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69
105화 – 뿌린 대로(3) >
술자리가 있던 다음날.
이현지는 깨질 듯이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뭐,뭐야. 으으…”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다. 눈을 찡그리며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이 커졌다.
“여, 열시?!”
얼굴에 대충 물을 묻히고, 얼굴에 파우더만 찍어 바른 후,차에 올랐다. 속도계가 100km/h에 육박할 정도로 내달렸다. 한산한 도로에 라디오도 평소에 듣던 것과 달랐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 자신의 방으로 가려는데, 복도에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마주쳤다.
“최 팀장님? 아니, 베이징에 계실 시간 아닌가요?”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어제 귀국했지요. 말씀 안 드렸던가요? 토요일에 잠깐 들어온다고 보고 드렸는데…”
그제야 이현지의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한 달에 거의 없다시피한 휴일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사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오늘 쉬는 날로 알고 있었는데요.”
“아,그,그게 말이죠.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다가 창가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솟아오른 머리에 뜬화장, 대충 구겨 넣은 허리춤에 비뚤어진 치마까지…
이현지는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강윤과 최경호는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 쓱였다.
“회장님. 이사님도 가끔 귀여울 때가 있군요.”
“가끔 저럽니다. 아주 가끔.”
두 사람은 회장실로 들어섰다. 강윤은 이준열에게 받은 기획안을 최경호에게 건넸다. 최경호가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을 때,수습을 마치고 온 이현지가 들어섰다. 그녀는 조신하게 최경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기획안을 내려놓고,최경호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살을 좀 더 덧대야 할 것 같지만,허황된 기획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 10월에하는 걸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강윤의 말에 최경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현지도 입을 크게 벌린 채 강윤을 바라 보았다.
곧 평정을 되찾은 최경호가 헛기침을 하곤 답했다.
“…흠. 마치 예전의 MG 스테이지가 떠오르는 기획안입니다. 10월이라면,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라면 자금이겠군요. 첫회니까 힘을 바짝 줘야 할 겁니다.”
“예산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현지의 물음에 최경호는 잠시 생각하곤 답했다.
“중국 합동 콘서트의 3배에서 4배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군요.”
강윤이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낄 때, 평정을 되찾은 이현지가 물었다.
“클래식에서 단독으로 소화할 수 있나요?”
“현재 맡은 모든 일들을 중단하고 집중 하면 가능합니다. 그 기간 동안은 다른 일은 병행하기 힘들겠지만요.”
“다른 회사들에 의뢰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네요.”
최경호는 자세하게 기획안을 작성해서 오겠다고 이야기하곤 회장실을 나섰다. 이현지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 진짜로… MG 스테이지를 하는 건가요?
“MG 스테이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맞는 이름을 정해야죠. 이사님이 하나 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렇지. 알겠어요.”
들뜬 얼굴로 이현지는 회장실을 나섰다.
토요일 오후.
일을 마무리한 강윤은 외투를 걸치고, 사무실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때, 전화기 가울렸다. 버튼을 누르니 문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이츠파인 서버 점검이 완료됐습니다. 전형택 상무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곧 전형택 상무가 들어섰다. 전형택 상무는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 놓았다. 문 비서가 차와 다과를 내왔고, 강윤은 전형택 상무에게 자리를 권했다.
보고서를 읽는 강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서버에 쓰인 부품들은 그대로군요.”
강윤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전형택 상무는 고개를 숙였다.
“부품을 바꾸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앞으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강윤이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자, 전형택 상무는 잠시 머뭇거리다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아,앞으로 두 달 동안 전 직원들이 비상체제에 들어갈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하도록…”
“애초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그렇죠.”
강윤은 보고서 를 내려 놓았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면, 저희도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장님. 드리기 어려운 말씀이지만,서버와 장비는 파인스톡에서 전적으로 관리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전형택 상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강윤은 담담히 말을 이어 갔다.
“서버가 안정화 됐으니,홍보팀을 동원해서 여론을 진정시키겠습니다. 보상책도 진행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전형택 상무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문을 나서려다가,그는 강윤을 돌아보았다.
