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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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100화 – 물질 NO만능주의
인디의 성지,홍대 공연장 ‘그린라이트’는 공연 준비로 한창이었다.
직원들이 막 라인 세팅을 끝내고,음향 엔지니어는 분주히 돌며 소리를 맞췄다. 무대 위에선 인디밴드 서쪽남자 멤버들이 분주하게 악기 체크를 하고 있었다.
“더 필요한 거 있어들?”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성큼 올라섰다. 그린라이트의 사장,윤창선이었다. 공연 이야기에 정신없던 서쪽남자 멤버들은 묵직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아뇨. 괜찮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어들. 아,차희는?”
두두둑. 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긴 머리의 여성 베이스시트는 엄지와 검지를 멈추곤 눈을 들었다. 세션으로 지원 나온 이차희였다.
“… 없어요.”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차희는 다시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그,그래. 알았어.”
윤창선 사장은 애써 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한 대접을 받았지만,쉽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월드 연예인이 홍대 공연장사장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으니까. 특히 인디밴드 출신인 하얀달빛 멤버였으니까.
‘그놈의 월드. 이츠파인까지… 끄응.’
무대에서 내려오며 윤창선 사장은 앓는 소리를 냈다. 사장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그럼 오늘도 잘 부탁들 해요. 몽땅 매진돼서 분위기도 좋을 것 같으니까.”
“네-!!”
서쪽남자 멤버들의 힘찬 대답에 손을 들어 답한 후,윤창선 사장은 서둘러 공연장을 나섰다.
“오늘도 매진이래!!”
“이여우!! 역시,하얀달빛 빠워어~!!”
매진이라는 말에 서쪽남자 멤버들은 만세를 불렀지만,이차희는 덤덤한 얼굴로 베이스 소리만 맞췄다.
“하아”
무슨 생각인지 모를 얼굴로.
짧은 대기시간이 지나고 공연시간이 되었다. 서쪽남자 멤버들의 인사가 이어지고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보컬의 목소리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오오오오오!!”
이차희의 묵직한 스케일 연주가 얹히자 보컬과 건반이 더더욱 부각되었다. 가볍게 박자를 리드해 가는 드럼과 높은 음에서 놀고 있는 건반을 부드럽게 이어준 것이다. 그녀는 세션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관객들의 높은 호응 속에 공연이 무르익어갔다. 드럼 솔로파트 이후,베이스 솔로파트 순서가 되었다. 이차희는 조용히 한 걸음 나와 엄지로 스트링을 두드리고,검지로 튕겨냈다. 슬랩과 플럭,베이스의 고급 주법이었다. 타당,탕- 팅. 두드리고,튕겨내는 소리가 분위기를 한층 끌어 올렸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의 환호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차희는 이상한 눈빛을 느꼈다.
‘누구지?’
관객석 중앙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자와 한 남자가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관객이 가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닌,먹잇감을 바라보는 듯 한 눈빛이었다.
[하얀달빛의 이차희라. 기본에 솔로까지 완벽 하네요. 얼굴도 예쁘고?]이차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붉은 옷의 여성은 팔짱을 끼었다. 같이 있던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달빛의 핵심 멤버입니다. 세션과 보컬을 이어주는 중간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현아 빼면 쓸만한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나이에 저런 센스 있는 세션은 드물어요. 드럼과 건반 호흡이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저 베이스 덕분에 관객들을 확 사로잡고 있잖아요? 탐나네요.]붉은 옷의 여자가 입 맛을 다시자,남자는 당황했다.
[저,아가씨. 이차희는 이미 강 사장님께서…] [그거야 내가 직접 해결하죠. 한 명 정도 데려온다고 강 사장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아가씨?] [죄,죄송합니다. 본부장님.]본부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여자는 미소를 되찾았다. 여자는 이차희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컬렉션이 또 하나 늘겠네.]때마침 이차희의 솔로파트도 끝났다. 그녀는 미련 없이 관객들을 해치고 공연장을 벗어났다.
————
“으 으음 ”
강윤은 힘겹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하얀 천장이었다.
곧거친 발소리와 함께 커튼이 젖혀졌다.
“강윤 씨. 정신이 드세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 이현지였다. 강윤이 몸을 일으키니 그녀는 강윤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누워 있어요. 곧…”
“괜찮습니다. 딱히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이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요?”
이현지는 쉬어야 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였지만,강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거죠?”
“네.조금… 피곤했나 봅니다.”
