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4
9화 – 은빛의 각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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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9화 – 은빛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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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 일이 겹쳤지만, 강윤은 걸그룹 프로젝트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소녀들의 팀워크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일부러 상성이 맞지 않는 소녀들로 룸메이트를 짠 후 경과를 수시로 보고받았으며 모두가 함께하는 연습을 많이 편성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팀워크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며 더 팀워크를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런 결과에도 최근 결과를 보니 강윤은 고개가 절로 떨궈졌다.
“이런 강수를 써야 한다니…”
강윤은 ‘원주 봉사활동’이라는 제목의 서류들을 보며 이마를 좁혔다. 원래 이 봉사활동은 평가용 공연이 아니었다. 원래 의도는 모두가 공연을 즐기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팀워크 부족이 목적을 바꿔 버렸다.
강윤이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늘씬한 키가 돋보이는 민진서였다.
“어서 와.”
“안녕하세요.”
민진서는 이제 강윤에게 긴장보다 호감을 보였다. 은인이자 버팀목을 보는 그녀의 눈은 부드러움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줄 게 있어서. 내가 내려갈 시간이 없어서. 연습하는 데 방해했나?”
“아니에요. 바쁘시잖아요.”
민진서는 강윤의 책상 위에 널려있는 일의 흔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의 책상에는 언제나 일들이 널려 있었다. 정말 바쁘게 사는 남자였다.
강윤은 쌓여있는 서류의 맨 위에 있는 것을 민진서에게 내밀었다. 받아보니 대본이었다.
“일인극? 노래도 있네요?”
“연습용으로 많이 활용하는 일인극이야. 2주 뒤에 자선공연이 있는데 할 수 있겠어?”
“어디에서요?”
공연이라는 말에도 민진서는 긴장보다 설렘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며 강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얜 천상 배우구나.’
강윤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런 것들을 보고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는 대본을 천천히 읽는 그녀에게 공연에 관해 이야기했다.
“2주 뒤에 차기 걸그룹이 원주로 봉사활동을 가. 그때 자선 공연을 하는데 거기서 네가 일인극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럼 저도 같이 가는 건가요?”
“그렇지. 2박 3일 동안 쉰다 생각하고 가면 돼. 곧 데뷔니까 연습무대라 생각하면 돼.”
“알겠습니다.”
“자세한 일정은 매니저 통해서 알려줄게.”
“네.”
민진서가 사무실에서 나가고 강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빠르게 책상 위에 쌓인 일거리가 줄어갔지만, 시간도 그만큼 빨리 갔다.
일들이 모두 사라질 즈음 달이 중천에 올라 있었다.
“하아…”
퇴근을 위해 마이를 걸치며 강윤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에 지친 한숨이었다. 로비로 나섰을 땐 이미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희윤이 대문을 열고 반겨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오라버니.”
“네. 다녀오셨습니다.”
“꺅.”
강윤은 희윤을 보자마자 꼬옥 끌어안았다. 희윤이 살짝 놀라 소리를 냈지만, 강윤은 개의치 않았다. 희윤의 따스함에 피로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희윤도 강윤의 등을 다독이며 맞아주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오빠.”
“하루 수고했어. 투석은 잘 받고 왔어?”
“당연히.”
강윤의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준 희윤은 마치 부인 같았다. 강윤은 희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 했지만, 희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며 강윤을 거실로 밀어 넣었다.
샤워를 끝내고 강윤은 거실에 나와 바로 누웠다. 집에 와서 누우니 온몸이 나긋나긋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곁에 희윤이 앉았다.
“희윤아. 오빠 다다음주에 3일 정도 집에 없을 거야.”
“에? 어디 가?”
“원주. 혼자 있을 수 있지?”
“원주까지? 회사 일로 가는 거야?”
“오빠 걸그룹 프로젝트 하잖아. 그거 때문에.”
“알았어. 내가 어린앤가. 걱정 말고 다녀와.”
강윤은 희윤이 항상 걱정이었다. 물론 희윤이 혼자 못 있는 어린이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앞섰다.
“난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희윤은 그런 강윤의 심정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항상 강윤에게 미안했다. 자신이 그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 큰 능력이 있는 오빠인데 자기 때문에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 같아 언제나 미안했다.
“자야겠어. 희윤이도 잘 자”
피곤했던 강윤은 이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희윤은 그리 졸리지 않았다.
“오늘은 별로 재미없네.”
오늘따라 TV도 재미없었다. 희윤은 방으로 들어가 책을 폈다. 교과서라도 보면 잠이 올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밤중에 희윤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여보세요?”
– 희윤아!! 나야!!
희윤에게 전화한 이는 주아였다. 밤중이었지만 주변이 다 떠나가라는 듯, 주아의 목소리는 무척 컸다.
“무슨 일 있어?
– 내가 너무 늦게 전화한 거 아니지? 나 이제 끝나서 전화한 건데.
“늦게 했지. 암암.”
– 윽….
희윤과 주아는 이미 많이 친해졌는지 거리낌이 없었다. 이내 둘은 시시덕거리기 시작했고 전화기는 수다도구가 되어갔다.
한참을 통화하다 희윤이 물었다.
“주아야. 너희 회사에서 봉사활동도 가?”
– 봉사활동? 가지. 가서 공연도 하고 기부도 하면서 ‘우린 이런 활동도 해요’라고 홍보도 하지. 왜?
“오빠가 이번에 원주로 봉사활동을 간다고 해서.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 호오. 그래? 원주라고?
주아는 호기심이 당기는지 다시 물었다.
– 봉사활동이면 누구랑 가는지 들었어?
“아니. 그냥 차기 걸그룹 때문에 간대.”
– 그래? 차기 걸그룹이라고? 연습무대 때문이구나.
“주아도 그런 거 했었어?”
