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34
95화 – 잽과 스트레이트의 차이 ⑵>
“다음 가수가 누가 될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듣게 되는군요.”
김재호 부사장은 술잔을 들며 빙긋이 웃었다. 떨리던 입가는 멈춘 지 오래였다.
이현지는 술을 넘기는 강윤을 힐끔 쳐다보곤 김재호 부사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차기 가수 이야기를 외부에 하는 건 처음이네요.”
“허허,부담되는군요.”
김재호 부사장은 미소로 벽을 쌓았다. 강윤과 이현지도 그걸 느꼈다.
‘더 꺼내라는 뜻이군.’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기밀을 말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 말이었다.
강윤은 웃음기를 지웠다.
“저희는 AHF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함께 간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짧게,아니면 길게도 가능하죠.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게 이 바닥 생리니까요.”
“짧게 갈 상대에게 기밀을 말할 이유는 않습니다. 저희가 자부하는 게 있습니다. 가수가 우선입니다. 그런 저희가 다음 데뷔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만하면 답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김재호 부사장은 속뜻을 알아차렸다. 기획사가 방송국에 원하는 거야 뻔 했다.
월드의 차기 가수를 AHF에서 데뷔 시킬 테니 소속 연예인들을 우대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월드가 아니라면 꺼내지 못할 이야기군요.”
“신중히 드리는 말씀입니다.”
“허허.”
김재호 사장은 헛웃음을 짓고는 민경세 국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안주거리로 들고 있던 토마토를 급히 내려 놓았다.
“회장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청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방통위도 문제고,여기저기서 감시하는 눈도 많으니까요. 월드의 신인이 저회 방송국에서 데뷔 한다는 조건은 매력적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말이었다.
‘욕심도 많네.’
이현지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강윤은 양 손을 들며 빈손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확실히 하고 가지요. 청탁이 아니라 제휴입니다.”
강윤의 기세에 눌렸는지 민경세 국장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 부분은 실언했습니다. 하지만 편의를 봐준다는 시선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저회에게도 리스크입니다. 연예인이 월드에만 있는 것도…”
그때,강윤이 쐐기를 박았다.
“월드 스튜디오 연예인들의 방송 활동을 AHF 하나로 제한하겠습니다.”
“… 네?!”
민경세 국장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잠자코 지켜보던 김재호 부사장은 저도 모르게 책상을 쳤다. 그렇게 되면 우대가 아니었다. 방송사도 좋았다. 월드 연예인들의 고정팬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으니까.
이때다 싶었던 이현지도 말을 보탰다.
“앞으로 월드의 모든 연예인들은 해외로 진출합니다. 하지만 한국도 소홀히 할 수 없죠. 두 가지를 동시에 소화 하려면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김재호 부사장이 말을 깔았다.
“스케줄을 최소한으로,효과는 최대한으로? 방송사가 분산되면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맞습니다.”
이현지가 긍정했고,강윤이 말을 이어갔다.
“AHF에서만 월드 연예인들을 볼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될 겁니다.”
김재호 부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청률이야 오르겠죠. 하지만 다른 방송사의 미움을 살 수도 있고,좋은 기획안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AHF에 집중하는 걸로 보완 할 생각입니다.”
“만약 우리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방송사 선정을 잘못한 저희 탓이죠. 저흰 새로운 시도로 고정층을 끌어 올리고 있는 AHF를 믿습니다. 작가들이나PD들이 자유롭게 기획을 할 수 있는 곳이 AHF니까요.”
“흐음…”
두 사람 사이의 설전이 끝났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김재호 부사장은 민경세 국장의 어깨를 두드리곤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한대 태우고 오지 .”
“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후,이현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네요. 저쪽은 계속 얻어내려고하는 눈치인 것 같은데…”
“문희 이야기까지 나올 겁니다.”
“문희 씨요?”
이현지는 냉수를 마시곤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하기야… 문희 씨는 방송사들마다 탐내는 아이템이죠. 일본 최고의 가수 지만 알려지지 않았고, 사연도 있고…”
“저들은 그걸 원할 겁니다.”
“그래서,다 내 주실 건가요?”
이현지가 눈매를 찌푸리자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원하면 내 줄 생각입니다.”
“가수야 회장님 전문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다 퍼주는 건 반대하고 싶네요.”
“퍼주진 않습니다. 저들을 이용해서 문희가 한국에서 앨범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생각이니까요.”
“한국에서… 아,머리가 아파오네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일단 난 산재 신청하러 갈거예요.회장님이 너무 힘들게 해서 안 되겠어요.”
