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70
105화 – 파이널 스테이지, 그 시작
월드와 세이스가 음원사이트 바다의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 최경호도 콘서트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출연진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어서, 바로 장소 선정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난항이라는 것. 일본, 중국에 이어 동남아까지 월드에서 손을 뻗 친 곳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내부 회의를 거쳐 최종후보지는 도쿄와 서울, 두 곳으로 압축되었다.
“최종 선정은 애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윤은 월드의 모든 소속 가수들에게 공문을 돌렸다. 이준열과 디에스에게도 공문을 보내 의견을 구했다.
며칠 후.
문 비서는 강윤에게 모든 가수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가져왔다. 보고서를 보던 강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한국 셋,일본 둘,어디든 상관없다 둘이라.”
애매한 숫자였다. 한국이 많기는 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않았기에 의견을 밀어 붙이기가 애매했다.
에디오스나 인문희같이 일본에 진출해서 높은 성과를 거둔 적이 있던 가수들은 일본을 선호했고,하얀달빛이나 김재훈같이 국내 활동에 힘을 쏟았던 가수들은 한국에서 콘서트를 하길 원했다. 디에스의 의견까지 곁들여져 한국이 3명이 되었다.
다수결로 장소를 결정하려 했던 강윤은 결국 클래식 측에 의견을 구했다.
클래식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소득을 생각해 도쿄로 하자는 의견과,최근 한국에서 나빠지고 있는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클래식에서도 결정하지 못하고, 이 문제는 결국 전체회의로까지 이어졌다.
“수익성을 따져보면 확실히 도쿄가 낫겠군요.”
전면의 PPT 화면을 바라보던 강윤은 턱에 손을 올렸다. 맞은편에 앉은 이현지가 머리틀 쓸어 넘기며 말했다.
“국내 여론도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연예인들이 AHF외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게 된 이후로,국내 팬들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죠. 이츠파인 문제까지 겹쳤으니… 이젠 한국 여론을 다독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경호는 화면의 막대그래프가 높이 올라간 부분을 레이저 포인트로 찍었다.
“월드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관광객 통계도 고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6 개월간 한국인 방문객들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일본인 방문객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의자를 바로 했다.
“서울에서 개최합시다.”
“일본 팬들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요?”
이현지의 물음에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해외 시장이 넓어졌다지만, 한국 시장을 놓치면 해외에서 뻗어나갈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일본 팬들에게는 여행사와 제휴해서 콘서트 투어 상품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은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알아서 이현지가 나서주자 강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클래식측은 서울에서 공연장 섭외에 들어가 주십시오.”
“네,회장님.”
“이사님은 여행사에 접촉하면서, 스폰서도 같이 알아봐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조명이 밝아졌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는데 할 말이 있는지 최경호가 강윤에게 다가왔다. 자리를 정리하던 강윤은 그를 올려다 봤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별 문제는 아닙니다만… 최근에 소문을 듣고 다른 가수들이 접촉을 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월드가 콘서트를 연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진 것이다. 이 바닥은 무척 좁다. 공연기획에 관한 한,강윤의 업적도 지대했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미루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공연을 해야할지, 감도 잡지 못했잖습니까. 거절은 마시고 확정 되면 가부를 전해준다고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회장님.”
이야기를 마치고,강윤은 회장실로 향했다. 회의가 길어져서일까. 의자에 앉는 폼이 영 힘이 없었다.
‘…오늘은 특히 힘드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며 강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생각에 윗주머니를 만지작대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 회장님, 강기준 사장님 오셨습니다.
문 비서가 조심스레 문을 열자,엷은 외투를 입은 강기준이 들어섰다. 강윤은 그 몰 보더니 푸념했다.
“오늘따라 강 사장님 점퍼가 부러워집니다.”
“하하하. 회장님.”
강기준은 엄지손가락으로 밖을 가리 켰다. 이심전심. 척하면 척이었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사람을 사무실에 박아 넣었으니, 몸이 쑤시지 않고 배기 겠는가.
