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80
107화 – 더 큰 세상을 향해(完)(최종 화) >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원진표는 몇 번이나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같은 메시지가 흘러나을 뿐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힘겹게 외국인 투자자들까지 설득해서 자리를 만들었건만,소액주주들에게 위임 받은 임대산이 없다면 안건을 상정할 사람이 없어진다.
원진표가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이한서는 이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 왔다.
– 그쪽엔 사람을 붙여뒀어요. 두 분은 이사회에 집중해주세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한서는 원진표에게 이현지의 말을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원진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을라가려는데, 뒤로 한 무리의 정장군단이 섰다. 돌아보니 지예의 가장 큰 기관투자자 국민기금의 기관장과 수행원들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을라가는 동안 원진표는 기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겉도는 이야기였다. 원진표 일행은 회의실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탁자 끝에 소액주주 대표 2명이 앉아있었고,반대편에 영유희와 중국투자자, 그리고 현 사장 강시명이 있었다.
정각이 되자, 사회자는 회의용 망치를 들어 세 번 내리쳤다.
“주주 임대산님의 요청으로 소집된 12 월 임시 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임대산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사회자는 강시명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래도 주총을 소집하진 주주님이 출석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주총은 이것으로…”
원진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크 없이도 그의 목소리는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바쁜 분들이 모였는데,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내버리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시명은 뚱한 눈빛으로 직원을 쳐다보았다. 눈치를 보던 직원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주주님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지만,정관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주총을 의결한 주주가 출석하지 않았을 경우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직권으로 종료할 수 있습니다.”
원진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끝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힘겹게 얻은 기회였다. 어떻게든 명분을 생각해내야 했다. 옆에 앉은 이한서도 머리를 쥐어짜느라 앓는 소리를 냈다.
기관장은 원진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멀찍이 앉아있던 백인 남성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원진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직권으로 종료할 수는 있지만, 시작하고 최소 2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부관이 있죠. 바쁜 스케줄이 있는 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요.”
“그건…”
직원은 애처롭게 강시명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사장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또렷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폐회가 아닌 휴식이 선언됐다.
‘제발, 이사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원진표는 간절히 빌었다.
—————-
진혜영이 일으킨 스캔들은 9시 뉴스에 까지 보도될 정도로 파급이 컸다.
한국 연예인이 중국에서 뜨기 위해 입에 담지고 못할 행동을 했다며,팬들은 얼굴을 붉혔다.
말은 많았지만,더 빅 스테이지의 홍행으로 막 비상하려던 지예에겐 된서리를 넘은 치명타였다.
짝!!
WINCLE의 숙소 거실에서 리더 오영지가 진혜영의 뺨을 올려불였다.
“무슨 짓이야!!”
진혜영은 오영지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이번에는 머리채를 잡히고 말았다. 오영지는 아예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녔다.
“걸레 닦는다. 미친년아!!”
“아파아!! 놔,씨바…!!”
멤버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누구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오영지는 진혜영을 바닥에 넘어뜨리고 을라탄 후, 뺨을 계속 올려불였다. 뺨이 달아오르고,입술이 터져나갔지만,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너 때문에,너 때문에!! 내 꿈, 내 시간!! 다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손을 휘두르는 오영 지에게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번 사건으로 윙클은 연예인으로선 치명상을 입었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눈빛은 잊혀지지 않았다.
한참동안 손을 휘두르던 오영지는 팔을 멈추고, 거칠게 숨을 골랐다.
“지는 달랐을 줄 아나.”
” 뭐야?!”
오영지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장을 보고 온 매니저가 급히 달려와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진혜영의 얼굴을 본 매니저는 그녀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이 모습을 숙소 앞을 진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멤버들 간의 불화설까지 나오니 진혜영은 연예계에서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
임대산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주주총회 이틀 전부터 강남의 5성급 호텔 스위트 품에서 머물렀다. 영유희는 하루만 머물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있으라고 했지만, 그냥 머물러 있었다.
밤새 고민하다가 주주총회 날 아침에서야 마음을 먹고 호텔을 나섰다.
체크인을 마치고 로비를 나서는데,한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얼굴을 구기고 노려보자 상대는 정중히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다.
‘월드 스튜디오 이강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까 마주치자 임대 산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은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임 대산은 팔짱을 끼며 으름장을 놓았다.
