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0
8화 – 무대를 넓히는 무대(2)
“민아야-”
휴게실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민아는 느릿하게 구수한 어조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움찔했다.
“사.. 삼순아.”
“뭐햐? 물마시는겨?”
“어… 아하하.”
정민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선머슴 같고 느릿한 이삼순을 상대하는 일은 정민아에겐 고역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력은 좋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숙소에서도 크게 나쁘다 할 것도 없으니 난감한 캐릭터였다. 말하자면 이삼순은 친해지기는 부담스러운, 지금까지 상대해온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한 잔 줄래?”
“여.. 여기.”
정민아는 긴장되는 것보다 다른 의미로 뻘쭘했다. 그러나 이삼순은 정민아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다. 그런 이삼순이 정민아는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저런 애가 이 팀에 뽑힌 거지?!’
정민아에겐 이게 언제나 의문이었다. 사투리투성이에 선머슴 같은 외모에 도무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특징은 전혀 없다. 그런 이삼순이 정민아는 싫었다. 맨날 실수해서 트레이너에게 불려가는 에일리보다 이삼순이 더!!
“오늘 말여 노래 연습하는 날 맞재?”
“으응. 맞아.”
“노래는 참말로 어려운데. 민아는 노래 잘햐?”
“아니, 나도 별로야. 주연이가 잘하지.”
“그랴? 주연이한테 도와달라 해야겠다.”
이삼순은 ‘물 잘 마셨다’ 인사하고는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에너지가 넘치는 동료였다. 정민아는 저 적응 안 되는 캐릭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나랑은 너무 안 맞아…”
“어떤 게?”
“히익!!”
갑작스레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정민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돌아보니 강윤이 있었다.
“아.. 아저씨!! 놀랐잖아요!!”
“회사다, 여기.”
“알았어요. 팀장님. 아무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언제부터 계셨어요?”
“네가 삼순이랑 안 맞는다고 할 때부터.”
강윤은 매점에서 간단한 주전부리 거리를 사 들고 정민아와 마주 앉았다. 다이어트는 연습생들에게 일상과 같은 것이었기에 매점에서도 다이어트 간식들이 많이 팔렸다. 강윤이 사든 것들도 그런 간식들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쉬면서도 이런 걸 먹어야 해요?”
“싫으면 내가 먹을게.”
“아니에요.”
어차피 놔두면 다 먹는 법이다. 언제나 식단을 조절하는 정민아에게 이런 간식들도 사실 축복이었다. 소금기 없는 두부 과자와 두유를 집어 든 정민아에게 강윤은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삼순이랑 많이 안 맞아?”
“그게요…”
“싸운 거니?”
“그런 건 아닌데요…”
정민아는 우물쭈물했다.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번에 일방적으로 삼순이가 싫다고 말했다가 혼이 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민아도 당시 감정이 앞섰다는 것을 알고 반성했지만, 이삼순의 느긋한 성격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강윤은 망설이는 정민아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나는 민아, 네가 이삼순의 여유를 배웠으면 좋겠어.”
“여유요? 삼순이가 여유가 있어요?”
“이미 알고 있잖아. 물론 삼순이도 너한테 배울 점이 있지. 룸메이트 편성을 너희한테 안 맡기고 일방적으로 한 이유가 있어. 서로한테 배울 점이 있을 거야.”
“팀장님 말씀대로 삼순이는 여유가 있어요. 아니, 여유가 넘쳐 너무 느긋해요. 연습할 때는 잘하는데 숙소에서나 친구들한테나… 속이 터질 것 같아요. 적응이 안 돼요.”
“어떤 게 속이 터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남한테 피해를 주니?”
“그건…”
정민아는 답하지 못했다. 이삼순은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경쟁자인 연습생들과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일부 독기 있는 연습생들도 이삼순에게는 마음을 푸는 경우도 많았다. 연습생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정민아와는 차이가 있었다.
“민아 너는 독기가 있지. 절대 지는 꼴 못 보고. 너도 잘 알지?”
“네.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도 이겨야 해요. 반드시.”
“그건 굉장한 장점이야. 그 점 때문에 네 실력이 일취월장했지. 그렇지?”
“네.”
정민아는 춤 하나는 다른 연습생들보다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강윤마저 이를 인정해주니 뿌듯했다. 그러나 강윤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지.”
“독이 될 수도 있다고요?”
