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73
105화 – 파이널 스테이지,그 시작(5) >
월드 클래식 댄스팀 오디션이 있은 지 이틀이 지났다.
강윤의 손에는 최종 선발된 15명의 명단이 들여 있었다.
합격 자들의 경력사항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MG 출신들이 많군요.”
새롭게 댄스팀 장으로 일하게 된 인래성 팀장은 커피를 마시며 이유를 설명했다.
“MG 출신들이 기본기가 탄탄했습니다. 무엇보다 지예가 어떤 조건을 들이 대도 혼 들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게 컸죠.”
“하긴.”
강윤도 인정했다. 그도 지예가 걸핏하면 사람들 빼가려는 게 신경 쓰였으니까. 하지만,걱정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12명이 같은 출신이면 다른 3 명이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군요.
한국에서 출신은 무시하지 못한다. 자칫 파벌이라도 생길까 걱정이었다.
인래성 팀장은 강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실력을 최우선으로 선발한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하는 곳이 월드 잖습니까.”
강윤은 어깨를 으쓱이곤 도장을 찍었다.
파벌이 생기든,어쨌든 실력으로 뽑힌 사람들이다. 다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인사팀에게 계약서 준비하라고 전달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인태성 팀장이 나간 후,가수들 서류들을 점검하는데 문 비서가 들어왔다.
“회장님. 네이쳐 이모션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라고 하던가요?”
“한기영 이사라는 분입니다. 회장님과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강윤은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이강윤입니다.”
[이강윤 회장님이십니까? 안녕하세요. 네이쳐이모션 중국법인을 맡고 있는 한기영이라고 합니다.]강윤이 가지고 있는 투자,협찬 리스트 최상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네이처이모션은 한국에서도 1,2위를 다투는 화장품 회사였다.
매개가 없어서 연결이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간단한 말들이 오간 후, 본론이 나왔다.
“우연히 나온 그림이 괜찮아서 올려본 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런 분위기는 배울 만 하죠. 아,이럴 게 아니라 같이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쳤다.
이현지에게 네이처이모션 이사와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리자, 톤이 확 올라 갔다.
“한기영 이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전화기에선 잠시 말이 없다가,진중해 졌다.
“신중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행동은 빠르죠.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장본인이에요. 네이처이모션 회장이 중국법인에 전권을 줄 정도로 신뢰하는 인물이죠.]
“만만한 사람은 아니 겠군요. 중국 쪽 입 맛 맞춰가며 사업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능력도 있고, 신중하다. 상대하기 어려운 유형이었다.
통화를 마친 후,강윤은 문 비서에게 네이처 이모션과 한기영 이사에 관한 자료를 구해오라고 했다. 모처럼 한산했던 책상이 다시 서류들로 북적댔다.
다음날,저녁.
약속시간이 되자 강윤과 이현지는 신사동에 있는 고급 와인바로 향했다.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한기영 이사와 흥보실장 김기철이 먼저 도착 해 있었다.
말끔히 다린 정장에 정돈된 짧은 머리까지. 흠 잡을 구석이 없었다.
강윤은 긴장을 감추는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이강윤입니다.”
“반갑습니다. 한기영입니다.”
가볍게 된 손이 이상하게 아파왔다. 부드러운 눈빛에선 힘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자 탐색전이 시작됐다.
단연 공통화제는 중국 사업이었다. 포문은 흥보실장 김기철이 열었다.
“중국 고객들은 매력이 있어요. 한사람이 상품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으면, 그대로 놔둬야 합니다. 곧 다른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오니까요. 두 사람이 같은 상품을 보고 있으면 또한 사람이 오죠. 그러면 그 날 장사는 다 했다고 봐도 됩니다.”
이현지가 맞장구를 쳤다.
“그 상품들은 묶음으로 파나요?”
“맞습니다. 처음엔 5개로 묶었다가 최근에 10개 단위로 묶어서 팔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더군요.”
“제가 제안 하나 해볼까요? 브로마이드들 하나씩 끼워주는 건 어떨까요?”
김기철 실장이 흥미를 보였다.