– 아니. 난 그럴 시간 없이 데뷔부터 했지. 쳇. 부럽네. 하여간 복 받은 것들이야.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며 주아는 희윤과 2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했다. 덕분에 희윤은 다음날 지각 일보 직전에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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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라는 시간은 훌쩍훌쩍 지나고 어느덧 봉사활동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6명의 소녀는 짐을 잔뜩 싸들고 공지에 나온 시간 전에 여유 있게 나왔다. 모두가 여행용 캐리어에 매는 가방에 짐이 한가득하였다.
소녀들이 재잘대며 회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강윤도 약속 시각 전에 왔다.
“이쪽으로.”
강윤은 소녀들을 자신 쪽으로 불러 세워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정민아가 봉투를 열어보며 물었다. 그런데 봉투를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봉투 안에는 신사임당께서 세 분이나 자리하고 계셨다.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강윤이 말했다.
“너희는 다 같이 버스 타고 여기로 오면 돼. 봉투 안에 주소 있으니까 6시까지 찾아오도록 해. 늦지 않도록 하고.”
그리고 강윤은 이내 로비 밖으로 나가버렸다.
“팀장님, 팀장님!!”
정민아가 놀라 그를 따라 나갔지만, 강윤은 준비된 차를 타고 씽 하니 가버렸다.
“뭐야, 우리끼리 버스 타고 오라는 거야?!”
“그런 듯.”
정민아는 너무 황당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다혈질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심정에 크리스티 안이 기름을 붓고 있었다.
“…대박.”
서한유도 황당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대우 못 받는 연습생이라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연습생 생활 3년 만에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아니, 차비 달랑 주고 원주까지 오라니. 이런 어이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흐엥… 우리 버림받은 거야?”
“괜찮으, 괜찮아. 찾아가면 되지.”
황당함이 너무 커 울음을 터뜨리려는 에일리 정을 이삼순이 달래고 있었고.
“헐…”
한주연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모두의 마음은 지금 똑같았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다만 표현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
.
.
직접 운전대를 잡은 이현지 사장은 지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 하하!! 아, 너무 웃겨… 미안해요, 강윤 팀장. 하하. 애들 표정이 잊히질 않네요. 하하하하!!”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평소의 포커페이스는 온 데 간대 사라지고 웃음이 계속 나오니 미칠 것 같았다. 근처 차 안에서 강윤과 소녀들을 보고 있던 그녀는 봉투를 받아들고 기뻐하다 강윤의 말을 듣고 황당한 소녀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그러나 강윤의 얼굴은 심각했다.
‘제시간에 찾아올 수 있을까.’
소녀들 6명.
서로 의견을 합쳐 찾아오라는 취지로 돈만 쥐여주고 원주로 오라 했지만,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물론 17세, 이제 어른이 되기 시작한 소녀들이 못할 일도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매니저 팀의 2명도 몰래 그녀들을 뒤따르게 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하.”
“…..”
이현지 사장의 웃음 속에서 강윤은 심각한 얼굴로 원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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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의 걱정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여기서 끊는 거 맞아?”
“바보냐, 센트럴 터미널로 가야지. 강원도 가는데 왜 남부터미널로 와. 전라도 가게?”
“동서울로 가야지.”
6명의 소녀는 지하철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맞다며 난리가 났다. 서울의 터미널은 무려 4개. 그중 원주로 가려면 동서울터미널로 가야 했지만 지금 소녀들은 센트럴터미널이니 남부니 동서울이니 하며 서로 자기가 옳다며 싸우고 있었다.
“언니들, 인터넷 찾아보면 안 될까요?”
보다 못한 서한유가 조심스레 말했지만 이미 오기가 솟은 언니들을 말리긴 힘들었다. 그녀 빼고 모두 열혈한 18세. 이미 각자의 루트를 통해 자기들 말이 옳다며 시간을 열심히 흘리고 있었다.
“내 말을 믿어. 원주 가는 거 동서울이 맞아.”
이삼순이 가슴을 치며 그녀로선 드물게 빠르게 이야기했지만, 한주연이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그건 충청도 가는 터미널이잖아. 센트럴이 맞아. 호남 쪽도 가지만 강원도도 간다고 들었어.”
그러자 정민아도 나섰다.
“센트럴에서 강원도를 어떻게 가? 전라도 가는 데는 전라도만 가겠지. 부산만 가는 데는 부산만 가고. 그래도 강남터미널은 제일 큰 곳이니까 괜찮을 거야. 거기로 가자.”
크리스티 안도 지지 않으려 입을 열었다.
“난 잘 몰라서 친구들한테 물어봤어. 서울터미널이 있데. 거기로 가면 갈 수 있다던데?”
결국, 4명의 소녀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지하철을 맴돌았다. 센트럴파크가 있는 터미널에 내리려다 제지당하고, 강남터미널로 향하려니 아니라며 싸움이 났다. 한참 동안 시간만 열심히 흘러가다가 결국 아픈 다리를 주무르던 에일리 정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야!! 그냥 다 가봐!!!!!”
“……”
머리채까지 잡으려는 기세의 소녀들은 결국 에일리 정의 기세에 모두 눌리고 말았다. 사실 그녀들도 지기 싫어서 그랬을 뿐, 이러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인터넷 찾아보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근처 피시방이라도 가서 녹색 집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을 줄 텐데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서한유의 생각은 언니들의 빠른 걸음에 금방 날아가고 말았다.
“예? 여기가 아니에요?”
첫 번째 센트럴파크에 온 소녀들은 원주 가는 버스가 없다는 걸 알고 큰 실망을 했다. 그리고 센트럴파크를 강하게 주장한 한주연은 민망했는지 조용히 뒤로 빠져 얼굴을 긁적였다.
“다음은 어디야?”
“강남.”
소녀들은 강남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지하철로 이동 하는 건 10대 체력이 좋은 소녀들에게도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자리도 없었다.
“어? 저기 자리 났다.”
지하철을 한참 타고 가는데 멀리서 빈자리 하나가 보였다. 정민아는 잽싸게 달려 자리에 앉았다. 가히 ‘우Sign 볼Two’에 비할만한 스피드였다.
“쳇.”
