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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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107화 – 더 큰 세상을 향해
강윤이 콘서트 티저 영상에 매달릴 때, 원진표와 이한서 이사는 지예의 소액주주 들을 찾아갔다.
“당신과는 더 할 말이 없어요.”
지예의 소액주주 중 대표격인 임대선은 원진표를 벌레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북하시다는 거 압니다. 그래도 10분, 아니 5분만 제 이야기를…”
“아, 진짜 질척대네.”
쾅. 철문이 닫혀버렸다.
원진표가 벨을 누르려 하자, 이한서는 벨에 가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겠네요.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원진표의 축 쳐진 어깨를 이한서는 쓴 얼굴로 다독였다.
이전에 있었던 댓글부대 사건 때문인지 지예 관계 자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입구를 나서며,원진표는 아파트를 돌아보았다.
“… 괜찮습니다. 될 때까지 해보죠.”
어느새 원진표의 어깨는 당당히 들려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이한서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월드 스테이지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트로트 가수 유리가 돔 콘서트장에 무대를 갖는 영상이었다.
스캔들로 인해 월드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지만,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 법.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 세이스 상단에 노출된 배너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배너를 누르자,초고화질로 30초 동안 인문희의 무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은빛에서 금빛으로 변해가던 그 순간이었다.
– 악플 달러 왔는데… 마음이 정화되었다.
– 이번 건 별로네요. 100번 밖에 안 봤습니다.
– 윗분 말에 동의요. 저도 500번 밖에 안 눌렀습니다.
금빛의 영향력 때문일까.
티저에 대한 반응은 어이없을 만큼 폭발적이었다.
– 이강윤은 마음에 안 드는데… 콘서트는 끌린다.
– 진서야아… ㅠㅠ
– 저 아재도 장가는 가야죠. 근데 진서는 안 되는데…
물론,반응이 다 좋지만은 않았다.
특히 가까이에서.
“이 나쁜 놈아!! 편집할게 따로 있지!!날 통으로 잘라내냐?! 우와!!”
티저를 보자마자 주아는 스케줄 중간에 공연장으로 달려왔다. 신입 때도 이런 굴욕은 없었다며 강윤의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래서 문희가 잘 했어, 못했어?”
“짱이 긴 했지만… 중요한 건 날 왜 자르냐고!! 내 말은…”
“가장 좋은 무대를 내보낸 것뿐이야.”
네 무대보다 문희의 무대가 나았다는 말 이었다.
자존심에 사정없이 스크래치를 내버렸다. 주아는 입을 닫고, 눈에서 레이저를 쐈다.
“…두고 봐. 오빤 내게 모욕감을 줬어.”
주아가 씩씩 대며 공연장을 나가버리자, 스태프 하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강윤에게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주아 자존심은 모두가 알아주잖습니까.”
“괜찮습니다. 저 애는 진짜 프로거든요.”
스태프들은 혹여나 성깔 부리는 건 아닌지 걱정 했지만, 강윤은 태연했다.
이틀이 지나고, 티케팅 날이 됐다.
프로덕션팀이 무대 정비에 한창일 시간, 기획팀은 쪽방에 모였다.
강윤은 모니터를 돌려 모두가 보기 편안하게 해주었다.
“…자,잘 되겠죠,팀장님?”
“눈깔 처박고 보기나 해.”
긴장에 떨던 기획팀 막내는 팀장에게 욕을 먹곤 수그러들었다.
사이트가 열리고 티케팅이 시작됐다. 모두의 눈이 모니터로 향했다,오늘은 선 판매다.
T자형 무대 양 옆의 VVIP좌석을 판매 했다. 선판매량에 따라 앞으로의 동향도 파악할 수 있기에 팀 사기나 전략 등에도 매우 중요했다.
‘느리네.’
침묵 속에 째각대는 소리만이 울려갔고, 하얀 좌석은 변함이 없었다.
강윤 옆에 선 이현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조금이라도 떨림을 멈추기 위함이었다.
20분째, 좌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씹..’
망했다.
가슴 졸이던 팀장은 강윤과 이현지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 되겠어요. 세이스에 연락해서…”
이현지가 나서려던 그때.
하얀좌석 들이 붉은 색깔로 꽉 차버렸다. 마치 그림판에서 페인트칠하듯 순식간에.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팀장이 막내를 밀었다. 막내는 재빨리 F5를 눌렀다.
잠깐의 버퍼링과 함께 화면이 나왔다. 모든 좌석이 붉은색.
티켓 판매 완료였다.
“우와아아—!!”
팀 원 모두가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한창 작업 중이던 프로덕션팀도 소리를 듣곤 쪽방안으로 들어와 만세를 외쳤다.
강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휴우. 이제 산 하나는 넘었네요.”
이현지도 그제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현지 뒤에 있던 직원은 전화를 받더니 실소를 머금었다. 통화를 마친 후, 이유를 말했다.
