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05
89화 – 대륙을 휩쓸다(4) >
“오빠.”
희윤은 까치발을 들고 현관에 들어서는 강윤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이미 새벽 2시. 늦은 시간에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놀라움에 눈이 동그래졌다.
“기다리지 말고 자라니까.”
“얼마 만에 보는 건데 자라고? 매정하기는.”
걱정에 타박을 했더니 돌아오는 건 더한 타박이었다.
강윤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희윤의 볼을 꼬집었다.
“왜 이어케 마라서(왜 이렇게 말랐어)? 바으 제에어 머오 다니 어아(밥은 제대로 먹고 다닌 거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잤어.”
“거이말.(거짓말.) 아하아하(아파아파).”
말랑대는 희윤의 볼을 늘렸다 줄였다는 재미는 쏠쏠했다.
희윤은 오빠의 장난이 짓궂다며 툴툴대고는 빨리 씻으라며 부엌으로 향했다.
‘집에 왔구나.’
잠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자 몸이 나른해졌다.
외적으로 스타타워 인수, 콘서트 등 굵직한 일들이 휘몰아쳤지만 이 곳만큼은 큰 변화 없이 평온한 듯했다.
“형!!”
“재훈아.”
늦은 밤까지 작업을 하고 있던 김재훈도 방에서 나와 강윤을 끌어안았다.
“작업 중이었어?”
“네. 희윤이랑…”
김재훈과 모처럼 음악 이야기를 하려는데, 부엌에서 희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먼저 씻어야지.”
“알았어. 재훈아. 이따 이야기하자.”
말 잘 듣는 오빠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는 동생이 준비해놓은 핑크색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방에서 나오니 거실에는 희윤이 다과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희윤이는 누가 데려갈까?’
소파에 앉아 배를 깎는 희윤을 보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그녀에게서 병마에 시달렸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빠, 왜 그렇게 봐?”
“그냥.”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야야.”
오빠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며, 희윤은 한창 작업 중이던 김재훈을 큰 소리로 불렀다.
곧 김재훈이 나와 희윤의 옆에 앉았고, 강윤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둘이 작업 중이었어?”
“응. 주연이하고 리스가 노래를 몇 개 줬거든. 콘서트에서 부르고 싶다면서. 마침 재훈이 오빠도 스케줄이 비어 있어서 같이 하고 있었어.”
김재훈은 가져 온 악보들을 펼쳤다. 새까맣게 칠해지다 시피 한 악보들을 보며 강윤은 턱에 손을 올렸다.
“‘스위트 멜로디네? 여기는 새로 추가 한 건가?.”
“네. 다음곡하고 이어야 하는데, 키가 달라서… 올리려고 추가해봤어요.”
“그래?”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모두가 협력해서 뭔가를 해나가니 강윤은 절로 뿌듯해졌다.
티타임 후, 강윤은 두 사람이 편곡한 곡을 들어보았다. 음표들이 하얀빛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강윤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이 든 건 새벽 5시 무렵이었다.
3시간 후.
“으음…”
알람 소리에 눈을 뜬 강윤은 식빵 하나를 물고 집을 나섰다.
힘겹게 눈을 뜬 희윤이 밥은 먹고 가라며 성화였지만, 강윤은 저녁에 일찍 오겠다며 동생을 달래고는 회사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로비에 들어선 강윤은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아직 명패도 붙어있지 않았지만 사무실 안에는 커다란 TV, 모니터, 수많은 스피커들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사님도 참…”
일이 바빠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했건만.
강윤은 그녀의 일처리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를 한 아름 들고 문 비서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안녕하세요. 문 비서. 회장이라니요. 아직 정식으로…”
“이사님 지시입니다. 비서들은 모두 호칭을 회장으로 통일하라고 하셨어요.”
자주 사무실을 비우는 강윤보다 사무실 실세인 이현지의 말을 따르는 게 나은 법. 그녀의 고충을 이해한 강윤은 그만하라는 말을 누르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읏차.”
“…많기도 하네.”
엄청난 양의 결제 서류에 강윤은 헛기침을 했다.
“이사님이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회장님 대신 서류 결제하는 일이 가장 힘드셨다고…”
“…고, 고생했다고 전해주세요.”
가슴팍까지 쌓여있는 서류를 보니 강윤의 등에 땀이 흘렀다.