“지나친 경쟁은 사람을 망치는 법이야. 그래서 독기를 제어하는 방법을 삼순이한테 배웠으면 좋겠어. 알았지?”
정민아는 완전히 강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피부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강윤은 그의 멘토였다. 그가 하는 말이면 당연히 들어야 한다 생각했다. 쉽지 않겠지만, 이삼순에게서 배워야 할 점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강윤과 헤어진 정민아는 연습실로 복귀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오지 않아 소녀들 모두가 각자 떠들고 있었다.
“푸하하!! 그럼 삼순이는 호랑이 등 타고 논거야?”
“요새 호랭이 없데이. 나중에 놀러 와. 김치 넣고 솥단지 써서 전 맛있게 해줄게.”
“나도나도!! 그 산에 가고 싶다.”
정민아가 보니 이야기의 중심에는 삼순이가 있었다. 한주연이 조용히 듣고 있었고 에일리 정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막내 서한유도 호기심을 보였다. 표정 없는 크리스티 안도 귀를 열어두고 듣는 눈치였다.
‘이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삼순이었구나.’
특이하다는 건 멀리할 수 있다는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큰 장점도 될 수 있었다. 이삼순은 동료들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며 모두를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강윤의 삼순에게서 여유를 배우라는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자자. 연습 시작해볼까?”
이윽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들어왔다. 모두가 언제 떠들었느냐는 듯 열을 맞춰 섰고 곧 강도 높은 연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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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고급 술집.
자줏빛과 주황빛의 은은한 조명과 함께 고급진 재즈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강윤과 이현지 사장이 만났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강윤 씨.”
“아닙니다, 사장님.”
“바쁜데 무리한 건 아니죠?”
“괜찮습니다.”
당연한 사회인의 예의였다. 이곳에 나오기 위해 강윤은 오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지 사장은 강윤에게 술을 따라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불렀어요. 강윤 씨의 생각도 듣고 싶었고. 사람이 원래 서푼은 숨기는 법이지만 오늘은 최대한 정직하게 답을 해주길 바래요. 나도 그럴 테니까.”
“…..”
정직을 강요하는 평소와 다른 이현지 사장의 모습에 강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윤은 이런 자리에 불려 나올 때부터 뭔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강윤 팀장도 잘 알겠지만, 우리 회사, 그러니까 MG엔터테인먼트는 회장을 정점으로 사장, 그리고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사장, 회장의 사인과 이사회의 최종승인이 있어야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죠?”
“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해요.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들어요.”
이현지 사장은 회사 이야기를 주욱 풀기 시작했다.
정점 원진문 회장은 사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닥부터 회사를 일궈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으며 지분도 가장 높았다. 그런 회장을 정점으로 밑에 2개의 세력이 존재하는데 사장단과 이사회였다.
“회장님은 사장단과 이사회를 적절히 이용했죠. 두 세력이 서로 경쟁하며 회사가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 생각은 맞았고 사장단과 이사회는 서로를 견제하며 성과를 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의 MG엔터테인먼트가 그렇게 만들어졌죠.”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이현지 사장이 취임한 이후에 생겼다. 전 사장이 뇌물수수 혐의와 사내 비리 등으로 퇴임하게 되면서 사장단의 힘이 약해지고 이사진의 힘이 강해졌다. 게다가 대외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쇄신을 위해 해외파이면서 나이도 젊은 이현지가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사들이 보기에 난 너무 어렸죠. 게다가 시기도 안 좋았어요. 막 취임을 했을 때가 사내의 대형가수들 재계약 시즌이었으니까. 강윤 씨도 알다시피 결과는 대실패였죠. 그 덕분에 내 힘은 많이 떨어졌고 이사들의 힘은 더더욱 올라갔었죠.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게 이강윤 씨, 당신이에요.”
이현지 사장에게 이강윤이란 존재는 구원자와 같았다. 원진문 회장은 강윤을 이현지 사장 밑에 배속시켰고, 이후 강윤은 엄청난 실적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주아의 일본진출을 시작으로 공연팀이 만들어지고 첫 번째 공연, 세디가 성공적으로 컴백에 성공하고 이어 시즌스까지 공연 이후 좋은 효과를 보고 있어 공연팀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걸그룹 프로젝트도 착착 진행 중이다. 덕분에 이현지 사장의 힘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내정치에 끼어들게 하여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네요. 하지만 강윤 씨는 이미 내 사람이라고 이사들에게 인식됐습니다. 저들에게는 이미 쓰러뜨려야 할 적이나 다름없죠. 강윤 씨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 나의 성공은 이사들에게는 독과 같은 것이니까.”