“사이트 열리자마자 중국 쪽에서 트래픽이 왕창 몰렸답니다. 그걸 디도스로 오해해서… 세이스에서 서버를 막았다고 합니다. 혹시 한국 쪽으로 들어오면 안 되니까 전부 다 막았다네요. 그런데 중국인들 항의 전화가 엄청나게 몰려들어서…”
아아.
강윤도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오해로 인해 티켓판매가 막혔었다는 이야기였다. 훔페이지가 막힌 시간을 빼면 2분도 안 되서 매진되었다는 말이었다.
팀원 모두가 탄성을 지르는 동안,이현지만이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강윤을 바라보았다.
“아직 메인 티케팅이 남았군요.”
“아마 별 걱정 없을 겁니다.”
강윤이 말한 대로였다.
며칠 후. 3분도 안 되서 모든 티켓이 매진되었다며 기사까지 났다.
강윤은 회식을 선언했다. 무려 한우. 모든 공연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쁨을 나눴다.
투자 한 네이처이모션의 이사, 한기영도 일을 마치고 참여 했다. 잔을 드는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오픈 3분 만에 매진이라니… 기사를 보고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내일 이사회에서 어깨를 펼 수 있겠어요.”
강윤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옆에 앉은 이현지가 말했다.
“어깨만 펴면 섭섭하죠.”
“하하하. 뭔가가 더 있는 겁니까?”
한기영 이사의 얼굴이 가운데로 향했다. 이현지의 목소리도 한층 더 은밀해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식은 계속 되었다.
—————
지예의 콘서트 더 빅 스테이지의 연출가,류마 카이토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티케팅? 30분 만에 모두 매진돼서 문제였다.
총괄 프로듀서 이토 료타와의 기싸움?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문제였다.
예산? 스태프? 지예에선 예산을 들이붓고,스태프들은 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한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저번에 말했잖아요. 나 이거 무서워서 타기 싫다니까요.”
류마 카이토 연출가는 무대 위의 슬라이딩(*무대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판)에서 내려오며 인상을 구기는 여가수를 보며 머리를 잡았다.
고민의 원인, 여자 아이돌 WINCLE의 비주얼이자 팬덤의 핵심인 진혜영이었다.
끓는 속을 국국 눌러 담으며 류마 카이토 연출가는 웃으려 애썼다.
“아아아.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난 못타니까 바꿔주세요.”
통역이 최대한좋게 풀어서 전달했지만, 분위기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만행에도 직원들은 그녀를 사기그룻 다루듯 조심하고 있으니,이해가 가질 않았다.
류마 카이토의 이성을 잡고 있던 끈이 끊어지며 온화하던 표정이 뒤틀어졌다.
절절매는 통역을 듣고도 진혜영은 코웃음을 쳤다.
“쪽바리 주제에 인상 쓰면 단줄 아네? 못한다고요. 안 해. 안 한다고.”
주변이 얼어붙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WINCLE의 리더, 오영지가 달려와 진혜영의 양 팔을 붙잡았다.
“얘가,얘가. 죄송합니다, 감독님. 얘가 스트레스 받으면 애가 날카로워지거든요. 죄송합니다. 죄송…”
“니가 뭔데 지랄이야?”
진혜영은 폴더 마냥 숙여대는 오영지를 밀어버렸다.
“꺅!!”
오영지는 그대로 무대 아래로 나가떨어졌다.
놀란 스태프들이 달려오고,공연장은 뒤집어졌다.
총괄기획자 이토 료타까지 나섰지만,진혜영은 ‘쪽바리’라는 망언을 퍼부어대며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강시명이 진혜영을 데리고 나가니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차 안에서,강시명은 그녀틀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혜영아. 감독님들한텐 얌전히 굴라고 했잖아.”
“아,자꾸…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 시켜대잖아요.”
진혜영은 입술을 삐죽대며 몸을 꼬았다. 강시명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끌어 안았다.
“그래그래. 힘들었구나? 우리 혜영이.”
“에헤헤. 사장님밖에 없어요. 저,근데용… 그 쪽바리들은 어떻게 안되여? 연출도 별로고, 지휘하는 것도 이상하고…”
강시명은 기가 찼다. 지가 뭘 안다고 일본 최고의 공연기획자와 연출가한테 뭐라하는 건지.
그녀의 양 팔을 잡고 밀어냈다.
“쪽바리라니. 총괄PD님하고 연출가님이야. 자꾸 그렇게 말하면…”
진혜영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이런 식이면 나 확 다 불어버…”
“아아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시간을 줘. 알았지?”
“헤 햇.”
진혜영은 강시명을 끌어 안았다. 팬들을 빠져들게 만든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걸친 강시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빨리 치워야겠어.’
‘남자들 생각이야 뻔하지. 붕신.’
—————–
인천공항, 입국장.
엄마 손을 잡은 남자아이는 정면을 가득 메운 카메라를 가리켰다.
“엄마. 저 사람들도 우리 아빠 기다리는 거야?”
카메라 양 옆으로 노란 띠가 쳐져 있었고,뒤쪽은 군중들로 가득했다.
