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25
93화 – 참교육은 월드에서(3) >
“씨발!! 당신이 뭔데 지랄인데?”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붙잡고, 하예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짝!!
그와 함께 분노에 이성을 잃은 손이 강윤의 얼굴을 향해 뻗어나가며 진한 손자국을 남겼다.
“회, 회장님!!”
“예리야아아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로비 직원들, 뒤쫓아 온 문 비서까지 월드의 직원들은 혼비백산한 얼굴을 한 채 강윤에게 달려왔다.
“회장님!! 괜찮으세요?!”
특히 문 비서는 손수건으로 강윤의 얼굴을 감싸며 하예리를 노려보았다.
‘젠장…’
수없이 많은 눈들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보며 하예리의 매니저는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월드에서 월드 회장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이건 당장 뉴스에 나와도 할 말 없는 이야기였다.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단순 스캔들이 아니라 매장 감이었다.
그렇게 만들 순 없었다.
“뭐하는 거예요?!”
하예리의 매니저는 그녀의 가는 손목을 강하게 잡고는 강윤 앞으로 끌고나왔다.
“사과해.”
“뭐래. 저 사람이 먼저 친 거거든요?”
이리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지. 지금 누가 먼저 쳤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다. 하예리의 매니저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강윤 회장의 평판은 이 바닥에 자자해서 ‘네가 맞을 만 했으니 맞았겠지’라는 말로 와전될게 뻔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스타감이다, 최고다 소리만 들어온 티가 확연히 드러났다. 한영숙 사장이 나서도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 들었다. 저 직원들의 독기는 또 어떻게 감당할 건지. 아득해졌다.
그녀가 고개를 숙일 생각을 하지 않자 ‘급한 불부터 꺼야겠다.’ 느낀 하예리의 매니저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너무 철이 없어서 저지른 일입니다. 부디…”
“매니저님이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본인과 해결하고 싶군요.”
“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오히려 하예리는 악다구니를 쓰며 매니저를 밀어버렸다. 그녀 입장에서는 먼저 뺨을 얻어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직원들은 그들대로 강윤에게 또 해코지라도 갈까, 철벽같이 막으려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윤이 손을 들어 직원들을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괜히 걱정을 끼쳤군요. 잠깐 둘만 있게 해주겠습니까?”“회장님.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직원들의 성난 눈길이 이글거렸지만, 강윤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다들 일 보러 가세요. 넌 따라와.”
“내가 왜? 더 할 말 없는데?”
“이대로 가수 생활도 끝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선언하듯 내뱉은 강윤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하예리는 이를 부드득 갈다가 강윤의 뒤를 따랐다. 사실 악을 쓰고는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받는 건 더 무서웠다. 매니저도 따라가려고 했지만, 직원들의 만류로 제지당했다. 강윤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그렇게 하예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강윤에게 매섭게 소리쳤다.
“왜 치는데? 당신이 뭔데?”
“…..”
“사장 언니도 이런 적이 없어. 당신이 뭔데? 당신이 내 사장이야? 아니잖아.”
“…월드라면 하예리라는 연습생을 뽑지 않았겠지.”
“뭐, 뭐야?!”
그 한 마디가 하예리의 속을 뒤집었다. 손을 바르르 떠는 그녀를 향해 강윤은 눈매를 좁혔다.
“아마 연습생 시절부터 꼭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당연하게 듣고 살았겠지. 매일을 불안하게 사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그런데 그게 콧대를 너무 높아놨어,”
“우, 웃기시네.”
“게다가 막 뜨기 시작했으니… 건방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연예인병이야.”
“뭐, 뭐야?!”
차분히 비수가 날아들자 하예리는 눈빛을 태우며 강윤의 멱살을 낚아챘다.
“연예인병? 말이면 단 줄 알아? 지랄병났네!! 뭘 안다고 지껄이는데?”
“맞잖아.”
“이…”
누구도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에서 뒷담화하는 선배를 심하게 망신준 이후로, 누구도 자기를 건들지 않았다. 심지어 한영숙 사장도 기죽으면 기질도 사라질 거라며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이런 수모를 겪으니 독이 오를 만 했다.
이를 가는 그녀에게 한껏 낮아진 목소리가 꽂혔다.
“가수 미림과 은하의 콜라보 음반. 누구는 그런 아이돌 멤버와 은하의 콜라보를 왜 하냐고 말이 많았지만, 난 생각이 달랐어. 내가 미림이라는 가수는 잘 몰랐지만, 가수니까 프라이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어.”
“…..”