학교를 벗어나며,강윤은 이현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니 쉽지는 않았지만,결국 나중에 병원에 가보겠다며 간신히 타협을 이뤄 냈다.
“볼 때마다 잔소리 해야겠네요. 홀아비라 건강관리를 너무 안 해.”
“호,홀아비라뇨.”
홀아비라는 별명을 뒤집어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는 내내 받은 구박은 덤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강윤은 숙소 침대에 몸을 뉘였다.
‘빛이 돌아왔어. 게다가 감각까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꺼풀에서 뭔가가 벗겨졌던, 낮의 일은 아직도 생생 했다. 게다가 음악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까지. 빛만으로 노래를 판단 했던 과거보다 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아 작업을 해볼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윤은 컴퓨터를 켰다. 녹화한 정민아의 안무를 보며 ‘Hot Smile’을 편곡해 나갔다. 음표들이 온 방안을 가득 채워나갔다.
‘미지근한 바람에 검은… 이건 확실 하구나.’
이전처럼 바이올린에 전자음을 일그러뜨렸더니 검은빛과 함께 뜨거운 바람이 느껴졌다. 실패였다.
‘음이 높으니까 긴장감을 높여서…’
찌잉–
첫 음이 일그러졌다. 그 후 훌러나온건 일렉트릭 기타소리였다. 강윤은 리버브 효과를 넣은 후,재생 버튼을 눌렀다. 울리는 효과와 함께 뜨거운 바람,하얀빛이 퍼져나가기 시…
‘윽!!’
온 몸을 강타하는 찌릿찌릿한 느낌 . 이전보다 곡에 예민해진 것 같았다. 강윤의 눈가에 힘이 들어 갔다.
“제대로 다시 해봐야겠어.”
강윤의 곡 작업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다음날,오후.
강윤은 USB를 들고 정민아가 연습 하고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땀을 흘리던 정민아는 서둘러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오면 온다고 예고는 하고 오라고요!!”
날선 외침에 강윤은 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뜬금없이.”
“나도 여자라고 몇 번… 아무튼!! 님, 배려 좀. 네?!”
“허,참…”
기가 찼지만,강윤은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그제야 성난 기세가 잦아 들고,정민아는 헤벌쭉 웃음을 되찾았다. 강윤 손에 들린 USB를 보고,정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그거 내 노래?”
“응. 왜? 설마 싫은 거야?”
“그럴 리가요? 좋아서. 헤에?”
정민아는 강윤의 손을 잡고 볼을 비볐다. 뜻하지 않은 애교에 강윤은 피식 웃었다.
“좋아?”
“당연히 좋죠. 아저씨 곡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히히히.”
“시간이 되면 녹음도 다시 했으면 좋겠지만,스케줄이…”
“지금 하면 되죠?”
“지금?”
언제나 그랬듯,행동력 하나는 끝내 줬다. 바로 녹음을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서 임해야 하는 게 녹음이었다.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녹음은 나중에 하자. 곡부터 들어 보는 게 어때?”
“어련히 좋을까요. 아저씨 곡인데.”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일단 들어 보자.”
큰 리액션에 강윤은 민망한 헛기침을 하곤 음악을 재생 했다.
휘이이이 —
바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유롭네요.”
숲에 홀로 서서 바람을 맞는 느낌이었다. 정민아는 눈을 감았다. 곧 바람 소리에 마림바(실로폰의 일종. 울림이 풍부하고 둥근 소리를 냄)소리가 함께 섞여 흘렀다.
“소리 완전 좋다…”
맑은 실로폰이 둥글게 울리는 듯 한 음색이 잔잔하게 몰렀다. 정민아는 눈을 감고 입가를 올렸다,그때,딱.
“어?”
딱.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리듬이 가속되기 시작했다. 전자드럼의 리드와 함께 묵직한 베이스, 고음의 멜로디도 함께 더해졌다. 분위기가 급변하자 정민아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빠른 비트로 흥을 돋우는,팝핀과 비보잉 안무에 최적화됐던 원곡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정민아는 노래를 홍얼거리며,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Hot, hot… 느낌 있다. 여유로운데 늘어지진 않고”
“좀 더 박자 땡겨 볼까?”
“아니요. 이게 더 좋아요.”
정민아는 가볍게 웨이브를 타더니, 큰 S자를 만들었다. 그녀에게도 음표가 흘러나왔다.
‘하얀빛.’
아쉬웠다. 은빛 정도는 기대했는데. 완성은 아니었으니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여기서 옆으로 흔드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뒤로 돌까요?”