기회를 놓친 5명의 소녀 모두가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내며 정민아에게로 갔다. 오랜만에 자리에 앉은 정민아가 매우 부러웠다. 그런데…
“에일리. 다리 많이 아파?”
“웅…”
평소에 애교 넘치는 그녀답게 대답도 앵 돌았다.
정민아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오올. 착한데?”
한주연이 놀랐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정민아는 시크했다.
“나중에 음료수 사.”
“고마워.”
별거 아니라는 듯 나오는 정민아였지만 에일리 정은 힘들게 앉은 자리를 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강남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소녀들은 빠르게 달려가 원주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네? 없다고요?”
직원의 부정어에 오자마자 달렸던 한주연은 어깨가 추욱 쳐졌다. 직원은 없다고 말만 하곤 이내 다음 손님을 맞았다. 오늘따라 줄도 길어 더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자리 양보로 점수를 땄던 정민아였지만 이내 그 점수는 확 날아가 버렸다.
“미안…”
얼굴이 빨개진 그녀를 뒤로하고 소녀들은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대책이랄 것도 없었다. 서한유가 터미널 한편에 놓인 컴퓨터로 달려가더니 인터넷 검색으로 터미널을 찾아버렸다.
“동서울이에요.”
“삼순이 말이 맞네?”
에일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다른 동갑내기 소녀들은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결국, 시간과 체력만 낭비한 꼴이었다.
그런데 그때. 정민아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여보세요?”
– 민아니? 나 이강윤이야.
“엑? 아저씨?!”
– 엑이라니.
강윤에게 전화를 받자 정민아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의 전화인 걸 알고는 소녀들 모두가 당황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윤은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지금 어디쯤이야?
“그.. 그게. 이제 버스 타러 터미널로 가요.
– 이제? 뭐하다가?
“그게… 터미널은 처음 가봐서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하고.
“네. 빨리 가겠습니다.”
정민아는 얼른 강윤과의 통화를 마쳤다. 더 통화하면 실수 할 것 같았다.
“팀장님이 뭐래?”
한주연이 궁금했는지 다가와 물었다. 정민아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잘 오고 있냐고.”
“다른 말은 없었어?”
크리스틴 안도 걱정되었는지 물었다.
“빨리 오라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래.”
“팀장님이 서두르라고 한 거네요. 빨리 가요.”
정민아의 말에 서한유가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서울로 고고.”
“불안한데…”
이번에도 실수할까 이삼순이 걱정했지만, 정민아는 괜찮다는 듯 모두를 안심시켰다.
6명의 소녀는 그렇게 동서울터미널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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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의 어느 산에 있는 천사의 집.
3일 동안 MG엔터테인먼트 연습생들과 직원들이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곳이었다.
강윤과 이현지 사장, 그리고 직원들은 다른 연습생들보다 먼저 도착해 천사의 집 아이들과 원장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방 안내를 비롯해 해야 할 일들, 봉사활동 등 이후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현지 사장과 직원들은 천사의 집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에게로 가 봉사활동을 하고 강윤은 천사의 집에 남아 장비들을 점검했다. 봉사활동이지만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육성에 있었다. 장비와 공연내용들을 다시 한 번 보며 머릿속에 어떻게 공연을 해야 할지 그려 보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저녁이 되었다. 첫날 저녁이라 바비큐 파티를 하자며 마을 사람들과 천사의 집 사람들 모두가 천사의 집 운동장에 모였다. 곧 고기 굽는 연기와 시끌시끌한 소리가 퍼지며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강윤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너무 늦는데?’
강윤은 천사의 집 입구에 있었다. 홀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되었지만 정민아나 다른 소녀들에게 전화는 하지 않았다. 소녀들 모르게 뒤에서 따르고 있는 직원들에게서 이미 헤매며 잘 오고 있다고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식사 안 해요?”
홀로 소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강윤에게 고기 냄새를 풍기며 이현지 사장이 다가왔다.
“애들 오면 같이 먹겠습니다.”
“애들 많이 챙기네요. 아직 가수가 된 것도 아닌데.”
“제 아이들이잖습니까. 챙겨야죠.”
이현지 사장의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MG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다른 소속사에서도 연습생들은 소모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나의 가수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선택목록. 그게 연습생의 숨은 정의였으니까. 가수에게 소고기 10인분을 먹일 때 연습생에게 돼지고기 2인분을 먹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확실히 강윤 씨는 아주 특이하네요. 다른 기획팀장들하고는 많이 달라.”
“어떻게 다릅니까?”
이현지 사장은 대화가 길어질까 봐 강윤 옆에 걸터앉았다.
“감이야 이전에 말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요즘에 느끼는 건 가수나 연습생을 대하는 태도에요. 원래 가수와 연습생은 대우가 다르죠. 가수에게 10을 준다면 연습생은 0.1을 주는 게 당연한 거에요. 그래야 투자비용도 줄이고 연습생은 기를 쓰고 가수가 될 테니까. 이건 이미 관행처럼 된 지 오래예요. 그런데 강윤 씨는 연습생에게 많이 줘요. 한… 3?”
“확신이 있으면 더 잘할 테니까요.”
“그게 차이에요.”
이현지 사장은 손바닥을 쳤다.
“이 아이가 확실히 뜨는 게 아니라면 그 투자는 회사에 엄청난 마이너스로 남게 되죠. 그럼 나중에 다른 연예인이 그 마이너스를 메꿔야 한단 말이죠. 어찌 보면 강윤 씨의 행동은 회사엔 마이너스에요. 그런데 지금 강윤 씨의 행동에 회사는 아무도 말을 못 해요. 왜냐? 지금 마이너스를 낸다 해도 강윤 씨가 낸 플러스가 너무 커서 할 말이 없으니까. 하하하. 난 그게 재미있어요. 지금 이사회에서 강윤 씨 트집 잡아 보려고 얼마나 난리인 줄 알아요?”
“남의 나라 이야기죠.”
