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01
88화 – 두 번째는 실패, 세 번째는?(完) >
‘진서가 하야스의 모델이 되면 시얀에 할 말이 없어져.’
취기가 한 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PPL을 하는 업체의 모델이 되는 데 문제될 소지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시얀과 하야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날 시험하나?’
리웬타오 사장의 의도를 파악한 강윤은 여유로운 얼굴로 잔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협약서를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는 건, 시얀을 버리라는 말이지. 하야스와 본격적으로 꽌시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와 같아.’
노선을 똑바로 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강윤이나 월드 엔터테인먼트나 노선을 타는 것 보다 이용하는 게 더 중요했다.
강윤이 독한 와인을 비우자 직원이 귀신같이 와서 다시 빈 잔을 채워주었다.
‘크윽.’
취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강윤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았다.
리웬타오 사장은 여전히 찢어진 눈매로 강윤을 바라보았고, 류양 이사는 무슨 생각인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불안함을 드러냈다.
리웬타오 사장이 다시 잔을 들자 강윤도 잔을 들었다.
일단 시얀을 놓는 건 선택지에서 지웠다. 이익을 최우선하는 중국이라지만 강윤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서 드라마에서 거둘 민진서의 CF수익은 포기했다. 장기적인 포석도 생각해서였다.
생각을 정리하니 답이 나왔다.
강윤이 거절의 의사를 표하자 리웬타오 사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민진서가 우리 백화점 모델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는데. 아쉽습니다.]리웬타오 사장이 다시 잔을 들자 강윤도 그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가져갔다.
크리스탈 잔이 울리는 소리가 다시 퍼져나가며 테이블에 긴장이 흘렀다.
이미 강윤이 어떤 말을 할지 알았다는 듯, 리웬타오 사장의의 눈매는 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진짜 본론이 나올 차례라는 걸 느낀 강윤은 잔을 내려놓았다.
[이젠 한국 최고의 가수 기획사로 평가받는다지요? MG 엔터테인먼트의 이사 출신인 이현지와 기획자가 독립해서 만든 회사로 몇 년 사이에 본가인 MG 엔터테인먼트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리웬타오 사장의 눈매가 가늘게 찢어졌다.
[오늘 만나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더 볼일 없다는 듯, 리웬타오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양 이사도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강윤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민진서보다 어울리는 모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강윤의 말에 리웬타오 사장은 비웃음을 흘렸다.
[민진서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협찬을 하는데, 그 이상의 모델이 있을까요?] [진서보다 100배는 더 하야스 백화점의 이미지와 어울릴 거라 확신합니다.]리웬타오 사장은 더 들을 필요 없다며 몸을 돌리자 강윤은 류양 이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류양 이사는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리웬타오 사장을 붙잡았다.
[뭔가?] [사장님. 조금만 더 들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미 우리 쪽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에 류양 이사는 잠시 쭈뼛대다가 눈에 강한 힘을 주었다.
[10분. 10분이면 됩니다.] [10분에 대한 책임은 자네가 지겠는가?]류양 이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굳이 강윤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강윤이 말했다.
류양 이사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어갔고, 리웬타오 사장은 콧방귀를 끼며 몸을 돌렸다.
[어디, 들어보지요.]리웬타오 사장은 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강윤은 뒤에서 어깨를 늘어뜨린 류양 이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미리 준비해 온 태블릿 PC를 꺼내들었다.
리웬타오 사장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6명의 여인이 드레스를 입고 여성스럽게 부케를 들고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화보였다. 상대가 별 반응이 없어도 강윤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입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뭐, 10분간 이야기를 들어보라더니 소속사 가수를 밀어 넣는다?
리웬타오 사장이 찢어진 눈으로 매섭게 강윤을 부라렸다.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강윤은 눈을 빛냈다.
[시얀이 다이아틴을 내세워 했던 마케팅을 기억하십니까?]그 말에 리웬타오 사장은 멈칫했다.
그 다이아틴을 거절했던 탓에 하야스가 입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류양 이사는 강등되는 수모까지 겼었다.
기억 못하는 게 이상했다.
