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03
89화 – 대륙을 휩쓸다(2) >
“이사님 말씀대로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지,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끄응…”
강윤은 얼굴에 난 땀을 손으로 훔치며 반론했다. 덕분에 이현지는 앓는 소리를 냈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날 수 없는지 한 템포 쉬고는 설득을 이어갔다.
“사장님. 회장이 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어요. 사장님은 지금처럼 현장, 사무실 거래처를 오가며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다만 지금과 달리 수행하는 비서들이 조금 붙겠죠. 월드의 위치에 맞게 사장님도 맞는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아요.”
“…..”
“하지만. 사장님 생각이 그렇다면 더 말하지 않겠어요.”
이현지는 바람소리를 내며 휙 돌아섰다. 화가 단단히 났는지 돌아선 그녀의 등은 차가웠다. 드물게 화가 난 그녀의 모습에 어색한 손짓으로 입가만 매만졌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혹시 원 회장님을 의식하고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혹여나 의심하는 눈초리에 강윤은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하긴… 사장님만큼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문제 될 건 없어요.”
“아직은 시기가 적절하지…”
“지금이에요.”
쾅!!
이현지는 손바닥으로 강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사람들 모두가 사장님을 인정하는 지금. 월드가 최고의 기획사라고 인정받기 시작한 지금.”
“…..”
침묵하는 강윤의 손을 이현지는 꼬옥 붙잡았다.
“이건 단순하게 회장이 되냐, 안되냐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제 막 정상에 올라왔어요. 앞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의미죠. 1위를 쫒아간다는 것과 1위로서 앞서가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사장님이 회장이 된다는 건 모두에게 강한 선전포고를 하는 의미와 같아요. 선두는 선두의 길을 가야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대로 월드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탈바꿈했다. 음악, 공연,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고 덩치도 엄청나게 커졌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또 새로운 길이었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예랑이나 윤슬, GNB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때가 된 건가.’
망설이던 강윤은 마음을 굳혔다.
머릿속에 현재까지의 일들이 하나하나 스쳐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온 이후, 기획팀장이 되어 주아를 담당하고 이후 MG를 나간 후 만난 여러 가수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갔다.
“…알겠습니다. 진행해주십시오.”
담담한 강윤의 말에 이현지는 그제야 얼굴을 폈다.
“어려운 일은 척척 해내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하는 재주가 있어요.”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잖습니까.”
“뭐라고요?”
강윤이 이마를 들어 올리자 이현지는 질렸다며 눈가를 찡그렸다.
“그럼, 앞으로 사장, 아니 회장님으로 대우할게요. 그럼 차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이현지의 비서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아무리 신입이라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 그게…”
방해를 받은 이현지가 날을 세우자 앳된 얼굴의 여비서는 겁을 잔뜩 먹었는지 몸을 떨었다.
“문 비서군요. 무슨 일 있습니까?”
중국 일로 2번 밖에 보지 못한 비서였지만, 강윤은 신입비서를 기억하고는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자 문 비서는 약간 차분해지더니 강윤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바, 방해해서 죄,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그, 급하게 보고할 것이 있어서…”
“무슨 일입니까?”
“유, 윤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 가수 이현아와 윤슬의 아이레인 멤버 위트가 열애중이라며…”
그 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던 강윤으로선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강윤 대신 국내일을 책임져왔던 이현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일이 닥치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
한가로운 오후.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려오는 작은 옥탑방에서 한 남자가 불룩 나온 뱃살을 긁어대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래그래, 민 사장. 나야 잘 지내지. 뭐? 특종? 개뿔…”
그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틱틱댔다.
한주연의 스캔들과 에디오스의 사고 기사를 잘못 쓰는 바람에 대중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고 이현지에게 고소를 당해 신문사가 거의 폐간 위기에 몰린 히든캐치의 전 사장, 유명후였다.
직원들도 거의 나가버려서 이젠 파파라치 노릇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 싫음 관두든가. 이번에 대어가 걸렸는데.
“말이라도 해보든가.”
– 흐흐흐. 역시.
하지만, 유명후의 성정을 아는 상대방은 간을 보며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잠깐. 혹시 월드 애들이랑 관련된 기사냐?”
–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뭔가를 눈치 챘는지 유명후의 눈은 무섭게 반짝였다.
