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24
93화 – 참교육은 월드에서(2) >
하예리와 눈싸움을 하고 있던 김지민은 소스라치게 놀라 강윤의 팔을 붙잡았다.
“시, 싱글이요? 쟤, 쟤하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김지민은 강윤의 팔뚝을 세게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강윤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입술을 악다물고 있는 한영숙 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의 조합은 쉽게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 동안 대중에게 보여 온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은 좋은 무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거죠?”
“맞습니다.”
“…좋군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싱글을 낸다면 합이 중요한데. 은하와 우리 예리 목소리가 맞을까요?”
“둘 다 프로잖습니까. 맞추면 됩니다.”
한영숙 사장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강윤은 담담히 답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야, 당연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음악의 빛을 보는 능력을 활용하면 두 가수의 목소리, 단연 좋은 결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은빛이나 금빛은 조금 다른 문제지만.
하지만 강윤의 그런 능력을 알 리 없는 한영숙 사장의 얼굴은 미묘했다.
“맞춘다라… 당사자들이 그럴 생각이 있는지부터 봐야겠는데요.”
그녀는 두 대표가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계속 으르렁대는 김지민과 하예리를 가리켰다. 제안이야 당연히 땡큐였지만 연신 기싸움을 해대는 두 사람 사이는 변수였다. 그간의 경험으로 평가해보면 저건 생산성 없는 기싸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생각에 쐐기를 박듯, 하예리는 코웃음을 쳤다.
“…재수 없어. 사장 언니. 가요.”
김지민과 한창 눈싸움을 하던 하예리는 한영숙 사장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하도 은하였지만 이강윤은 특히 불편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와는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아, 언니!!”
하예리는 애꿎은 사장을 보챘지만, 한영숙 사장의 무거워진 엉덩이는 쉽게 들리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김지민도 강윤의 팔을 거세게 흔들었다.
“…..”
하지만 강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걸 보고 팔을 놓아버렸다.
강윤은 김지민의 등은 가볍게 다독이고 다시 한영숙 사장에게 눈을 돌렸다.
“한 사장님, 둘의 조합이 정말 어렵다고 보십니까?”
“…사실, 좋죠.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게 있어서요. 나윤이라면 모를까.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예리와 같은 무대에 선다니. 월드에서도 손해잖아요. 솔직히 급…”
한영숙 사장은 ‘급이 안 맞는다’라는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를 바로 알아챈 강윤은 곧 말을 받았다.
“사실, 퍼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이 어렵군요. 쉽게 설명해주세요.”
“먼저 이 조합은 시선을 강하게 끌 수 있습니다.”
“아까 했던 말이군요. 의외성을 노린다는 거죠? 맞는 말이지만 걸리는 것도 많아요. 타이밍도 그렇고 계약문제도 있죠. 은하 노래에 예리가 피처링하는 형식이 될 텐데. 은하가 예리 앨범에 피처링할 리도 없고.”
“프로젝트 앨범으로 가죠. 그러면 계약문제도 없습니다.”
한영숙 사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후해도 너무 후했다. 앨범에 참여하는 피처링과 같이 앨범을 내는 프로젝트 앨범은 차이가 컸다. 은하와 허니민트의 미림이 같이 앨범을 낸다? 대중이 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쯤 되니 부담스러워졌다. 한영숙 사장은 이를 승낙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리야. 나가있어.”
“안한다니까요.”
“어서.”
“…..”
한영숙 사장의 힘들어간 눈빛을 보자 하예리는 투덜대며 사무실을 나섰고 강윤도 김지민에게 하예리 회사 구경이나 시켜주라며 잠시 내보냈다.
곧 입구가 닫히며 두 여자의 소음소리가 끊기자 한영숙 사장은 강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죠?”
“네?”
“은하까지 내세워서 이렇게까지 퍼주려는 이유.”
한영숙 사장의 눈은 잠잠했지만,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의 속을 알 수 없는 평온함은 온데 간 데 없었다. 강윤의 얼굴이 멍해지자 그녀의 눈매는 한층 더 좁아졌다.
“요새 이 바닥 돌아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요. 월드와 지예, 둘 사이에 태풍이 일거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잘못하면 새우등이 남아나질 않게 생겼으니 당연한 말이겠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
“그래서 너무 큰 호의는 쉽게 받기 힘들어요. 후에 재앙으로 돌려받긴 싫으니까요.”
강윤은 피식 웃었다. 자꾸 숨겨진 의도를 이야기하라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놈의 정치. 그쪽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피곤하겠어.’