“원진표 뒤에 있는 사람이 당신인걸 압니다.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임대산의 굳은 태도에도 강윤은 여유로웠다.
“제가 설득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는군요.”
“궤변은 사양하죠. 바빠서 이만…”
“계속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탈 생각입니까?”
임대산이 멈칫하자,강윤은 말을 이어 갔다.
“솔직해지죠. 이번 지예의 주총에선 반드시 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번 이 아니더라도 강시명은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원진표 그 사람이 다시 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죠. 댓글부대를 운영했는데…”
강윤은 탁자위에 서류를 올려 놓았다.
원진표가 주도한 댓글부대가 강시명의 지시로 시작되었다는 진실을 적혀 있었다. 읽어가던 임대산은 밑에 적힌 제공자의 이름을 보고는 손을 떨었다.
“김민철? 이 사람까지. 이게 주총에서 밝혀지면 자기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거래를 했다고만 말씀드리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리를 보존해주겠다는 거래를 한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임대산은 망설였다. 그에겐 강시명 보다 더욱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자신을 호텔 스위트품에 숨겨 놓은 여자를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타이의 지원은 없을 겁니다.”
임대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영유희 본부장은 투자회사 복타이의 동사장 영즈첸의 딸이죠. 매우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로비 스캔들이 터진 회사에 더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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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분들을 더 붙잡고 있는 건 예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시명이 직원에게 눈짓하자 원진표는 초조해졌다.
개회를 알리는 회의용 망치를 두드린 지 2시간이 가까워졌지만,여전히 그의 전화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조금만,조금만 더…”
원진표의 말에 강시명은 코웃음을 쳤다. 옆에 앉아있던 영유희가 말했다.
“이미 2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원진표 씨. 충분히 배려를 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크윽…”
사람들을 보니 눈가에 날이 단단히 서 있었다. 이미 한계였다.
직원이 회의용 망치를 들었다.
“2시간이 지났으므로 주주총회 정관에 따라 취소되었음을…”
비서는 망치를 내리쳤다.
탕,탕.
세 번째 치려는데 문이 열리며 남자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뛰어 든 남자는 임대산과 강윤이었다. 그들을 본 강시명은 체면이고 뭐고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야!! 빨리 쳐,빨리!!”
옆에 있던 이한서가 직원의 팔을 잡았다.
힘싸움을 하는 동안, 임대산은 숨을 고르고 모두 앞에 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임대산입니다.”
영유회는 이마를 붙잡으며 책상위에 엎어졌고,강시명은 비명을 질렀다.
—————
“… 강시명 대표이사는 진혜영의 스캔들을 막지 못했고,또한 원진표 전 대표이사에게 댓글부대를 운영 했다는 모함을 씌웠다. 이에 재적인원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어 강시명 대표이사의 해임안을 가결한다.”
“… 거짓말이야!!”
탕탕탕.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지켜주던 망치 소리가 목을 죄어왔다. 강시명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회의실을 나서며 대주주들은 혀를 찼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스폰서는 너무 나갔지.”
“댓글부대도 저 놈 짓이야? 에이.”
입구에 선 원진표는 임대산과 함께 대주주들과 악수를 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임 대산에게 원진표는 포옹으로 답을 대신했다.
강윤의 어깨에 힘이 빠졌다. 이제 지예, 아니 MG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월드의 좋은 라이벌이 되어줄 것이다.
강윤이 돌아서려는데, 물건이 뒤엉키는 소리가 나더니 우악스런 손이 강윤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쳤다. 눈이 시뻘개진 강시명 이었다.
“무슨 짓입니까?”
“너,너,너!! 너 때문에!! 월드 같은 연예인들만 있었어도!!”
사람들이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강윤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강시명의 벌게진 눈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윤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못났군요.”
“이 새끼가!!”
강시명은 강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소리가 났지만,강윤은 여전히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 정도였던 겁니다. 내가 여기 애들을 데리고 있었다면, 달라졌겠죠.”
“이… 이…!!”
강시명 의 올라간 주먹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완벽한 패배였다.
강윤은 옷깃을 수습하고 지나치려는데, 이번에는 영유희가 가로막았다.