회사 정치 이야기에 강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강윤이 회사 정치 등에 관심이 있으면 꼬셔 보기로 하겠건만, 그마저도 없으니 이사들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강윤 씨가 다른 거에요. 다른 기획팀장들은 어떻게든 이사들 눈에 들어서 예산 타보려고 꼬리 흔드는데 그런 게 없잖아요? 지독하게 하나만 보죠. 이 사람이 성공할지, 안할지. 이번 민진서 이야기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강윤 씨라면 기대해볼 만 해요. 아무튼 난 강윤 씨가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주욱 같이 일했으면 좋겠군요.”
이현지 사장은 강윤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입구 앞에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2대의 택시를 가리켰다. 소녀들이 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현지 사장이 들어가고 강윤은 조용히 소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소녀들은 강윤을 발견하곤 헐레벌떡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
“…..”
침묵이 흘렀다. 강윤도 소녀들도 말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약속 시각인 6시를 지나 9시가 되어 있었다. 강윤이 얼마나 시간에 철저한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녀들은 얼마나 혼날지를 걱정하며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었다.
“밥은?”
“….네?”
“밥은 먹었어?”
그런데 매우 얼떨떨한 질문이 들어왔다. 모두가 서로를 보며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꼬르르르르륵—
“아….”
에일리 정에게서 무지무지 큰 몸의 소리가 났다. 에일리 정은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졌고 다른 소녀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긴장만이 흐르는 상황 속에 강윤은 툭 내뱉었다.
“배고프겠다. 밥 먹자.”
“네?”
“짐 내려놓고 운동장으로 와. 방은…”
강윤은 소녀들에게 호실을 이야기해주곤 바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강윤이 총총히 사라지자 크게 혼날 각오를 했던 소녀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멍하니 바라봤다.
“뭐지? 운동장에서 기합이냐 우리?”
“아, 디질랜드…”
정민아와 이삼순이 한숨을 푹 쉬며 한마디씩 했고 소녀들은 빠르게 짐을 놓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기합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받기 위해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와. 밥 먹어.”
소녀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저게, 뭐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이삼순은 너무 당황하여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한유도 마찬가지였다. 고기, 그녀들의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기가 쌓여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산처럼 쌓여있는 고기는 진짜였다. 한술 더 떠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기를 굽고 있는 이가 강윤이었다.
“뭐해? 안 먹을 거야?”
“아니요!!”
그러나 강윤이 소리치자 소녀들은 지금 이 광경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치마를 매고 집게를 든 강윤이 맛깔나는 소고기를 구워 소녀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비현실이, 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반찬 이랬던가. 강윤 앞에서의 긴장감은 식욕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고기 폭식이 시작되었다. 소녀들 모두 낮부터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너무 고팠다. 밥 먹으면서 들을 것 같은 잔소리도 지금은 다 용서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강윤은 소녀들의 생각과 달리 말없이 고기를 구워 소녀들에게 가져다주었다.
‘녹는다, 녹아!!’
‘이게 고기냐, 솜사탕이냐?’
‘흑흑… 너무 마이쪙..’
최고의 고기였다. 오늘 하루의 고생이 이 고기 한방으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소녀들이 먹는 고기들은 눈이 녹듯 사라져 갔다.
“언니들, 더 드세요.”
언제 나타났는지 민진서도 소녀들에게 고기를 날라 주었다. 덕분에 강윤은 고기를 굽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민진서는 고기뿐만 아니라 음료수나 김치 등도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강윤의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들어가 쉬지 왜 나왔어.”
“선생님 일하시는데 어떻게 쉬어요.”
“고마워.”
강윤과 민진서는 고기를 구우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저게…’
고기에 집중하다 정민아는 강윤과 민진서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기 싫었다.
“언니?”
“한유야.”
“무슨 일 있어요? 얼굴도 찡그리고?”
“에이. 내가 찡그렸다고? 설마.”
서한유가 물었지만, 정민아는 부정하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녀는 슬쩍슬쩍 강윤 쪽을 바라보며 조금씩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고기를 씹는 건지 고무를 씹는 건지 맛도 이미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강윤은 말없이 고무장갑을 끼었다. 그러자 기겁한 건 소녀들이었다.
“팀장님, 팀장님!! 그러지 마세유!! 지가 할게유!!”
강윤이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려는데 이삼순이 가장 먼저 나섰다.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연습생에게 고기까지 구워준 팀장님에게 설거지까지 맡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강윤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소녀들 등쌀에 고무장갑을 빼앗기고 말았다.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습니다. 고마우니깐 이제 쉬세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며 정민아는 강윤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등을 잡을 때 은근히 가슴이 뛰었지만, 표현은 마음과 딴판이었다. 10대 소녀의 감성은 이런 것이었다.
늦은 도착에도 질책보다 환대해준 강윤에게 소녀들 모두가 고마운 마음을 담고 설거지를 할 때였다. 강윤은 지나가는 말로 툭, 내뱉었다.
“내일 공연 잘 해보자.”
“네!!!!”
고기를 먹은 힘일까, 운동장은 소녀들의 우렁찬 소리가 힘차게 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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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천사의 집의 빈 공터에서…
“다시 한 번 맞춰보자.”
한주연은 모두를 독려해 다시 한 번 대열을 맞췄다.
저녁 공연까지 남은 시간 3시간. 그러나 단체 댄스곡이 생각만큼 잘 맞지 않았다.
“에일리. 계속 반 박자씩 늦잖아. 나 잘 따라와.”
“응.”
정민아는 에일리 정을 계속 다그쳤다. 하지만 유연하고 빠른 정민아와는 달리 에일리 정은 빠르지 못했다. 유연함은 어찌어찌 됐지만, 에일리는 둔했다. 정민아는 속이 터졌지만 참고 누르며 계속 에일리가 어떻게든 따라오게 하려고 노력했다.
단체 댄스곡은 소녀들에게 쉽지 않은 과제였다. 난이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는 것, 그게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나 조금씩의 오차가 있었다. 계속 단체 연습을 해왔지만, 서로의 박자 차이는 심했다.
“아…. 다시.”
“응.”
정민아와 에일리 정은 빠름과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며 계속 파도를 타고 있었다.