“오오, 그거 정말 괜찮겠는데요? 브로 마이드라. 민진서 브로마이드라도…”
이현지가 분위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그걸 안 한기영 이사는 잔을 들며 맥을 끊었다.
“하하하. 건배할까요?”
반갑다는 말과 함께,네 사람은 와인잔을 부딪혔다. 잘 끌어가던 분위기가 살짝 어그러졌다.
한기영 이사는 잔을 내려 놓으며 강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세이스에 을라 온 영상은 참 좋았습니다. 가수와 경영진이 같이 노래를 한다라.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흥보는 그런 식으로 해야죠. 핸드폰으로 촬영해서 더욱 자연스러웠어요.”
말은 부드러웠지만,연출된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풍겼다.
강윤은 여유롭게 웃었다.
“하하하. 맞춰 보시겠습니까?”
“후후. 글쎄요. 전 잘 모르겠더군요.”
한기영 이사는 잔으로 입가를 가렸다. 이현지가 강윤을 보며 능청을 떨었다.
“전 영상을 찍는 것도 몰랐어요. 가수들도 기사가 나서야 알게 됐죠. 덕분에… 카드 값 좀 나가시지 않았나요?”
“하하. 덕분에 초상권 교육 제대로 받았습니다.”
연출이 아니라는 걸 간접 적으로 밝히며 , 강윤도 맞춰 너스레를 떨었다.
와인 잔 부딪히는 맑은 소리와 함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모두의 얼굴에서 적당히 취기가 올랐을 때, 한기영 이사가 말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우린 월드와 좋은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강윤과 이현지는 잔을 내려놓았다. 이후가 중요했다.
한기영 이사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이번 콘서트에 한해서 지만요. 월드와 지예, 두 회사가하는 콘서트를 보면 단연 지예의 콘서트가 더 큰 건 사실이니까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이현지도 동의 했다.
한기영 이사는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아니라는 거군요.”
“자화자찬 같지만,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기철 실장이 말을 보탰다.
“규모를 놓고 보면 월드는 40억, 지예는 100억 규모입니다. 관객 수를 봐도 월드는 2만 명, 지예는 약 11만 명 규모죠.둘 다 매진이라는 가정을 한 거지만요. 차이가 확연한데도 이 자리에 나온 건, 영상에서 본 월드의 분위기를 이사님이 아주 좋게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한기영 이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은 걸 보여 달라는 간접적인 압박이기도 했다.
강윤은 한기영 이사 쪽으로 의자를 끌었다.
“공연 예산의 60%. 24억 정도를 투자 해주시겠습니까?”
“…네?”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투자 가치를 의심하고 있는데 요지는 알아듣긴 한 건지.
한기영 이사가 혀를 차는 가운데,김기철 실장이 답했다.
“회장님. 아직, 저희는 투자를 결정한게 아닙니다. 일단…”
“민진서와 이혜미를 이번 신상품 모델로 계약하겠습니다.”
“헙 !!”
김기철 실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진서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모델이었다. 아무리 거액의 모델료틀 불러도 함부로 촬영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사실상 히든카드나 마찬가지. 거기에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이혜미까지…
한기영 이사도 눈매를 좁히는 가운데, 강윤은 말을 이어갔다.
“하야스 백화점과도 자리를 주선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명품 브랜드 입점도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크흠…”
지금 하야스 백화점의 명품관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 하야스 백화점의 류양 이사와 이강윤이 친밀한 관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중국에선 꽌시 없이 사업하긴 힘들다.
처음으로 한기영 이사의 표정이 흔들렸다.
욕심은 났지만, 망설여졌다.
‘속셈이 뭐지?’
상대의 카드는 짐작했지만 한 번에 다 던져버릴 줄이야.
그 만큼 이 콘서트가 중요하다는 말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던 한기영 이사는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좀 더…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당장 결정하는 건… 힘들군요.”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후,확답을 주기로 하고 그날의 모임은 끝이 났다.
구로 피달레 센터는 지어진 지 1년도 안 된 다목적 홀이다. 서울시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만든 야심작이었다.
평소에는 농구,배구 등 실내 경기장으로 쓰였다. 대여를 통해 공연도 이루어져 야 했지만,팍팍한 규정 탓에 제대로 공연이 이루어 진 적은 없었다.