문 비서가 내온 믹스 커피의 달달함을 느끼며, 강기준은 말했다.
“혹시 회장님. 저녁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강윤은 대답 대신 책상을 가리켰다. 얼굴까지 가릴 기세의 서류를 보고 강기준은 너털웃음을 짓다가 그에게 다가왔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일하러 가자는 겁니다. 오늘 도장 찍으러 가거든요.”
“아.”
강윤의 머릿속에 형광등이 켜졌다.
월드 C&C에서 꽤 오랫동안 스카우트할 배우를 몰색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신인을 찾고 있었지만, 방향을 틀고 자리 잡은 배우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이 바로 그 결실을 맺는 날이었다.
“일이라니. 가야죠. 엄연한 외근인데.”
강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강기준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짝소리를 내며 강윤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종로에 위치한 한 프렌차이즈 카페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계약서를 쓰려는 이유가 뭔지, 강윤은 의아했다.
“약속장소를 왜 이런 곳으로 잡았나요?”
“혜미가 이 곳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전 소속사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전 소속사가 못나긴 했었죠. 일도 못 따 오고,기사대처도 못했고.”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카페가 유동인구도 많은 사거리에 위치 해 있어 안은 인산인해였다. 게다가 사람이 붐빌 저녁시간 이후였다.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카페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창 가의 여인을 힐끔 바라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이혜미야,이혜미.’
‘혼자 왔나봐. 남친 만나나 봐. 예쁘다아…’
‘존예…’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약속 상대인, 그녀가 있었다.
강윤도 아는 얼굴이었다. 강윤이 운전대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중견 매니저로 성장할 때까지 함께했던 배우, 이혜미였다. 그녀는 강기준을 보곤 손을 들었다.
“어? 이게 누구야? 강윤 오빠!!”
이혜미는 강기준과 함께 오는 강윤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강윤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이혜미에 강윤까지 더 해지자 시선이 더욱 쏠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기준도 이혜미 와의 계약을 알릴 생각이었기에,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강기준이 커피를 주문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자,이혜미는 강윤의 손을 꼭 잡으며 활짝 웃었다.
“대박 반가워. 근데… 나 서운하다? 그 때 8년 만에 봤는데도 다음에 어떻게 연락 한번 안하냐?”
“바빴거든.”
“바쁜 건 인정. 그래도 서운. 애인은 있고?”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왔지만,강윤은 차분히 답했다.
“노코멘트.”
“뭐야, 여전히 노잼이야.”
“소속사 사장이 재미있어서 뭐해. 일만 잘하면 됐지. 그나저나,혜미도 많이 늙었네?”
“뭐야?!”
강윤이 웃으며 한 방을 먹였다. 이혜미의 톤이 급격하게 을라갔다.
두 사람이 해후를 풀 동안 강기준이 커피를 가져왔다. 주변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본론이 나왔다. 강기준이 계약서틀 꺼내자 이혜미는 펜을 꺼내들다가 강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조건 하나만 추가해도 될까요?”
“어떤 조건?”
“강윤 오빠가 매니저 정해질 때까지만 내 매니저 해 주는 거?”
강윤은 눈을 껌뻑였다.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당황스러울 법도 했지만,강기준은 차분히 답했다.
“어려운 부탁이네. 회장님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까짓꺼,쿨하게 계약금 5억만 받을게요. 절반만…”
농담이었지만, 계약금을 깎았는데도 거절당하자 이혜미는 자존심이 상했다. 계약서를 강기준 쪽으로 주욱 밀어버렸다.
“… 재미없어. 계약 없던 걸로 할게요.”
“혜미야. 잠깐만.”
강기준이 설득에 나섰지만,입술이 나온 이혜미는 요지부동이었다. 변덕인지, 심술인지.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고 소문이 나 있던데 다 잘못된 이야기였던 걸까?