정민아는 강윤의 옆쪽에서 골반을 흔들어보고,강윤에게서 뒤로 돌아서서 흔들었다. 두 안무 모두 하얀빛 안의 은빛이 일렁였다.
문제는 감각이었다.
‘뒤로 도는 안무에서 바람이 더 강했어.’
확실히 차이가 났다. 뒤로 도는 안무에서 뒤로 밀려날 듯 한 바람이 느껴졌다.
“뒤로 도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오케이. 그걸로 할게요. 안무는 대충 됐고… 그럼,가요.”
“어디를?”
“어딘요. 녹음하러 가야죠.”
당장에라도 녹음하러 가겠다는 정민아를 말리느라 강윤은 애를 먹었다. 결국,정식으로 녹음일정을 잡은 후에야 정민아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 행동력 하나는 최고야,최고.”
“칭찬은 감사.”
당연한 듯,가슴을 펴는 정민아를 보며 강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음날.
휴가를 마치고 강윤은 셰무얼에게 복귀했다.
입구까지 마중 나온 셰무얼은 강윤을 끌어 안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티케팅이라는 고비를 넘기고 나니, 남은 일정들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장비 통관,콘서트장 설치와 콘서트곡 저작권 업무 등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 됐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브라질로 건너간 팀이 보낸 보고서를 검토하던 강윤은 묘한 보고에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마를 찌푸렸다.
‘운송이 늦어질 수도 있다?’
몇몇 장비운송이 늦어져 12월에나 들어 갈 것 같다는 보고였다. 행정적인 절차문제였다. 중요한 장비들도 꽤 있었기에 중요한 문제였다. 강윤은 바로 브라질에 전화를 걸었다.
[늦어도 12월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장비들을 통과시켜 야 합니다.] [네, 팀장님. 그때까지는 모든 작업을 마치겠습니다.]부팀장 리사에게 강윤은 신신당부 했다. 12월에 시작되는 우기 때문이었다. 티케팅이 끝난 이후,콘서트에 영향을 줄 최대의 변수였다. 셰무얼이 신경 쓰지 않도록 강윤을 비롯한 기획팀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12월 비에 관련된 것들은 모두 보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마스터.]통화를 마친 후,강윤은 다른 서류들에 도장을 찍어갔다.
일을 마치고 기지개를 펴니 늦은 오후였다. 언제나처럼 강윤은 연습실로 향했다.
‘역시.’
연습실 입구에서부터 음악이 세어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자 녹색,파랑의 조명이 춤을 췄다. 허리를 흔들며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춤을 추는 셰무얼과 댄스팀 주변으로 하얀빛이 넘실 댔다. 하얀빛 안에 강렬한 은빛이 꿈틀댔다.
‘촉촉하군. 거품 같아.’
거품 같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노래,춤,조명에서 음표들이 흘러 나오며 빛을 만들어냈다. 셰무얼의 노래와 댄서들의 춤이 일렁이는 하얀빛을 만들면,조명의 음표가 잦아들게 만들었다.
[오,강윤.]음악이 멈췄다. 잔뜩 들뜬 얼굴로 셰무얼은 강윤을 향해 손을 들었다. 몸에 김을 내던 댄서들과 세션들도 잠시 한숨을 돌렸다. 강윤은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하하하. 쉴 시간이었어요.]무대 앞에 놓인 의자에 강윤과 셰무얼은 나란히 앉았다. 콜라를 시원하게 딴 후,강윤은 셰무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곡이 Joy 였지요?] [맞아요. 어 땠나요?] [셰무얼의 느낌이 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다운 느낌?]셰무얼은 흥미 어린 얼굴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강윤은 차분히 운을 뗐다.
“I’ve figured out that joy is in your arms.(난 기쁨이 당신의 품 안에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가사를 읊은 후,강윤은 담담히 말했다.
[이 부분이 포인트였죠?] [맞아요. 수줍지만 당당한 고백이죠. 왜요?] [다른 가수들이라면 이 말을 어떤 어조로 했을까? 이 생각을 잠깐 해 봤습니다. 요즘 대세는 직설 이니까요. 셰무얼은 속삭이듯, 돌려서 이야기하고.] [이런 말은 직설적으로 하면 매력이 떨어져요.]셰무얼은 가사를 홍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의 노래에서 하얀빛이 넘실 거렸다. 강윤도 함께 가사를 홍얼거리자,셰무얼은 화음까지 섞었다. 하얀 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우.’
