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54
99화 – 음악의 본질(完) >
“음악?”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음악이요. 음악하는 사람한테는 이게 가장 중요한 거 잖아요.
“맞아. 중요하지.”
말은 했지만,정작 음악이 어떤 것 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가수가 원하는 노래,사람들이 원하는 곡 등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진서는 연기를 뭐라고 생각해?”
– 그 사람이 된 걸 보여주는 거예요.
“된 걸,보여준다?”
심플했지만,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잠시 생각하던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 맞아요. 판단은 제 몫이 아니니까요.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이야기죠?
“그랬던가?”
– ‘그랬던가’가 아니라 ‘그래요’에요.
모를 수 없었다. 자신이 무게감에 짓눌린 가수들에게 매일같이 하던 말이었니까. 그 말이 그대로 돌아왔다.
“그 말을 이렇게 돌려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 저도 듣기만했지,이해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요. 월드로 옮긴 후,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알게 됐어요.
“진서 너라면 MG에서도 어떻게든 했을 거야.”
– 전혀 아닐 것 같은데요. 으- 상상도 하기 싫으네요. 원 사장님이 쉽게 놔줘서 다행 이었죠. 아무튼 여유를 가지면서 음악에 대해 생각을 해보시는 게 어떤가 싶어서요. 오지랖 같지만…
민진서는 조심스러웠다. 내가 이런 말을 감히 해도 되나? 이런 분위기였다.
– … 선생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다. 민진서는 당황했다.
– 혹시… 제 말이…
“… 말이 맞아.”
– … 네?
“네 말이 맞다고. 후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전화기에선 긴 한숨소리가 퍼져나갔다.
“연기자한테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라니… 충격적이야.”
– 죄송해요. 혹시 건방진 참견이었다면…
“하하하. 아니야. 가장 필요한 조언 인걸? 나의 음악이라… 정곡을 제대로 찔린 것 같아서 당황스러운데?
– 그냥 흘려들으셔도 괜찮아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세요. 업무 전화도 받지 마시고요.
“진서 전화도?”
– 그건… 안돼요. 네버.
민진서의 투정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강윤은 통화를 마무리했다. 머리 맡에 핸드폰을 내려놓고,강윤은 잠시 침대에 누웠다.
‘나의 음악이라…’
음악에 뛰어들게 된 계기부터 떠올려봤다. MG 엔터테인먼트의 원진문 회장에게 전격적으로 발탁되면서,주아의 일본진출 프로젝트가 첫 시작이었다. 그 이후 가수들의 음반 기획,공연,작곡,콘서트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갔다. 하나하나 그 동안의 일들을 그려갔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든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든다. 이게 내 음악이었어.’
이 게 잘못됐던 걸까? 그 동안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은 음악이 아니었던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착란이 올 것 같았다. 강윤은 결국 벌떡 일어나 로비로 향했다.
“어? 회장님. 작업은 벌써 끝났나요?”
로비를 지나는데,안경을 쓴 이현지가 소파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아,이사님.”
강윤이 멈추자,이현지는 안경을 벗으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강윤은 맞은 편에 앉았다.
“보아하니 아직 다 안 끝난 것 같은데… 왜요? 작업이 잘 안돼요?”
귀신이 여기도 있었다. 강윤은 허탈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란 사람이 참 알기 쉬운 것 같네요.”
“몰랐어요? 회장님만큼 알기 쉬운 사람도 없다는 거?”
강윤은 졌다는 듯,고개를 저었다. 이현지는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며 강윤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여유로운 복장만큼이나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그래서,산책 가시는 길?
“머리라도 식힐 겸 잠깐 바람이라도 될 생각입니다.”
“잘 됐네요. 마침 심심했는데. 같이 가요.”
강윤이 승낙하자 이현지는 책을 방에 올려놓고는 따라 나섰다.
숙소를 조금 벗어나니 한산한 주택지역이 나왔다. 거리에는 셔틀버스만이 천천히 돌아다녔다. 나무 아래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개를 산책시키는 남녀까지. 여유와 일상이 흘렀다.
길을 걸으며 강윤은 이현지를 내려 다보았다.
“잠깐이지만,쉬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찾는 사람도 없고.”
“그러게요. 매일이 전쟁이었죠?”
이현지도 맞장구를 쳤다. 강윤이 밖에서 전쟁을 치르는동안,안살림을 책임지느라 눈가에 주름이 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강윤은 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평소와 달리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현지도 평소의 사무적 어투가 아닌,나긋나긋한 어조로 답하며 강윤을 바라 보았다.
“날도 쌀쌀해지는데… 강윤 씨. 어디 좋은 사람 없을까요?”
“하하하. 이사님 눈에 맞추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편견이에요. 대머리만 아니면 된다니까?”
“하하하. 가만 보면 여자들은 대머리에 목숨을 거는 것 같네요.”