‘회장님도 함께 왔는데…’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상대가 월드에 호의가 있었고,강윤과 좋은 연이 있었기에 계약할 것을 확신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계약이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변함이 없네.’
이혜미가 밀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내음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당겼다.
‘후우.’
흐릿한 연기사이로 강기준과 이혜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강기준과 달리,그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이혜미가 저러는 거, 과거에 많이 봤으니까.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면 이혜미 앞에서 강기준의 꼴이 우습게 되어버린다.
한 대를 모두 태우고, 다시 불을 붙여 절반쯤 태우니 이혜미가 계약서를 끌어당겨 사인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밀당이 끝난 것을 느낀 강윤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곤, 홉연실을 나섰다. 자리에 돌아가니 이혜미가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우,냄새. 뭐야,오빠 담배 폈어?”
“조금.”
“뭐가 조금이야. 당장 끊어,당장.”
이혜미는 극성을 떨다가, 강윤을 향해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아무튼. 나도 이제 월드 배우야.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회장님.”
“나도.”
강윤은 이혜미의 손을 붙잡았다. 소속 사회장과 연예인으로서의 악수였다. 이혜미는 눈꼬리를 휘었다.
“근데, 진짜 매니저 해주면 안 돼?”
“생각해볼게.”
“약속 한 거야?”
막바지, 짧은 밀당을 끝으로 여배우 이혜미는 월드 C&C에 합류했다.
‘하하,힘드네.’
악수를 나누는 두 남녀를 바라보며 , 강기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
” 하하하하하.”
종합 엔터테인먼트, 지예의 사장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강시명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점잔을 빼며 입을 가렸고,여느 때처럼 붉은 옷으로 온 몸을 감싼 영유히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 자금이라면 스폰이나 후원도 필요 없을 거예요.”
“스폰뿐이겠습니까. 콘서트 2개,아니 3 개를 진행해도 문제없겠습니다.”
강시명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테이블 위에는 콘서트에 적극 후원하겠다는 투자회사 복타이의 협약서가 놓여 있었다.
영유희가 말했다.
“어디든 좋으니까,최고의 스태프들로 구성하세요. 가수들도 꼭 지예쪽이 아니라도 섭외하고요. 알겠죠?”
“알다 뿐입니까. 저만 믿으십시오.”
“… 그러죠. 그럼.”
영유희는 강시명을 떨떠름하게 바라보곤, 지나쳐 문을 나섰다.
투자자 일행이 모두 나서자 강시명 사장의 비굴한 표정도 천천히 사라져 갔다.
“하여간. 뭣도 모르면서 잘난 척은. 그래도 기회를 줬으니 감사해야지만.”
강시명은 달력을 들췄다. 날짜가 아닌, 10월이라는 월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어디, 다시 한 번 해보자. 흐흐흐.”
—————
회장실은 트레이너 들은 거의 가지 않는 장소였다. 하물며 안시진과 이혁찬,두 트레이너는 사무실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기로 정평난 사람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회장실로 불려왔다. 갑작스러운 강윤의 호출 때문이었다. 평상시와 같이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안시진은 멀뚱히 강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일로…”
이혁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안시진 과 같은 심경이었다. 평상시처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왔다가,정장 군단들이 집중된 사무실과 회장실에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강윤은 두 사람의 어색함을 아는지, 미소 지었다.
“아아. 긴장 푸세요. 원래는 직접 내려가려고 했지만…”
강윤은 책상 위를 가리켰다. 책상위에 가득한 서류들을 보고 두 트레이너는 대번에 이해했다.
“하하… 회장님이 불렀는데, 와야죠.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안시진이 묻자 강윤은 서류를 꺼냈다. 이혁찬은 서류를 끔끔히 읽어나갔고,안시진은 쭉쭉 훑었다. 먼저 서류를 다 읽은 안시진이 물었다.