목소리만으로 빛이 요동칠 정도라니. 강윤은 전율이 느껴졌다. 흥얼거림을 멈춘 셰무얼이 웃으며 물었다.
[강윤은 내가 트렌디하게 직설적인 노래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나요?]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강윤은 작은 신음과 함께 고민했다.
끝
[원하는 노래를 하는 게 당연히 좋습니다.] [그렇죠?] [다만–.]강윤의 망설이는 기색에 셰무얼의 눈가가 조금 올라갔다. 곡에 대한 이야기에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곡은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 보는 게 어떨까요?] [두 가지?] [브라질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그 곳 문화가 워낙 마초적 이니까요.] [마초? 하긴… 브라질이 좀 거센 나라긴 했어요.]셰무얼이 동의했고,강윤은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부가 처녀가 아니면 결혼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는 법이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 외 마초적인 문화는 여기저기 남아있죠.] [허… 그 정도였나요?]셰무얼은 팔짱을 끼었다. 브라질문화는 또 언제 분석해 온 건지. 셰무얼은 강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무대 위에 있던 밴드마스터,엘레나를 불렀다. 그녀는 세션들과 한창 이야기 하다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불렀나요,셰무얼?] [잠깐 강윤 이야기 좀 들어보겠어요?]강윤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했다. 엘레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여자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을 터. 그래도 그녀는 프로였다.
[… 그러니까,편곡이 필요하다는 거죠? 현지 사정에 맞춰서?] [네. 부탁드립니다. 앨범 편곡이 아니니까, 세션들이 나서주셨으면 합니다.]엘레나는 시크하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무대에 올라섰다. 곧 세션들에게서 외 마디 소리가 퍼져 갔다. 세션들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지는 모습을 보며 강윤은 볼을 긁적였다.
‘미안해지네…’
기껏 쉰다고 좋아한 사람들에게 일 거리를 준 격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피곤함에 지쳐 침대에 몸을 뉘였다.
지잉- 지잉-
핸드폰이 요란하게 춤을 췄다. 앞자리 082. 한국에서 온
“네,이강윤입니다.”
-혹시… 이강윤팀장님.그러니까… 워,월드 회장님 핸드폰인가요?
잔뜩 긴장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흔하지 않은 허스키 한 보이 스. 강윤은 의아했다. 김지민이나 이현아의 허스키 보이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누구… 아,혹시 혜성이니?”
– 네. 저에요. … 다행이다. 휴우.
그제야 핸드폰에서 안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특색 있는 목소리 였기에 바로 기억이 났다. MG의 연습생,이혜성이었다.
모든 연습생들이 두려워하던 강윤에게 당돌하게 조언을 구하던 중학생이었다. 덕분에 강윤에게 여러 조언을 듣고,실력을 많이 키워 냈었다.
“오랜만이야.”
– 아니에요. 팀장님은 여전하시네요. 달라진 게 별로 없으신 것 같아요.
강윤은 잘 지내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예의 연습생 구조조정. 이혜성도 그때 정리된 연습생 중 하나였다. 묻는 건 무의미했다.
“그렇게 보여?”
– 회장님 되셨으니까 연습생하곤 멀게 느껴졌거든요. 전화하기도 무서웠는데…
이야기를 이어가며,강윤은 의문이 들었다. 대체 MG에서 왜 이혜성을 내 보낸 건지. 155cm에 황금비율,매력적인 허스키 보이 스까지 . 외모나 실력이나 어디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 그래서 이번에 나온 거야?”
– 네. 구조조정만 네 번째 겪으니까 도저히 견디질 못하겠더라고요. 앞으로 월드처럼 데뷔할 사람들만 키우겠다며 다 쳐내는데 견딜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 남은 애들, 7명 밖에 안돼요.
“딱 한 팀 만들 정도네. 너무하네.”
– 제가 부족하니까 떨어졌겠죠. 실력이 있었다면 살아남았을 거예요.
이혜성은 끝까지 남탓을 하지 않았다. 그녀를 대견하게 생각하면서도,강윤은 지예의 처사에 화가 났다. 갑작스럽게 데뷔할 수 있는 연습생만 데리고 가겠다니. 꿈만 보고 달려온 연습생들은 뭐가 되겠는가.
– …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감사할 일이야? 앞으로도 자주연락해. 환영이니까.”
-에햇. 네. 아,맞다. 저 오늘 오디션 가거든요. 잘 되도록 응원해주세요.
“어디 가는데?”
– 알면,힘 좀 써주시게요?
“아니.”
