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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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99화 – 음악의 본질
감회 (感懷)가 새롭다.
과거를 돌아볼 때 새로워지는 감정을 의미한다. MG에 있던 시절,사람 없는 무대나 술집을 전전했던 과거를 떠올리던 에디오스의 마음이었다.
‘흐,흐흑…’
한주연의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수없이 모인 관객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WAAAAA ”
LA의 한 공연장. 사람들의 함성이 무대를 뒤흔들었다. 아시아에서는 이 보다 훨씬 큰 무대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설 수 있었지만,오늘 이 무대는 달랐다.
“저 울보. 하여간…”
“너나 잘해.”
동료를 타박하는 크리스티 안도 불 거지는 눈매를 감추지 못했다. 손수건을 건네는 이삼순도 떨리는 한주연의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돌리는 서한유도,통곡하는 에일리 정도 마찬가지였다.
“… 벌써 그러면 어떡해.”
센터에 선 리더,정민아는 의젓하게 멤버들을 달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큰 환호성이 에디오스를 집어 삼켰다.
무대 뒤편,엔지니어석에서 이현지는 흐뭇하게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실히,민아가 리더는 리더네.”
“저,이사님?”
믹서를 잡고 있던 엔지니어가 조심스레 묻자,이현지는 팔짱을 풀었다.
“무슨 일이죠?”
엔지니어는 이현지의 눈빛에 찔끔 했다가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남은 순서는 더 없습니까?”
“없어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엔지니어는 철수준비에 들어갔다. 이현지는 무대 앞쪽의 매니저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철수하자는 신호였다. 매니저들과 코디들도 뒤편을 보더니 곧 정리에 들어갔다. 바로 차에 오를 수 있도룩.
“Surprise– allowed–”
한주연의 목소리가 퍼져갔다. 오늘의 마지막 곡이었다. 이어 서한유가, 이삼순의 화음이 섞이며 정민아가 무대 중앙에 나서자 환호성은 절정에 달 했다.
“Thank You.”
“WAAAAA !!Encore–!!Encore–!!”
환호와 함께,앵콜요청이 쇄도했다. 철수신호는 떨어졌는데… 에디오스 멤버들은 난감해졌다. 그녀들도 무대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Encore–!! Encore–!!”
“그게…”
에디오스의 눈이 매니저들을 향했다. 이런 분위기,그냥 가기엔 아쉬웠다. 매니저들은 이현지에게 연장할 것을 요청 했다. 오늘 최고 결정권자는 그녀다.
“이 정도면 됐어요.”
이현지는 고개를 저었다. 과한 의욕은 없느니만 못한 법. 매니저들은 알았다며 에 디오스를 향해 팔로 X자를 보냈다.
에디오스는 아쉬워하며 마이크를 내렸다.
아쉬움에 야유가 쏟아졌다. 방법은 없었다. 이사님이 가자는데…
“한 곡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군요.”
그때,이현지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하며 돌아보니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강윤이었다. 이현지는 반가움에 그의 손을 잡았다. 평소와 달리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강윤은 복장만큼이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모두에게 아쉬울 것 같네요. 1곡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애들 컨디션이 우선 아닐까요? 잡힌 스케줄도 많은데…”
“조금은 오버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늘 스케줄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현장에 잔뼈가 굵은 강윤의 말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이현지는 무대를향해 동그라미를 쳤다.
에디오스 멤버들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WAAAAAAAAA—!!!”
엄청난 함성이 광장을 메웠다. 지금까지 중 가장 큰 함성이었다.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했으면 원망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현지도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현장은 참 어려웠다.
MR이 흐르며,노래가 시작되었다.
에디오스의 목소리에 한충 힘이 들어 간 듯,사람들의 리액션도 강해졌다. 관중들은 손을 들어 파도를 탔다. 축제였다.
‘검은색…’
강윤은 눈을 찡그렸다. 이번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검은빛은 여전했다. 피부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지만,미약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볐지만, 검은 빛은 변함이 없었다.
“회장님? 눈에 이상이라도…?”
이현지가 걱정스레 묻자 강윤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이제 마지막이군요.”
4분이 약간 안 되는 짧은 무대가 끝나갔다. 정민아가 손을 데지 않고 앞으로 한 바퀴 돌고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센터에 섰다. 다른 멤버들이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것으로 무대는 끝이 났다.
“THANK YOU!!”
에일리 정의 윙크와 함께,거대한 환호성이 터졌다. 다시 한 번 앵콜요청이 터져 나왔지만,이현지는 무대를 끝내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윤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에디오스가 차에 오른 후,이현지는 강윤도 무대 정리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회장님!!”
에디오스 멤버들은 강윤을 보며 화색을 띄었다. 오랜만에 보는 회장님이었다.
“다들 수고했어.”
“우와, 진짜 회장님이 왔네.”
