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00
88화 – 두 번째는 실패, 세 번째는?(5) >
‘편곡이 필요할까?’
김지숙이 자신의 편곡을 무척 좋아하는 것도, 더 좋은 퀄리티를 원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원곡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다.
물론 더 좋은 편곡을 내놓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문제였다. 게다가 두 사람의 듀엣곡 무지개는 공개무대에서 많이 선보이지도 않았다.
‘꼭 필요할 것 같진 않아.’
생각을 정리한 강윤은 턱에 손을 올렸다.
“아무래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 지금 내가 편곡에만 매달릴 수도 없을 것 같고…”
“어떻게… 안될까요?”
김지숙은 강윤의 팔까지 붙잡으며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강윤은 미안함을 드러냈다.
“미안해. 정 필요하면 우리 편곡가한테 부탁 해볼게. 지금 스튜디오에 있거든.”
“…아니에요.”
강윤이 계속 곤란하다고 하자 김지숙은 우울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윤’의 편곡이 아니면 좋은 원곡을 애써 바꿀 이유도 없었다.
그녀의 우울한 모습에 강윤도 미안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도와주고는 싶은데, 상황이 정말 안 좋아. 내가 곡에만 매달리면 여러 가지로 일정이 꼬이거든. 우리 애들 데뷔도, 콘서트도 그렇고… 미안해.”
“…알겠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괜찮으니까요.”
“대신 너희 무대는 더 신경 쓸게.”
“네. 혹시라도 나중에 여유 되시면 말해주세요.”
“알았어.”
김지숙이 시무룩해져 돌아서자 강윤은 한숨을 쉬었다.
편곡은 특히 즐거운 작업이었다.
음표를 만져가며 빛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도 포기해야 했다.
‘이번 일 끝나면 작업만 하고 살아야지.’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며 강윤은 쓴웃음을 짓고는 옥상으로 향했다.
하지만 옥상도 강윤을 반겨주지 않았다.
“오늘 황사구나.”
잠깐 나갔는데도 목이 칼칼했다.
한국에서의 황사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나쁜 공기에 놀란 강윤은 서둘러 문을 닫고 계단에 앉았다.
“후우.”
불을 붙이고, 허공에 연기를 뿌린 강윤은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정민아에게 했던 모진소리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좀 더 돌려서 말할 걸 그랬나?’
어제 한 말에 후회는 없었다.
언젠가는 부딪힐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정민아는 강윤에게 소중한 동생이었다.
‘아니야. 이대로 가면 더 끌려 다닐 뿐이야. 혹시라도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최악의 상황도 생각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런.”
강윤은 서둘러 담배를 비벼 끄고는 연기를 흩었다.
담배야 태워도 상관없었지만, 가수들이 담배연기를 맡아봐야 좋을 게 없었다.
가벼운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트레이닝복을 입은 지금 가장 마주하기 힘든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민아야.”
“안녕하세요.”
그녀의 얼굴엔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움도, 우울함도 없었다.
표정 없는 그녀에게 강윤은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앉아.”
“괜찮아요. 연습 때문에 금방 내려가야 해요.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평소라면 그 배려를 당연하게 받았을 정민아였지만, 지금은 많이 달랐다.
그 한마디에서 강윤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할 말?”
“네. 사장님.”
잠시 심호흡을 한 정민아는 강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못나게 굴어서 죄송했어요. 리더가 제대로 공사 구별 제대로 못한 거… 애들한테도 제대로 사과할게요.”
강윤은 눈을 감았다.
호칭부터 달라졌다.
단발성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윤은 일회성으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아니야. 이제부터 잘하면 되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할게요.”
“그래.”
“그럼 전 연습 때문에… 이만 내려가 볼게요.”
정민아는 휙 돌아서서는 바로 연습실로 내려갔다.
‘…후우.’
계단을 내려가는 정민아를 바라보며 강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끼는 동생을 잃은 기분이었다.
지난 번 이현아도 그렇고 이번에는 정민아까지.
남녀 사이가 된다는 것은 참 마음이 쓰린 일이었다.
‘할 수 없지.’