“만약…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할 겁니다.”
전형택 상무는 싸늘한 기운을 느끼며 문을 나섰다.
강윤은 바로 이츠파인에 접속했다. 홈페이지는 물론이고,프로그램 등 모든 사이트가 잘 접속됐다. 다만,게시판은 불만 글들로 가득했다.
– 제발 아프지 마라
– 또 아프면 환불요청할 거임
–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 안 들게 해줬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문이 게재됐다. 중지기간에 맞춰 보상도 주어졌다. 월드 스튜디오 가수들의 음원까지 증정하며 사과를 하니 불만이 조금싹 잦아들었다.
이틀 후.
월요일 6시 15분.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늦었다, 늦었어.”
인천에서 강남에 있는 직장까지 출근해야하는 정한나는 하이힐을 신고 줄근길에 나섰다. 평소처럼 급행열차에 올라 신도림역에서 도착했다. 좁은 계단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내려가려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아,짜증나.’
힘겹게 2호선 승강장에 선 그녀는 평소 처럼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자연스럽게 음악 앱 ‘이츠파인’을 켰다.
‘뭐야? 또 안 대?’
프로그램이 켜졌다가 바로 종료 됐다.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하철 자리 경쟁에서도 패배하자 짜증은 배가 되었다. 이 와중에 이놈의 앱을 계속 다운됐다. 프로그램을 지우고 다시 깔아도 봤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또 이러네? 아, 짜증나!!”
그녀는 결국 이어폰을 거칠게 가방에 넣어버렸다. 짜증과 함께 한 주를 시작해야했다.
이 이야기는 SNS를 타고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아침부터 터진 접속 문제로 이츠파인 상담실은 종일 불만전화로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이 문제는 긴급으로 전형택 상무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서버 관리 똑바로 하지 뭐했어들?!”
전형택 상무는 직원들을 질책했다. 직원들도 불만이 가득했다.
‘누가 싸제 쓰랬나?’
‘쌈마이 짓거리는 지들이 하고 왜 우리 한테 지랄이야?’
서버 문제가 자꾸 생기는 원인이 뭔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세연 사장도 보고를 듣곤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역시,또…”
“일단,월드 쪽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다. 당장 이강윤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전형택 부장의 말에 하세연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도 진짜 원인이 뭔지는 알고 있을 거예요. 우리 뒤에 있는 투자자들 말이죠.”
전형택 상무는 침묵했다.
동일한 지분이니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츠파인이야 조금은 망가져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하세연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투자만 아니었어도… 그딴 싸구려 부품에 놀아나고 싶진 않았는데.”
같은 시간.
출근시간의 서버다운은 강윤의 귀에도 들어갔다. 보고를 듣자마자 강윤의 안색은 굳어졌다.
“이대론 안되겠습니다.”
아침 회의를 위해 왔던 이현지는 강윤을 불잡았다.
“회장님. 흥분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요. 좀 더 차분하게…”
“이 판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현지는 강윤의 팔을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회장님. 진정하세요. 저쪽 속셈이 보이지 않나요? 다 회장님을 격동시켜서 테이블로 오게 만들려는 수법이잖아요.”
강윤의 눈이 흔들렸다. 이미 투자자들의 속셈이야 알고 있었다.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속이 상했다. 입가를 파르르 떨다가,앞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찬 기운이 들어가자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맞은 편에 앉은 이현지는 차분히 말했다.
“일단, 하나하나 수습해요. 흥보팀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 그런 방법으론 안 될 겁니다.”
“회장님.”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끌려 다닐수는없습니다. 판을 새로 짜야 합니다.”
“새로 짠다? 어떻게요?”
강윤이 방법을 설명하자 이현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찻집은 평소처럼 콘트라베이스 연주와 피아노 소리가 흘렀다.
이한서는 평소처럼 차를 내리며, 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붐비진 않았지만,이젠 이름이 알려진 탓에 유명인들이 눈에 띄었다.