엄마는 아이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민우야. 엄마 손 꼭 잡아.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엄마는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카메라부터 뒤의 사람들까지. 아이 아버지 때문에 공항을 자주 들락거리긴 했지만, 이렇게 붐빈 경우도 드물었다.
“이강윤이다!!”
군중 사이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카메라들과 군중들이 일거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몰려 갔다.
입국장 문이 열린 것도 그때였다.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빠도 일행 가운데에 있었다.
“아빠아!!”
카트에 캐리어를 싣고 오는 남자를 보자마자,아이는 남자에게 달려 갔다.
“웃차아. 우리 민우, 잘 있었어?”
“응!!”
남자는 아이를 끌어 안고는 높이 들어올렸다.
해후를 나누는 가족 옆에 벙거지 모자 를 놓러쓴 여자가 다가왔다. 운동화와 함께 펑퍼짐한 바지,티를 입은 여성이었다.
“오빠 아들이에요?”
“응. 아들. 인사해. 진서 누나야.”
“우와아… 예쁘다.”
벙거지 모자를 올린 민진서의 얼굴을 보자 남자아이 눈이 반짝였다.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버튼을 누르니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 팀장님. 10번 출구 쪽으로 오시랍니다.
남자는 아들을 내려놓고,민진서를 데리고 10번 출구로 향했다.
10번 출구 쪽으로 가니 회사 동료들과 전 회장,강윤이 있었다. 전 회장은 카메라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과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는 강윤을 보자,민진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사람들이 진짜…”
민진서는 벙거지 모자를 벗어버리곤 강윤에게로 향했다.
“민진서다!!”
카메라와 군중들이 일거에 민진서에게로 몰려들었다.
남자는 민진서의 옆에 바짝 붙었다. 공항 가드들도 민진서의 옆에 바짝 섰다.
간이 세트장에서 있던 강윤도 서둘러 민진서의 손을 잡아 세트 쪽으로 끌어올렸다.
‘대현 팀장님. 진서 데리고 밴에 가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죄송합니다.’
카메라 시야 밖으로 물러 나며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강윤이 매니저 팀장인 자신을 보낸 이유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는데,실패라니.
민진서가 강윤의 팔을 붙잡았다.
‘대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제가 온 거니까요. 저기 카메라 보세요.’
강윤은 한숨을 쉬며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플레시들이 계속 터지고 있었다.
아직은 어색하게 플테시를 받는 강윤과 달리 민진서는 프로의 눈빛으로 받아 넘기고 있었다.
기자 한 사람이강윤 쪽으로 마이크를 댔다.
“두 분사이를 인정하고, 첫 공식일정인데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비밀연애에서 공개연애로 전환하니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이었다.
강윤은 멋쩍게 웃었다.
“이거 참… 쑥스럽네요. 관심을 이렇게도 가져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부담도…”
“그 동안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오고 있었어요.”
난데없이 핵폭탄이 떨어졌다.
강윤과 기자 등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끝
‘진서야, 너…’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갖가지 감정이 뒤섞인 눈빛을 마주하며, 민진서는 강윤의 손을 꼭 잡았다.
‘금방 끝내고 올게요.’
민진서는 강윤에게 돌아서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 쪽으로 걸어갔다.
양 손을 들자,소란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플래시까지 멈추자, 민진서는 외쳤다.
“이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연기를 사랑하는 만큼 여기 이강윤 회장님을 오랫동안 바라봤고, 앞으로고 그럴 거라는걸.”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드는 중에 민진서는 다시 한 번 외쳤다.
“다들 궁금한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 말씀드리고 싶지만, 중요한 공연을 앞 두고 있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럼.”
민진서는 돌아서서 강윤의 손을 잡았다.
기자들이 잠시 멈칫한 사이, 직원들은 강윤과 민진서 곁에 바짝 붙어 입구를 뚫기 시작했다.
“진서 씨!! 하나만 답해주세요!!”
“민진서 씨!!”
10번 출구는 민진서와 어떻게든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들과 제지하려는 가드들과 의 전쟁이 벌어졌다.
소란을 뚫고 일행은 입구에 있던 밴을 타고 공항을 벗어 났다.
인천대교를 벗어날 즈음에서야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윤은 안색을 굳히곤, 민진서를 바라 보았다.
“기자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하… 앞으로 이미지는 어떡하려고.”
“상관없어요.”
평소라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을 민진서였지만,오늘은 달랐다.
“위약금이 생기면 제가 다물게요. 회사에 끼친 손해는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서 갚을게요. 하지만… 하지만,오늘 일은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진서야. 회사도 회사지만…”
민진서는 강윤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직원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강윤은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다.
“진서야. 사람들 있는데…”
“어때요. 사람들 다 아는데. 그죠?”
민진서는 스태프들 모두와 눈을 마주치자,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강윤은 그녀를 떼어 놓으려 다 그만두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회사를 생각하면, 혼을 내야 했는데 남자 입장에서 보니 또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강윤은 어깨에 젊어진 것이 많았다. 허리를 꼭 끌어안은 민진서를 떼어 놓았다.