.
.
.
‘회색이 잔치하네.’
몰래 소녀들의 연습을 지켜보던 강윤은 소녀들에게서 나오는 회색의 빛잔치를 보며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들이 춤을 출 때 그녀들에게서 나오는 회색은 강윤의 눈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소녀들이 다시 맞춰본다고 연습을 계속해도 회색은 여전했다. 강윤은 색깔만 보는 오류를 피하려 소녀들의 춤에도 집중했지만 박자 차이와 동작 차이 등등 문제가 곳곳에서 보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예상한 문제야.’
그래도 강윤은 당장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등의 질책을 하진 않았다. 지금 당장 질책하는 건 쉬웠다. 그러나 강윤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들이 현재를 제대로 느끼는 것. 이것이니 말이다.
강윤은 소녀들이 있는 곳에서 이번에는 작은 방을 빌려 홀로 연습하는 민진서에게로 향했다. 강윤은 조용히 민진서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아— 내 마음 찰 때까지 키스를 하고 싶어라. 그의 키스를 받으며 사라진다 할지라도!!”
“…..”
문을 연 강윤의 앞에서 민진서가 한창 열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게 문제였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민진서가 강윤의 바로 앞에 다가온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아, 죄송해요.”
“아냐. 나야말로.”
강윤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놀랄 만도 했을 텐데 민진서는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강윤도 이내 자신을 수습하며 해프닝으로 넘겨버렸다.
“무슨 일인극에 이런 대사가 있어?”
“파우스트에 나오는 대사예요. 파우스트를 사랑하는 여인 그레트헨이 파우스트를 사랑하게 되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용이죠. 노래도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19금은 아니지?”
트레이너에게 연습용 일인극 대본을 골라오라 했건만, 좋아도 너무 좋은 대본을 골라왔다. 바빠서 대본을 검토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 강윤이 자신의 이마를 잡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진서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한번 보실래요? 저 자신 있어요.”
“…그래. 어른들도 있으니 상관없겠지.”
“네?”
“아냐. 알았어.”
강윤은 기대 어린 눈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아는 민진서의 연기는 이미 수준급이었다.
안타깝게도 연기에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나 춤 등 음악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는 빛이 보이지 않아 강윤은 아쉬웠다.
강윤이 민진서의 연기를 보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자 민진서에게서 점차 새하얀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얗군.’
좋은 공연을 보여 줄 수 있겠다며 강윤이 만족하려는 그때, 그녀에게서 나오는 빛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연인이여- 나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의 연인, 그레트헨. 악마와의 내기로 점점 힘이 빠져가는 그를 사랑하며 결국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그녀를 연기하는 민진서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이건, 뭐지?’
그녀를 비추던 하얀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종래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별빛과도 같은 찬란함이었다. 하얀빛으로 만족하던 강윤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은빛의 화려함에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아— 내 마음 찰 때까지 키스하고 싶어라. 그의 키스를 받으며 사라진다 할지 라도!!”
몰입한 민진서가 한 걸음, 한 걸음 강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주위로 은빛의 화려함이 흘러 자신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하얀빛보다 더더욱 강렬한 은빛, 강윤은 그 놀라움에 무릎을 쳤다.
‘은색!! 이건… 뭐야?! 이건… 무조건 된다!!’
흰색을 넘어가는 빛은 처음이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이 노래의 강렬함에 강윤은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된다고!!
민진서가 연습벌레이기도 했지만, 실력이 이렇게 일취월장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윽고, 짧은 일인극은 금방 끝났다. 민진서는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아~. 저 어땠어요?”
“잘했어. 이거면 되겠어.”
“한 번 더 해 볼까요?”
“아니. 괜찮아. 그럼 수고해.”
연습에 더 방해될까, 강윤은 연습실을 나섰고 민진서는 이후에도 연습에 집중했다.
‘은빛, 은빛이라니. 더 위도 있다는 걸까?’
공연이 있는 강당으로 향하며, 강윤은 그동안 하얀빛, 회색빛만 생각해오던 이 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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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시간이 되었다.
강윤들은 엔지니어로 서 있는 직원들 옆에 섰다. 소녀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한눈에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카메라도 사방으로 5대나 설치했다. 후에 이 카메라로 찍은 자료들은 모니터링과 각종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천사의 집에서 가장 예쁘다는 원생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천사의 집에서 장기자랑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마을 사람들의 장기자랑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 메인 이벤트, 소녀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무대는 한주연과 에일리 정의 무대였다. 두 소녀는 긴장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MG엔터테인먼트 연습생 한주연, 에일리 정입니다.”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MR이 흐르며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한주연이 치고 나왔다.
“하루 하루 – 흐르고 네 향에 취하여 —”
한주연의 꽉 찬 소리는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소리가 편안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누구나 편안하게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점점 음이 올라가고 에일리 정의 차례가 되었다.
“그제야 — 난 눈을 들고 너를 바라보니 —”
에일리 정의 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거친 듯하면서도 여성스러운 파워풀함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니 모두가 조용히 몸으로 파도를 탔다. 그리고 조금씩 음이 고조되었다.
“Here –!!”
두 사람의 음이 처음으로 만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공연을 보는 강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회색?’
잘 흐르던 하얀 빛이 갑자기 회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천천히도 아니었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합쳐지자마자 회색으로 확 물들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불협화음이었다. 가까이 앉아있던 아이들부터 마을 어른들까지 흥이 깨졌는지 얼굴을 찡그렸고 그 여파는 노래를 부르는 두 소녀에게도 미쳤다.
‘짙어지는군.’
강윤의 눈에 보이는 회색은 점점 짙어져 급기야 검은색이 되어버렸다. 최악이었다. 처음에 흰색이었던 솔로 파트조차 회색이 되어 회복되질 않았다.
‘분위기를 띄우는 건 어렵지만 떨어뜨리긴 쉽지.’
강윤은 한숨만큼이나 무대 앞의 한주연과 에일리 정의 고개도 푹 떨궈졌다. 그녀들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정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다음 무대는요..”