리웬타오 사장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전에 다이아틴을 시얀 백화점의 모델로 만든 사람이 강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매장 안에 재생되는 노래까지 바꾸고, 대대적으로 모델을 백화점에서 공연하게 만들며 생각지도 못한 마케팅을 성공으로 거두었다.
이 힘으로 다이아틴은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고, 이후 승승장구 했다.
순식간에 담배 한 대가 타들어갔다.
리웬타오 사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허세일까? 자신감일까?
잠시 리웬타오 사장은 강윤과 눈을 맞췄다. 담담하지만 자신감이 어려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든지, 리웬타오 사장은 직원에게 손짓해 와인을 따르게 했다.
채워진 와인잔을 들며 리웬타오 사장은 안면 근육을 위로 당겼다.
곧 쨍하는 소리가 퍼져나갔고, 그는 단숨에 와인을 비웠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건 여기, 류 이사와 논의하면 됩니다.]
리웬타오 사장과 강윤은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강윤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는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된다는 것도 안 되는 순간도 생기고 예측불허의 일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은 숨긴 채, 강윤은 와인을 단숨에 비우며 환하게 웃었다.
.
.
.
하야스 백화점 사람들과 식사를 마치고, 회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 무렵이었다.
‘식사를 4시간이나…’
중국의 비즈니스 식사는 길다하더니. 차에서 내린 강윤은 시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즈니스에서 식사가 무척 중요하다는 건 잘 알았지만 점심시간까지 이렇게 길어 질 줄은 상상 못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취기를 날린 강윤은 서둘러 스튜디오에 있는 서한유에게로 향했다.
– 어? 이거 괜찮은데? 여기에 딜레이 조금만 빼보자.
– 그럴까요?
스튜디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보니 서한유와 박소영이 컨트롤러를 조작하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가기 전에 하얀빛만을 만들어내던 음표는 조금씩 일렁이며 점점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의욕에 불타있었다.
‘굳이 참견할 필요는 없겠군.’
강윤은 조용히 문을 닫고 스튜디오에서 돌아섰다.
사무실로 올라가 밀린 서류들을 살피려는데 계단에서 추만지 사장과 마주쳤다.
“이 사장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추만지 사장의 손에는 도면을 비롯한 서류들이 잔뜩 있었다.
강윤은 미소를 지으며 도면을 가리켰다.
“네. 콘서트장 도면 나왔습니까?”
“예. 홍커우 콘서트홀 조명 평면도하고 특수장치 도면입니다. 수정할 것 있으면 말해달라더군요. 알아서 한다는 걸 한번 보고 싶다고 우겨서 뺏어왔습니다.”
추만지 사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강윤에게 도면을 건네자 강윤은 계단에 앉아 도면을 펴고는 미간을 좁혔다.
“최 팀장님한테 조명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아직 반영이 안됐나 봅니다.”
“그랬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추만지 사장이 의아한 듯, 갸웃대자 강윤의 미간이 더더욱 좁아졌다.
“10번 조명이 센터잖습니까. 그런데 이 위치에 센터가 있으면 모두를 고루 비칠 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좀 수정하고… 잠깐. 16번하고 맞은편 14번도 안 바뀌었군요.”
“난 도통 들어도 모르겠습니다.”
추만지 사장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윤은 그의 이런 모습에 부드럽게 웃음지었다.
“간단합니다. 홍커우 콘서트홀 무대는 무척 넓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무대에 서는 인원도 많죠. 최 팀장님과 기본 조명으로 무대를 테스트했을 때, 무대를 골고루 비추지 못했습니다. 각도도 엉망이었고… 이걸 어울리게 수정하는 겁니다.”
“허허허. 그래요? 난 이 사장이 더 놀랍습니다. 이런 건 전문가나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요? 저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걸 응용하는 겁니다. 진짜는 전문가한테 맡겨야죠.”
강윤이 조명의 위치를 수정하고, 최경호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추만지 사장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확실히 사장이 많은 것을 아니 지시하는 것도 디테일해지고 팀원들도 확실히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피곤해지겠지만.’
추만지 사장은 강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애도를 표하며 다른 도면을 건넸다.