‘잘 돼야 할 텐데.’
그의 눈은 구석진 창가에 있는 원진표와 주아에게로 향해 있었다. 은은한 음악 과 달리,두 사람의 분위기는 묵직했다. 테이블에 놓인 찻잔에서 김만이 무심히 피어오틀 뿐이었다.
먼저 분위기를 깬 건 주아였다.
“솔직히 파트너로서 원 사장님을 믿기 힘들다는 건,알고 있죠?”
“알아.”
원진표는 담담했다. 주아의 직설적인 화법은 이젠 익숙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고개를 들었다.
“좋아요. 당장 도장을 찍긴 힘들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제가 믿을 수 있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줘요. 기간은 한 달. 대신 저도 다른 곳과 계약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주아는 더 할 말은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구에서 이한서와 마주했다.
“차 싫다니까요. 다음엔 커피로 줘요.”
주아가 나간 후, 이한서는 원진표와 마주 앉았다.
“주아가 뭐라고 하던가요?”
“한 달간 기다려주겠다고 하더군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오라네요.”
원진표는 얼굴을 폈다. 당장 기회를 얻진 못했지만,희망은 마련한 셈이었다. 이한서가 말했다.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니요. 이건 제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주아가 만족할 만한 성과라…”
원진표가 고민에 빠진 얼굴을 보며 이한서는 부드럽게 웃었다.
월요일에 일어난 서버 문제는 오후가 되어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같은 형식으로 문제가 반복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이츠파인 게 판은 이미 폭주하는 민원으로 점령 당한 지 오래였고,파인스톡, 월드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시판이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기회를 엿보던 음원 사이트들은 이벤트 까지 벌여 이츠파인에서 이탈하려는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손실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월요일,저녁.
강윤과 이현지는 와인바에 있었다. 신사동의 가로수길에 위치 한 분위기로 유명한 와인바였다. 어둑하면서 은은한 조명 아래 세이스의 사장,한태진이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한태진 사장은 활달히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취향대로 모신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닙니다. 숨겨진 명소를 알게 되서 좋습니다.”
강윤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와인바를 통째로 빌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투명한 빛이 도는 와인과 자줏빛 이 도는 와인을 따라 가볍게 부딪혔다.
에피타이저에서 메인디시가 나오며, 이야기도 근황에서 주제로 나아갔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한태진 사장이었다.
“정민아 쇼케이스 때 정말 좋았습니다. 설마 이 아이템이 통할까, 반신반의했었는데 말이죠. 덕분에 새로운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진작 인사 드렸어야 했는데…”
“옛날 이야기는 괜찮습니다. 저흰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거니까요.”
이현지는 손을 저었다. 옛날 이야기를 하면, 월드를 저버리고 MG 와 손잡았던 이야기까지 나을 게 뻔했다.
한태진 사장은 쓰게 웃었다. 마음 한쪽이 시큰했다.
‘보통 내기들이 아니군.’
세이스가 월드를 저버리고 MG와 손잡은 통에 월드는 자칫 프로젝트를 접을 뻔 했었다. 이런 과거를 집고 가기 않겠다니, 부담됐다.
강윤이 말했다.
“보내드린 내용은 생각해보셨습니까?”
와인잔을 내려 놓은 한태진 사장은 콧잔등을 문질렀다.
“지분 인수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흥미가 동하는 제 안이었을 겁니다만,지금은… 흥미가 동하지 않습니다. 음원 사이트라는 게 신뢰 얻 기는 어렵지만,잃기는 쉽죠.”
이현지가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맞아요. 지금 이츠파인은 생각만큼 매력적이진 않죠.”
“씁쓸합니다. 1위까지 넘보던 이츠파인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한태진 사장은 자줏빛 와인을 찰랑였다.
보여줄게 있으면 더 보여달라는 압박이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강윤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저희 지분 20%를 사십시오.”
“그렇게 해서 저희가 얻을 건 뭐죠?”
