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40
96화 – 위기와 기회가 함께 춤을 (3) >
‘하하…’
분위기가 묵직해졌다. 정유리는 나갈까 망설이 다가 구석에 다시 앉았다. 이상하게 나가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속마음을 들킨 부끄러움,불안함에 양채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두 연습생이 안절부절못해도 작정한 강윤은 담담했다.
“효민이는 타고났지. 인기를 자기 쪽으로 당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맞아요.”
긍정은 했지만,고개는 점점 쳐졌다.
수많은 친구들을 가슴앓이하게 만드는 감효민의 모습은 언제나 부러웠다. 한때는 따라해 봤지만, 있던 사람들도 떠나는 역효과만 났다.
“그 좋은 재능을 어장관리에만 써서 문제긴 하지만.”
“풉.”
어장관리라니. 회장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고급언어였다. 양채영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아.”
그리고는 당황해서 입을 막았다. 심각한 분위기에 이런 실수를…
강윤은 양채영 옆에서서 접시를 건조대에 올렸다.
“괜찮,괜찮습니다.”
“줘.”
그녀가 당황하며 망설일 때,강윤은 싱크대에 있는 접시를 정리했다. 달그락 대는 소리가 퍼져 갔다.
“회사까지 쫓아오는 남자들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렇죠. 학교에 데뷔한 애들도 수두룩한데. 그 애들 사이에서도 유명 해요. 벌써 고백… 아. 죄송해요.”
양채영은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닫았다. 자기도 모르게 프라이버시까지…
강윤이 괜찮다며 손을 들자 양채영은 고개를 숙였다.
“효민이는 데뷔도 하기 전부터 이렇게 사랑받는데… 전…”
“왜?”
“생각해보니까 그래서요. 특출난 것도 없고. 원래 연습생 때부터 끼가 보여야 팍 뜰 수 있다면서요. 이대로 가면 민폐만…”
강윤은 팔짱을 끼었다.
“그렇긴 하지.”
“그쵸?”
양채영은 시무룩해졌다.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팩트가 날아들어 머리를 쳤다.
쏴아아–
강윤은 손이 멈춰버린 양채영 대신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접시를 다시 정리해갔다.
“같이 찾아보자.”
“네?”
양채영의 눈이 흔들렸다.
“난 확신해. 채영이도 효민이만큼의,아니 그 이상의 매력이 있어. 아직 찾지 못한 거야.”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일까?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양채영과 감효민이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이죠.”
“맞아.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방법도 다르지 않을까? 같이 찾아보자. 같이.”
같이.
짧은 단어가 양채영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단번에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콤플렉스를 자극제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강윤은 느꼈다. 그녀가 조금씩 변해 갈 거라고.
식탁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정유리가 강윤의 등을 찔렀다.
“왜?”
“저도 도와주실 거죠?”
“뭘?”
“같이 찾는 거요. 언니한테 말했던 거.”
“뭐라고? 하하하하.”
강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욕심이 느껴지긴 했지만,이런 정유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강윤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알았어. 유리도 같이 찾아보자.”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도 도와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그때,정유리의 눈빛이 빛났다.
“배우러 갈게요.”
“배우러 온다고? 무슨 말이니?”
“주세요.”
정유리는 손을 내밀었다. 강윤이 고개를 갸웃할 때, 그녀는 식탁위에 있던 핸드폰을 가리켰다. 번호요구였다. 부엌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문 비서가 놀라 달려왔다.
“유리 양. 용건이 있으면 회장실로 연락하면 돼요. 회장님 전화는…”
“괜찮아요.”
“회장님.”
강윤은 말리는 문 비서를 타이르곤 정유리에게 번호를 찍어주었다. 정유리도 설마 진짜 번호를 주리라곤 상상 하지 못했기에 큰 눈을 껌뻑 껌뻑했다.
“언제든지 연락해.”
“새벽 4시에 해도 되죠? 연습이 그 때 끝나서요.”
“안 받을 거야.”
“언제든지 하라면서요. 거짓말쟁이.”
“하라고만 했지 받는다고는 안했어.”
“그게 뭐예요.”
강윤은 정유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눈이 가늘게 호선을 그렸다.
갑자기 튀어나온 정유리때문에 양채영은 당황했다. 멍하니 있던 그녀에게 강윤은 귓속말을 했다.
‘기회는 이렇게 잡는 거야.’
‘네?’
여전히 반문하는 그녀에게서 떨어진 강윤은 문 비서에게 돌아가자고 사인했다. 문 비서는 기다리겠다며 먼저 나갔다.