문 비서가 나간 후, 강윤은 차근차근 서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클래식의 홍커우 콘서트홀 업 스테이지 설치 결제 안이군. 미국에서 중국으로 장비를 들여오는 과정이…“
특수장치 결제 안은 매우 두꺼웠다. 미국에서만 생산 가능한 특별한 장비라 여러 가지 절차들이 복잡했다. 거기에 장비가 들어오지 못할 경우의 대비 안까지 기록된 서류라 내용이 상당했다.
‘최 팀장님이 하는 일인데. 별게 있을 리 없지.’
서류를 확인한 강윤은 최경호의 도장까지 확인하고는 직인 란에 사인을 했다.
중요한 부분에 보기 편하라고 형광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어 강윤은 빠른 속도로 서류를 검토해갔다.
월드 클래식 관련 서류에 사인을 마친 후 강윤은 이츠파인 결제서류를 들었다.
‘가입자 수가 늘고 있군. 음원문제도 해결되고 있고.’
희소식이었다.
몇몇 유명 가수의 음원은 여전히 협의 중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가수들의 음원이 이츠파인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격, 음질 등 기본은 여전히 다른 음원 서비스보다 경쟁력이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비공개 오디션이라.’
C&C를 책임지는 강기준에게 비공개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안건이 올라왔다.
3명의 후보가 있으며 1달 이내에 오디션을 보겠다는 내용에 강윤은 바로 사인을 해주었다.
그 후 마지막으로 강윤이 직접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서류까지 검토를 마치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힘드네.”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이로서 그의 승인이 필요한 일들은 모두 처리했다.
“이사님은 퇴근하셨나.”
모처럼 술이나 한잔 할까는 생각에 전화기를 들려는데 먼저 벨소리가 울렸다.
– 사장님. 이사님이 찾으십니다. 손님이 방문하셔서…
문 비서의 요청에 강윤은 쟈켓을 걸치고 이사실로 향했다.
이사실 안에 들어서니 긴 롱코트를 입은 손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연예캡쳐스의 사장, 민정환이라고 합니다.”
“이강윤입니다.”
악수를 나눈 후, 강윤은 민정환이라는 남자를 꼼꼼히 살폈다.
둥근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얇은 눈매가 얍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연애캡쳐스라면 히든캐치 이후로 가십거리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드는 회사라고 들었는데.’
명함을 받아든 강윤은 긴장을 감춘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 사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방문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불쑥 찾아왔는데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명함을 지갑에 넣고 강윤은 이현지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 앞에는 남녀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끌어안고 있는 사진들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강윤은 사진을 집었다.
“첫 만남이 썩 좋지 않은 인연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이현아의 모습을 발견한 강윤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저도 첫 스타타워 방문이 이런 식이 돼서 무척 유감입니다.”
반면 민정환 사장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이현아와 위진성의 차 안 데이트부터 밤거리 포옹 등 10장의 사진은 당장 기사로 써도 무방했다. 자신 외에 누가 언제 기사로 낼지 알 수 없으니 이건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사진을 내려놓으며 강윤은 민정환 사장에게 물었다.
“저희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역시, 역시. 이 사장님과는 대화가 통할 것 같군요.”
가볍게 박수까지 치며 민정환 사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 이사님과는 영…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일 이야기는 남자끼리 해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후후. 이후는…”
손으로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는 그를 향해 이현지는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능글맞은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태도에 강윤은 차갑게 나왔다.
“본론만 말씀하시죠.”
“허허. 알겠습니다. 실례를 했군요.”
민정환 사장의 입꼬리는 더더욱 올라갔다.
“사진 한 장당 1억원. 10장이니 총 10억입니다.”
“…..”
“보잘것없는 기자한테 떡밥 던져준다고 생각해주시고 모쪼록…”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현지가 말했다.
“우리 월드는 지금까지 어떤 기자들과도 타협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사님. 원칙은 깨라고 있는 겁니다. 지금 어느 쪽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현아야 그렇다 쳐도, 윤슬과의 관계도 생각해보셔야 할 것 아닙니까?”
함께 콘서트를 진행해야 하는 윤슬과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이현지는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재계약과 위트, 거기에 이현아까지. 쉽게 거절할 수도, 승낙할 수도 없었다.
침묵하고 있는 강윤에게 눈을 돌린 민정환 사장은 계속 말했다.
“큰일을 하실 분이 자잘한 일에 매여야 쓰겠습니까? 자잘한 건 저 같은 놈에게 맡기시고 이 사장님은 더 것을 보시지요. 액땜한다고 여기시고…”
“…거절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강윤은 손을 들었다.