“동남아 진출 시,모든 월드 연예인들의 웹 흥보를 세이스를 통해서 하겠습니다.”
한태진 사장은 와인잔을 내려 놓고 강윤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파인스톡과 맺었던 계약들을 끊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파인스톡이 선점한 동남아에서 연예인을 앞세워 흥보한다면, 충분히 흥보효과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한태진 사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동남아는 가능성이 큰 시장이었다. 파인스톡도 성장할 때, 월드의 연예인들을 앞세워서 큰 재미를 봤었다.
‘재미있군.’
과거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꿀을 들이 대다니.
잠시 생각하던 한태진 사장은 표정을 굳히곤 되물었다.
“정리하면, 월드가 가진 이츠파인 지분 20%를 인수하라는 겁니까?”
이현지가 답했다.
“거기에 신설 서버 투자, 관리를 추가하면 됩니다.”
“서버 투자에 관리 까지. 파인스톡 서버 관리는 수준급인데… 흠.”
파인스록이 관리하는 서버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중국회사에서 서버를 사들인 후,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해도 계약과 투자자들의 입김에 쉽지 않다고 들어 왔다.
이어 강윤이 말했다.
“지금 벌어진 사태는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합니다.”
“잠깐. 설마,이 회장님.”
하태진 사장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께 이츠파인을 새로 시작해보지 않겠습니까?”
끝
한태 진 사장은 강윤을 바라보며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이츠파인 지분 20% 인수라… 이전투구로 뛰어 들라는 말이 새로운 시작으로 포장된 것 같군요.”
한태진 사장은 웃으면서 거부감을 드러 냈다. 이현지는 강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른 안을 내놔야 할 것 같아요.’
강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지는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짠.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다시 퍼져 갔다. 한태진 사장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와인을 입가에 가져 갔다. 와인을 넘기며,눈가로는 강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윤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월드와 세이스 뮤직의 음악 제휴. 이건 어떻습니까?”
“… 호오.”
그제야 한태진 사장의 눈가에 흥미가 일었다.
“흥미롭군요. 이츠파인은 월드의 음원 사이트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월드가 세이스 뮤직에 참여한다면 논란이 생길 수 도 있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 법적 공방에 시달리는 건 흐음…”
“그건 저희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세이스 뮤직 입장에서 보면 기회 아닌가요? 인지도 면에서는… 언급하기도 슬퍼지는군요.”
이현지가 끼어들자 한태진 사장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뭐,맞는 말씀입니다. 서비스 한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적자만 누적 되고 있어서 조만간 정리할 생각입니다. 이츠파인과는 맞지 않을 겁니다.”
웃음이 틀어졌다. 기분이 상한 게 분명 했다. 이현지가 대꾸하려는데,강윤이 먼저 나섰다.
“불필요한 소모전은 여기까지하는 게 좋겠습니다.”
슬슬 결정을 해달라는 압박이었다.
한태진 사장은 잔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월드의 참여는 여러모로 이득이야. 세이스 뮤직을 키울 수도 있고. 천천히 생각 하자. 시간을 끌수록 속이 타는 건 월드니까.’
지금 급한 건 월드였다. 세이스 뮤직이야 항상 그대로였으니까.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이현지는 몸을 뒤로 기대며 태연히 말했다.
“65대 35. 투자금 비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지분은 60대 40.”
“크흠,흠.”
한태진 사장은 헛기침을 늘어 놓았다. 상대가 처음부터 후하게 나오니 당황스럽기 까지 했다. 이미 이야기가 된 사항이었는 지 강윤도 잠잠했다.
멈칫하던 한태진 사장은 잔을 들었다. 세 사람이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퍼져 갔다. 와인을 한 모금 넘 긴 후, 한태진 사장은 답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강윤이 웃으며 잔을 내려 놓을 때, 한태진 사장이 손을 들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강윤이 자세를 바로 하자,한태진 사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 한 단어를 내뱉었다.
“…튠.”
“튠?”
“현재 월드는 세이스 영상을 흥보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 걸로 압니다. 앞으로 홍보의 50%를 세이스 영상으로 바꿔 주십시오.”