덕분에 공호진 연줄가는 고생에 고생을 더해야 했다.
“… 죄송해요. 화약 사용허가를 못 받았어요. 일단 샷(금은박 테이프) 쏠 자리는 봐놨고요. 청소요? 그건 일단…”
특수효과 감독과 쩔쩔 매며 통화를 끝내고,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또 핸드폰이 울려 댔다. 이번에는 음향감독이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불퉁하게 들려오자,공호진 연출가는 달래기에 바빴다.
“하얀달빛이 ‘완(完)’ 편곡 버전을 안 보냈다고요? 3시까지 보낸다고 했는데… 알았어요. 바로 연락해볼게요.”
빨리 편집곡을 들어 봐야 어떻게 PA(관객에게 쏘는 스피커)를 맞출지 알 수 있는데.
하얀달빛에게 연락해서 음향감독의 민원을 해결한 후에도 그녀의 전화는 계속 불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그녀를 찾아댔다. 덕분에 쪽방과 무대를 왔다 갔다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쪽방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좀 찾아아…’
이제야 연출 디테일 좀 검토 해볼라 하는데,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문이 열리는 걸 보며 활짝웃었다. 어깨 넓은 남자가 들어섰다.
“회장님!!”
이전과 다른 진심이 나왔다.
기획자,드디어 기획자가 왔다!!
강윤은 눈까지 그렁대는 공호진 연출가의 등을 다독였다.
“미안합니다. 투자협찬 때문에 좀 오래 돌았네요.”
“아니에요. 그나저나,어떻게 됐나요?”
강윤은 네이처이모션 한기영 이사와 만난 결과를 이야기 했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공호진 연줄가는 어깨를 늘어뜨렸다가, 이내 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직접 나섰는데, 당연히 잘 되겠죠. 그럼, 갈까요?”
파이팅이 넘쳤다. 강윤은 웃으며 그녀와 함께 공연장으로 향했다.
강윤이 오자, 한창 작업 중이던 스태프들은 작업을 멈추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강윤은 고생한다며 격려한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효과 감독님. 화약하고 토치 (불기둥)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사용허가 받고 왔어요.”
“진짜요? 바로 설치하면 됩니까?”
특수효과 감독,이현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방염작업만 철저히 해달라고 하네요. 여기서 콘서트가 처음이라 결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알겠습니다. 방염이 뭔지 보여드릴팅게.”
이어 장치팀 감독, 장민석이 앞으로 나섰다.
“회장님. D 출입구에서 무대 쪽으로 와이어를 걸려고 하는데…”
강윤은 공호진 연출가의 등을 떠밀었다. 공호진 연출가가 강윤을 바라보자 손짓으로 답을 대신했다. 네 일이라는 의미였다.
“D 출입구에 거는 건 힘들다고 말했잖아요. F출입구에 걸어 달라고…”
“거기에 걸면 그림이 안 산다니까요.”
“그림 만 생각할 수 없어요. D 출입구에서 시작하면 경사가 심해져져서 위험하거든요.”
장치 감독은 툴툴댔지만,결국 수긍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 회의는 1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회의가 끝난 후,강윤이 카드를 꺼내들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모처럼, 가볼까요?”
“이강윤!! 이강윤!!”
강윤에 환호하는 건지,카드에 환호하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스태프의 사기는 높이 치솟았다.
————-
“… 회식을 했다? 그렇군요. 자유롭지만 마냥 풀어진 것은 아니고… 알겠습니다. 고생했어요.”
한기영 이사는 통화틀 마치곤,일어섰다.
“꾸며진 분위기는 아니라는 거군. 지금의 월드를 맨 손으로 일궜다는 게,허명은 아니었어.”
그는 책상 위의 검은 파일을 집어 들었다.
‘월드 스튜디오 이강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서류를 빠르게 훑은 후,옆에 있던 서류를 들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이 사람은 사업적 눈은 있는데 마인드가 형편없어. 중국쪽 투자자들은 돈 냄새만 잘 맡는 건가.”