“뭐냐? 뭔데?”
–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독사는 역시 달라.
“장난 그만치고. 빨리 말해.”
– 알았다, 새끼야. 이번에 윤슬하고 월드하고 중국에서 콜라보 콘서트하는 거 알고 있지?
“알게 뭐냐. 어차피 있는 놈들의 잔치인거. 왜? 여자들끼리 스캔들이라도 났데냐?”
유명후는 뚱하게 내뱉었지만, 상대방은 놀란 어조로 중얼거렸다.
– 이야, 비슷하게 가네? 아직 안 죽었는데?
“뭔 개소리야?”
– 거, 참. 척하면 딱 알아들어야지. 윤슬하고 월드 애들 둘이 스캔들이 났다고. 월드 하얀달빛 보컬하고 윤슬 아이레인 위진성이 하고. 집에 회사에 차에… 유효한 사진만 10장이다. 흐흐흐.
지금같이 예민한 시기, 두 회사 가수들 간의 스캔들이라니.
하얀달빛이야 아이돌이라고 하긴 애매하니 넘어갈 수 있다고 치지만, 아이레인은 끝물이라고 해도 어엿한 남자 아이돌 가수다.
두 회사 사이에 분명 갈등이 생길 요지가 충분했다. 아마 필사적으로 봉합하려고 하겠지.
유명후는 전화한 이의 용건을 바로 알아챘다.
“나를 총알받이로 쓰겠다?”
– 아무렴 어때. 이강윤한테 한방 먹일 수도 있고, 좋잖아? 싫으면 말고.
“크크큭.”
한참동안 유명후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 놈의 속셈이야 불 보듯 뻔했다.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윤슬과 월드 두 회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힘에 부친다. 일이 잘 돼서 한탕 크게 땡길 수 있다고 해도 월드의 태도로 보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독이 든 사과였다.
“좋아. 보내봐.”
– 하하하하하. 내가 사람을 잘 봤어. 기다려봐. 바로 보내줄게.
하지만 유명후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더 잃을 게 없는 몸이었다. 이미 월드와는 척을 질대로 졌다.
상대방은 메일주소를 받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있지 않아 메일을 열어보니 차 안에서 밀회를 나누고 있는 남녀와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성, 함께 팔짱을 끼고 있는 남녀의 다정한 모습 등 10여장의 사진이 메일로 전송되었다.
“크흐흐흐. 밑져야 본전이니까.”
유명후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그에겐 총알받이가 되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문 비서에게 보고를 받은 후.
강윤은 바로 윤슬의 부사장과 통화하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1시간 전, 윤슬의 본사에 한 기자가 찾아와 이현아와 위트가 차와 집, 밤거리 등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전송해왔다.
문제는 뚜렷한 요구조건도 없고, 출처도 불분명하다는 것. 상대를 알 수 없으니 전략수립이 쉽지 않았다.
중국 바이어들과 약속이 있어 추만지에게는 나중에 보고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부사장은 전화를 끊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에요.”
강윤이 통화하는 내내 식어버린 커피잔을 만지작대던 이현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동안 강윤 대신 국내일을 책임져왔는데 이런 사태가 터졌으니…
하지만 강윤은 차분했다.
“책임소재도 중요하지만 일단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내. 현아도 대단합니다. 매니저를 따돌리며 어떻게 연애를 한 건지.”
“사장님.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져야죠.”
강윤이 평온해도 너무 평온하니 이현지가 오히려 성화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하얀달빛을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강준서가 들어왔다.
다른 매니저와 스케줄에 간 이현아는 2시간 뒤 회사로 들른다고 했다.
제법 체격이 있던 그가 잔뜩 움츠러든 얼굴로 쇼파에 앉자 이현지는 입술을 깨물더니 차갑게 쏘아댔다.
“강 매니저. 현아 씨가 위트와 사귀고 있던 거, 이전부터 알고 있었나요?”
“…..”
“강 매니저.”
“…죄송합니다.”
그는 덩치만큼이나 묵직한 톤으로 이야기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현지는 평소의 차분함보다 급한 마음에 그를 다그치려 했지만 강윤이 타이밍 좋게 치고 나왔다.
“문책은 나중입니다. 강 매니저가 현아가 연애한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다는 건 말이 안되니까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일단, 이유부터 들어보죠.”