강윤과 이현지는 멈칫했다. 50%는 낮은 비율이 아니었다. 이현지는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 쉽지 않은 제안이네요. 세이스 영상은 썩 반응이 좋지 않은데.”
“일단, 사장이니까요.”
한태진 사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현지는 강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세이스 TV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매체에요. 튠을 모태로 만들었는데, 화질도 좋지 않고 광고도 길거든요.’
강윤은 안색을 굳히며 팔짱을 끼었다. 한태진 사장은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강윤은 담담히 그와 눈을 마주했다.
“… 좋습니다.”
“회장님.”
이현지가 만류하는 가운데,한태진 사장도 의외라고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흠,정말… 이십니까?”
“월드의 모든 연예인들이 올리는 사적인 영상들은 세이스 영상을 이 용하겠습니다.”
“그거,혹시 파인스톡 영상에서 이용하던…”
한태진 사장의 물음에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인 즉슨, 완전히 파인스톡과 의 관계를 끊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한태진 사장은 되레 당황했다. 자꾸, 저쪽은 더 큰 걸 내주고 있었다.
강윤이 말했다.
“대신 저희도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세이스 영상의 화질을 튠 이상으로 끌어을릴 것,광고 시간을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일 것.”
“기술적인 문제는… 알겠습니다. 그거야 투자만 하면 개선되는 거니까요.”
이쯤 되니 무서워졌다. 협상을 잘한 것 같긴 한데,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남는 장사를 한 것 같은데,어째 찝찝 하단 말이지.’
자신을 바라보는 강윤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이렇게까지 퍼주진 않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한태진 사장은 강윤에게 물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전 사업가입니다. 이익 없는 거래는 그리 좋아하지 않죠. 그런데 이런 식의 거래는 월드에 전혀 남는 게 없어 보입니다만…”
적이 걱정을 해주는 꼴이었다. 강윤은 씨익 웃었다.
“이렇게 하면 이전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 것 같달까요?”
“아…”
머리를 거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과거 에디오스와의 계약 건을 일방적으로 파 기한 이야기였다. 사내의 이사가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일은 기업 평판에 영향을 미쳤다. 선심성 밑밥이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엔 조건이 너무 좋았다.
이전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세이스의 평판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쯤이면 됐다고 느낀 이현지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만하면 대화는 충분히 한 것 같네요.”
한태진 사장은 윗주머니에 꽂혀있던 만년필을 꺼냈다. 계약서를 살피고 사인을 하려다가,의문이 든 그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잠깐.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파인스톡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현지가 와인잔을 들고 싸늘하게 웃었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이야기,들어보셨어요?”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계약서를 살핀 후,한태진 사장은 조용히 사인을 했다.
————–
이츠파인의 서버다운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파인스톡은 비상체제로 서버를 관리했지만,서버는 3일에 한 번 꼴로 에러를 일으켰다. 서버대란은 2주를 넘어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제때 복구하지 못한 후유증으로 1~2위를 다투던 이츠파인은 확실한 업계 3위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은 전형택 상무를 거쳐 하세연 사장에게까지 보고되었다.
“… 사태가 지속되면 더 버틸 수 없습니다. 적자야 월드에서 지원한 자금으로 어떻게든 메울 수 있다지만…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세연 사장은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회원 수를 나타내는 보고서는 오른쪽 아래로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었다. 손해액은 치솟고 있었다. 말없이 보고서를 바라보던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 일주일만 기다리죠.”
“이대로는 돌이 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 질 수도 있습니다.”
“월드에서는 별다른 소식 없나요?”
전형택 상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세연 사장은 의문이 들었다. 절대 조용히 있을 월드가 아닌데 말이다.
의문을 품고 전형택 상무는 파인스톡을 나섰다.
‘이상해.’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닦달 해대던 이강윤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월드의 동향을 체크하던 투자자들 조차도 보고를 하면 뚱한 반응이었다.