–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저도 팀장님 백으로 합격 딱지 붙이고 싶진 않거든요. 기다리세요. 조만간 그 바닥으로 갈 거니깐.
“하하하. 기다릴게.”
통화를 마친 후, 강윤은 침대에 누웠다.
‘진 팀장한테 만나보라고 할까?’
엔티엔 담당자,진혜리 팀장에게 강윤은 전화를 걸었다.
————
부스 안에는 벙거지 모자를 쓴 남자와 야구모자를 쓴 여자가 한창 곡 작업에 매진 중이었다.
– 어떻게 말할까 아깝다는 말 어떻게 사람들 기억하게 할까 나의 생각 나의 행동 엇비슷한 스웨그–
손짓과 함께 라임과 꽉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너의 성공을 반겨 나의 성공을 반겨 다들 최고라 하지 이 곳 이 방 이 순간
남자의 손이 여자를 가리 켰다. 몸을 흔들며 가볍게 리듬을 타던 여자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 갔다.
– 우린– 아무나 할 수 없는– 미래를 걸어가야 해 —
시원하고,강렬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스 앞을 지키던 음향기사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기계를 조작해 갔다.
“오늘 주한이 장난 아닌데?”
“현아가 대박이에요. 와. 저런 감정을 보여주네?”
작곡가 유대명과 작사가는 부스를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흐름을 탔는지 한 번의 끊어짐 없이,녹음은 시원하게 진행되었다.
“우와우. 더 할 필요도 없겠는데?”
노래가 끝나자 두 사람이 부스에서 나왔다. 작곡가 유대명은 박수로 두 사람을 맞았다. 랩을 한 신주한은 장난끼 어린 눈빛을 쏘았다.
“내가 했는데. 당연하죠.”
“신주한이,넌 100번은 더 해야 돼. 현아말야,현아. 최고야,최고.”
신주한이 입술을 씰룩였지만,작곡가나 다른 스태프들도 이현아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더 안 해봐도. 괜찮을까요??”
“느낌 너무 좋아. 괜찮아!! 과연 하얀달빛 보컬. 어찜 이렇게 잘 할까?”
“주한 오빠가 워낙 잘 맞춰줬거든요.”
공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신주한은 남자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이내 프로듀서가 그를 부스 안에 넣어 버렸지만…
피처링을 끝내고,이현아는 매니저와 함께 차에 올랐다.
“오빠. 오늘 스케줄 더 없죠?”
“응. 왜?”
“저 홍대에서 내려주실래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만날 사람이 라니. 매니저가 걱정 되는 눈빛으로 물었다.
“진성 씨 만나려고? 아무리 공개 연애라지만…”
“아니거든요. 작업 때문에요. 자주 만나면 질려요, 질려. 오빠도 연장근무 콜?”
매니저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까지 늦게 들어가면 마누라한테 쫓겨날지도 몰랐다. 월급만 많이 갖다 준다고 남편 역할 다하는 게 아닌 법…
“사람 조심하고.”
“알았어요.”
매니저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고, 이현아를 내려주었다. 홍대에 위치한 공연장, 스팟홀 부근이었다. 별다른 변장 없이 이현아는 길을 걸었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현아다! !”
“언니!!’, 유독 그녀는 여성 팬이 많았다. 몰려든 사람들도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다보니,목적지로 가는 길은 더 뎠다. 홍대에서 그녀는 여신이었다.
한 여대생 무리에게 둘러싸여 사인 공세,플래시 세례를 받는데,2층 카페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차희?’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바스트. 이차희였다. 반가운 마음에 이현아는 서둘러 사인을 해나갔다.
‘어?’
이차희는 혼자가 아니었다. 2층 창가에서 붉은 옷을 입은 여성과 함께 마주 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누구지?’
‘언니!! 사진 한 장만…”
‘꺄아악. 언니 완전 좋아요!!”
“누나,사랑해요.”
갑작스럽게 사인과 사진 공세들이 밀려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이현아는 양해를 구하곤 서둘러 맞은편 2층 카페로 올라갔다.
없었다. 이차희도,붉은 옷의 여성도.
‘잘못 본 거 아니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혹시 몰라 직원에게 물어보니 분명히 이차희였다. 나갔다는 이야기 외에 다른 수확은 없었다.
————–
이현지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전직원을 소집했다.
“연예인,연습생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바로 보고하세요.”
“이사님께 직접 말입니까?”
“네.”