“곡 선정을 하는 과정에서 본 너는 그런 것조차 없었어. 오직 네 기분, 네 감정에 따라 부르고 싶은 곡을 결정하려고 했지. 그게 네 얼굴을 때린 이유야. 과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
“…..”
그 말이 강하게 가슴을 찔러왔다. 지금까지 날선 반항을 해오던 하예리도 이 말만큼은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넌. 가수가 아니야.”
더 할 말이 없는 듯, 강윤은 옥상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지만, 그녀는 감전이라도 된 듯, 서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가, 가수가… 아니라고?!’
강윤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치듯 가슴을 울리며 머릿속을 점령해갔다.
.
.
.
콜라보 준비한다고 월드에 갔던 하예리가 사고만 치고 돌아오자 한영숙 사장의 얼굴은 노랗게 떠버렸다.
“…지, 지금 너, 제, 제, 제정…”
“…..”
평소라면 뻔뻔하게 대들었을 하예리였지만, 지금은 얌전한 고양이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 답답했는지 한영숙 사장의 눈매가 위로 올라갔다.
“차라리 지예였으면… 월드라니. 거기 애들 골치 아픈데. 하아.”
“…..”
직원들이나 회장이나 서로 생각하는 게 엄청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업무강도가 높아도 보상이 워낙 확실한데다 환경도 좋은 곳이었으니까. 그런 곳의 회장 얼굴에 손도장을 찍었다니…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직원들이 가만히 있을지 의문이었다.
“…있다가 이야기하자.”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전화를 들어 강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슴 졸이며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 애꿎은 밝은 컬러링이 흘러나오자 괜히 얼굴이 일그러졌다.
– 네, 이강윤입니다.
컬러링이 끝날 즈음, 이강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영숙 사장은 공손한 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GNB 한영숙입니다.
– 안녕하세요.
평상시와 다름없는 인사였지만 더더욱 공손히, 어조를 조절했다. 안부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강윤은 잘 받아주었고, 곧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우리 애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다고 들었어요..”
– 아, 하예리말이군요.
“죄송해요. 우리 애가 너무 철이 없어놔서… 제가 애를 단속 못했네요. 괜히 회장님께 심한 폐를 끼쳤어요.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죄송합니다.”
가슴 졸이며 전화기를 들고 있는데 다행히 목소리는 평이했다.
– 먼저 실수한 건 저죠.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회장님이 실수하신 게 아니죠. 애가 얼마나 개념이 없었으면 맞았겠어요.”
하예리의 눈이 치켜 올라갔지만, 한영숙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아닙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죠. 그런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는 알았으면… 콜라보를 제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 없는 발상이라는 것에 너무 집중해서 온 실수 같습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영숙 사장의 눈이 커졌다.
“생각이 짧…았다?”
– 아무래도 콜라보 무대는 취소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네?”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었단 말인가? 한영숙 사장은 당황한 얼굴로 핸드폰을 반대편 귀로 돌렸다.
– 데뷔한 이상 프로입니다. 그런데 예리에겐 그런 마인드나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회장님 좀 더 생각을…”
– 지금 은하에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한 사장님. 이번 무대는 예리 단독으로 꾸미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실수를 한 것이니 예리 무대는 클래식에서 확실하게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
– 전화가 들어왔군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더 이야기하기도 전에, 통화가 끝나버렸다. 한영숙 사장은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지듯 놓아버리곤 머리를 부여잡았다.
“…미치겠네. 정 팀장도 난리칠게 뻔한데…”
이 철없는 녀석 때문에 회사 최고의 재원인 정예원 팀장의 일까지 틀어졌다. GNB의 A&R 1팀과 업계 탑이라고 불리는 월드의 오지완이 이끄는 A&R팀과의 콜라보가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힘들게 잡아두고 있는 사람인데… 머리가 아파왔다.
“왜요? 못 하겠대요?”
하예리가 큰 눈을 껌뻑이자 한영숙 사장의 속은 더 부글부글 끓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예리의 손을 낚아챘다.
“어어? 왜, 왜 이러세요.”
“따라와.”
“어, 어딜 가게요.”
“앨범 안 할 거야?”
“내, 내가 거길 어떻게 가요?”
하예리가 질겁하며 진저리를 쳤지만 한영숙 사장은 그녀의 양 손을 붙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
“헤, 헬로?”
주아는 떨리는 손으로 앞에 선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큰 키, 짙은 검은빛의 피부에 빨려들 것 같은 검은 눈동자의 남자, 셰무얼 존슨은 부드러운 눈길로 주아의 손을 흔들었다.