혹시나 해서 알아봤지만,두 그를 모두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보고뿐이었다.
사무실에 복귀했는데,직원에게서 전화 가 걸려왔다. 용건을 듣자 그의 표정이 굳어 졌다.
“뭐? 백업파일을? 금방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해.”
– 계약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계약서 대로라면,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버려. 누가 왔는데?”
– 그게… 이강윤 회장이 직접…
전형택 상무는 눈을 감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 동안 잠잠하더니 갑자기 쳐 들어오다니.
급히 이츠파인 서버관리실로 향했다. 도착하니 직원들이 허탈한 얼굴로 일을 하고 있었다.
“백업 파일은?”
“… 죄송합니다. 어제 자정일자 백업파일부터 1년 전 데이터까지 모두 복사해 갔습니다.”
“이유가 뭐래?”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하긴,회장에게 이유를 물어볼 간 큰 직원이 누가 있겠는가.
홀로 생각하는데, 전형택 상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잠깐만. 설마… ‘
월드 단독으로 이츠파인을 오픈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가 아는 이강윤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지잉지잉–
주머니에 넣어 둔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보니 강윤이었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백업파일을 가져가셨다고 들었습니다.”
–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월드는 이 쯤에서 이츠파인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네?”
엉뚱한 답. 이상한 생각이 들 겨를도 없었다. 전화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7조 1항. 심각한 귀책사유가 있으면 한 쪽이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는 조항, 기억 하십니까?
“그거야… 하지만 서버는 곧 정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렇게 손을 떼버리면 월드도 손해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가장 큰 지분 보유회사잖습니까. 좀 더 침착하게…”
– 곧 대주주가 찾아갈 겁니다. 이만 끊죠.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 졌다. 전형택 상무는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전혀 응답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왔다. 이츠파인에 투자한 복타이에서 보낸 투자자들과 통역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무슨 일로…”
전형택 상무가 막아는 척을 하려는데, 통역을 통해 날선 눈매의 투자가가 말했다.
[아직도 서버가 말썽이라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회사 부품으로는 도저히…”
[바꿉시다.]전형택 상무는 귀를 의심했다.
” 네?”
[안 맞는다면서요? 그러면 원래 쓰던 걸로 교체해야죠. 그리고 내일 대주주 회의 소집이니까 참석하시고요.]투자자들은 할 말을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형택 상무는 막 나서려는 그들을 붙잡았다.
“대주주? 소집? 무슨 말씀이 십니까? 아직 정기 주주총회는 꽤 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못 들었군요. 간단하게 설명하죠. 월드가 가진 이츠파인의 지분, 50% 전량을 복타이에 인수했어요.]전형택 상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들이 이츠파인의 경영권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날선 눈의 투자자가 말했다.
[아,상무님은 미리 안건을 알아야겠군요. 내일 의제는 그 동안의 보상건과 음원 배분 비율 정상화입니다. 대충, 40%까지는 올릴 생각이니까…]전형택 상무의 머리는 아득해졌다. 이츠파인의 모든 것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미쳐 돌아가네.’
음원 배분비율이 다른 음원사이트보다 적은 건,이츠파인의 핵심이었다. 유통사가 이익을 덜 가져가는 대신 가수와 제작자에게 더 나누어 줬기에 이츠파인에 양 질의 서비스가 공급된 건데 핵심을 버리겠다니.
그래도 까라면 까야하는 법. 직장인은 어쩔 수 없었다.
급히 서버 부품들을 공수하고, 하루 만에 복구를 마쳤다. 이츠파인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보상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 겨우 3일 이용권? 장난하냐?
– 한 달 동안 애래우고, 3일 꼴랑 보상 해주냐? 이츠파인 돌았냐?
– 배가 불렀네, 불렀어. 난 갈아탄다.
빈약한 보상안이 또 분노를 불러왔다. 이전과 같이 호의적이던 여론은 온데간데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누수가 일어났다.
– 40%로 올린다고? 다른 음원사이트하고 차이가 거의 없잖아?