“콘서트 스태프 때문이군요.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덕분에 강윤도 이야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콘서트만을 위한 이벤트곡들이 꽤 많을 겁니다.”
안시진은 콘티가 나오면 바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혁찬도 서류를 모두 읽고는 강윤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안시진과 달리 미적거렸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저 혼자서 모두의 안무를 케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지인 중에 추천 할 사람이라도 있나요?”
“뮤아뮤직에서 안무를 담당하는 연정태 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경력도 저와 비슷하고… 무엇보다 실력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
강윤은 일단 만나보자고 이야기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서류를 검토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강윤은 반색하며 손님을 반겼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최찬양 교수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반가움에 그는 강윤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근황이 오가는 중, 그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교수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강윤이 조심스럽게 묻자, 최찬양 교수는 뜸을 들였다.
“그게…”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염치없지만… 청탁을 하려 왔어요.”
강윤이 몸을 기울이자 최찬양 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말을 이었다.
“이번에 월드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들었어요. 그때,우리 학과 애들 중 몇을…
안무팀으로 써줄 수… 있을까요”
부탁이 힘들었는지, 최찬양 교수의 고개가 꺾였다. 오랜만에 봐도 소심한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강윤은 그의 손을 잡았다.
“교수님 제자들이라면,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회장님.”
스태프 모집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 차를 마시고 있는데,문 비서가 전화로 이현지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현지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최찬양 교수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이현지는 바로 강윤에게 본론을 전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느낀 최찬양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현지가 그를 만류했다.
“아니에요. 교수님도 같이 들어주셨으면 해요.”
“저도요?”
“네. 염치불구하게요… 교수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회장님. 그때까지 스케줄이 비는 공연 연출가가 없어요.”
심각함을 느끼고 강윤의 눈매도 가느다래졌다.
“해외 쪽도 말입니까?”
“몽땅요. 이런 표현은 하기 싫지만,완전히 씨가 말랐어요. 그,베르네? 그 사람은 10월에 연말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며 쏘리,마살은 일본 스케줄이 있다고 거절 했어요. 국내 연출가들도 10월은 스케줄이 애매해진다며 거절했어요.”
“일정을 바꾼다면 어떻습니까?”
강윤의 제안에 이현지가 고개를 저었다.
“연출가 때문에 일정까지 바꾸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각종 방안들이 나왔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최찬양 교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클래식에도 연출가가 있지 않았나요?”
이현지가 짧게 한숨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있죠. 하지만 신인이라 이 정도 규모를 소화하기엔 역량이 부족…”
“일단,만나보죠.”
강윤이 자신의 말을 끊자 이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그를 바라보았다.
끝 >
“새로운 연출가를 키우려는 거라면 찬성이지만. 굳이 월드 스테이지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월드가 만들어진 이래,가장 큰 프로젝트를 검증 안 된 신인에게 맡기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강윤이 기획을 꽉 잡고 있어도 연출가가 별로라면 공연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최찬양 교수는 말을 보랬다.
“출연하는 가수도 많고,모두 스타일도 제각각이에요. 다른 공연보다도 연출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요.”
모두 일리 있는 말들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이사님. 내일 만나볼 생각이었는데,같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겠네요.”
다음날.
클래식 소속 연출가 공호진이 월드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깡마른 체구에 눈꺼풀 없는 눈매를 한 그녀는 큐빅이 박힌 뿔테안경을 고쳐 쓰며 회장실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공호진 연출가는 두 사람을 힐끗 훑어 보았다.
보조연출가로 일할 시절,강윤과는 여러 번 대면했지만,이현지와는 처음 마주하는 자리였다.
‘장난 없네.’
이사라는 직함 때문일까. 자신을 보는 눈매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허리를 세워앉은 자세가 특히나 꼿꼿했다.
다과가 나오고 가벼운 근황이 오간 후 강윤이 본론을 꺼냈다.
“이번 콘서트를 공감독한테 맡기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강윤이 기획안을 내밀었다.