“다 버려도 머리만은 포기할 수 없거든요.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아,또 생각나네. 카페사장이라는 사람하고 소개팅을 했었어요. 잘 생겼고 키도 컸죠. 괜찮았어요. 몇 번 만나볼까 생각하는데,바람에 휙… 뒤는 상상에 맡길게요.”
강윤은 팔을 뒤쪽으로 쭉 밀며 기지개를 폈다.
“하하하. 이제 이사님이나 저나 선 아닙니까?”
“서,선이라뇨?! 소개팅이죠. 소.개.팅.”
이현지의 눈에 감정이 담기자 강윤은 껄껄 웃었다. 평소의 이현지에겐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하하하. 아무튼 그 선 자리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강윤 씨. 일부러 그러는 거죠?”
짝. 이현지는 발끈해서는 강윤의 팔을 손바닥으로 내리 쳤다. 장난의 대가는 스매싱이었다.
“으,맵군요.”
“아직 한창인 사람한테 선이라니… 맞아도 싸요. 아무튼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알아 보겠습니다.”
이현지는 손가락을 세며 하늘로 눈동자를 굴렸다.
“가장 중요한 건 성실이죠. 본받을 만한 사람이 좋아요.”
“이사님 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요? 그럴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강윤은 회의적이었다. 이현지만큼 일하는 사람은 남자 중에서도 드물었다. 짝. 다시 팔에 스매싱이 꽂혔다.
“아픕니다.”
“산통깨는 덴 뭐 있다니까? 비슷한 사람이라도 괜찮으니까요.”
“이사님. 다음 생애를…”
“뭐라고요?!”
이현지의 눈이 잔뜩 올라가자 강윤은 저만치 앞서 달려 갔다. 곧 이현지에게 따라잡혀 팔뚝에 불이 났다. 응징 후,이번에는 그녀가 물었다.
“회장님은 어때요? 만나는 사람 있어요?”
손을 터는 그녀 앞에서 강윤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이현지의 눈이 화등잔 만해졌다.
“뭐에요. 난 일 지옥에 빠뜨리고 언제 혼자 탈출했데? 언제부터요?”
“조금 됐습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 입니다.”
“회장님이 괜찮다니… 보고 싶어지네요. 어떤 사람이죠? 어디서 만났죠? 몇 살?”
남의 연애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법. 이현지는 강윤에게 바짝 붙었다. 강윤은 당황하며 거리를 벌렸다.
“때,때가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 뭐야. 그럴 거면 없다고 처음부터 없다고 하지,왜?”
어지간히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강윤은 시간을 들여 조금씩 이야기하며 충격을 완화할 생각이었다.
“우리 사이에 비밀 있기,없기?”
“…차차,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좀 그래서…”
이현지가 눈을 흘겼지만,강윤은 난감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현지는 아쉬움에 입술을 꿈틀댔다.
“… 연예인이구나?”
“그렇습니다.”
“대신 때가 되면 제일 먼저 말해주기에요? 열애설 기사로 알게 하면 혼나요?”
“약속하겠습니다.”
강윤의 확신어린 말을 듣고서야 이현지는 납득했다.
“궁금하긴 하지만… 기다리죠. 회장님이 사내 연예인과 그렇고 그럴 사이가 될 일은 없을 테고…”
“저기로 가볼까요?”
강윤은 이현지의 등을 떠밀며 길을 인도했다. 밀려 가면서도 이현지는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기사 안 터지게 조심하세요. 월드 노리는 기자들이 엄청 많다는 거 알고 계시죠? 특히 중국 쪽에서는 사생팬들 저리 가라할 정도로 들러붙고 있잖아요? 터질 기미라도 보이면 바로 저 한테 이야기하기에요.”
“알겠습니다. 이,이사님 소개팅은…”
“됐거든요. 난 또 동변상련이라고. 동정은 필요 없습니다만?”
심통이 난 이현지는 핑핑 앞서 가버렸다. 남몰래 한숨을 쉰 강윤도 그녀를 뒤 따랐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 학교 운동장이었다. 잔디가 깔려 있는 운동장 구석에는 20명 정도의 학생 오케스트라가 모여 있었다. 각종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퍼져 갔다.
학생들의 앞에는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성을 외치고 있었다.
“애들 발표하나 보네요?”
이현지는 오케스트라에 홍미가 생겼는지 강윤의 팔을 잡아끌었다. 백인, 흑인,황인까지.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학생들은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조율하는 광경. 호기심이 일었다. 강윤과 이현지는 학부모들 틈에 섞였다.
조율이 끝났다. 소리가 멈추고 지휘자로 선 학생도 지휘봉을 들었다. 긴장했는지 그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맨 앞줄에 있던 통통한 체형의 백인 여성이 외쳤다. 지휘자 학생은 뒤를 힐끔 쳐다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낄낄 웃었다. 오케스트라의 몇몇 학생들도 웃고 있었다.
‘재밌네요.’