어깨가 괜히 올라갔다.
“이번 일로 제가 다른 걸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기브앤테이크니까요. 세상이 돌아가는 게 그렇죠.”
그녀의 생각을 바꿔주는 게 우선이라는 걸 느낀 강윤은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비웠다. 웃음기를 지운 강윤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좀 더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 이 바램뿐입니다. 제안을 받을지 말지는 GNB에서 결정하면 됩니다.”
“…..”
“믿을지 말지는 그쪽 선택입니다.”
한영숙 사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괜히 큰 빚을 진 기분이었다. 기브앤테이크에 익숙한 그녀에게 이런 식의 거래는 충격이었다.
‘…진 기분이야.’
무서웠다. 자신이라면 이런 제안은 애초에 거절했을 것이다. 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래를 하겠다는 걸까? 순전히 가수를 위해서? 아니면 GNB와 제대로 인연을 만들어보려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포커페이스가 무너진 그녀에게 강윤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좋은 무대를 만들어 봅시다.”
이번에는 무거웠다. 좋은 무대라니.
그가 내민 손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잘 부탁해요.”
조금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온기가 전해지는 듯 했다.
두 대표의 악수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달콤한 그녀들‘은 시작되었다.
———-
– 월드 지원율이 얼마나 되나요?
– 1만대 1이요.
– 매일 넣고 있는데 소식이 읍슴…
– 월드보다 지예가 갑이에요. 월드 영상 보지도 않는데요.
– 윗분 저거 댓글알바임. 맨날 같은 글 올라옴.
연예인 지망생들의 커뮤니티, 연화넷은 오늘도 뜨거웠다. 소속사 연습생부터 소속사가 없는 지망생들까지 북적댔다. 특히 월드 스튜디오의 회장 이강윤의 동영상이 올라온 후, 지망생들 사이에는 광풍이 불고 있었다,
– 월드 붙으면 공무원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티오 하나가 사라짐…ㅜㅜ
– 크흑. 월드 지원하러 갑니다. 10번째입니다.
– 100번 지원했습니다. 오늘 101번째 지원합니다.
– 100번? 전 500번째 내고 있거든요?
월드의 연습생이 되면 무조건 데뷔한다는 말이 공연히 떠돌고 있었다. 거기에 회장이 직접 나서 공인까지 했으니… 월드 공무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열, 이강윤 씨, 잘하고 있네.”
핸드폰의 인터넷 창을 닫으며 주아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강세미에게 월드를 추천하길 잘 했다고, 자신의 감은 언제나 승리했다며 가슴이 뿌듯해졌다.
하지만 여운을 즐길 틈은 없었다. 머리카락 없는 매니저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스케줄 가야 한다며 그녀를 재촉해왔다.
막 촬영을 끝낸 터라 지쳐있었지만, 해맑은 얼굴로 주아는 매니저의 어깨를 잡았다.
불만어린 표정은 어디에 가버렸는지, 주아의 얼굴엔 다시 생기가 돌고 있었다.
———-
어둑해진 저녁시간, 불이 환하게 밝혀진 월드 스튜디오의 회장실 안에서 김지민은 눈가에 난 눈물자국을 꾹꾹 누르며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았어요.”
강윤을 향해 묘한 눈길을 보내며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미림과는 절대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며 완강히 버텼지만, 만 하루 동안 이어진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힘겹게 그녀를 설득한 강윤은 한숨지었다.
“그런데 주인도 없는 집에서 뭐하려고?”
“거기가 작업하기 짱이거든요.”
눈물까지 찔끔했던 김지민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가득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집 빼야겠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김지민은 회장실이 떠나가라 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궁금해진 강세미가 김지민을 쿡쿡 찔러왔다.
“언니. 회장님 집이 그렇게 좋아요?”
“응응. 최고야. 같이 가볼래?”
“네.”
강세미까지 온다니. 강윤은 당장 부동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방송국 스튜디오 촬영을 마친 하예리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안녕.”
그녀의 무미건조한 인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김지민이 하예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꼽냐?”
턱을 들어올리며, 하예리가 노려보니 김지민의 하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월드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가요계에서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너는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니?”
“뭐래. 멸치같이 꼴아갖곤.”
“…너 진짜 무식한 애구나.”
이번에는 무식이라는 말에 하예리의 입꼬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무, 무식? 다시 말해 봐.”
“무식. 무식무식.”