“네? 사장님. 그렇게 나오시면…”
“이런 문제로 저희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그는 순간 멍해졌다. 윤슬까지 매여 있으니 적어도 생각해본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렇게 면전에서 거절할 줄이야…
허세일거라 생각하고 강윤을 보니 그의 눈매에는 힘이 있었다.
당황하던 민정환 사장은 목소리를 깔았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안합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죠. 그쪽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좋습니다. 기대하죠. 지금 그 모습이 허세가 아니길 빌겠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걸 느낀 민정환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나간 후, 이현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민정환 저 사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잔뜩 도발을 했으니 어떻게든 행동에 나설 겁니다. 아마 윤슬을 움직이려 들 테죠. 우리보다 더 급한 건 그쪽이니까요. 중요한 건 당장 기사는 내지 못할 거라는 겁니다.”
“…하긴,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돈을 가장 원하는 것 같으니까요. 윤슬과 저희 사이에서 줄타기하려는 것 같죠?”
“네. 목적을 파악한 이상 두려울 건 없습니다. 추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일찍 퇴근을 하려던 강윤은 사무실로 돌아가 추만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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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윤슬 엔터테인먼트의 스튜디오.
– 너를 찾아 난– 어두운 동굴을 지나–
다이아틴의 노래, 무지개가 흐르는 가운데 컴퓨터 앞에 앉은 위진성은 멍한 눈으로 명함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GNB 엔터테인먼트 매니저 실장 김정훈] “…하아.”명함을 받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추만지 사장과 이야기를 하고,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 저희 GNB는 연애하는 위트 씨도 포용할 수 있는걸요.
– 헤어져.
매니저 실장이라는 남자의 마지막 말과 추만지 사장의 말이 함께 머릿속을 휘저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다는 곳과 기존 소속사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
선택은 쉽지 않았다.
“큰일이네. 시간이 다 됐는데…”
기껏해야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은 10초도 안됐다. 처음에 곡을 받았을 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며 한숨을 짓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왔다.
“선배님.”
“왔구나.”
방문하기로 했던 김지숙이었다. 늦었으면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 딱 맞춰서왔네.”
“네. 빨리 듣고 싶어서요.”
“그, 그래?”
김지숙이 사래 들릴법한 이야기를 꺼내며 눈을 반짝이니 위진성은 난감하게 볼을 긁적였다.
“저 지숙아. 미안한데…”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직 곡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김지숙은 미안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알겠어요.”
“미안해.”
“아니에요. 편곡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아, 맞다.”
뭔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손뼉을 쳤다.
“혹시 괜찮으면 강윤 작곡가님하고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요?”
“그 월드 사장님 말이야? 회사에도 좋은 작곡가님들 많잖아.”
이현아 일도 있는지라 그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김지숙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힘들 때도 많이 도와주셨었어요. 선배님한테도 분명히 도움을 주실거에요.”
“저기, 지숙아. 내가 월드 소속도 아닌데…”
“선배님.”
김지숙은 위진성의 손을 덥석 잡았다.
평소 유약한 이미지의 김지숙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온 법이 없었는데, 위진성은 놀랐다.
“허, 참.”
“번호는 제가 알거든요, 꼭 해보세요.”
“하하… 그래. 알았어.”
김지숙은 내일 오겠다고 말하고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강윤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위진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월드 사장하고 나하고 무슨 할 말이 있으려고…”
고개를 저어버리곤 곡 작업을 시작했다.
4시간 뒤.
“…하하. 아무 생각이 안 나는데…”
위진성은 결국 컴퓨터를 꺼버렸다.
오늘따라 유독 작업에 진척이 없었다. 4시간 내내 같은 부분에서 빙빙 돌고 있었으니…
하지만 오기가 생겨 어떻게든 극복하겠다고 매달린 게 화근이었다.
“때려쳐, 때려쳐!!”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린 위진성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초점 없는 눈으로 주황빛 조명을 바라보는데, 김지숙이 나가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강윤 작곡가님하고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요?
“…내가 미쳤냐.”
그건 아니라며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긴 번호를 누르고 잠시 기다리니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말씀하세요.]
자신감에 찬 목소리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위진성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이야기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 윤슬의 위트라고 합니다.”
[아, 진성 씨군요. 반갑습니다.]
의외로 상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오자 위진성은 조금은 마음을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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