“… 서운하게 들리겠지만,네 행동 때문에 월드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도 있었다는 거 , 알지?”
민진서의 눈이 커다래졌지만, 강윤은 단호했다. 그제야 민진서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거렸다. 알고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었을 뿐이다. 그걸 몰라주니…
저런 벽창호 진…
‘심장 멎는 줄 알았다. 좋아서.’
강윤의 얼굴이 귓가에서 멀어져갔다. 민진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강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공개됐어도 입장이란 게 있는 법이다.
민진서는 창가로 눈을 돌렸다.
‘진서가 저렇게 적극적이었어요?’
‘낸들 아냐. 근데… 회장님 진짜 부럽다. 크윽…’
앞좌석에서 백미러로 뒤를 보던 두 남자는 가슴을 부여 잡았다.
민진서가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 여배우의 공개 사랑고백, 팬들 가슴에 비 내려?
– 귀국 후 공항에서 회장님 사랑한다, 민진서 고백 파장 예상
– 여배우의 고백,말 없던 이강윤. 짝사랑?
강윤의 손을 잡고, 공개 고백을 해버렸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잦아들었던 여론이 다시 불타올랐다.
민진서가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는 여배우인 것이 컸다. 팬들을 상대로는 제대로 염장질까지 해버린 꼴이었기에 남성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성팬들은 달랐다. 사랑을 택하고,행동하는 용기가 멋지다며 오히려 팬이 늘고 있었다.
이런 집계를 들고, 월드의 흥보팀장 강용진은 이사실에 보고를 위해 올라갔다.
“…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몰리진 않았군요. 항의 전화도 없었고.”
이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그렇습니다. 이 추,추세라면 금방 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호, 호의적인 기사도 요,요청했고…”
“강 팀장. 아직도 내가 무섭나요?”
이현지가 노려보자 강용진 팀장의 등이 꼿꼿해졌다.
—————-
월드 스튜디오 연습장에선 하얀달빛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목을 풀고 있던 이현아는 이차희에게서 민진서의 소식을 접했다.
“아… 하하. 대단하네. 그 애.”
이현아의 맥 빠진 얼굴을 보더니 김진대가 돌리던 드럼스틱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현아. 왜 그래? 그날… 이야?”
이차희의 손바닥이 김진대의 등에 스매싱을 날렸다.
평소라면 적당히 하라며 말렸겠지만, 이현아는 무시한 채, 씁쓸히 웃었다.
‘처음부터 안 되는 싸움을 했던 거구나.’
같은 시간.
HMC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케줄을 수행하던 정민아는 GNB의 걸그를 허니민트의 하예리에게 민진서의 소식을 들었다.
“하하!! 이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하하하하!!”
정민아는 복도의 의자에 주저 앉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재꼈다.
공개고백을 했다는 건, 배우를 포기할 각오까지 했다는 이야기였다. 민진서 만큼 연기를 좋아하는 애는 거의 없었다.
“졌어,완전히 졌다고. 춤까진 못 버리는데… 하하하하!!”
주아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지독한 패배감이 몰려왔다.
눈가를 가린 손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언니…”
하예리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우왕좌왕했다.
수년 간, 한국 가수 기획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젠 업계 1위가 된 월드와 치고 을라가려는 지예, 거기에 중국에서 무섭게 규모를 키워가는 업계 3위, 윤슬 엔터테인먼트까지.
사람들은 신 3대 기획사라고 불렀다.
여기에 부동의 4위를 유지하고 있는 GNB 엔터테인먼트가 있었다.
그곳의 사장. 한영숙은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를 보고 있었다.
“… 특별한 게 필요해. 여기서 더 해외진출이 늦어지면 우리가 설 자리마저 사라질 거야.”
보고서를 올린 직원은 침묵했다.
세계는 넓다지만, 진출할 기반을 닦는 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월드와 지예, 윤슬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사이 GNB는 빈자리를 메우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걸그룹 허니민트와 나엘이 1위를하는 등,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해외였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나엘을 일본에 진출시켰으나 첫 앨범이 오리콘 차트 100위안에도 들지 못하는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어떻게든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보겠다며 나엘은 혹독하기로 소문난 일본 예능 순회에 나서며 분투하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미미했다.
허니민트나 남자 아이돌, UNI도 같은 신세였다.
고심하고 있는데,전화벨이 울렸다.
– 사장님. 이강윤 회장님 오셨습니다.
직원이 나가고, 비서가 강윤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섰다.
차와 함께 마주앉은 후, 한영숙 사장은 먼저 말을 꺼냈다.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얼굴은 더 좋아진 것 같네요.”
“일이 줄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 이젠 회장은 아니고, 총괄 프로듀섭니다.”
호칭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월드의 실세는 이강윤이었으니.
빙빙 돌던 이야기가 중심으로 가기 시작했다.
강윤이 말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라. 어떤 건가요?”