“설마 아버지까지 만났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그쪽 도움이 필요하던 상황이었는데…”
복타이,정확히 영즈첸의 힘이라면 중국에서 난 기사를 덮어버릴 수도 있었다.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 운을 잡은 게 실력이죠. 졌어요. 날 저런 머저리랑 같은 수준으로 보지 말아요.”
영유희는 강시명을 노려 보곤 강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내려 회의실로 몰려 들어갔다. 약간의 소란이 일더니 강시명이 수갑을 찬 채 남자들에게 붙들려나왔다.
수갑을 찬 강시명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강윤의 눈을 피해버렸다.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씁쓸하군.’
강윤은 강시명과 같은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았다. 지금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이후, 강윤은 강시명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
엔터테인먼트 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가수 업계 2위로 인정받는 지예의 강시명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진표가 복귀한 것이다. 복귀에 대한 의문조차 일지 않았다.
“내 자리로 돌아간 거지. 아무른 이젠 라이벌이네? 각오해.”
주아는 탁자 밑에서 꼬인 선을 푸는 강윤을 노려보았다. 등을 보이던 강윤은 피식 옷었다.
“넌 안 돼.”
“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물고를 냈겠지만, 상대는 강윤이었다.
탁자 밑에서 나온 강윤은 의자에 앉아 주아를 바라보았다.
“윙클 애들은 괜찮아?”
“아니. 그 진뭐라는 애 빼곤 다 불쌍하지. 그 애는 소송 걸어서 거지 만든다니까 위안삼아야지. 애들은 당분간 내가 챙기려고.”
모처럼 선배 노릇 한다며 강윤은 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아가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두 사람이 투닥대고 있을 때,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민진서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강윤에게 달려가 끌어 안았다.
“…난 안보이니?”
“어? 언니도 있었네요.”
“저거 일부러 그랬어. 분명해.”
민진서는 모를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김지민부터 에디오스, 김재훈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인문희까지 월드의 모든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이현지가 엔티엔 멤버들까지 들어서자 강윤은 엔티엔 멤버들을 앞에 불러 세웠다.
“엔엔디엔,유엔미앤!! 안녕하십니까!! 엔티엔입니다!!”
소녀 들의 활기 찬 목소리에 남자들의 입가가 양 끝으로 찢어졌다.
몇몇 남자들의 옆구리엔 불이 났다. 민진서의 고개도 강윤에게 휙 돌아갔지만 변화가 없었다.
“에너지가 넘치네. 데뷔 때라 걱정이 많을 거야. 선배들이 잘 챙겨주고…”
“저희 괜찮은데요.”
정유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껌뻑이며 강윤을 당혹스럽게 했다.
감효민도 끼어들었다.
“월드 가수되면 무조건 스타 되는 거 아니었어요?”
이연타가 터지자 강윤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가수들은 킥킥대기에 바빴다. 이현지도 끼어들었다.
“하긴. 누가하는 건데 당연히 잘 되지.”
“이사님까지…”
강윤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이현지는 오히려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별로에요. 음악의 신.”
“그러게. 세무얼한테 공인까지 받았잖아. 음악의 신.”
“그만들 해.”
강윤이 온 몸으로 부정 했지만 가수들의 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음신!! 음신!! 음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멈출 수도 없었다.
—————
… (중략) 이강윤. 그는 실패를 모르는 프로듀서고 작곡가이며 공연기획가다.
성공한 프로젝트만 따져도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모자란다. 그가 손을 댄 모든 프로젝트니까. 은하의 8개 앨범,에디오스 앨범과 싱글들,김재훈,유리에 앨범에 콘서트,편곡에 작곡한 곡들까지. 해외 유명 가수들의… (중략)그는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성공만 해서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질 거라는 사람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지금까지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나의 20년 가수생활을 걸고 확실히 말 할 수 있다.
이강윤,그는 음악의 신이다.
– 연주아 자서전,’꿈소녀’에서 발췌
끝
음악의 신 Outro – 7년 후
“아빠아!! 일어나아!!”
조금만 더 자면 안 될까? 어제 1시에 들어 왔는데.
속으로 빌어봤지만,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부에 묵직한 체온이 느껴진다. 힘겹게 눈을 뜨니 천진한 미소로 작은 악마가 옷고 있다.
“윤아,너.”
우악스럽게 작은 꼬맹이를 끌어 안았다. 항상 그렇듯, 아이는 내게 깊이 파고들었다.