사회자도 난감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관객들의 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만큼 첫 무대의 여파는 컸다. 노래를 잘하는 한주연이 나가 실패해 버렸다. 사람들의 인상이 제대로 나빠져 버렸다.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를 꼽자면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런데 처음이 제대로 꼬여버리니 이후가 험난해질 건 안 봐도 뻔했다.
‘강윤 씨. 이대로 내버려 둘 건가요?’
이현지 사장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그러나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네. 괜찮습니다.’
‘저 애들 상처 크게 입을 텐데. 심하면 무대 공포증까지 올 수도 있어요.’
공연하는 이 강당은 매우 좁았다. 덕분에 공연자와 관객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관객의 살아있는 표정이 공연자에게 모두 보인다는 말이었다. 이런 거부를 눈앞에서 당하면 경험이 적은 연습생으로선 극복이 쉽지 않다.
이현지 사장은 자신이라도 가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월권은 좋아질 게 없었다. 게다가 강윤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다음 공연은…”
다음 무대는 크리스티 안의 솔로 무대였다. 첫 번째 무대가 실패해서 그녀 역시 긴장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염려만큼이나 무대에 나오니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 왜 이래?’
너는 얼마나 보여줄 건데?
모두가 눈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첫 무대의 여파는 바로 크리스티 안에게로 미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보는 그녀에게 이런 눈빛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Sing ~~~ fo ~~ sing— ”
결국, 크리스티 안은 떨리는 목소리와 음이탈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노래를 부르는 4분이 그녀에게는 영겁의 시간과 같았다.
‘…잘 나가다 회색이 되는군.’
뒤에서 모두를 지켜보는 강윤도 그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을 보니 학생들은 잡담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하품에 수다로 무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윤은 이 모든 걸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다.
다음 무대는 정민아와 서한유의 듀엣 댄스곡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좀 나았다. 아예 그들은 관객들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준비해온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관객을 보지 않고 자신만의 공연을 펼친 후유증은 컸다.
‘하얗군. 선방했어.’
강윤에게는 바로 색깔로 드러났다. 정민아와 서한유는 잘 맞는 듀엣이었다. 둘은 서로 잘 맞춰나갔고 관객들을 보며 떠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앞서 다운된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민진서의 차례가 되었다.
“저 언니 진짜 예쁘다.”
민진서가 무대 앞으로 나서자 꼬마 하나가 그녀를 향해 손가락 짓을 했다. 아니,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이 손가락 짓만 안했지 꼬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선이 민진서의 화려하면서도 큰 기럭지에 모두 집중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왔던 연습생들도 외모가 귀엽고 활기찼다면 민진서는 늘씬함, 귀여움, 아름다움 등 모든 걸 갖추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관객들의 눈이 집중되어 부담되었는지 민진서는 강윤을 바라보았다. 강윤은 멀지 않은 뒤편에서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괜찮다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신호를 보냈다. 시작이었다.
“그대를 위해서라면 난… 오늘 죽어도 괜찮아요.”
민진서의 맑은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결점 없는 피부만큼이나 밝으면서 맑은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떠들며 정신없던 사람들이 모두 민진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민진서가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빛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스며들어 간 빛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밝게 만들었다. 또 어떤 이는 가볍게 눈물도 짓게 했다. 그녀의 무대가 남기는 영향력이었다.
공연은 절정으로 올라가며, 그녀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관객들 앞으로 다가왔다. 맨 앞에 있는 남자 선생님 앞에서 민진서는 무릎을 꿇고 외쳤다.
“아— 내 마음 찰 때까지 키스를 하고 싶어라. 그의 키스를 받으며 사라진다 할지 라도!!”
두근!!
남자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민진서의 고운 외모가 주는 영향력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리얼한 목소리, 감정 모든 게 그를 파고들었다. 아니, 주변 관객들 모두에게 영향이 미쳤다.
‘은색이다!!’
하얀빛이 어느새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민진서는 모두의 감정을 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느끼는 감정들이 다른지 누군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누군가는 눈을 붉히며 다른 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민진서는 모두를 뒤흔들고 있었다.
짧지만 모두의 감정을 뒤흔든 민진서의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
민진서가 공손히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를 했지만, 사람들은 공연이 끝났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관객들 모두가 잠시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누나, 최고다!!”
“박수!!!”
잠시 후.
그제야 일인극이 끝난 것을 깨달은 관객들이 강당이 떠나가라 박수를 쳤다. 환호 소리가 파도를 쳤다.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공연에서 나오질 못했다.
앞에서 민진서를 지켜보던 이현지 사장도 천천히 박수를 쳤다. 강윤이 신파극 비스름하게 했던 요구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민진서는 보석 중의 보석이었다. 조금 전까지 연습생들이 펼쳐 보였던 재롱잔치들이 그녀의 공연 하나로 모조리 날아갔다. 커다란 파도가 잔 찌꺼기들을 모조리 쓸어가는 이치와 같았다.
“다음은…”
물론, 민진서의 공연이 끝나고도 공연은 계속되었다.
이삼순과 크리스티 안의 듀엣곡은 무난했다. 하지만 외국팝송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전 공연의 여운 덕분에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 같이하는 댄스곡이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모두가 결심을 단단히 하고 섰지만…
‘아…’
정민아는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반 박자가 쳐지는 에일리 정의 동작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왼쪽으로 돌 때, 왼쪽으로 움직일 때 특히 반 박자가 느려졌다. 그 덕에 모두의 댄스가 어설픈 아마추어의 춤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은 회색이군. 검은색 아닌 게 어디야.’
강윤은 모든 걸 기록하고 노트를 덮었다. 그와 동시에 공연도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소녀들의 그 말과 함께 담담한 박수 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그러나 공연의 여운이 씁쓸한지 소녀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공연이 끝난 후의 가수들은 피로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법이다. 오랜 경험으로 강윤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다. 그 때문에 공연 피드백을 바로 하는 법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윤은 그걸 깼다. 공연이 끝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소녀들을 모두 공연이 있던 강당으로 불러 모았다.