– 사람들 나갔다고 손실을 이렇게 메우는 거임?
– 월드가 손 떼니 아주 엉망진창이네.
30%대였던 유통사 비율을 40%로 끌어 을린다 하니 가수와 제작자들은 난리가 났다. 손실을 우리한테서 메우려는 행태냐며,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중간에서 전형택 상무는 조율을 하려고 애썼지만,바뀌는 정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젠장…”
지금까지 이츠파인을 키워온 그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일할 맛도 나지 않았다.
서류를 펼쳐놓은 채,넋을 놓고 있는데, 비서가 책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확인해보니 월드 스튜디오에서 보낸 서류봉투였다. 싸한 느낌에 급히 봉투를 뜯었다.
세이스와 월드는 세이스 뮤직을 리뉴얼, 음원사이트 ‘바다’를 오픈한다.
세이스는 ‘바다’의 서버와 사이트의 관리를 담당하며,이츠파인은 홍보와 가수 간의 계약, 공연 등을 담당한다.
… (중략)
설상가상. 아득해지는 심정이었다.
지 분을 모두 매각하고 파인스톡과의 모든 관계틀 정리해버린 월드는 세이스로 갈아타버렸다. 이츠파인의 백업파일까지 가져가버리더니,속셈이 이것이었다.
바다.
새로운 음원사이트가 탄생했다. 정확히 세이스 뮤직이 리뉴얼되었다. 월드와 세이스 뮤직의 함작이라는 형태로.
월드가 이츠파인과 결별하고 세이스 뮤직과 손잡았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 서버 먹튀보소
– 이츠파인처럼 세이스 뮤직 키운 다음에 팔아넘기는 건가?
– 파인스톡 서버관리에 질렸던 거 아님? 서버를 한 달씩이나 다운시켜먹는 회사하고 어떻게 일함?
– 월드 나가니 이츠파인 개판됐음. 곧 가격 올린다는 소문이 무성함. 바다 일단 보자.
대중은 냉정했다. 어려워진 회사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말부터 월드가 나가자 이츠파인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 등. 여론은 반반이었다.
바다는 리뉴얼 이벤트는 하지 않았지만,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내걸었다.
– 미친. 이츠파인보다 더 싸?
– 세이스 뮤직 음질 터짐. 아아… 고막이 감격했다.
가격을 낮추고, 음원유통사 배분을 좀 더 낮췄다. 노골적인 정책이었지만,효과는 컸다. 이츠파인에 있던 고객들이 새로운 음원사이트 바다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이룬 성과라기엔… 크군요.”
오른쪽으로 치솟은 그래프를 보며, 한태진 사장은 혀틀 내둘렀다. 함께 보고서를 보던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과 가수들을 이어주는 것에 충실하면, 이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것 참. 누가 프로듀서 아니랄까봐 그러십니까.”
한태진 사장은 기분좋은 타박을 했다. 세이스 뮤직 이야기만 들으면 머리가 아파왔는데, 한 달 만에 체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보고서를 비서에게 건네고, 강윤에게 눈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츠파인이 불쌍하게 됐습니다. 파인스톡도 그렇고… 손실이 꽤 커 보이던데요.”
“과한 욕심이 불러온 참사죠.”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츠파인은 한 달 만에 회원수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 회원들을 고스 란히 바다가 흡수했고. 이대로 가면,바다는 안정권에 들어갈 것이다.
한태진 사장이 말했다.
“아,어제 지예 강시명 사장을 만났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요.”
강윤이 바라보자 한태진 사장은 눈웃음을 지었다.
“조만간 콘서트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뭐라고 하더라. MG에서 했던 콘서트 말입니다. 소속 가수들 전원이 출연하는 그…”
“MG 스테이지 말입니까?”
“맞아요. 그거일 겁니다. 저에게 그 이야길 하더군요. 투자 제안서까지 주더군요. 시기를 보니까…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콘서트 시기와 겹치는 것 같더군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강윤의 표정이 경직 되어갔다.
콘서트로 두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끝
음악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