김윤아.
진서의 얼굴과 내 눈빛을 닮은 우리의 아이였다.
“어어? 나 빼고 이러기에요?”
앞치마를 두른 진서 까지 달려 들었다. 오늘 아침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치이익– 타닥탁탁-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일정한 리듬으로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기염소 여럿이–”
맞추기라도 하듯,진서가 동요를 부르자주위로 음표가 휘감겼다.
아침마다 날 기분 좋게하는 광경이다.
“화투지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윤아야. 검은빛 나온다. 제발… 저 악동.
식사시간이다.
진서가 윤아에게 수저를 쥐어주며 내게 눈을 돌렸다.
“10시에는 나가야 해요.”
아,그렇지.
내 표정을 보더니 진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윤아의 수저에 반찬을 올렸다.
“하여간. 어제 엔티엔 녹음한다고 늦게 들어오시더니 그게 잊었어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니,윤아가 밥을 머금고 웅얼댔다.
” 어 아어제 배 게 주어 어어? 아아 또으으… (엄마 어제 화났다? 배게에 주먹질했어.)”
밥은 꼭꼭 씹어 먹고 말하렴. 진서 얼굴을 왜 빨개지는 건지.
윤아에게 간장비 빔 밥을 모두 먹이고, 진서는 그제야 샐러드를 우겨 넣었다. 최근에 또 드라마가 들어 왔다고 했었지. 손 많이 가는 7살 딸 엄마에 배우까지. 참 대단 하다.
“현지 언니는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연애는 언제 했데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던데요.”
“준열이도 장가갔는데,이사님이고 못 갈까.”
진서는 웃었다.
그 괄괄하던 준열이 부인이 한주연이 될 지 누가 알았겠어. 세기의 가수 커플이라며 기사가 쏟아졌었다.
우리? 살풀이를 워낙 잘해놨어야.
아무튼 오늘은 이현지,그러니까 월드 스테이션 마녀 이사님 시집가는 날이다.
상대는 경력사원으로 들어온 강준섭 대리다.
일도 잘하고, 싹싹하고 말꿈하게 생겼고, 동갑이다. 한 바퀴를 돌아도 동갑은 동갑이지 내가 설거지틀 할 동안 진서는 윤아를 씻기고,치장을 서둘렀다.
민폐하객이 되면 언니한테 혼난다며 화장도 열게 하고,수수한 옷 찾는다며 옷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아, 가는 게 민폐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이긴 하지.
결혼식이 열리는 서울의 U호텔에 도착 하니 희윤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우? 우리 윤아!! 잘 있었어?”
희윤이는 윤아를 번쩍 안았다. 윤아도 희윤이를 무척 좋아했다. 희윤이 옆에 있는 놈팽이도.
“웅웅. 재훈 삼초온..”
목소리 봐라,아주.
김재훈, 매제는 윤아의 볼을 꼬집었다. 저것들은 언제 붙어먹었는지,어느 날 결혼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재훈이야 괜찮은 놈이 이니까 허락은 했지만… 희윤이가 아깝지. 암암.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김지민과 인문희, 엔티엔 멤버들이 손을 흔들었다.
저기 김지민과 인문희는 세 번을,엔티엔은 두 번의 재계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중국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인문희가 답했다.
“한유랑 삼순이는 늦는다고 했고요. 릴리랑 리스는 거의 도착했데요.”
입구 쪽을 보니 신랑이 하객을 맞고 있었다. 내가 가니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진땀을 흘렸다.
일행과 함께 신부대기실로 들어갔다.
평소의 괄괄한 여자는 없고,순백의 신부가 앉아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마녀 이사가 맞았다. 겉이 아무리 바뀌어도 속은 변하지 않았다.
가수들이 결혼 축하한다며 호들갑을 떨자, 이현지 이사도 잘 보여주지 않던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도 여자이긴 한가 보다.
사진을 찍고 입구에 나가니 업계 사람들이 다가왔다. GNB의 한영숙 사장과 윤슬의 추만지 사장이었다.
“하하하. 이거 음악의 신께서 인간계에 왕림하셨군요.”
추만지 사장의 농담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영숙 사장도 동조했다.
“추 사장님도. 우리 신께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세요.”
알면 하지 마요,좀.
다들 표정은 좋았다.