“경영진은 산재 신청이 안 된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서류 꾸미는게 내 특긴데,몰랐나요?”
“공문서 위조는 범죄입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때,AHF측 두 사람이 돌아왔다.
풍겨오는 진한 담배향에서 고민의 깊이가 전해졌다.
민경세 국장이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월드의 연예인들을 AHF에만 출연 시키겠다고 하셨는데,유리도 포함되는 겁니까?”
강윤의 말대로 인문희가 언급되자 이현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맞습니다.”
민경세 국장이 눈을 빛내며 몸을 가까이 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저희 프로그램에 유리를 출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단독으로.”
단독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하자 강윤은 이현지 쪽을 바라보았다.
한번 튕기라는 의도를 알아들은 이현지는 가볍게 안색을 굳혔다.
“그건… 문희 씨와 이야기를 해보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일본 계약사와의 문제도 있고 기획안도 필요하고요.”
열은 담배 냄새를 풍기며 김재호 부사장이 말했다.
“일본 계약사나 방송사와의 문제는 저회가 해결하겠습니다. 인문희와의 방송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설만한 가치가 있지요. 하지만 좋은 기획안 이라니. 광범위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안을 내도 좋지 않다며 내치면 답할 명분이 없다는 말이었다. 모호한 말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였다.
강윤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음악 프로그램을 원합니다. 문희는 방송 출연을 제법 많이 했지만 음악 프로그램 출연은 손에 꼽으니까요. 협회와 갈등이 있어서…”
“아,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JAN 이었지요? 그런데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일본 가수들까지 JAN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대대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들었습니다.”
강윤은 놀랐다. 인문희에 대해 정말 많이 조사를 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현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봉합됐죠. 하지만 JAN과 새로운 협회와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마음만 먹으면 출연을 할 수는 있지만 음악방송에 출연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말들이 많아서… 콘서트를 주로 돌았죠.”
“알겠습니다.”
방향을 잡자 김재호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강윤은 부족하다는 걸 느꼈는지 난색을 표했다.
“한국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지금 생각한건 데 이런 기획은 어떻습니까? 일본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여는 겁니다.”
“가능할까요?”
이현지가 의문을 표하자 김재호 부사장은 씨익 웃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일, 공동 방송으로 공문 돌리고 준비하면 가능할 겁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합친 형식으로 방영하면 시청률도 나을 거고…”
“알겠습니다. A-Trust와 협의 후 논의해보죠.”
괜찮은 제안이었다. 강윤의 눈가에도 빛이 났다.
어느새 인문희 이야기로 네 사람은 의기투합해갔고,테이블에 빈 술병도 점점 늘어갔다.
긴 술자리가 끝난 후,강윤과 이현지는 귀갓길에 올랐다.
술기운이 잔뜩 오른 두 사람을 태우고 문 비서는 먼저 이현지의 집으로 향했다.
분수가 아름답게 내리는 반포대교를 지나며,꼬부라진 목소리로 이현지가 말했다.
“… 서로가 윈윈했네요. AHF는 문희 씨 방송을 하고,우리는 문희 씨 앨범을 낼 기반을 마련하고.”
“네. 거기에 우린 신인데뷔에 우선권을 함께 얻었습니다.”
“기준 씨가 좋아하겠네요. 배우들 꽂아줄 곳 생겼다고.”
강윤도 동의했다. 민진서 이후의 배우들이 좀 더 수월하게 데뷔할 무대가 생겼으니 C&C도 든든한 기반을 마련 했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쐬며 술기운을 밀어내며 이현지는 턱을 괴었다.
“문희 씨 앨범은 정식 앨범이 됐으면 좋겠네요. 싱글이나 미니 말고. 문희 씨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몇 년 전에 불발난 곡들도 상당하니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강윤은 한숨을 쉬었다.
일본에서 인기가 워낙 높아 협의해 한국으로 오기도 쉽지 않았다. A- Trust도 한국 앨범 출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었다. 밀어붙였으면 가능했지만,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잡은 하나도 놓칠 우려가 있었다.
“강윤 씨.”
“말씀하십시오.”
“연습생들에,문희 씨,해외진출까지. 쉴 틈이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더 힘내보죠,우리.”
작은 파이팅 소리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뒷좌석에는 조용한 숨소리가 퍼져갔다.
———
“이렇게 일방적으로 스케줄을 취소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HMC 방송국의 음악예능 프로그램 ‘박민창의 이야기쇼’ 작가,진소민은 월드 스튜디오의 스케줄 담당 매니저의 전화를 받고 뒷목을 잡았다.