“…..”
“어차피 다 같은 회사의 일 아니냐는 순진한 말을 하는 건 아니겠죠? 나는 강윤 씨를 보호해주고 싶어요. 내 사람이 되세요. 오래도록 함께해요, 우리.”
강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사들인데 회사의 성공이 그들에게 해가 되겠느냐는 생각부터 피하고 싶은 생각마저,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이 순간이 오는군.’
그러나 강윤은 이내 생각을 바로 잡았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사내 정치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끼어들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었다. 불순물이 끼어들게 될 거라는 생각들이었다. 고액의 연봉을 받게 되고 점점 책임이 커지게 되면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 말이다. 전 삶의 10년의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강윤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기준들은 따로 있었다.
“먼저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전 누구의 사람이 아닌, 이강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MG엔터테인먼트 총괄기획팀장 겸 공연팀 기획팀장 이강윤. 이게 MG엔터테인먼트에서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누구의 사람이니 아니니 그런 건 없습니다.
강윤의 눈빛은 강했다. 이건 거절임과 동시에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이현지 사장과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래요? 아쉽네요. 그 말은 저쪽으로 가겠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군요.”
이현지 사장이 씁쓸히 웃었다. 지금 그녀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절박한 그녀에게 강윤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강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제 기준은 단순합니다. 가수가 음악을 하게 해주는 것. MG엔터테인먼트는 가수들이 노래하게 해주기 위해, 그리고 그 노래를 듣는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이 기준에 부합된다면 저는 누구와도 손을 잡을 겁니다. 이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강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알싸한 기운이 솟구쳤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이현지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말은 내 기준은 이러니 네가 따라와라, 이런 뜻과 같았다.
이윽고, 이현지 사장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가수가 음악을 하게 한다. 단순하군요.”
“그렇습니다.”
“가수가, 음악을 하게 한다…? 음악, 음악이라.”
“기준은 단순한 법이니까요.”
“하하하하!!”
이현지 사장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강윤은 그녀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명쾌했다.
“좋네요, 좋아. 그렇다면 내가 계속 가수들이 음악을 하게 만들어 주면 강윤 씨는 계속 내 편일 거다? 이 이야기군요.”
강윤은 말없이 웃었다. 긍정의 의미였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이현지 사장은 더더욱 크게 웃으며 강윤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하하하!! 오늘 크게 한 방 먹었네요.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더니 오히려 내가 당했어. 강윤 씨, 무서운 사람. 자, 받아요.”
“잘 받겠습니다.”
원칙과 기준. 강윤은 이게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현지 사장은 오늘 이강윤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릇이 커. 여기에서만 머물 사람이 아니야.’
이현지 사장은 강윤과 어울리며 이렇게 판단했다. 단순히 일만 잘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윤의 말에서 많은 걸 생각 할 수 있었다.
가수가 음악을 하게 한다.
결국, 진리는 단순했다. 가수가 음악을 하면 수익이 창출되고 회사가 돌아가며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며 회사는 점점 더 성장할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지만 강윤은 가장 필요한 이상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사내 정치를 생각했지만, 강윤은 가장 중요한 것을 관통한 것이다.
결국, 이현지 사장은 강윤을 자신의 사람보다 동료로 삼아 오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받아요.”
“너무 많이 주시는데..”
“시끄럽고, 받아요.”
화기애애함(?) 속에 두 사람의 술자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
.
.
새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술집에서.
이현지 사장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엎드려 있었고 강윤은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언젠가 MG엔터테인먼트를 벗어나 내 일을 해야 하는데… 과제가 너무 많네.”
MG엔터테인먼트의 깃발이 아니라 강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무대를 만드는 그 날.
강윤은 그 무대에서 가수가 마음껏 소리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그 날을 상상해 보았다.
술이 들어가니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휘저었다.
“아직은 멀었지. 희윤이 병도 해결해야 하고, 기반도 약하지만…”
그러나 호박색 술잔을 휘휘 저으며 강윤은 씁쓸히 웃었다.
아직은 너무도 먼 꿈이었다. 기반도 경험도 부족하며 상황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반드시…”
아직은 먼 미래를 생각하며, 강윤은 눈을 빛냈다.