금기어라도 들었는지 하예리의 머리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눈가에 불이 켜지며 입에서 속사포가 튀어나갔고, 김지민도 이에 질세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세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둘을 지켜보던 강윤이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거기까지. 가자.”
“…..”
불이 붙으려던 두 사람은 그 한마디에 안면을 잔뜩 찡그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하예리는 왜 강윤에게 대들지 못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강윤이 먼저 회장실을 나서자 둘은 그를 뒤따랐고 강세미도 조용히 따라붙었다.
스튜디오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그 유명한 하예리구나.”
“…정예원?”
자신의 회사 GNB의 A&R팀 제1팀장, 정예원이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 하예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니민트의 앨범 작업을 할 때도 마주친 적이 없던 제1팀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영숙 사장이 사내 최고의 팀을 동원한 것이다.
“지완 오빠.”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월드에서는 회장 직속인 A&R팀과 팀장 오지완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야 A&R팀이 하나밖에 없으니 별다를 건 없었다.
작곡가 이희윤, GNB의 전속작곡가 파치까지 함께 있었다. 월드와 GNB의 최고 인재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셈이었다.
김지민이 강세미에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자 강세미는 입을 가리며 헉소리를 냈다.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한 강윤은 가운데에 서서 시선을 모았다.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죠. 데모부터 들어볼까요?”
스튜디오에 두 사람이 부를 곡의 데모버전이 흘러나오며 선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곡들. 그것도 완성되지 않은 데모버전을 듣다보니 회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윽.’
회색빛으로 인한 찐득한 고통을 참아내며, 강윤은 후보곡들에 대한 평을 적어나갔다. 맞은편에 있던 팀장들도 펜을 들고 뭔가를 적어나갔고, 작곡가들도 의견을 교환해갔다.
하기 싫은 표정이었던 김지민이었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그런 기색을 지우곤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하예리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제1팀장을 마주하고 기분이 좋았던 건 잠시뿐이었다.
‘…..’
강윤은 그런 하예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곡이 흘러나올 때, 하예리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거, 이걸로 해요. 이거!!”
그러자 같은 소속사의 장예원 팀장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지금까지 나왔던 곡들 중 가장 안 좋다고 생각한 음악에 손을 들다니…
강윤도 강윤대로 어이가 없었다. 짙은 회색을 넘어 검은빛의 음악이었다. 가벼운 피아노 소리와 퍼커션이 불협화음을 만들며 스튜디오를 어지럽히는 느낌이었다.
김지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난 이게 좋은데. 싫음 말고. 어차피 내 무대니까.”
“혼자 해 그럼. 실패가 뻔히 보이는데…”
“쯧쯧. 보는 눈도 없네.”
“하?”
하예리의 도발에 김지민은 어이가 없었다. 다시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희윤은 곡을 만든 파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건 아무래도 미완인 것 같네요. 퍼커션 소리가 너무 튀고…”
돌려 말했지만, 이건 안 되겠다는 이야기였다. 기분 좋을 리 없었지만, 파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네. 퍼커션, 후렴…”
작곡가들끼리 생각을 교환할 기회는 흔치 않은 법. 특히 희윤과 같이 능력 있는 작곡가와는 더욱 그랬다. 파치는 하나라도 놓칠 세라 부지런히 그녀의 말을 적어나갔다.
팀장들과 팀원들도 곡을 놓고 여러 가지 의견들을 내놓았다. 단순한 곡 선정이 아니라, 곡에 대한 의견들도 많아 앞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말들이 나왔다. 덕분에 선정회의는 풍성해졌다.
그때, 김지민과 날을 세우던 하예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말은 씹나? 아우, 진짜 못 해먹겠네!!”
날선 외침과 함께 스튜디오에 침묵이 돌았다. 그녀는 사람들을 주욱 노려보더니 뛰쳐나가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니 당황스러운 건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그는 서둘러 그녀를 잡기 위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회, 회장님!!”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강윤도 스튜디오를 뛰어나갔다. 그는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하예리!!”
1층 로비에서 강윤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한창 달려가던 그녀는 강윤의 외침에 멈칫하더니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강윤은 성큼성큼 다가갔다.
짜악!!!!
“꺅!!”
로비에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뒤따라온 매니저를 비롯해 로비에 있던 직원들까지 강윤의 모습에 놀라 수군거렸다.
“다, 당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바닥에 널브러진 하예리가 붉은 눈으로 외쳤다.
“됐어. 가 봐. 넌 프로의 자격도 없어.”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윤은 차갑게 일갈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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