직원들도 중국에서 연예인들의 신변보호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안이 무척 중하다는 말이었다. 곧 지시는 공문이 되었다.
“지혜 누나. 무슨 일 있어요?”
강윤의 집에서 곡 작업을 하던 김재훈은 의아했다. 회사에 들렀다 온 유지혜 매니저가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니…
“이니. 아. 재훈아. 혹시 이상한 사람 없었어?”
“이상한 사람이요? 집하고 회사만 왔다 갔다 했잖아요.”
“그랬었지…? 그래도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 접근하면…”
김재훈은 바로 감을 잡았다.
김지민도 마찬가지였다. 유지혜 매니저와 달리,문주명 매니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티가 나버렸다.
“오빠,언니들. 혹시 요 며칠 사이 이상한 사람 없었죠?”
하얀달빛의 매니저,이태정이 낭랑하게 물었다. 이현아는 당연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남자 멤버들은 헛기침만 늘어놓았다.
“… 진대 오빠. 오늘 이상해? 누구 만났어요?”
“마,만나긴.”
딴청을 피웠지만,얼굴에 거짓말이 다 써있었다. 이태정 매니저는 발끈했다.
“오빠. 솔직히 불어요. 누구 만났죠?”
“… 그래!! 만났어,만났다고. 돈 세 배로 줄 테니까 넘어 오래더라.”
“형!!”
“오빠!!”
엄청난 이야기에 정찬규와 이현아가 발끈했다. 이태정 매니저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야야. 거절했거든? 걱정 마시고요.”
“그래,그래야 우리 오빠지!!”
이현아는 김진대의 어깨를 감쌌다. 정찬규도 김진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차희야. 왜 그래?”
“차희야?”
“…어?”
이현아가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이차희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해?”
“…아냐. 아무것도.”
“진대 오빠 봐. 멍청해 보이긴 해도, 한 의리하지?”
“야. 멍청하다니!!”
김진대가 발끈하는 것과 달리,이차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소의 툭 쏘아붙이는 반응조차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현아는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홍대에서 붉은 옷의 여성과 이차희를 봤던 일을.
“차희 야. 너 며칠 전에 홍대에 간 적 없었어?”
“없어.”
“진짜?”
단호한 답. 이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차 물었다.
“진짜로?”
“왜 자꾸 물어 봐?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아,아니. 그게 아니라…”
“한 번 아니라면 아닌 거지.”
쾅. 이차희는 그대로 연습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평소와 너무도 다른 격한 반응에 김진대와 정찬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재, 왜 저래?”
“그러라도 터졌나?”
두 남자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볼 때,이현아는 그녀대로 복잡했다.
‘그건 분명 차희였어. 설마…’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녀 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
연습이 끝난 후,콘서트 기획회의가 이어졌다.
콘서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오프닝에 대한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셰무얼은 강윤의 설명이 이해가 안 갔는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강윤은 확실히 못을 박자 셰무얼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선선히 수긍했다. 이미 강윤의 말은 모두에게 강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오프닝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후,강윤은 기타 과정에 대한 보고를 이어갔다.
밴드 마스터 엘레나의 사과에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기한을 맞추는데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강윤은 셋 리스트(실연곡 리스트)를 보며 회의를 이끌어갔다. 셰무얼과 다른 팀장들은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요구했다. 강윤은 요구를 수용하되,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거절하며 회의를 이끌어갔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셰무얼이 물었다.
셰무얼은 강윤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강윤 회사에서 한 명 데려 오는 건 어때요?] [오,나쁘지 않은데요?] [굿. 강윤 매니지먼트 한다면서요?]사람들도 호의 적이었다. 반면 강윤은 난색을 표했다.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그렇게 하면 책임자로서 권위가 서지 않았다.
[괜찮습니다,셰무얼. 제 생각엔 브라질에서…] [주아에게 들었는데,자기 못지않은 댄서가 있다고 들었어요.] [네?]셰무얼이 모두를 향해 이야기 했다. 다른 사람들도 호의 어린 눈빛이었다.
[오,주아 정도의 댄서라면 환영이에요.] [나도. 보고 싶은데요?] [난 이름도 들었는데. 민아?]출연진,댄서들까지 장난스럽게 의견을 내고 있었다. 난감해하는 강윤을 보며 놀리듯이. 댄서 팀장의 옆에서 있던 주아는 강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보이고 있었다.
‘나밖에 없지?’
그녀를 보니 답이 나왔다. 저 녀석 작품이었다. 강윤은 너털웃음이 세어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멍석이 깔려버렸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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