“사실,부탁은 아닙니다. 협박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네요.”
한영숙 사장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 일단 듣고 말하죠. 협박이라.”
강윤의 얼굴에서 웃는 상이 사라졌다.
“지예와의 모든 관계를 끊으십시오.”
쾅.
한영숙 사장은 탁자를 내리쳤다.
“무례하군요. 월드가 아무리 큰 회사라 지만,이런 식으로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어요.”
“A-Trust와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한영숙 사장은 순간 멈칫했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나온 탓이었다.
A-Trust는 월드의 가수 유리의 엔카 앨범을 성공시켜 거대 기획사로 거듭났다.
이젠 A-Trnst의 프로듀서가 유리의 한국 앨범까지 참여할 정도라고 들었다. 거기 프로듀서가 특히 유리가 없으면 못산다는 건 유명했다.
“현재 GNB에 가장 필요한 게 어떤 건지를 생각하고 판단하시길.”
한영숙사장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손해 볼 건 없었지만, 이대로 상대에게 끌려 가면 앞으로도 끌려 갈 게 뻔했다.
상대가 준비한 판에서 지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좋은 제안해주신 거,감사드려요. 일단 생각해보고…”
“지금 답을 주십시오.”
“이봐요.”
한영숙 사장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
“이대로 나윤이 같은 아이를 오리콘 밑 바닥만 돌게 만들 생각입니까?”
“나윤이가 실패할 거라고 자신하시는군요. 우리끼리는 아예 못할 거라고 자신하시는 건가요?”
“확신합니다. 제가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한영숙 사장은 멈칫했다.
상대는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프로듀서였다.
하지만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자존심 문제였다.
“앨범이란 건 나오기 전에는누구도 알 수가 없어요. 우리 나엘이도…”
“결국 언제 뜰지도 모른 채,이대로 계속 굴리다가 내보내겠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며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 났다.
단호한 태도에 놀란 한영숙 사장은 얼른 그의 손을 붙잡았다.
“새, 생각할 시간을 줘요.”
“시간은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한영숙 사장은 천천히 강윤의 손을 놓았다.
다행히 생각할 시간까지 방해하지는 않았다. 강윤은 소파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한영숙 사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들어보죠.”
“허니민트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강윤은 웃었다.
“하는 김에 UNI까지 말해보죠. 한 사장님만 확실하다면 말입니다.”
그제야 한영숙 사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답답했던 해외진출에 활로가 열리는 순간 이었다.
악수가 오간 후, 강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한영숙 사장이 말했다.
“진혜영에게 도는 소문 들어본 적 있나요?”
지예의 걸그를,WINCLE의 센터 멤버였다.
강윤이 고개를 젓자, 한영숙 사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 어찌 됐든 진짜로 한 배를 타게 됐으니 말씀드리죠. 뜬소문이긴 한데,그 진혜영이란 애와 관련된 상납 리스트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문이긴 하지만…”
강윤은 GNB 엔터테인먼트를 나섰다.
‘…그래. 뜬소문이겠지?’
머리가 복잡했다.
상납 리스트라니. 무슨 리스트인지는 뻔 했다.
막말은 물론,월드의 신입 매니저를 폭행 시비에 휘말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예랑 때부터 콧대 높고, 스태프에게 함부로하는 걸로 소문났다고 들었다. 비주얼이 워낙 탁월해 인기는 좋았지만,행실이 좋지 않아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판단 했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막바지 리허설이 한 창이었다.
스태프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강윤은 무대 감독을 붙잡고 물었다.
“아아. 공감독님이요? 진서 씨 와서 쪽 방에 있을 겁니다.”
무대 감독이 쪽방을 가리켰다.
쪽방에 들어가니, 공호진 연출가와 민진서가 있었다.
“선생님.”
민진서는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공호진 연출가는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강윤이 온 이유를 물으니 민진서가 당연한 듯 답했다.
“저도 한 손 거들고 싶어서요.”
“콘서트를? 어떻게?”
“뭐든 좋아요. 쓰레기도 줍기도 좋고요, 저기. 의자라도 나를게요.”
공호진 연출가가 곤란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특함과 난감함이 교차했다. 쓰레기를 줍게 할 수도 없고,무대에 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출연은 안 대요. 안돼…’
공호진 연출가도 민진서 뒤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강윤은 민진서를 데리고 3층 야외로 나갔다.
“출연이 힘들다는 건너도 알고 있지?”
강윤은 그녀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 절대 아니에요. 저 아시잖아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민진서는 우물쭈물했다.
물론,알고 있었다. 진서는 그런 여자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강윤은 조용히 타일렀다.
“마음만 받을게. 무대는 우리한테 맡기고… 정도움이 되고 싶으면, 흥보를 해 줘.”
“흥보요? 전 SNS도 안하는… 아. 팬 카페.”
민진서의 머리가 반짝였다.
강윤은 손을 내려 놓고 말을 이어 갔다.