‘지예 강시명’이라는 이름의 서류를 넘기며 한기영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시명은 당연히 성공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동업자였던 원진표를 댓글 조작혐의로 이사회에서 축출해버렸다는 내용을 보니,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 김 비서. 전화 연결해주겠나?”
시간은 있었지만, 결정을 내렸다.
끝
환웅 올림픽 주경기장.
11만 명 이상을 수용 가능한 국내 최대 경기장이다. 근처에 지하철역이 2개나 있고, 왕복 10차선 도로에 버스정류장까지 갖추어져 있어 접근성도 좋았다.
내부시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여료가 비싸다는 것만 빼면 공연장으로 최고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높은 천장 위엔 스피커가 올라갔고,무대 아래에선 기획팀 스태프들이 물을 돌리며 바삐 돌아다녔다. 현장 스태프들은 라인을 까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더 빅 스테이지의 총괄 기획자,이토 료타는 무대감독 김영환과 함께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다. 옆에는 통역을 하는 기획팀 직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동선을 더 짧게 하려면 대기실이 가까워야 합니다. 기존 대기실이 너무 멉니다. 이동 동선이 길어지면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무대 뒤편에 대기실을 하나 더 짓는 건 어때요? 컨테이너 3개 정도 설치해서. 그러면 괜찮을 것 같은데?]커튼이나 쳐줄 줄 알았는데,무대감독으로선 반가운 일이었다.
연출가 류마 카이토도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스크린 쪽에 레이저를 단다고 하셨습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레이저 설비 업체에서 나온 사람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번에 바닥에도 다 설치해 달라고 하셔서…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 같습니다 만.”
스태프들이 웅성 댔지만,연출가 류마 카이토는 평이했다.
‘… 아주 들이 붓는구나.’
‘그림 하난 끝내주겠네.’
그림에 올인이라도 한 건지.
예산을 관리하는 기획팀 스태프가 울상 이었다.
같은 시간, 강시명은 현장에 방문한 협찬,투자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돈을 쓰는 사람이 항상 갑인 법이다. 그 들은 누가 봐도 ‘갑이다’라는 걸 알 수 있게 포스를 뿜으며 공연장을 돌았다.
강시명의 입은 꿀이라도 바른 양 달달하게 열릴 때, 앞에 있던 젊은 남자가 찬 물을 끼얹었다.
하여간,그 놈의 중화…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다.
중국에서 사람 쓰면 투자자들이 좋아한다는 거,당연히 알고 있었다. 장비부터 콘티까지 모조리 베껴 대니 안 쓴 것뿐이었다.
마음의 소리와 다른 말을 내뱉으며 강시명은 사람 좋게 웃었다.
현장답사가 끝난 후, 투자자들은 경기장을 나섰다.
모두가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던 민머리 이사가 강시명에게 물었다.
날짜 겹치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시선이 강시명에게로 쏠렸다. 잠시, 머뭇대던 강시명은 입가를 그윽하게 들어올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강윤은 기획사 사장으로선 실격인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니까요.]모두의 얼굴에 궁금함이 어렸지만,강시명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월드와 네이처이모션의 협찬, 투자계약이 체결됐다.
네이처이모션은 투자는 물론,콘서트를 보러 온 모든 관객들에게 핸드크림과 선크림을 제공하기로 했다. 월드는 민진서와 이혜미의 네이처이모션 중국 신상품 모델 계약과 함께,하야스 백화점 류양 이사 와의 자리도 주선했다.
월드,네이처이모션,세이스 세 회사의 합작투자로 콘서트 자금문제와 실패에 따르는 리스크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수고했어요.”
네이 처이모션 측과 도장을 찍고 돌아온 이현지는 소파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강윤도 맞은편에 앉아 힘 없이 어깨를 늘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큰 산 하나는 넘었네요.”
“… 그러게요. 이제 남은 건 뭐죠? 티케팅인가요?”
“조금 있다가 생각합시다…”
강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이현지는 동의하곤 눈을 붙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늘어져 있던 강윤이 자세를 바로 잡고 일어났다. 이현지도 깨어나 목을 돌렸다.
“슬슬 티케팅 날짜를 정해야겠군요.”