공호진 연출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켜보던 이현지의 눈매가 더욱 가라앉았다.
기획안을 읽던 공호진 연출가의 표정도 점점 굳어갔다.
“만만치 않겠네요. 출연진 많은 것도 그렇고. 시간만 따져 봐도 4시간은 거뜬히 넘을 것 같아요. 아니,5시간도 넘어갈지도…”
강윤에게서 직접적인 질문이 날아들자, 공호진 연출가는 침묵했다.
회사에서 거대한 프로젝트가 있을 거란 소문은 들었지만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현지가 턱을 괜 채,서늘하게 눈빛을 쏘았다.
“공감독에겐 다른 기회들도 많아요.”
저 이사는 미더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회장도 이사를 말리지 않고 있었고.
의도가 뭔지. 시험하는 걸까? 머릿속이 꼬여 갔다.
강윤이 말했다.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공감독이 이 콘서트를 감당할 여력이 되는 지만. 홍행 여부는 우리가 생각할 몫입니다.”
“그래도…”
“그러라고 저회가 있는 겁니다.”
강윤이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 말에 이현지가 눈매를 찌푸렸다.
“하여간.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요.”
강윤이 어깨를 으쓱이자 이현지는 타박을 이어갔다. 친구끼리 티격태격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차분해지며 생각도 정리 되어 갔다.
‘우리 가수들이라면… 자신 있어. 유리나 다른 가수들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공호진 연출가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강윤과 이현지도 그녀를 보곤 투닥대는 것을 멈췄다. 이현지가 강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결정했나 보네요.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지만…’
이현지가 짧게 한숨을 내쉴 때,공호진 연출가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과 달리,이현지가 안색이 굳었다.
“솔직히 말하죠. 난 공감독이 일을 맡는 게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해합니다. 전 이 정도 공연을 맡기엔 검증 안 된 신인이죠.”
“미안하지만,이사 입장에서는 좀 더 검증된 사람이 일을 맡았으면 해요. 서운하겠지만…”
쾅.
공호진 연출가가 탁자를 쳤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세요. 걱정하시는 거, 깔끔하게 날려드리겠습니다.”
“시간을 주면, 달라지는 게 있다는 건가요?”
“이사님뿐만 아니라,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획안을 가져오겠습니다.”
공호진 연출가의 목소리가 확신에 찼다. 잠시 고민하던 이현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기다리 죠. 하지만 알아둬요. 지금 주는 일주일은 공짜가 아니라는 걸.”
“각오하고 있습니다.”
“회장님도 따로 도와주면 안 됩니다. 여자들끼리의 약속이기도 하니까.”
묵직한 과제를 안고 공호진 연출가는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간 후, 강윤이 물었다.
“후하군요. 지금 우리한테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 아닌데…”
이현지는 창가로 돌아서선,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기분탓이었을까요. 좋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닐 수도 있지만. 회장님은 계속 다른 연출가도 알아봐주세요. 모르는 거니까.”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칼 같은 사람이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다음날,아침 일찍 공호진 연출가는 회장실로 왔다. 기획안을 바탕으로 콘티를 쓰기 위해서였다. 강윤이 메일로 보내준다고 했지만,기획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직접 찾아온다고 했다.
문 비서가 내온 차를 마시며,두 사람은 머리를 싸댔다.
“순서 같은 건 제가 알아서 짜면 되는 건가요?”
강윤은 고개를 끄덕이자,공호진 연출가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회장님이 생각한 것도 있을텐데.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으시잖아요. 미국에서 공연할 때도…”
강윤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난 연출에서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공감독이 전문가죠.”
연출에 대한 전권을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공호진 연출가의 눈빛이 한층 진중해졌다.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속하죠. 또…”
강윤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콘서트을 위한 공연장을 놓고 이야기하는데,공호진 연출가는 의문점이 생겼다.