하지만 강윤은 복잡한 심경을 털어냈다. 후회는 해봐야 후회일 뿐이니까.
그때, 주머니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 刘洋(류양)’이라고 적혀있었다.
강윤은 담배를 넣으며 전화를 받았다.
함께 방송국에 다녀온 이후, 류양 이사의 태도가 묘하게 부드러워지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화를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는데…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용건을 물으니 류양 이사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시계를 보니 때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특별히 점심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강윤은 선선히 승낙했다.
전화를 끊고, 강윤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오늘은 강윤이 곡을 봐줄 줄 알았던 서한유는 그가 약속 때문에 나가야 한다고 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요한 약속이라니, 할 수 없죠.”
굳이 류양 이사와의 약속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서한유가 그쪽 사람과 안 좋게 얽혔으니 말이다.
대신 강윤은 법인카드를 건넸다.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아싸~!!”
시무룩해있던 박소영이 카드를 받아들고 방방 뛰자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언니, 우리 오늘 둥퍼러우(東坡肉) 먹으러 가요.”
“둥퍼러우?”
“동파육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싼 거면 다 콜.”
박소영의 뜬금포에 강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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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는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해의 동방방송에서 에디오스의 데뷔가 결정되면서 그는 합동 콘서트에 업무와 에디오스 데뷔무대에 관련된 일들을 함께 처리해야 했다.
원래는 중국에서 업체들을 돌아다녀야 했을 그였지만 지금은 한국에 있었다.
그것도 스타타워, 그러니까 월드 스튜디오의 새로운 사무실에.
“…허허허.”
월드 스튜디오의 ‘클래식’이라고 크게 적힌 사무실 안에 들어온 최경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떤가요? 루나스 시절보다는 확실히 좋아졌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최경호에게 이현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좋아진 정도가 아니었다.
벽에 새겨진 ‘WORLD’라는 로고부터 우드로 처리된 벽, 거기에 소파와 스크린까지.
이전의 좁아터진 루나스 사무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게 조금이면 여기서 조금만 더 넓어지면 큰일 나겠습니다.”
“그러면 회장실이죠.”
“회장… 아, 강윤 사장님 방이군요. 풋.”
최경호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회장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강윤이 떠올랐다.
팀장들이 사장이 되면 그 팀장을 이끄는 사장은 회장이 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깔끔하면서도 넓어진 사무실을 둘러보며 최경호는 계속 감탄했다.
“강윤 사장님이 사무실에 이렇게까지 투자를 하실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한번 투자하면 화끈한 분이니까요. 사실 저도 의외긴 해요. 덕분에 덕질 하나는 제대로 했지만…”
“덕질? 무슨 말입니까?”
전문용어(?)의 등장에 최경호가 당황하자 이현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최 사장님, 안되겠네요. 더 배우셔야 할 듯?”
“이사님이 젊은 겁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시집도 안 갔는데?”
새 건물 냄새가 가시지 않은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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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스 백화점, 상층에 위치한 사무실.
리웬타오 사장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류양 이사는 떨리는 팔을 애써 멈췄다.
리웬타오 사장과 일한 지 벌써 수십 년 째.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리웬타오 사장의 날선 눈빛을 류양 이사는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라이벌 관계의 두 업체가 공동으로 PPL을 하는 경우라니.
한 드라마에서 두 백화점이 비교될 건 당연하고 심하면 한 곳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리웬타오 사장의 서슬 퍼런 눈빛에 류양 이사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게 분명했기에 강윤과 준비를 했다.
류양 이사는 심호흡을 하고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류양 이사는 들고 있던 서류를 리웬타오 사장에게 건넸다.
한화 당 각 백화점이 나오는 씬을 가급적 비슷하게 맞추자는 것과 배우나 회사에 추가적인 로비를 하지 말자는 협약서였다.
시얀 백화점의 직인까지 찍혀있는 걸 확인한 리웬타오 사장은 협약서를 옆에 놓고는 팔짱을 끼었다.
류양 이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지만 리웬타오 사장은 쉽게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뒤에 누군가가 있군.’
아니, 이건 확신이었다.
류양 이사와 함께 일한 세월이 수십 년이었다.