강윤은 상석에서 일어나 강준서 매니저와 마주앉았다.
“현아가 전에 좋아하던 사람과 너무 안 좋게 끝났다면서…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고 잘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약해져서는…”
“알겠습니다. 위트를 만난 건 언제부터죠?”
“작년 겨울입니다. 현아가 그때 엄청 힘들어해서 기억이 또렷합니다. 하얀달빛이 연말 공연으로 스케줄이 많았었으니까요.”
“그런 보고는 없지 않았나요?”
이현지의 물음에 강준서 매니저는 애꿎은 손만 쥐었다폈다하며 입을 떼지 못하자 강윤은 설명이 우선이라며 그를 재촉했다.
“연말에 뭔가 일이 있었군요.”
“…네. 맞습니다. 저희와 윤슬의 사이가 좋잖습니까. 연말 가요제에서 듀엣무대를 가지게 됐는데 그때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었죠.”
“불이 확 타오른 케이스군요.”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강윤은 냉정하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얼마나 자주 만났냐부터 두 사람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 것 같냐까지. 사소한 것까지 빠짐없이 물었고 그는 긴장 속에서 강윤의 질문에 답했다.
이현지가 잡아먹을 듯 한 눈매로 강준서 매니저를 쏘아보는 와중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적은 강윤은 차분히 펜을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회사가 일을 해야 할 차례군요. 지금은 강 매니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강윤의 무거운 말에 강준서 매니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연예인의 연애보고, 가장 중요한 보고를 누락해 사태를 키운 책임은 피해갈 수 없었다.
“하얀달빛의 매니저 팀장으로서 강준서 매니저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매니저는 연예인에게 누구보다도 따뜻해야 하지만, 때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냉정해야 합니다. 이의 없지요?”
“…네.”
“당분간 하얀달빛의 팀장은 다른 매니저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준서 매니저는 중국에서 에디오스 담당 팀원으로 바닥부터 다시 배우도록 하지요. 이틀은 근신하고 모레, 중국으로 출국하십시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가보십시오.”
강준서 매니저가 잔뜩 풀이 죽어 밖으로 나간 후, 이현지는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진정시키며
강윤 맞은편에 앉았다.
“팀장들에게 연예인 관리에 전권을 쥐어주니 이런 문제도 생기네요. MG에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한 일인데… 처벌이 약한 것 같네요. 감봉이상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강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막 우린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MG는 이사들이 꽉 잡고 있는 관료제라고 봐도 무방하죠. 수직적으로 지시를 내리기에는 좋지만 그만큼 변화에 약하다는 단점도 있지 않았습니까. 우린 그 단점을 봤기에 팀장들에게 많은 권한을 맡겼고 말이죠. 이 정도 부작용은 끌어안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하아. 졌네요, 졌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현지는 비서를 시켜 차 한 잔을 더 주문했다.
과거, 김지민의 매니저가 실수를 했을 때처럼 그는 징계를 주고는 강하게 훈련시켜 다시 현장에 배치할 생각이었으니까. 징계를 받았던 그 매니저는 현장에서 엄청나게 활약하고 있었다.
차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주범, 이현아가 사장실에 들어섰다.
행사를 마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달려왔는지 그녀의 빨간 원피스가 도드라졌다. 가슴 쪽이 파여 있는 원피스에 강윤은 옷걸이에 걸려있는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앉아.”
외투를 받아든 이현아는 멍하니 눈을 껌뻑이다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 사람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할 말 있으면 해봐.”
“…없어요.”
이현아는 작게 중얼거리자 강윤 대신 이현지가 나섰다.
“현아 씨. 지금 현아 씨 때문에 몇 명이…”
“죄송해요. 이사 언니, 이사님께 특히요.”
“…현아 씨.”
이현지의 목소리가 점점 내려앉자 이현아는 움찔했지만 가라앉은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제가 헤어지면 다 해결되나요?”
“잠깐만요. 지금 요지를 잘…”
“진성 오빠랑 헤어지면 되냐고요?”
이현아의 태도에 이현지가 화를 내려할 때, 강윤이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아야. 지금 너가 연애한다는 것 때문에 불려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닌가요?”
말똥말똥한 그녀의 눈동자에 강윤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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