“계약한다는 구로 피달레(fidale) 센터는 규모가 작지 않을까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돔 콘서트장을 작다고 하긴 그렇죠.”
공호진 연출가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동안 월드에서 진행해왔던 프로젝트들이 워낙 거대했던 탓에 2만 명이 작게 느껴진 탓이었다.
강윤은 펜을 들고 여백에 설명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공연에서는 어느 콘서트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강윤의 말마따나 들어가는 예산도 엄청 났다. 일반 콘서트 2개, 아니 3개도 너끈 히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니 말이다.
긴장이 더해진 탓일까.
공호진 연출가의 안색이 점점 굳어 갔다. 그녀의 지친 기색을 느낀 강윤은 펜을 내려 놓았다.
“고생했습니다. 팀 구성은 최 사장님이 도와주실 거고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 줘 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회장님.”
공호진 연출가가 돌아간 후,강윤도 회장실을 나섰다.
그날이후.
강윤도 본격적으로 콘서트 기획업무에 나섰다. 공연장 섭외를 마치고,장비 대관 업체 선정과 스폰서 섭외를 시작했다. 이미 강윤의 명성이야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어 대관 업체 선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스폰서 섭외는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콘서트 규모가 작군요. 월드 회장님이 직접 나선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그 동안 큰 규모의 야외 콘서트들을 생각했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작아진 콘서트를 보곤 선뜻 협찬을 결정하지 못했다.
“아시다시피,저희 팬층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해외 팬들을 위해 관광업체와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죠. 홍보에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때 개최하는 대형 콘서트가 있기도 하니까…”
강윤은 일주일 내내 사장,이사 등과 만나며 섭외에 나섰지만, 섭외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한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는 당혹스러운 제안까지 해왔다.
“아,이런 조건은 어떨까요? 월드 스테이지? 여기 앞에 저희 회사 로고를 넣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기업 마케팅 이사의 제안이었다. 강윤은 순간 화를 낼 뻔했지만 참았다.
주도하는 입장도 아니고,마케팅에 숟가락만 얹어서 가겠다는 속셈이라니. 애써 거절했지만, 며칠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약속한 시간이 됐다.
강윤은 공호진 연출가와 이현지가 있는 이사실에 앉았다.
“어디 보죠.”
이현지는 공호진 연출가가 가져 온 서류를 펼쳤다.
무대 디자인부터 콘티 등 내용이 많았다. 안경까지 쓴 이현지는 서류를 자세히 살폈다.
‘깔끔하네?’
LED로 무대 바닥을 덮는 디자인으로 가수들마다 차별화를 둘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가수들과는 언제 만나서 이야기 했는지 가수들의 무대 연출도 정밀했고,가 수의 특징과도 맞아 떨어졌다.
‘설마?’
이현지의 고개가 강윤에게 휙 돌아갔다. 설마,공 감독 혼자서 이 정도로 일을 해냈다고? 납득이 안 됐다.
미심쩍어하는 이현지를 향해,강윤은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공호진 연출가가 말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구로 피달레 센터를 가정해서 연출 했습니다. 오프닝은 에디오스로,마무리는 모두의 합동무대로…”
설명을 듣는 내내 이현지의 눈썹이 꿈틀 댔다.
공연에 대해 전문가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가수 매니지먼트의 이사였다. 풍월 이상은 읊을 능력이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묻고,따져 봤지만 흠 잡을 곳이 없었다.
“… 회장님이 보기엔 어땠나요?”
결국 이현지는 강윤에게 눈을 돌렸다. 강윤은 찻잔을 내려 놓고 서류를 넘겼다. 한 장 한 장,넘어 갈 때마다 서류를 넘길 때 마다,공호진 연출가의 눈빛이 흔들렸다.
검토를 마친 후,강윤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준열이 노래할 때,관객석의 조명을 모두 끌 때가 있군요. 이유가 있나요?”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노래하는 겁니다. 이준열의 무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부분입니다.”