GNB는 일본에서 나엘. 허니민트, UNI 까지 연달아 히트시키며 3대 기획사를 4 대 기획사로 확장시켰다. 추만지 사장은 중국에서 새로운 신인 가수 RYU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이야기 틀 이어가는데,익숙한 얼굴이 또 등장했다.
“이거 저만 빼 놓고. 섭섭 합니다.”
원진표 사장이었다.
그의 얼굴도 좋아보였다. 진혜영의 스캔들이후, 휘청이던 지예를 바로잡고 다시 메이저 기획사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주아까지 불러들인 공도 있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아. 우리가 힘을 합쳐도 월드 타도는 아직 멀었네요.”
한영숙 사장이 한숨지었다. 원진표 사장과 추만지 사장도 어깨를 으쓱였다.
3년 전부터 월드의 규모가 세 기획사를 함친 것보다 거대해졌다. 그때부터 세 기획사의 사장들은 가까워 졌다고 들었다.
타도 월드를 외친다는데,자세히는 모르겠다.
사장단과 헤어진 후 수많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없이 많은 악수를 한 통에 손이 부어갔다. 결혼하는 건 이현지 이산데,왜 내 손이 부어가는 건지.
신랑은 저기 있는데, 왜 다들 나한테 오는 건지. 말해봐야 소용은 없겠지만.
결혼식이 시작되자,열 틈이 주어졌다.
진서와 여가수들은 앞쪽에 앉아있었다. 자리를 찾아봤는데… 없네.
뒤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옆구리를 찔러왔다. 늦게 온다던 에디오스 멤버들이 있었다.
“다들 왔구나.”
주연이, 한유, 삼순이,에일리,크리스티 안까지.
소식 없는 그 애만 빼고 모두 도착했다. 이준열은 일본에서 투어중이라 오지 못했다.
“뭐야? 정민아 안 옴?”
“오겠어? 지 혼자 잘해보겠다고 나간 애가?”
에일리 정과 크리스티 안은 기가 찬 목소리로 투덜댔다.
누구보다 팀 워크가 좋은 그룹이 에디오스였다. 분위기도 좋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리더인 정민아가 나가겠다고 하니 다른 멤버들에겐 충격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 두고 보세요. 내 힘으로 빌보드 끝까지 가볼 거니까.
계약 마지막 날,정민아는 나와의 독대에서 한 마디를 남기고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메일도,흔한 전화 한통도 없었다.
최근에 셰무얼 밑에서 댄서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잘 지내고 있는지.
“저기 신부 들어와요.”
서한유가 가리킨 곳을 보니 이현지 이사가 최찬양 교수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윤혜린의 피아노 연주가 홀을 울렸다.
짧은 주례까지 마치고 축가가 이어졌다. 월드 스튜디오 이사의 결혼식답게 축가도 많았다.
5곡이었으니…
마지막의 합창은 내가 직접 편곡했다. 월드의 모든 가수들이 나와 합창을 할 때, 은빛이 사방으로 뿜어져갔다. 저 무뚝뚝한 이현지 이사가 눈물바다에 빠졌으니 성공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부케는 박소영이 받았다.
“아… 하하하.”
애인도 없다며 그녀는 울상이었다. 주변에서 제발 소개팅 좀 하라고 밀어대던데, 이 기회에 좋은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이젠 희윤이보다 곡도 많이 만들던데, 잠깐 쉬 더라도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 찍습니다!!”
신랑, 신부틀 중심으로 월드 스테이션의 모든 사람들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현지 이사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강윤은 딸 윤아의 손을 잡고 공원길을 천천히 걸었다. 옆에서 윤아의 손을 잡은 진서도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지만,이젠 익숙했다.
윤아가 여기 저기를 둘러 보다가 공원 구석의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어? 아빠. 저기 노래.”
강윤과 민진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여자는 벤치에 앉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주위로 음표가 돌며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니 강윤의 눈이 빛났다. 민진서는 윤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다녀와요.”
강윤은 고개를 끄덕 이곤 여자에게 다가 갔다.
땅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여자는 시선을 올리며 누구냐고 묻자, 강윤은 명함을 건넸다.
‘월드 스테이션 이강윤’이라는 글자를 보고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강윤은 미소를 지었다.
“함께 갑시다. 더 큰 무대에서게 해드리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