“진서 네가 해야 할 일을 알겠지? 나만 봐준다는 건 기쁘지만, 팬들을 잊으면 안 돼. 넌 배우잖아.”
“그렇… 죠. 맞아요,그건.”
“자,알았으면 고고.”
강윤은 민진서의 등을 떠밀었다.
그녀가 아래로 내려 가는 발소리를 듣고, 강윤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부드러운 무언가가 강윤의 뺨에 부딪혔다.
“이걸 잊고 갔더라고요. 담배는 적당히.”
계속 웃음이 세어나왔다.
민진서가 돌아가고,강윤은 무대로 돌아왔다.
막 드레스 리허설을 끝낸 은 가수들은 숨을 몰아쉬며 앉아있었고, 스태프들은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모두 일어나려는 걸 강윤은 제지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지나고… 일주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강윤은 고개를 숙였다.
“저 때문에 모두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다들 잘 해주고 있으니 든든합니다.”
“우리 회장님 연애도 하고 그래야지. 일 만 하다가 보낼 순 없으니까.”
주아가 무심히 내뱉은 말에 공연장은 뒤집어졌다. 강윤은 멋쩍게 웃었다. 김지민이 눈을 빛냈다.
“저기, 회장님도 연애하시는데,저도 연애… 하면 안 되나요?”
옆에 앉아있던 서한유의 눈에 불이 켜졌다.
“절대 안돼. 하지마.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 동물인데.”
“하하하하.”
모두에게 스캔들 같은 건 이미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강윤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원진표였다.
용건을 물으려하는데,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 회장님!! 성공했습니 다!! 임대선. 소액 주주 대표자 이쪽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끝
기쁨에 원진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같이 소액주주 대표를 찾아가 무릎 까지 꿇어가며 얻은 성과라고 했다.
강윤의 얼굴도 밝아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걸로 그 사람을 몰아낼 세력을 만들 수 있겠네요.”
소액주주들이 가진 지분이 30%였다. 경영권을 다투기엔 부족했지만,반 강시명 전선을 형성하기엔 충분했다.
– 이걸 기반으로 기관하고 외국 투자자들을 설득하면 50% 이상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강시명 그 놈을 지예에서 내 쫓을 수 있을 겁니다.
강윤은 조심 하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이후, 연습이 재개됐다.
주아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하얀달빛,김지민의 무대로 이어졌다. 보랏빛 조명 아래,환한 은빛이 공연장 전체로 퍼져가고 있었다.
2층의 음향믹서 앞에서 지켜보던 강윤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윤솔 씨가 와이어 탈 때,타이밍이 조금 늦는 것 같군요.”
– 그런가요. 역시… 감독님. 약간만 빨리 올려주세요.
공호진 연출가의 답변에 장치 감독은 바로 콘티에 체크하며 무대를 조절해갔다.
수정을 한 보람이 있는지,이전 무대엔 보이지 않던 금빛 일렁임이 눈에 들어왔다.
1부의 마지막, 이준열과 김재훈의 듀엣이 진행되고 있는데 공연장에 이현지와 팀 엔티엔이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이현지는 엔티엔 멤버들을 데리고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인사시켰다. 폴더 인사를하는 소녀들을 스태프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엔티엔 멤버들은서둘러 무대 의상으로 환복하곤 무대에 올랐다. 초대가수 이후에 진행될 정민아의 솔로무대 때문이었다.
이어 무덤덤한 얼굴로 정민아가 무대에 올랐다. IEM(인이어모니터)를 체크하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할 만도 했지만,엔티엔 멤버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녀들에겐 첫 데뷔무대였다.
“괜찮아. 긴장들 풀고.”
이현지와 책임자 진혜리가 을라와 엔티엔 멤버들의 얼굴과 등을 다독이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쫄지 마. 별 거 없어.”
효과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더 이상의 배려는 없었다. 무대감독의 신호가 떨어지자 스태프들은 무대 위에서 썰물같이 내려갔다.
정민아가 눈짓을 하자, 음향감독은 믹서를 올렸다.
BPM150의 빠른 댄스곡이 흘렀다. 정민아는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며 골반을 튕겼다.
빠르고 유연해야하는 곡이었기에 쉽지 않은 곡이었지만,그녀에겐 낙승이었다.
‘뭐야? 제법이네?’
맞춰줄 생각에 양 옆을 보는데,후배들이 칼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특히 바로 옆에 선 정유리라는 꼬마는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이것 봐라?’
안무가 점점 어려워 졌지만,칼군무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강윤 옆에 선 이혁찬 안무가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애들이 자발적으로 밤 샌 연습을 해왔습니다. 민아 선배하고 동작 맞추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면서요. 처음엔 이것들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 지 고민했었는 데…”
“모두가 노력한 덕분입니다. 저 정도면 본격적으로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될 것 같네요.”
이현지와 진혜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제불능이라며 자전거 여행을 빙자한 훈련을 보낸 것도 컸지만,그런 팀이 콘서트 무대에서도 될 정도로 탈바꿈했다.