“…..”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소녀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강윤도 침묵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던 강윤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공연 피드백해 보자. 다들 앉아.”
피드백은 원래 트레이너들과 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강윤이라니. 소녀들 모두가 긴장에 몸이 굳어 버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윤은 설치한 프로젝터에 카메라를 연결해 재생했다. 곧 소녀들의 공연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주연과 에일리 정의 첫 공연을 보고 강윤이 말했다.
“먼저 주연이와 에일리부터 해 보자. 잘한 건 이야기하지 않겠어. 부족한 것만 이야기할게. 둘은 목소리가 합쳐지는 초기 부분, 그러니까 후렴이네. 여기가 부족해. 서로 느꼈지?”
“네.”
“그럼 다시 해보자. 일어나.”
한주연과 에일리 정이 일어나 노래를 시작했다. 다시 강윤에게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보이던 빛과 똑같은 회색이었다.
“다시. 주연아. 에일리 소리 듣고 있어?”
“네.”
“에일리는?”
“듣고 있어요.”
“서로 듣고 있는데 소리가 따로 놀아?”
“…..”
강윤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노래로 둘이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에 네가 맞춰라, 아니다. 네가 맞춰라. 이런 양상이었다.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지만 강윤은 화를 내지 않았다.
“다시.”
“네.”
될 때까지.
강윤은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들은 속으로 목소리싸움을 하는 한주연과 에일리 정을 욕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안 되겠네. 다시 하자.”
둘에게서 보이는 회색은 여전했다. 한주연의 목소리나 에일리의 목소리나 서로의 소리를 듣고 합해지려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시도했지만 둘 다 그대로였다.
“다시.”
강윤은 지독했다. 서로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한주연이나 에일리 정도 지독했지만, 강윤은 한 수 위였다. 수십 번을 다시라고 외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에일리가 힘들다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강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다시 해.”
“선생님….”
“서로 목소리 맞추면 되잖아. 그렇지, 주연아?”
“…..”
한주연도 강윤이라는 사람에게 질려가고 있었다. 에일리에게 지기 싫어서 그랬다지만 강윤이 더 무서웠다. 지금 그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양아치로 소문난 세디도 3일 동안 무릎 꿇고 빌어서야 컴백무대를 기획해줬다더니, 소녀들에게 이제야 그 독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100번밖에 안 했어. 다시 해보자.”
이쯤 되니 한주연이나 에일리나 목소리를 맞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리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맞추려고 해도 맞추기 쉽지 않은 게 소리다. 가수가 되면 한 번 듣고 바로 맞출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지만 아직 그녀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결국, 그녀들은 수십 번을 다시의 악몽 속에서 헤엄쳐야 했다. 그래도 해방은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네.”
“…..”
강윤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주연이나 에일리나 서로의 목소리는 이제 몸에 익어버렸을 정도였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강윤의 피드백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다음은 정민아랑 서한유구나. 해볼까?”
“흐엑!!”
정민아는 감정이 너무 드러나 버렸다. 그러나 평소라면 웃었을 소녀들도 이 순간만은 웃을 수가 없었다. 같이 나가는 서한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두 사람도 강윤의 다시라는 말이 뇌에 박히도록 같은 동작을 해보고, 또 해봐야 했다. 그나마 두 사람은 전보다 많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끔찍했다.
피드백은 모든 무대에 적용되었다. 개인 무대부터 듀엣 무대까지. 강윤의 피드백은 단순했는데 소녀들에겐 끔찍했다. 그녀들이 가장 못 하는 부분만 쪽쪽 찝어내 반복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반복이란 게 너무 지겨워서 소녀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철저하게 준비해 맞추겠다는 결심까지 섰다.
소녀들은 고생을 죽어라 했지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피드백, 단체공연이었다. 정민아와 에일리 정의 박자가 반 박자나 차이가 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아마추어 같은 댄스였다.
이미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소녀들의 눈에도, 강윤의 눈에도 피로가 잔뜩 몰려왔지만, 강윤은 벌게진 눈으로 계속 피드백을 진행했다.
“춤은 방법이 없어. 될 때까지 하는 수밖에. 해보자.”
안타깝게도 강윤은 댄스에 전문 지식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지식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금 하는 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팀워크, 모두가 하나의 군무를 이루는 팀워크가 중요한 것이니까. 아까처럼 정민아는 빠르고 에일리 정은 느린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절대로 안 됐다.
“민아야. 네가 맞춰줘.”
“네? 그렇게 하면 루즈해질텐데…”
“그래도 맞춰줘.”
“…네.”
정민아가 불만이 있는지 입술을 삐죽였지만, 강윤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강윤은 정민아의 프라이드를 잘 알았다. 그녀는 춤을 ‘너무’ 잘 춘다. 말 그대로 ‘너무’다. 그 덕에 에일리가 정민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정민아를 에일리에 맞추는 게 더 나았다. 그리고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는게 전체적인 수준향상에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적으로 네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강윤 나름의 존중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효과를 발휘했다.
“나아졌네. 이제 조금씩 빠르게 해보자.”
“네.”
정민아도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지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춤에 대해선 귀신같이 느끼고 말하는 그녀였다.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가 올라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쫓아오지 못하던 에일리 정이 어느새 정민아의 빠른 페이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종국엔 정민아의 페이스를 완전히 쫓아갔다.
시간은 아침 7시 하고도 10분이 넘었다. 그제야 모든 피드백이 끝이 났다.
강윤은 그제야 모두를 모이게 했다.
“수고했어. 이제 씻고 자자.”
“….수고하셨습니다.”
공연하고, 밤새도록 힘을 뺀 소녀들은 이미 좀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그늘은 이미 눈 밑으로 내려와 있었고 머리는 기름이 좔좔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윤의 해산 선언에 그녀들은 어기적어기적 숙소로 향했다.
‘…진짜 힘드네.’