–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게 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녹화 3시간 전에 스케줄을 취소하다니요. 하루 이틀 얼굴 본 사이도 아니 잖아요. 설마 편집 때문에 그런 거라면…”
-에이,그럴 리가 있습니까,작가 님. 정말 스케줄이 겹쳤어요. 지민이가 갑자기 해외 스케줄이 잡혀서. 아, 시간 늦겠네. 미안해요.
“팀장님,팀장…”
뚜뚜뚜…
야속하게도 전화는 끊겼고, 작가는 화를 주체 못해 애꿎은 새끼작가들만 손가락질 했다.
“야이 씨!! 뭣들하고 있어?! 땜빵 찾아야지!! 전화들 돌려 봐!!”
같은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그날,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제작하는 프로덕션, ‘금선지’ 대표 정민구도 월드의 홍보팀장 강용진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 이현아의 모든 OST를 빼주십시오.
“잠깐만요. 강 팀장님. 한 회 못 나갔다고 그렇게까지 할 건…”
– 한 회가 아니라 4회입니다. 계약 위반이죠.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간 보면서 곡 가치를 깎는 제작사와는 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 말을 너무 심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 가치를 깎다니요. 월드야 말로 얼마나 곡을 잘 만들…”
– 더 드릴 말씀 없습니다. 음원사이트에 올라가있는 이현아의 곡들은 다 내려주십시오. 그럼.
일방적인 통보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정민구 대표는 화가 끓어올라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들 노래 아니면 할곡 없는 줄 아나. 씨펄!!”
월드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통편집을 했던 방송사,프로덕션은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
취소된 스케줄을 채우는 과정에서 강시명 사장의 귀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 저런. 양 PD님도 곤란하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침 스케줄 비어 있는 애가 있으니 빨리 보내겠습니다.”
박민창의 이야기 쇼에 소속 가수,’라미영’을 보냈다. 그렇게 월드 소속 가수들의 빈자리에 지예 소속 연예인들을 보내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약 1시간동안 방송 관계자들과 통화를 한 후,후련한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리석긴. 방송국과 척을 지면 앞으로 어쩌려고. 하여간 꽉 막혀 갖곤.”
허공에 연기를 뿜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오빠도 스케줄 취소했어요?”
“지민이 너도?”
“언니도요?”
스케줄을 취소하고 회사로 가자는 통보를 듣고 오게 된 월드 스튜디오 연예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멀뚱멀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에 강윤과 이현지가 들어 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다들 당황했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윤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통편집 굴욕에 스케줄 취소까지 당했지만 모두가 참았다. 연예인 하면서 그런 일 겪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강윤이 바로 보복성 취소를 해버렸다고 하니 모두가 당혹감에 눈만 껌벅였다.
“그,그래도 되요?”
이현아의 물음에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차라리 잘 됐어. 앞으로 한국 스케줄은 줄여나갈 생각이었거든. ”
“줄여요? 아,중국.”
이현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사실 스케줄 수행하면서 외국어 공부하는 게 힘들었었다.
아직 어려운데…”
이현아의 걱정스런 말에 이현지가 답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발음이 부족해도 그쪽에서 다 알아들으니까. 회장님도 발음이 좋지는 않아요.”
“발음은 이사님이 좋지.”
“그건 맞아요.”
이현지가 콧대를 세우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윤의 보복성 취소에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면서도 고마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 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었으니까.
강윤이 말했다.
“방송국 스케줄을 줄인다는 거지, 다른 스케줄을 줄이겠다는 말이 아니야. 알았지?”
“네.”
공지를 모두 전한 강윤은 이현지에게 가수들을 맡긴 후, 회의실을 나와 연습실로 향했다.
문을 여니 오지완이 8명의 연습생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오지완은 인사를 했지만 연습생들은 눈치를 보는 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들 줄을 몰랐다.
‘분위기가 왜 이러지?’
침체된 분위기였다. 여자연습생들이 모이면 접시 깨지는 소리와 함께 넘치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침체된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의욕 없이 쳐져있는 모두를 다시 한 번 살핀 후 말했다
“본격적으로 데뷔 일정을 이야기하려고 불렀어.”
“……”
만세를 부를 데뷔 이야기에도 반응이 없었다. 강윤의 표정도 점점 심각 해져 갔다.
‘얘들아.’
오지완이 연습생들에게 눈짓했지만,누구의 얼굴도 쉽게 들리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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