그라면 시얀 백화점과 공동 PPL을 끌어내기보다 그들을 찍어 눌렀을 것이다. 아니면 시얀의 정한위 이사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도 뒤통수를 치겠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는 류양 이사가 이 같은 계획을 꺼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두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말이라면 죽고 못 사는 류양 이사라면 바로 알겠다며 앞장섰을 것이다.
그런데 약속이 있다며 난색을 표하니 리웬타오 사장은 호기심이 일었다.
자신과의 일이라면 다른 사람과의 선약은 다 내팽개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진서의 소속사 사장, 그리고 약속을 대하는 태도.
두 가지를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류 이사 배후에 있는 사람이군.’
리웬타오 사장은 알기 쉬운 류양 이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제신극화에서 직접 움직였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외국인 업체라는 리스크에 PPL을 하나만 받아도 되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답이 나오자 리웬타오 사장은 궁금해졌다.
배짱 좋게 류양 이사를 움직이다니. 직접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류양 이사가 되레 당황해서 손을 들었다.
막무가내로 앞장서는 사장 때문에 류양 이사는 난감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
.
.
.
강윤은 애써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온 전화로 듣기는 했지만 점심 약속에 하야스 백화점의 리웬타오 사장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준비 했을 텐데.
그의 앞에 앉은 류양 이사는 강윤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즐기는 듯 입을 가리며 웃었고, 리웬타오 사장은 여유 있는 얼굴로 애피타이저를 들었다.
강윤은 극히 예의를 갖추었다.
리웬타오 사장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백화점 업계에서도 유독 냉정하기로 경영하기로 소문한 사업의 달인.
그가 경영한 40년 동안 하야스 백화점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냉정한 판단력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 중의 남자였다.
수저를 놓으며 리웬타오 사장이 물었다.
리웬타오 사장이 엷게 웃자 강윤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차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아, 프랑스 와인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건 누구나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사장님께서 알려주시겠습니까?]일부러 조금 무시하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강윤은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띄우며 가르침을 구하는 태도에 리웬타오 사장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젊어 보이는 데 쉬운 사람은 아니군.’
리웬타오 사장은 옆의 류양 이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류양 이사는 직원을 불러 미리 예약한 와인을 가져다달라고 요구했다.
얼마 있지 않아 직원은 메인디시와 함께 고급스러운 병과 글라스를 가져왔다.
직원은 라벨을 보여주며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강윤이었지만, 오래된 와인이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리웬타오 사장에게 이런 와인을 대접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강윤은 난감했다.
‘안 마실 수도 없고…’
리웬타오 사장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이런 고급와인을 왜 대접해주는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체면을 깎을 수는 없지.’
부담감에 상대의 잔을 거부하는 건 권한 이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었다.
게다가 중국만큼 술자리, 먹는 자리가 중요한 곳도 없었다.
류양 이사가 자신을 점심 식사에 초대한 건, 이제 진짜 파트너로서 함께 일해보자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 와인을 넘겼다.
씁쓸하면서 땅기는 그것이 입 안에 그윽하게 퍼져나가며 강윤을 부드럽게 자극해갔다.
말이 필요 없었다.
리웬타오 사장은 강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리웬타오 사장은 말없이 손을 들어 식사를 권했다.
식탁에는 각종 귀한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기대하라고 한 류양 이사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크윽.’
리웬타오 사장과 류양 이사의 주량이었다.
류양 이사와 리웬타오 사장은 와인을 음미하지 않았다.
70년산의 귀한 와인을 위장에 들이붓고 있었다. 강윤도 그들의 수준에 맞춰 와인을 들이부어야 했다.
다행히 안주가 넘쳐날 정도로 많아 취기를 간신히 달랠 수는 있었지만, 어질어질한 기운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병이나 되는 와인을 모두 비우고 식탁도 깔끔히 정리되자 리웬타오 사장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본론이 나오자 강윤은 의자를 탁자에 당겨 앉았고, 리웬타오 사장도 눈매를 좁히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민진서를 저희 백화점의 모델로 쓰고 싶습니다.]리웬타오 사장의 말에 강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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