숙소로 가는 내내 시끌시끌했다.
에디오스 멤버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지 셰무얼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세계 최고의 가수는 어떤 사람인지,누구를 만났는지 등등. 강윤이 입을 열 때 마다 모두 귀를 쫑긋였다.
“게스트 요청 건은 어떻게 됐나요?”
조용히 듣고 있던 이현지가 느닷없이 묻자,삽시간에 모두가 침묵에 휩싸였다. 기대어린 눈빛들이 한꺼번에 강윤에게 쏠렸다.
“게스트는 무슨.”
” … 에이.”
하다못해 댄서라도 할 수 있었으면. 모두가 아쉬움에 틱틱거렸다.
“대신 좋은 선물이 있어.”
“뭔데요?”
“나중에 말해줄게.”
“뭐야아.”
기만죄로 도착할 때까지,강윤은 내내 시달려야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모두가 모여 간단히 술잔을 기울이기로 했다. 장소는 이현지의 방. 간단하게 휴식을 취한 후,그녀의 방에 모였다.
“하하하하하하!! 건배애!!”
에디오스 멤버들은 들떴다. 이현지도 모처럼 마음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익숙지 않은 현장일을 마치고,강윤까지 만나니 긴장이 풀려버렸다. 거기에 에디오스의 미국행이 순항중인 기쁨까지. 술맛이 좋았다.
“음냐아…”
술자리가 길어지자 하나둘씩,자리에 눕거나,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많이 마신 이현지도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회장님은 안 드세요?”
조용히 캔맥주를 홀짝이던 정민아는 게슴츠레 강윤을 쏘아보았다. 다른 멤버들이 소주와 맥주를섞어 마실 때, 맥주만 고집한 보람이 있었다.
“천천히 마실게.”
“여전히 재미없네.”
“너도 여전해.”
“누구 때문이죠.”
정민아는 시크한 얼굴로 캔을 홀짝였다. 시원하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윤은 주먹을 말아쥐곤 정민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아얏!! 아씨,왜 안 때리나 했다.”
“알면서 왜?”
“꽉 막혀 가지고. 재미없어재미없어 재미 없어 재미 없어 재미 없어 재미 없어 재미없어!!”
평상시의 강윤,그대로였다. 정민아는 마구 투덜대며 혀를 빼꼼였다. 강윤은 웃음이 나왔다.
‘민아랑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 안심이 되었다. 소속 가수이기보다,여동생 같은 존재. 최근 일어난 일들로 조심스러웠는데,이젠 다 괜찮아졌나보다.
강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정민아는 뚱하게 물었다.
“다들 자나 보네요.”
“우리도 여기까지 할까?”
강윤이 일어나려고 할 때,정민아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회저씨는 왜 이 일을 하게 됐어요?”
“회저씨는 뭐냐.”
“회장 아저씨. 회저씨.”
“회접시도 아니고.”
툴툴대는 강윤에게 정민아는 캔 하나를 까며 건넸다.
“아저씨는 질렸어.”
“뭐라고?”
“혼잣말이에요. 무튼.”
답을 재촉하는 정민아를 향해, 강윤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에는 먹고 살게 없어서 시작 했지. 이거 하면 먹고살수 있다니까.”
“우등생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는 말하고 똑같네요. 실격.”
“뭐라는 거야.”
강윤은 캔을 단번에 절반을 비워버렸다. 쓴 기운에 살짝 얼굴을 일그러졌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 떠올랐다. 성공하던 매니저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프로듀서로 떨어지던 그 시절이. 동생마저 책임지지 못하던 무능한 오빠의 모습까지 스쳐 갔다. 씁쓸함이 걸렸다.
“… 아저씨?”
“… 어?”
“갑자기 왜 그래요? 슬퍼 보이게.”
강윤은 아차 싶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정민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관리를 못했던 모양이었다. 강윤은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 아무튼 지금은 가수든 배우든 하고 싶은 걸하게 해주고 싶어.”
“가수가 돈 안 되는 걸 부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에요?”
“타협해야겠지?”
“우기는 애들도 많던데. 막 힘써서 협박하는 건 아니죠?”
“내가 너니.”
강윤은 웃어버렸다. 하여간 정민아의 입담은 당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 까지 어디서 실수했다는 말이 안 들려온 게 기적이었다.
이번엔 강윤 차례였다.
“그런 걸 묻는 이유가 뭐야?”
순식간에 축 치고 들어왔지만,정민아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씨익 웃었다.
“나 솔로 내고 싶어요.”
솔로라니. 하기야,그럴 때가 되기도 했다. 솔로곡이 크게 히트하기도 했고. 그룹 가수들에겐 홀로 노래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는 법 이다.
“아잉. 네?”
정민아는 강윤에게 팔짱까지 끼며 아양까지 부렸다. 강윤은 피식 웃어버렸다.