양 손을 장난스럽게 쥐었다 폈다 하며 셰무얼은 활짝 웃었다.
세계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는 셰무얼 존슨이 눈앞에 있다니. 주아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 아시아에서의 그녀는 탑 스타였지만 이 곳에서는 신인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새롭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셰무얼은 성큼 무대 위로 올라갔다. 연습용으로 쓰는 작은 무대에는 댄서들과 몇몇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곧 주아도 올라서자 셰무얼은 박수를 치며 모두를 끌어 모았다.
작은 체구,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동양 여자. 캐리 클라우디아와 가장 호흡을 잘 맞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박수로 주아를 맞아주었다.
곧 소개가 끝나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무대 감독과 이야기를 하며, 주아는 무대 중앙에 섰다. 스텝들은 메모를 하며 무대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나갔고, 무대에 함께 설 사람들은 대열을 맞춰 섰다.
쿵, 쿵, 쿵쿵.
웅장한 발소리가 퍼져나가며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세계 최고의 무대가 만들어지는 곳.’
설렘을 안고 주아는 몸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월드 스튜디오에서는 강윤이 하예리에게 뺨을 맞았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회장님이?!”
“미친!! 뭐 그딴 년이 다 있어?!”
직원들뿐만 아니라 가수들까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어떤 이는 팔까지 걷어붙이며 GNB에 찾아가겠다고 난리였다. 어떻게든 보복해야 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해져 강윤은 별도의 공지로 연예인들과는 별별 일이 다 있을 수 있다며 직원들을 달래야 했다.
“…회장님은 프로듀서 시절이나 사장 때나 회장 때나 한결같네요.”
월드 스튜디오의 이사, 이현지는 강윤 앞에 앉아 팔짱을 끼며 인상을 썼다.
“그렇습니까? 한결 같은 사람이 좋지 않습니까.”
“좋긴 무슨. 아, 못 살아. 진짜 이 사람하고 일하는 게 아니었어.”
이현지의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지자 강윤은 되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현지가 탁자에 양 손을 기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신!! 엄한데서 맞고 다니지 마세요.”
단호한 어조에 강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우리 간판이 깡통처럼 채이고 다닌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알았나요?”
훈훈함과 미안함을 함께 느낀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 비서가 들어왔다.
“회장님. GNB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한영숙 사장과 하예리가 왔다는 말에 이현지의 눈매가 일그러지자 강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간판을 찬 사람이 왔군요.”
“…뭐, 우리 간판은 튼튼하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좀 더 차달라고 할까요?”
“사양하겠습니다.”
곧 문 비서의 안내를 받은 한영숙 사장과 하예리가 안에 들어섰다.
“지난번에 뵙고, 또 뵙네요.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한영숙 사장과 악수를 나누며 보니 하예리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곧 문 비서가 차를 내오고, 간단한 이야기가 흘렀다. 그 후, 한영숙 사장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우리 애가 철이 없어서 큰 무례를 저질렀어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닙니다, 사장님..”
그 말에 한영숙 사장은 하예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하고 있어?’
‘….’
‘하예리!!’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강윤은 페퍼민트 차향을 음미했다. 향긋한 향이 기분을 맑게 해주는 것을 느끼며 찻잔을 내려놓고는 티격대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전 예리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는 가수가 아니라고.”
“…..”
“앨범은 가수가 내는 겁니다.”
모욕이었다. 한영숙 사장의 항상 미소 짓는 얼굴마저 일그러뜨릴 정도의 강한 모욕. 심하게 말하면 너흰 가수를 키운 게 아니라는 말까지 된다.
“회장님. 잠깐만요. 그 말은…”
한영숙 사장의 눈매가 강하게 치켜 올라갔지만 강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림, 아니. 하예리라는 사람은 노래라는 걸 모릅니다. 지민이와 함께 부를 곡 1곡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작곡가, 작사가들이 곡을 썼는지. 그 1곡을 고른다는 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탈락시킬 때 알았습니다. 하예리라는 사람은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구나. 가수가 아니구나.”
탕!!
강윤은 탁자를 강하게 쳤다. 한영숙 사장이나 하예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런 사람과 무슨 음반을 만들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실수한 부분은 책임지고…”
“…죄송해요.”
느닷없는 타이밍이었다. 강윤이나 이현지, 한영숙 사장은 옹알이하듯 낸 사과에 하예리에게 눈을 돌렸다.
“제가… 틀렸어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 가득 눈물샘이 고여 있었다.
끝
ⓒ 이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