반드시 이루어질 꿈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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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하게 취해 피곤함을 안고 있었지만, 강윤의 출근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강윤은 오전에 공연팀 회의와 걸그룹 기획 관련 일들을 마치고 외근을 나왔다. 편곡 관련으로 작곡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MG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이면 사람들에게 오라 할 수도 있었지만, 강윤은 직접 가는 것을 선호했다. 그 기업의 환경도 볼 수 있고 만나는 사람의 특징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윤은 명분보다 실리주의자였다.
‘오늘은 지하네. 이건 연탄 자국인가?’
강윤은 작은 간판에 ‘해피맨’ 이라고 쓰인 지하로 내려갔다. 오늘 눈에 들어오는 건 간판보다 연탄 그을음이었다. 건물은 지저분했지만, 다행히 벨은 있었다. 벨을 누르니 잠시 후 하얀 런닝 차림의 남자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이강윤이라 합니다. 곡 의뢰 건으로 왔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잠시만..”
런닝의 남자는 민망했는지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갔다. 잠시 후, 가죽 재킷과 해골 달린 이상한 모자를 쓴 남자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죄송합니다. 들어오십시오.”
강윤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작은 스튜디오 시설과 DJ 장비들, 그 외 오디오 등이 있었다. 건물이 좋지 않았는지 천장은 낮았다. 스튜디오로선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강윤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YHB입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깜빡 잠이 들어서…”
“아닙니다. 편곡은 잘 돼 가십니까?”
“중간 정도 됐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YHB는 기계를 조작했다. 곧 편곡 중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절까진 원곡과 비슷한 비트로 흘러가다 2절부터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클럽 비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이 완성되진 않았는지 2절 중간부분에서 멈췄다.
“좀 더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DJ 효과도 넣어서 말입니다. 시설을 넣는 게 힘드니까 편곡까지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쉽네요.”
작곡가로서의 욕심이었는지 YHB는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냈다. 오랜만에 들어온 곡 의뢰는 그만큼 즐거웠다. 화려한 일렉트릭 비트가 절로 몸을 흔들게 하였다. 강윤은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타보았다. 노래에 이래라 저래라 할 구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윤은 만족했다.
곡을 들어본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작곡가님 믿고 전 가보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특이한 옷차림과는 달리 YHB는 배려있는 착한 사람이었다.
“작곡가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냥 믿고 있겠습니다.”
“…..”
강윤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의외였는지 YHB는 물었다.
“제가 곡 의뢰를 많이 받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하고 다른 말씀을 하시는군요.”
“네?”
“제게 곡을 맡기는 분들은 요구 사항이 많았습니다. 제가 신인이라 자주 겪는 일이긴 한데….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 하는 요구사항이 많았습니다. MG엔터테인먼트 분이라 해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알겠습니다. 절대로 만족시켜드리는 결과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믿고 가겠습니다.”
강윤은 다시 연탄 자국 있는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다. 연탄 자국이 인상적인 건물을 나서며 강윤은 생각했다.
‘YHB, 그러니까 유흥부는 곧 일렉트로닉의 대가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거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거지 실력은 이미 갖추고 있어. 말을 크게 할 필요가 없지.’
강윤은 결과에 만족하며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의 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이강윤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SunDae 렌탈에 문지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 조명 대여 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오늘까지 주문서가 들어왔어야 하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연출팀에 문의해 봤더니 거기도 잘 모른다 해서 직접 연락드렸습니다.
“어제 공문으로 다 돌렸는데… 가수 컨셉이 아직 안 잡혀서 오늘 주문이 힘들 것 같습니다. 내일 연락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윤은 내일 주문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업체에 이렇게 연락해달라고 기획팀에 공문까지 넣어놨었다. 그런데 업체에서 연락이 오게 하다니. 강윤은 한숨이 나왔다.
“걱정 마세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강윤은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강윤은 연출팀 사무실로 직행했다.
“공문을 확인 못했다고요?”
“죄송합니다. 어제 인트라넷에 오류가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고.”
연출팀 과장의 민망한 말에 강윤은 침음성을 냈다. 간혹 인트라넷 오류로 메시지가 전송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며 공지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했다. 연출팀 과장에게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전산팀에 단단히 엄포를 놓도록 연락을 해두라 말해두고는 연출팀을 나섰다.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결제를 바랍니다’라는 친구들이 책상 위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오늘도 많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강윤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번 치곤 밀려있는 결제 서류 더미에 달려들어 업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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