“진 팀장. 이후에도 잘 부탁합니다.”
“아… 네, 네. 물론입니다!!”
엔티엔 데뷔도 잘 부탁한다는 말에 진혜리의 눈은 의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
콘서트 개최 2일 전.
강시명은 가수들의 모든 스케줄을 빼고 콘서트 준비에 매달리게 했다. 공연 하루 전까지도 지방 스케줄을 보냈던 과거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일이었다.
분위기를 직감한 직원들이야 2시간 전에 출근하며 비상체제에 들어갔고,평소 지각을 일삼던 몇몇 가수들까지 10분 전에 나오는 등 성의를 보였다.
한 사람은 예외였다.
더 빅 스테이지의 총괄 프로듀서,이토 료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금방 올 거예요. 애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매니저 오빠도 같이 있으니까…”
[그 말한지 2시간이 지났어요.]같은 WINCLE의 멤버이자 동갑내기 김윤미와 통역직원은 어떻게든 포장하려 애 썼지만, 이토 료타의 노기를 가라앉히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리허설 1회차가 끝나고 재차 묻는 거였으니 변명도 무색했다.
2회 차가 끝나갈 무렵,연습이 시작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진혜영은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진한 향수와 화장,생글생글한 미소로 스태프들에게 손을 혼드는 꼴에 이토 료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연습 시작한지 4시간이 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아,또 뭐래.”
귀를 파대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통역하는 직원마저도 굳어버렸다.
보다 못한 김윤미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타일렀다.
“혜영아. 이,이러면 안돼. 빨리 잘못했다고…”
“미친. 착한 척 오지네.”
코웃음 친 진혜영은 김윤미를 밀어버렸다.
“꺅!!”
김윤미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이토 료타는 못 해먹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고는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함께 온 연출가 류마 카이토도 함께 나가버렸다.
총책임자와 연출가가 보이콧을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소식은 강시명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고 있을 때라, 태연한 척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지요. 그럼,다음에…”
결국 예비 투자자를 날린 강시명은 피 눈물을 흘리곤 이토 료타에게 달려 갔다.
[이토 씨한테 반항하는 가수라니. 상상도 안되는군요.]A-Trust의 대표,코지마 마코토는 이토 료타의 말에 의아해했다.
[제대로 미쳤어요.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을 만나봤지만… 그런 가수, 아니 조센징은 처음이었습니다.] [이토 씨. 표현이 좀…] [상관없어요. 먼저 쪽바리라고 하는 사람에게 예를 지킬 이유는 없죠. 얼굴하곤 다르게 입은 격이 떨어지네요. 감싸기만 하는 사장도 이해가 안 가고…]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토 료타는 한숨은 깊어만 갔다.
콘서트 하루 전.
구로 피달레 센터 앞엔 발전차를 비롯한 여러 차량이 모여 있었다.
강윤은 평소와 달리 오후 3시에 리허설을 마쳤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가수들을 돌려보냈고, 점검을 마친 스태프들도 하나 둘씩 퇴근시켰다.
“수고하셨습니다.”
음향 감독이 돌아간 후,강윤은 1층 VVIP석에서 조명 감독의 메모리 점검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는 AHF의 부사장,김재호가 앉아 있었다.
“카메라가 부족하진 않지요?”
강윤은 김재호 부사장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충분합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 잘 되자고하는 거니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콘서트를 특별 편성해서 송출하기로 했다. 방송편성은 강윤도 숙고한 끝에 승낙했다. 이후 출시할 DVD 판매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방송 시간을 1시간으로 조절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방송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김재호 부사장은 돌아갔다.
조명 감독의 부탁으로 무대 아래에 섰을 때,이현지에게 전화가 왔다.
– 그때 말한 진혜영에 대한 걸 알아봤어요.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초룡전’을 연출했던 왕치앙(또强)과 이상할 정도로 자주 붙어 다녔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파란 조명이 노란 빛으로 변해갔다. 강윤은 말을 이어갔다.
“연기 경력도 없는 아이돌에게 500억 대작인 드라마 주연 자리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주인공으로 계약 까지 맺었던 여배우를 밀어내고 들어간 거니… 그런데도 이상하게 조용했습니다. 진서 때 같았으면…”
강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민진서가 자신의 작품을 무시 했다는 중국 작가의 한 마디에 민진서는 배우 생활을 마칠 뻔 했다.
그런 곳에서 한국 배우가 자국 배우를 밀어 냈는데도 조용했다니. 수상했다.
– 심증은 가지만… 좀 더 알아보고 이야기하죠. 냄새가 나네요.
통화를 마친 후,강윤도 무대 감독의 부탁에 따라 무대 여기저기를 옮겨다녔다.
모든 일을 마치고,공연장을 나서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비 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밖으로 손을 내민 무대감독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데요.”
조명 감독도 심각한 얼굴로 날씨어 플을켰다.
‘맑음’이라고 돼있던 일기예보는 ‘비’로 바뀌어 있었다.
일주일,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맑음이었기에 당혹스러웠다.
