끼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이거, 또 방해했나?”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강윤이었다.
그를 보자 모두가 연습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연습생들과 가수들의 큰 소리에 강윤은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안녕. 효민아. 언니들 챙겨줄래?”
“네.”
감효민은 강윤의 양 손에 있던 음료수를 받아 바닥에 펼쳤다.
다른 연습생들도 그녀를 도왔고, 에디오스 멤버들과 이혁찬 안무가도 함께 합세해 곧 원을 만들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강윤과 이혁찬 안무가를 제외하면 여자들밖에 없어서인지 쉬는 시간은 왁자지껄했다.
“골 사이에 땀 좀 닦아.”
“언제는 안보였다고.”
크리스티 안의 말에 이삼순은 시크하게 반응했고 연습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강윤이나 이혁찬 안무가나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후배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정민아가 퉁명스레 말했다.
“너희 사장님은 여가수 생리대도 사다주는 분이야. 라이너, 슬림형, 날개형까지. 취향저격해서 사다주시는 분이야. 걱정 노노해.”
“네에에에에?!”
순식간에 연습생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강윤은 머리를 부여잡았고, 이혁찬 안무가는 어깨를 들썩이며 쿡쿡거렸다.
사실, 매니저라면 남자와 여자로 접근하면 안 되서 당연한 이야기건만…
“민아 너… 아.”
강윤이 정민아에게 가볍게 한마디를 하려고 하는데, 주머니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했다.
받아보니 이현지였다.
“네, 이사님. 아…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가수들과 연습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윤이었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강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아. 다들 먹어. 나중에 보자.”
강윤은 서둘러 연습실을 나서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현지가 강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한 건 다 준비해놨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까지 가는 건 적개심을 올릴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강윤의 걱정스러운 말에 이현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한테는 적개심이지만, 같은 편에게는 누구보다도 든든함을 심어줄 수 있어요. 가요.”
이현지는 가볍게 강윤의 등을 두드렸다.
언제나 남의 등을 두드리며 떠밀어주었던 강윤에겐 생소한 일이었다.
“네, 갑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사회의가 열리는 오늘의 목적지, MG 엔터테인먼트로 출발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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