자유분방한 오케스트라. 이현지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반면,강윤은 잔뜩 굳은 얼굴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봉이 움직이자,오케스트라의 음악도 함께 흐르기 시작했다.
삐- 삐삑- 헉.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할 교향곡에서 불협화음이 계속 섞여 들렸다. 지휘자 학생은 눈치 못 첸 듯,계속 지휘봉만 저어 댔고,불협 화음의 주범인 제 1 바이올린은 당당히 활대만 열심히 저어 댔다. 박자가 쳐졌고,오케스트라는 서로만 바라보다가 동요했다. 음악이 요동쳤다.
관객들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뭐야.’
강윤도 마찬가지였다. 검은빛은 물론이고 끈적끈적한 감촉까지. 흡사늪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연습도 안 된 상태에서 발표를 하면 어떡해…’
완성 안 된 음악을 듣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강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옆에 앉은 이현지가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좀더,좀더.]괜찮다고? 분명히 이현지 가하는 말이었다.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괜찮아. 다시 해봐.] [오오,오오!!]관객들은 연주를 멈추려는 아이들을 박수로 독려했다. 지휘봉을 내려놓으려던 아이는 박수소리에 다시 힘을 얻어 힘차게 지휘봉을 저었다. 연주도 힘을 얻었다. 불협화음은 그대로였지만,환호소리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오케스트라 관객들은 이미 없었다. 마치 록 공연을 보는 관객의 모습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계속 박수가 박자같이 더해졌고,환소성이 추임새같이 들어갔다.
이현지도 거기에 박수를 쳤다. 그녀 눈엔 작은 고사리 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이가 마냥 귀여워 보였다. 중간에 삑삑 소리를 내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윤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엉망인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처음이었다.
‘단순히 부모… 라서 그런 건가?’
맨 앞 열은 부모가 확실해 보였다. 문제는 중간부터는 아무런 연고도, 관계도 없는 사람 같았다. 이들도 아이들의 엉망인 연주에 아낌없이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대체, 왜? 단순히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장님?”
한참 공연을 관람하던 이현지는 진땀까지 흘리는 강윤을 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니요. 얼굴이 하얘요.”
얼굴에 혈색이 없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이현지는 강윤을 잡아끌었다. 강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별 것 아닙니다.”
“회장님. 이러다가 큰일…”
이현지는 몇 번이나 권유했지만,강윤을 당하지는 못했다. 결국 정 안되겠다 싶으면 꼭 말하라고 주의를 주곤 공연으로 눈을 돌렸다.
온 몸이 늪에 잠긴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연주 중 최악이라고 할 만 했다. 불협화음은 말할 것도 없고,박자도 빨라졌다 느려졌다하며 일정하지 않았다.
‘… 가만. 관객?’
강윤은 관객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 들에게서 거대한 뭔가가 흘러 나와 아이들을 덮쳐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덮친 기운은 음표와 함께 다시 관객 쪽으로 향했고,그 기운은 다시 아이들에게로 흘러갔다. 온통 검게 물들여진 흐름이었다. 검은빛에는 최악의 반응이 나와야하는데… 오늘 반응은 관객이나 공연자나 최고였다.
“이사님.”
“네?”
“오늘 공연,괜찮습니까?”
이현지는 눈을 몇 번이나 껌뻑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야기했다.
“왜요? 회장님은 별로인가요?”
“그게…”
“좋지 않나요? 전 애들이 저 정도로 연습한 것만 해도 좋은데.”
“그렇습니까.”
“하기야,회장님은 다르게 볼수 있겠네요. 아,그래도 난 그냥 즐길래요. 회장님처럼 생각하면 피곤해요. 오오오!!”
이현지는 살짝 표정을 찡그리곤,오케스트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지나가 듯 말한 이현지의 이야기에 강윤은 머리가 번쩍 뜨였다.
‘즐긴다?’
음악은 음악이었다. 실력은 중요했다. 가수나 관객이나 즐거운 것이 최고다. 연주하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과 어른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번갈아보니 머리가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눈꺼풀에서 뭔가가 벗겨지는 느낌이 났다. 관객석에서 오케스트라로 흘러들던 검은빛이 하얀빛으로 변해갔다. 온 몸을 끈적 끈적하게 짓 누르던 감각도 사라졌다. 삽시간에 찾아온 변화였다.
‘이건?!’
강윤은 눈을 비볐다. 그토록 찾던 새하얀 빛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연주도 막 끝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호오오오!!]지휘자와 강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관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신에게 치는 박수인 것 같아 강윤은 이상하게 마음이 뿌듯해졌다.
‘감동. 그래,이걸 잊고 있었던 거야.’
어느 샌가 너무 실력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감동이라는 빛을 찾기 위해,무의식적으로 검은 빛만 보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박수를 치며,강윤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연주자와 관객의 감동을 잇는 것. 그게 내 음악이야.’
박수를 치던 강윤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었다.
“회장님,회장….”
이현지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강윤의 의식은 미소와 함께 서서히 사그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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