강윤은 달력을 집어 들었다. 이현지도 동의했다.
“그래야죠. 느낌이긴 한데, 먼저 티케팅 일정을 정하면 지예가 또 따라붙을 것 같네요.”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겁니다. 그랬다 가는 여론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겁니다.”
지예가 벌인 콘서트 규모가 훨씬 컸다. 날짜도 겹친다.
여기에 티케팅 날짜까지 겹치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는가. 아무리 라이벌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정당하지 못하다며 역 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하긴. 그런 수단을 쓰기에는 이젠 한계죠. 아무튼 지긋지긋하네요. 따라쟁이들.”
“풋”
강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냉정 하던 이현지가 그렇게 한 마디씩 던질 때 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티케팅에 적함한 날을 체크 했다. 3주 후,수요일이었다.
이현지는 탁상달력을 집어 그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세이스틀 통해 선 오픈 하고, 금요일에 정식 오픈하는 거였죠?”
“네. 그리고 세이스 TV에서 유료로 생방송도 진행 할 겁니다.”
“알겠어요. 카메라는 그쪽에서 제공하기로 했었나요?”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피로감이 찌든 얼굴을 흔들어대며 이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볼게요. 조금이라도 쉬어야겠어요.”
“네. 내일 뵙죠.”
“회 장님은… 아,AHF.”
이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밥 버스 오프닝 촬영 때문에 하경락 PD 가 방문한다고 했었다. 방송국 실세인 김재호 부사장도 함께 온다고. 덕분에 강윤도 공연장으로 가야 했다.
연장근무였지만, 강윤은 웃었다.
“항상 하던 일입니다. 푹 쉬십시오.”
미안해하는 이현지와 헤어진 후, 강윤은 회사를 나섰다.
문 비서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공연장으로 가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 비서. 우회전 차선을 타야죠. 그쪽으로 가면 종로예요”
“아, 맞아!!”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 차선을 타야 했는데 직진차선을 타버렸다. 덕분에 차는 직진,퇴근길 종로로 진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최고의 교통지옥으로 입성 해 버린 것이다.
강윤이 바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문 비서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 때문에…”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죠. 거기 골목으로 들어가서…”
강윤은 내비게이션을 끄게 한 후,직접 길 안내에 나섰다.
언덕을 오르고, 차 한 대 밖에 지나가지 못할 좁은 길도 지나다 보니 빠르게 종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우와. 회장님. 이런 길도 있었어요? 역시,회장님은…”
뒤편에 펼쳐진 교통지옥을 바라보며 문 비서는 탄성을 질렀다.
“앞,앞.”
” 넵!!”
허둥대는 문 비서를 보니 강윤의 머릿 속에 운전대틀 잡고 시간싸움을 벌이던 매니저 시절이 떠올랐다.
‘시간 참 빠르네.’
상념에 잠겨있다 보니,차는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 위에선 인문희가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고, 아래에선 ‘AHF’라고 적힌 카메라 가 놓여 있었다. 하경락 PD는 모니터를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쪽에선 공호진 연출가가 AHF 방송국의 김재호 부사장을 상대하며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방송국에 자주 들락거린 그녀로선 방송국 부사장인 김재호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회장니임-!!”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들어가 버렸다. 그 외침이 천진하게 느껴져 김재호 부사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강윤은 공호진 연출가를 다독이곤,그에게 다가갔다.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부사장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재호 연출가는 강윤과 손을 맞잡았다.
“하하하. 회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공호진 연출가가 쪽방으로 들어간 후, 강윤은 김재호 연출가와 함께 무대 쪽으로 향했다.
“다음주 밥 버스 오프닝 때문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구경도 할겸,겸사겸 사 와봤습니다. 요새 유리가 효녀 역할 톡톡히 하잖습니까.”
김재호 부사장이 웃자, 강윤도 마주 웃었다.
밥 버스 방송이 시작되고,인문희에겐 ‘꿀잠녀’부터 ‘노옙퍼 서른 살’ 수많은 타이틀이 붙었다.