“시간이 돼서 이만 가봐야겠어.”
“네. 선생님은 회사로 가세요?”
“아니. 방송국에 들러봐야 할 것같아.”
정유리에게서 호칭이 바뀌었다. 놀라울 정도의 붙임성이었다. 양채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강윤이 손을 흔들 때,정유리가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감사했어요.”
“응?”
강윤이 돌아봤지만 같은 말이 두 번 돌아오진 않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양채영과 손을 흔드는 정유리를 뒤로 하고 강윤은 숙소를 나섰다.
——-
[연화넷 – 연극영화과 입시정보 전문채널]
Part 5 – 가수 모집
– 2015년 새로미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모집(걸그룹 지망생 환영)
– 스누푸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모집 공고(아이돌 데뷔 예정)
– 비에스트 ENT 가수 지망생 모집 공고(걸그룹 예정)
“다 아이돌,걸그룹이네.”
최찬양 교수는 연화넷을 보고 이마를 잡았다.
진로상담을 위해 연화넷에 자주 들어가곤 했지만,올해 만큼 한숨 나오는 해는 없었다.
“GNB나 윤슬은 아예 공고도 없군. 지예는 비정기 오디션도 없어졌고… 처음 보는 소속사들만 계속 늘어나고 있네. 안전할까?”
월드는 애초에 논외. 데뷔 할 만한 지망생만 뽑는 곳이니까.
올 한 해에도 10개가 넘는 걸그룹을 비롯해 수많은 가수들이 데뷔했지만 유명해진 가수는 거의 없었다. 혹자는 경기가 어려워 음악시장에도 혹한이 불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예나 다른 대형 기획사들을 보면 어렵기만한 것도 아니었다. 해외로 진출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으니까.
다만 사람을 뽑지 않을 뿐.
“오늘도 없네,없어.”
최찬양 교수는 연화넷을 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학생들의 진로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망생들은 날로 증가하지만,양질의 소속사들은 갈수록 줄어든다. 딜레마였다.
똑똑똑.
“아,잠깐만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최찬양 교수는 움찔했다. 오늘은 누가 상담을 받으러 왔을까? 알아봐달라고? 아니면 고민 상담? 머리가 복잡했다.
옷매무세를 정리하고 안면 근육을 푼 후 외쳤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며 날씬한 체형의 한 여성이 교수실에 들어섰다.
“교수님.’
애정 가득한 톤에 최찬양 교수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혜진 씨. 빨리 왔네요. 시홍이라면서요.”
“교수님 보고 싶어서 열심히 밟았죠. 오늘은 얼굴이… 에이,별로네. 오늘 돈가요?”
최찬양 교수의 옆에 앉은 여자는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연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별 일 없었어요.”
“아니긴요. 오늘도 학생들 몰려왔죠? 하여간.”
“아니에요. 오늘은 없었어요.”
“거짓말. 또또,연화넷 보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사님 한테 라도 말해서…”
“안돼요.”
최찬양 교수는 강하게 만류했다. 이럴 때 인맥을 이용하는 거라며 정혜진이 거듭 설득했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방식은 서로에게 좋지 않아요. 월드의 모토에도 맞지 않고. 혜진 씨도 곤란해질 거예요.”
“전 괜찮아요. 회장님이나 이사님도 교수님 부탁이라면 들어주실 거 예요. 해주신 게 얼만데.”
“그래도 안돼요. 그런 방식으로 들어가 봐야 오래 버틸 수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 문제는 월드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음악계 전체의 문제지.”
정혜진은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돌아온 답은 같았다.
오늘도 역시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좋았다. 이 답답함은 그의 매력이었다.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정혜진의 머릿결을 쓸어내리며 최찬양 교수가 말했다.
“최근에 이상한 소속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걸그룹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데뷔만 하면 행사만 돌려도 돈이 되니까 막 데뷔시키는 것 같아요.”
“심각하네요. 지예에서 강제로 나간 연습생들도 상당수 그렇게 갔다고 들었어요.”
“하여간… 좋은 가수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하는 사람들이 문제예요. 애들만 불쌍하죠. 노래하고 싶어서 가수가 된 애들인데,돈벌이에 이용되고 있으니까요.”
정혜진은 씁쓸한 얼굴이었다. 기획 팀에서 일하며 관찰한 업계는 가관이었다.
최찬양 교수는 정혜진의 손을 잡았다.
“연화넷도 험악해졌어요. 소속사가 하루아침에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예사고,심지어…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도 나와요.”