소녀들이 모두 나가자마자, 강윤은 그대로 강당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사실, 누구보다도 강윤이 가장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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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집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7명의 소녀는 한 작은 버스에 함께 탑승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앞좌석에 매니저 한 명 외에 아무도 타지 않아 소녀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우앙…. 지옥이야, 지옥…”
에일리 정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직도 밤샘연습을 한 후유증이 남아있어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이 올라가질 않았다.
“누가 아니래… 이강윤 나쁜 놈아…”
한주연도 한마디를 보탰다. 한마디 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았다. 어제의 후유증인지 목소리도 후들후들했다.
“…난 팀장님이 제일 착한 줄 알았는데 제일 독해요… 무서웠어…”
서한유도 다신 생각하기 싫은 합숙에 치를 떨었다. 공연보다 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민아 언니는 눈도 못 뜨네요.”
“그르게.”
서한유와 이삼순은 차에 오르자마자 한구석에 박혀 잠들어버린 정민아를 보며 깊은 안쓰러움을 내비쳤다. 사실 그녀들도 무척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고개만 붙이면 잘 수 있는 정민아가 이 순간은 부러웠다.
“진서는 좋겠다. 피드백도 안 하고.”
크리스티 안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민진서를 바라봤다. 그러자 민진서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같이해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냐. 같이 했으면 시간만 길어졌을 거야. 그리고 진서는 잘했잖아. 언제 연기가 그렇게 는 거야? 어제 완전히 놀랐어.”
크리스티 안의 말이 모두의 마음이라도 되는 듯, 다른 소녀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진서는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비행기 자꾸 태우지 말아 주세요. 부끄럽게. 그냥 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한 걸요.”
“진서는 당장 데뷔해도 되겠더라. 부러워.”
이삼순이 느릿하게 이야기하자 민진서는 얼굴이 더 빨개져 고개를 더욱 숙여버렸다. 이런 모습에 다른 소녀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민진서는 소녀들과 동화되어 갔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휴게소였다.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휴게소 명물 호두과자와 간식들을 잔뜩 사 들고 차에 오른 소녀들은 이내 행복감에 젖었다. 버스는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과자 파티장으로 변했다.
“하하하하. 그래서…”
물론 수다는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강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팀장님.”
모두가 먹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때까지 자고 있던 정민아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비비다가 강윤을 보고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아이씨!! 뭐야!!’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확 달아오른 건 안비밀이다.
“전해줄 게 있어서 왔어. 오면서 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왔으면 좋겠어. 진서는 해당 사항 없지만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네.”
강윤은 모두에게 서류를 나누어주곤 타고 온 차로 가버렸다. 소녀들은 이내 서류들로 눈을 돌렸다.
“상록수 보육원 공연. 3일 뒤… 으헥?!”
에일리 정이 뭔가 하며 낭랑한 소리라 읽다가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헐… 이게 뭐야?”
한주연 역시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공연이라니.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언니. 이거 봐요. 공연 내용은 천사의 집과 똑같이 함. 단, 민진서의 일인극은 제외한다.”
서한유가 중요한 사항을 지적해주었다. 소녀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이건 테스트였다.
“이건 테스트구랴. 우리 팀장님 사람 굴리는 재주가 있으샤.”
이삼순이 특유의 느릿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요 며칠 사이, 그녀는 강윤이 정말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피드백으로 끝이 아니라 테스트까지 하다니.
정민아가 그때 나섰다.
“일단 부족한 부분은 다 채웠잖아. 어제보단 낫겠지. 그렇지?”
모두가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주연이 거들었다.
“팀장님이 우리가 못 미더웠나? 에일리. 우리 포텐을 제대로 보여줘야지?”
“고럼 고럼.”
한주연은 어느새 에일리와 바짝 붙어있었다. 힘겹게 연습하면서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함께 연습했던 파트너들끼리 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강윤이라는 마왕을 물리쳐야 하는 용사가 되었으니 했으니까. 1차 레이드가 끝나고 해산하려고 하니 2차 소집이 시작되었다. 소녀들은 다시 뭉쳐야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자고. 그 아저씨 놀라자빠지게 해주자.”
“올, 정민아, 리던데?”
정민아의 말에 크리스티 안이 박수를 짝짝쳤다. 나머지 소녀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버스 안은 공연 이야기로 화합되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그녀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며 팀워크라는 것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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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금방 지나갔다.
소녀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연습에 열을 올렸다. 특히 강윤이 계속 지적했던 부분들, 한주연과 에일리의 목소리 통일이라든가 정민아와 에일리의 박자 차이 등을 계속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강윤이 계속 강조했던 서로에게 맞추라는 이야기는 몸에 단단히 각인되었고 이젠 자동으로 나올 수준이 되었다.
그 연습의 결과를 보여줄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우리 잘하자.”
“응.”
첫 순서인 한주연과 에일리 정이 서로에게 잘하라며 한번 안아주고는 무대 앞에 섰다. 혹독한 연습이 없던 동료애도 만들어냈다.
“와— 예쁜 언니다.”
“누나–”
한주연은 자신을 가리키며 예쁘다고 연발하는 여자아이에게 한번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더 까르르 웃어 주었다.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고 에일리 정이 간단한 농담으로 관객의 분위기를 더 유연하게 풀어냈다. 천사의 집에서 보여주던 덜덜 떠는 에일리 정은 이젠 없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한주연의 선언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MR이 흐르기 시작하며 그녀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관객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하루 하루 – 흐르고 네 향에 취하여 —
한주연이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가운데, 강윤은 뒤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솔로 파트는 크게 차이가 없군.“
이어지는 에일리 정의 파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문제였던 후렴부,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부분은 확실히 달랐다.
“Here –!!”
가장 중요한 처음 부분이었다. 에일리 정의 저음과 한주연의 고음이 제대로 만났다. 강렬한 화음이 관객들 모두를 강타했다.
‘잠깐? 뭐야?!’
두 소녀의 화음이 조화되는 가운데 강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평상시라면 은은하거나 강한 흰색 빛이 비쳐야 했다.
‘음표?!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이 아닌 푸른 빛의 음표가 두 소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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