강윤은 펜을 들고,이준열이라고 적힌 콘티에 뭔가틀 적어나갔다.
“이준열은 관객이 눈에 들어와야 타오르는 스타일입니다.”
“아…”
공호진 연출가는 김빠진 소리를 냈다. 가수의 특징을 생각하지 못해서 벌어진 실수였다.
강윤은 페이지를 넘겨 디에스의 여백에 또 글씨를 적어나갔다.
“디에스 같은 경우,특히 김진경은 반대 입니다. 윤혜린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이 장치. 3미터 정도 되겠군요. 이런 곳에는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미미하게 목소리를 떠니까요.”
공호진 연출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가수의 특징을 파악 못해서 엉뚱한 콘티를 써버렸다. 이런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일주일 내내,가수들을 쫓아다니며 연구했는데,무색해졌다.
한숨짓는 공호진 연출가에게 강윤은 미소 지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군요. 같이 일 하기엔 충분합니다.”
순간, 공호진 연출가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현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최선을…”
“최선이 아니라,잘. WELL.”
“당연하죠.”
이현지의 무서운 덕담에도 공호진 연출 가는 기뻐 했다.
월드 스테이지의 연출에 공호진이라는 신인이 들어앉는 순간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강윤의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있었다.
콘서트 준비에만 매달리다보니 처리 못한 일들이 산더미였다. 덕분에 오늘도 야간이었다.
‘이츠파인은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니까.’
보고서를 보며 강윤은 혀를 찼다.
현재 파인스톡에서 운영하는 이츠파인도 있고,바다도 있었다.
이츠파인이 둘로 쪼개진 상태.
월드가 파인스톡 대신 세이스와 손을 잡으면서 이츠파인은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지만,그 자리를 지예가 감쪽같이 메꿨다. 그와 함께 이츠파인의 변화가 시작 됐다.
먼저 기존에 주력 이었던 초고음질 서비스에 추가요금이 필요해졌다.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성 했던 인디 뮤직 서비스도 사라졌다. 이츠파인이 가져 가던 이익을 30%대에서 40% 수준으로 올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방송 VOD 서비스를 도입 했지만, 이츠파인을 이용했던 사람들에겐 별 소용 없는 서비스였다.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소수였다.
강윤의 안색이 어두웠다.
‘…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야. 음원 서비스는 잘 들을 수 있게 해줘야지.’
이츠파인의 몰락이 순식간이 진행되니, 참… 씁쓸했다.
쾅.
갑작스럽게 문이 열렸다. 놀랄 법도 했지만, 강윤은 담담히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연주아.”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주아는 뚱한 얼굴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좀 놀라기도 해라. 밤인데,퇴근 안해?”
“밤에만 찾아오는 넌 뭐고?”
서로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컴퓨터를 끈 후, 강윤과 주아는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모처럼 마시는 맥주맛에 두 사람 모두 시원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캬아. 이 맛이지. 오빠. 나…”
“왜? 원 사장님 때문에?”
“그건 됐어. 계약하기로 했거든.”
강윤이 놀라는 사이,주아는 500cc나 되는 맥주를 단번에 비워버렸다.
“호오,그래?”
“생각보다 일을 잘 따오더라고. 나 하고 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엄청 해. 그래서…”
주아는 한참이나 원진표에 대해 늘어놓았다. 강윤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을 무렵, 주아가 헤실대며 강윤을 바라보았다.
“헤헤. 콘서트한다며?”
“왜? 끼워달라고?”
“아니. 내가 왜?”
주아는 도도하게 웃고,술잔을 내밀었다. 강윤은 잔을 부딪히며 맥주틀 비웠다.
또 다시 500cc나 되는 맥주를 비워버린 주아는 강윤을 보며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오빠 콘서트에 가수 하나만 꽂자.”
” 뭐?”
“연주아라고 예쁘고,실력도 좋고… 아야야야야야!!”
강윤은 조용히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를 비벼 버렸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