“나쁜 사람들. 다 쓸어버려야하는데. 특히 지예에서 나온 애들이 제일 불쌍해요. 기존에 MG때부터 연습하던 애들일 텐데. 돈 안 된다고 단번에 다…”
“회사 키우는 것도 좋지만 어린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참… 벌 받아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계약서 상 문제는 없다니까요. 이사님이 계속 찾아 보고 있지만 아직까진… 하아.”
“적어도 기회는 공평해야 줘야 할 텐데…”
최찬양 교수는 정혜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세계 최고의 가수라더니. 역시…”
최경호는 강윤이 건넨 서류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중국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귀국한 직후였다.
“대단하군요.”
최경호는 영어로 된 서류들을 넘기며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로봇이라니요.”
“저도 놀랐습니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셰무얼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군요. 하기야,셰무얼의 콘서트에 기술이 사용된다면 기업들도 이득이죠. 홍보에 톡톡히 효과를 볼 테니까요.”
“네. 여러 가지 기술들이 사용될 거라는데 잘 버무리는 게 첫 번째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셰무얼이 욕심이 많아서요.”
“하하하.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우겨 넣는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요.”
“그렇죠. 연출진들 고집도 세다 들었는데. 고생길이 열렸습니다.”
“회장님은 잘하실 겁니다. 잠깐. 로봇을 압축 엘리베이터로 쏘아 올린다? 동시에 3대씩이라… 처음부터 만만치 않겠습니다.”
단순히 엄청난 예산을 투자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엄청난 기술에 연출까지. 세계 최고의 가수가 서는 무대라고 할만 했다.
최경호는 빨간펜으로 여러 가지를 체크했다.
“3D카메라 촬영에 CG,VR이군요. VR은 이야기 만들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몇몇 가수들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듣긴 했는데, 반응이 썩 좋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VR의 핵심은 리얼함입니다. 최근 사용한 VR장치들은 리얼함이 떨어 졌었죠. 하지만 리얼함이 갖춰 진다면 무대장치가 설치된 무대,VR무대를 돌아가며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선택권이 넓어지겠군요. 흠…”
최경호는 계속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셰무얼의 콘서트는 공부가 됐다.
최경호는 하나라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필기를 했다.
“23곡. 곡이 조금 많군요. 체력 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2명의 게스트를 섭외할 생각입니다. 1,2부를 3부까지 나눠서 진행하고 쉬는 시간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만… 회장님 일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할 수 없죠.”
강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최경호는 빙긋이 웃었다.
“회장님의 그런 모습 때문에 가수들은 더더욱 안심할 겁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피곤하실 텐데,감사합니다.”
최경호는 괜찮다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귀국하자마자 회사에 왔기에 피로도가 상당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까지 늦으면 마누라가 이혼장에 도장을 찍겠다며 벼르고 있어서요.”
“하하하하. 일어나시죠. 나중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뺏었네요.”
“아닙니다. 아,회장님.”
최경호는 뭔가가 기억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네. 한국 잘 부탁합니다.”
“네. 노파심에서하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셰무얼이 기획자를 다섯 번 갈아치웠다는 걸 생각해주십시오.”
“셰무얼 고집이 엄청나다고들었습니다. 뮬(Mule)이라고 한다지요?”
뮬(Mule). 당나귀 와 말을 교배해서 나온 작은 말,노새를 말했다. 고집이 아주 센.
“오히려 부드러운 사람들이 고집은 더 셉니다. 괜히 기획자들이 5명이나 바뀐 건 아니 겠죠. 단순히 기획자가 바뀌는 거야 괜찮지만,그렇게 된다면 분명히 다른 곳에서 이 사실을 악용할겁니다.”
“악용한다?”
“누군가는 회장님의 ‘단 한 번의 실수’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성공가도만을 달려왔기에 최경호는 강윤이 걱정되었다. 성공만 하던 사람이 실패 한 번으로 얼마나 망가지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강윤은 웃었다. 시원하게.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지요. 만약 잘린다고 해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아직 세계는 넘기 힘든 벽이라는 사실 이니까요.”
“회장님.”
“아직이란 말은 다시 하면 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강윤은 최경호의 손을 잡았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형님 같이 뒤에 계셔주셔서 얼마나 든든한 지 모릅니다.”
“허,참…”
“제가 없는 동안 이 곳을 잘 부탁합니다.”
굳게 잡은 손에서 따스한 체온이 전해졌다.
이틀 후.
설렘과 걱정,기대와 불안을 안고 강윤은 미국으로 출발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