“뭐,내고 싶다면야…”
“히히히힛. 역시!!”
“생각해둔 건 있어?”
“아주아주…”
“아주아주?”
“세에에에엑쉬이이이. 십구금으로 다가 아무나 못 보… 아얏!!”
딱콩!! 강윤은 정민아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쥐어박았다.
“아, 진짜. 이 정도면 돈 되잖아요. 행사 많이 다니면.”
“19금은 무슨. 섹시 컨셉도 에디오스 이미지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생각해야지.”
“하고 싶은 거하게 해준다면서요?”
딱콩!! 강윤은 다시 한 번 정민아를 쥐어 박았다.
“아씨!!”
“하고 싶은 노래도 정도가 있지. 다른 애들은 어쩌려고? 알 만한 애가 그래? 네가 다 벗으면 다른 애들은? 사람들이 에디오스까지 벗으라고 요구하면?”
“자신 있으면,지들도 벗겠죠? 헤햇. 아얏!!”
들려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강윤은 이제 말로 할 생각이 없는 주먹을 쥐었다.
정민아는 당황했는지 양 손을 흔들었다.
“그,그래도 아깝잖아요. 이 넘쳐흐르는 섹시미를 계속 감추고 있는 건 전 지구적 낭비에요. 네?”
“그냥 낭비하자.”
“아야야야얏!!”
술자리의 막바지는 꿀밤세례였다. 덕분에 정민아는 술기운과 꿀밤 후유증을 동시에 앓아야 했고,강윤도 오른손이 지끈거리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날.
샤워를 마친 후,강윤은 식사를 위해 막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전화가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지만, 모르는 번호였다.
“네,이강윤입니다.”
“여보세요.”
– 나,원진표요.
원진문 회장의 아들,원진표였다. MG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생각지도 못한 전화에 강윤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네. 안녕하십니까.”
– 실례가 된 건 아닌지. 그쪽은 이른 아침이라…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 그냥… 나 같은 사람이 용건 있어서 전화할 이유는 없으니. 그냥… 들으십쇼. 강윤 씨는 좋겠어요. 주변에 사람도 많고,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이 무능한 나는 아무것도 없고. 하하하…
횡설수설,자조. 절망.
강윤은 등골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원 사장님. 한 잔 하셨습니까?”
– … 조금. 하하하.
“원 사장님?”
– 이젠 사장도 뭣도 아닙니다. 그런 거 다,뒤진 지 오래지요. 후후.
강윤은 다급히 물었다.
“지금 어디십니까?”
– 한강이지요. 한강. 내 친구,한강. 저 아래에 하이얀 배가 지나가네요.
“원 사장님. 잠깐만요. 혼자 계십니까?”
– 후후후. 요새 혼술이 대세라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휘이이잉. 바람소리가 거셌다. 혹시 라도 술기운에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지 않을까. 강윤은 핸드폰을 고쳐 잡으며 다급히 외쳤다.
“원 사장님.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 실수라. 실수 한 번에 회사가 사라지기요? 아버지가 어떻게 키운 회산데… 난 안되는 사람이었소.
“원 사장님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운이…”
강윤은 필사적이었지만,상대의 꼬인 목소리는 여전했다. 급기야 자괴감 어린 목소리마저 사그라지며 맹맹한 바람소리 만들려 왔다. 강윤은 10분이 넘도록 외쳤지만 빈 소리만 들려왔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
– 이 회장님.
“네?”
침묵 끝에 술기운 섞인 목소리가 사라진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 당신과는 크게 상관없을 텐데. 왜 그렇게 필사적이요? 아버지 때문인가?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원 사장님 모습이 과거의 제 모습과 같기 때문입니다.”
–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강윤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상대에게도 깊은 숨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들은 저를 성공만 아는 기획자로 알고 있겠죠. 하지만 저는 실패의 아이콘이었습니다.하는 일마다 실패를 했었죠. 그 결과 사람들이 떠나갔고,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습니다. 심지어 소중한 사람까지 잃어버렸죠. 무능력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 … 무슨 말도 안 되는. 성공의 아이콘이.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 이제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였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필사적인 외침이 들렸을까. 반대편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강윤은 생각했다. 음악의 빛을 가진 채,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가는 것에 집중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
“… 처음부터 다시,하나하나. 차근 차근. 쌓았습니다. 하나하나. 아주 작은 것부터. 오래 걸렸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저입니다.”
한숨소리마저 멎었다. 조용히 시간 만이 흘러갈 뿐이었다. 강윤도 침묵으로 기다려주었다.
뚜뚜—
통화가 끊겼다. 궁금했지만,강윤은 걸려온 전화로 다시 전화 하지 않았다. 선택은 오롯이 개인의 몫. 최선의 선택을 했으리라 믿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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