“회장님. 저기…”
무대감독은 입구를 가리 켰다. 설상가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우산없이 그대로 비를 맞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윤은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야야. 이강윤이다, 이강윤.’
‘일 엄청 한다더니 진짠가 봐.’
줄 선 사람들은 달려온 강윤을 보끈 수군댔다.
매표소를 지키고 있던 직원도 놀라서 달려 왔고,감독들도 따라왔다.
강윤이 말했다.
“입장시간까진 한참 남았는데 벌써 오셨습니까.”
“VVIP석 빼면 지정석이 아니잖아요.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일찍 와야죠.”
빗속에서도 사람들의 눈에는 생기가 있었다.
“어?”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기 시작했다. 모두 강윤을 보곤 연예인이라도 본 듯 반응하는 건 똑같았다.
강윤은 직원에게 물었다.
“당장 준비 된 우비가 얼마나 있습니까?”
“스태프용으로 50개 정도 있습니다.”
앞쪽에 있던 사람이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럴 때 비도 맞고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도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강윤은 직원과 함께 우비를 가져왔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대략 30명 정도 됐다. 예비용까지 하면 적당할 것 같았다.
감독들까지 합세해 우비를 가져왔는데, 사람이 두 배는 늘어 있었다. 50개로는 턱 없이 모자랐다. 조명감독의 차에 있던 우비 20개를 얻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문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강윤은 급한 대로 근처 편의점의 우비와 우산까지 모두 털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쯤 되니 처음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진짜 회장 맞아? 회장이 이렇게까지 해?’
‘물러났다잖아. 월드 공무원이라며? 서비스 장난 없네.’
빗줄기는 굵어 졌지만, 강윤의 분투는 계속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현지와 직원들이 천막을 구해왔고 급히 설치하기 시작했다. 흠떡 젖은 직원들의 모습에 사람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같이 하죠.”
10여명 남짓했던 직원들이 순식간에 수 백 명으로 불어났다. 덕분에 천막을 모든 펜스에 설치할 수 있었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직원들이나 팬들 모두 옷은 홀짝 젖어 버렸지만,사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이대로 있으면 감기 걸려요. 번호표 드릴 테니까 찜질방에서 몸이라도 녹이고 오 세요. 옷도 세탁소에 맡겨놓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이현지는 강윤을 째려보았다.
“물론 여기 회장님이 쏘시는 겁니다.”
강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음이 지나가고,강윤은 고개를 숙였다.
“이른 시간부터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굵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퍼져나갔다.
월드의 콘서트,월드 스테이지는 모두의 분투로 시작되었다.
———–
환웅 올림픽 주경기장 입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다는 표현이 들어맞았다. 지예의 직원들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해서 외주 업체까지 동원해야 했다.
10만이 넘는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지만,강시명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하여간,보이는데는…”
그는 직원이 가져 온 보고서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월드의 이강윤 전… 크흠. 빗속의 분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날,자정 부터 몰린 팬들이 비를 맞는 모습을 본 이강윤은… 미친.”
비 맞는 팬들을 지켜볼 수만 없어서 직접 천막을 설치했다나 뭐라나. 찜질방에 젖은 옷은 말려주기까지 ?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찌익. 강시명은 보고서를 찢어버렸다.
“이 새끼야!! 넌 뭘 멀뚱멀뚱 뭐하고 있어!! 가서 추첨권이나 더 돌려!!”
애꿎은 직원에게 불똥이 튀었다.
직원이 뛰다시피하며 문을 나서자,강시명 사장은 공연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무대에선 WINCLE의 마지막 리허설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래에선 연출가 류마 카이토가 지시를 했고,뒤에선 총책임자 이토 료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혜영, 저걸 빨리 치워버리던가 해야지. 저게 머리끝까지 기어올라선…’
강시명이 눈이 부르르 떨려 왔다.
무대 중앙에서 귀를 파는 진혜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젠 포기했는지 두 책임자는 그쪽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한숨짓고 있는데,전화가 걸려왔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중국어가 흘러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워 졌다.
인사를 나누고 용건을 묻는데,상대에게서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 우리 조연출이 그러더 군요. 누가 우리 이야기를 캐고 다닌다는데. 혹 알고 계신 거라도?
[에이. 감독님도. 캐봐야 나을 게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한동안 전화에선 말이 없었다. 강시명의 톤이 달라졌다.
[… 그거야,걱정 마십시오. 아무도 모르니까. 증거도 없고요.]– 그래야죠. 밝혀지면, 다 죽는 거니까. 조심합시다.
통화가 끝나고,강시명은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버렸다.
“… 그게 왜 우리 이야기야. 지 이야기지.”
어느새 리허설이 끝나고,어두워진 공연장엔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었다.
순식간에 들어차는 공연장을 보며, 강시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막이 내려가고, 스크린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카운트와 함께 중국의 아이돌 가수, TEPP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장을 뒤덮는 함성과 함께,더 빅 스테이지의 화려한 막이 열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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