——————————
스타타워 매각 이후, MG 엔터테인먼트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에릭튼 케피탈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사옥을 옮겼으며 이사진들도 대거 정리하는 등 원진표 회장을 중심으로 급속히 안정돼갔다.
원진표 회장은 자신을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가자 야심차게 일을 벌여나갔다.
기존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대거 잡았고, 회사 차원에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사장실에서 원진표 회장은 일본어로 통화 중이었다.
입가에 만연한 미소, 그리고 가볍게 숙여진 고개 등 그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한참동안 저자세로 전화하던 그는 결국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죽어가는 시장에 불 좀 지펴줄려고 했더니, 요구는 더럽게 많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원진표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주아는 떠났지만 그 동안 MG 엔터테인먼트가 형성했던 일본의 인맥들은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그 인맥들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려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이전에 실권이 없을 때는 도장만 찍으면 됐지만, 이제는 실질적으로 업무에 뛰어들어야 하니… 그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양 비서. 아무리 신인진출 협상이라지만 일본 놈들이 이렇게까지 양아치처럼 나왔었나?”
양 비서라는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원진표 사장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며 재촉하니 그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윤 팀장님이 계셨을 때는…”
“강윤 이야기는 그만.”
원진표 사장이 손을 젓자 양 비서는 뒤로 물러나며 입을 다물었다.
“언제적 이야기를 입에 올리나?”
“죄송합니다.”
“하여간. 사람들이 다 강윤강윤.”
비서가 고개를 숙이자 원진표 사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여간 사람들이 다 강윤강윤강윤. 아주 다 그냥 월드로 가버리지?”
창밖을 내려다보며 원진표 사장은 이를 갈았다.
스타타워 인수 이후, MG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직원들은 이상하게 강윤을 찾아대는 듯 했다.
심지어 공문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지 말자고 했는데도 말이다.
“빌어먹을.”
속이 타는지 원진표 사장은 다시 품안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
유니크 뮤직 녹화가 있던 날.
녹화는 3시였지만, 강윤과 서한유는 그보다 훨씬 일찍 촬영장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음료도 돌린 후, 대기실로 들어갔다.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진미래는 서한유에게 특히 정성들여 메이크업을 해주었고 강윤은 대기실과 스튜디오를 움직이며 빠진 것이 있나 체크했다.
“사장님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왜 직접…”
이제는 어엿한 매니저로 성장한 문주명 매니저는 서한유의 컨디션을 체크하며 불맨소리를 했다. 사실,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을 사장이 하고 있으니 부담될 법도 했으니까.
서한유는 한숨짓는 매니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도 우리 사장님이 뭐라고 하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그게 더 무섭다고. 이제는 옛날같이 우물대지도 않는데. 눈치 보인다고.”
메이크업을 하며 간간히 담소도 나누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스튜디오 세팅이 끝나고, 서한유는 드레스 리허설을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그루브한 음악이 스튜디오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서한유의 화려한 의상과 함께, 보랏빛 조명이 조화를 이루며 스태프들에게서 말없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강윤도 카메라 뒤에서 손을 올리며 숨을 죽였다.
‘OOPS Funk에서 한 번이면 돼(一次就好)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약간만 변화를 주면 좋은 흐름을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강한 빛의 일렁임이 일어나는 부분이었다.
뭔가 강하게 터질 것 같다가 힘이 부쳤는지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강윤이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리허설을 마친 서한유가 스튜디오를 내려왔다.
“한유야.”
강윤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네, 사장님.”
“잠깐만. 소영이도 일로 와볼래?”
강윤은 다른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던 박소영도 스튜디오로 불렀다.
더 필요한게 있냐는 FD의 질문에 강윤은 잠깐 바꿀 게 있다고 이야기하고는 두 사람을 컨트롤러 위에 세웠다.
“‘OOPS Funk’에서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어떻게 넘어가고 있어?”
“거기요? 여기는 루프를 걸고 반복을 시켜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부분이거든요. 왜요?”
“여기. 조금 수정해보자.”
요 며칠, 자신들의 작업에 아무 말 않던 강윤이 이제야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 40분.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서한유와 박소영은 개의치 않는 듯, 든든한 둑을 보는 시선으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끝
ⓒ 이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