알람 10개를 맞춰놔도 제시간에 못 일어나고, 잘 하지도 못하는 랩을 했다가 큰 웃음을 주는 등 온 몸 바쳐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구수한 트로트 가락으로 분위기 까지 잘 띄우니…
인기가 고공 행진했다.
타이밍 좋게 월드는 인문희의 미니 앨범도 냈고,결과는 인문희의 바쁜 스케줄로 나타났다.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리는 인문희를 보며 김재호 부사장은 턱가에 손을 올렸다.
“마침 회장님도 만났으니 잘 됐습니다. 숟가락 좀 얹어야겠습니다.”
“하하하.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닙니까?”
강윤은 웃으며 그를 사무실로 안냈다. 김재호 부사장은 월드의 콘서트를 AHF에서 방송하기를 원했고, 강윤도 긍정적으로 답했다.
추가적인 건, 실무자들끼리 논의하기로 하고 결론을 맺었다.
하나하나,필요한 것들이 갖추어져 가고 있었다.
월드에서 가장 바쁜 사람 누구 뭐래도 강윤이었다.
국내외를 누비며 경영과 현장 모든 곳에서 두루 활약하는 월드의 핵심이었다.
그 다음으로 바쁜 사람은 민진서였다.
월드에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 다주는 연예인이기도 한 그녀는 일본, 중국을 넘어 베트남까지 진출했다. 전용기틀 타고 아시아 전역을 누벼 배우 지망생들에겐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중국시간으로 아침 6시 30분.
월드의 전용기, G320은 베이징 상공에 있었다.
“… 언제 봐도 결론이 마음에 안 들어.”
‘금지된 사랑’이라고 적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민진서는 한숨지었다.
책을 밀어놓고 쉬려는데,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벨트를 매고,잠깐 어지러움을 느끼고 나니 베이징 공항이었다.
민진서는 편한 류리닝에서 데님셔츠로 갈아입었다. 협찬이 들어온 의상이었다.
매니저를 앞세우고 게이트를 나서니 공안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민진서는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흐음?’
평소라면 가볍게라도 웃어주던 이들이 오늘따라 더욱 무표정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매니저의 재촉에 서둘러 수속을 마치곤 입국장에 들어 섰다.
수많은 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환호성에 민진서는 손을 들어 답했다.
[민진서다!!] [야!! 붙어!!]매니저가 이상한 기류를 느끼곤 민진서에게 바짝 붙었다. 민진서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곤 매니저 뒤에 숨었다. 평소라면 손만 흔들어도 환호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격앙된 느낌이었다.
마치 성난 군중처럼.
‘진서야. 빨리 가자. 공안들도 빨리 가래.’
‘알았어요.’
민진서 일행의 걸음이 빨라졌다.
[배신자!! 네가 어떻게…]공항을 빠져나가는데,공안 뒤에 있던 군중들의 거친 소리가 들려 왔다.
‘배신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배신자라니 . 서둘러 공항을 나서 대기하던 차에 오르려는데,모자를 깊이 눌러 쓴 남자가 민진서에게 다가왔다.
[진서 씨. 소속사 회장이랑 사귄다던데, 사실입니까?] [네? 그게 무슨…]다짜고짜 달라붙은 남자를 매니저가 떼어내는 사이, 민진서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뒤에서 군중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다행히 일행은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제야 스태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진서야. 일단 호텔에 가 있자. 사장님께 보고하고,오늘 스케줄은…”
매니저가 민진서를 달래고 있는데,뒤에서 핸드폰을 하던 스타일리스트가 소리 쳤다.
“진서야!! 너 기사 떴어!!”
“이상한 거라도 떴어요?”
“참나. 어이가 없어서. 완전 개어이. 이강윤 회장님이랑 너랑 사귄다는 기사야. 잠깐. 뭐,뭐야,이 사진은? 진짜 진서 같…”
민진서는 스타일리스트에게서 달려들어 핸드폰을 멧어들었다.
– 민진서♡이강윤, 배우와 소속사 회장의 몰래한 사랑. 비밀 데이트 현장…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사진 한 장이 개재 됐다.
한참 전에 대학교에서 강윤과 함께 손을 잡고 걷던 사진이 찍혀 있었다.
“하…”
민진서는 그대로 차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음악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