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39
10화 – 키스를 부르는 소녀(完)
“나원 참… 밤 10시에 회사에 불려 오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문광식 이사는 로비를 급히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오늘 이사들과 회식을 하며 1차는 술집에서 2차는 좋은 곳에서 회포를 풀려 했건만 1차에서 불려 나와 회사로 급히 복귀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에효. 연습생 하나 데뷔한다고 회사로 불려 오다니, 참…”
김진호 이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2차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했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불만표출은 로비까지였다. 그들 모두가 이사회의에서 보인 추태에 따른 징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원진문 회장의 이런 짓궂은 면은 이미 이사들 모두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
회장실에 도착한 이사들은 모두 정중하게 원진문 회장에서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게나. 회식 중인데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회장님.”
정현태 이사가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알면서 왜 부르고 JIRAL이냐’ 같은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이사가 괜찮다며 손을 휘저었고 원진문 회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TV를 켰다.
“딱 맞게 시작했군.”
때마침 광고가 끝났고 드라마 ‘별들의 속삭임’이 시작했다. 남자 주인공, 주현진의 독백으로 시작되어 내용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춘 전형적인 사각 로맨스의 시작답게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그리고 악역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이사들에겐 자극이 부족한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아침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겠다.’
화끈하게 내지르는 맛이 없는 미니시리즈보다 화끈하게 머리도 잡아주고 때론 격투기도 해주는 아침 드라마가 그들의 취향에 더 잘 맞았다. 일로 접할 때와 취미로 감상할 때와는 시각이 완전히 달랐다.
“이제 나오는군.”
이사들이 몰래 하품을 하는 그때, 원진문 회장이 TV를 가리켰다. 드디어 민진서가 등장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주현진이 민진서의 병실로 달려오는 씬이었다. 장장 드라마가 40분이나 진행된 이후였다.
‘아씨, 더럽게 늦네…’
‘씨를 발라버릴까.. PD 누구냐, 진짜.’
민진서의 늦은 등장에 이사들은 저마다 투덜거렸다. 오늘 온 목적은 저 누워있는 민진서 때문인데, 드라마가 3분지 2가 지나고 나서야 등장했으니 투덜거릴 만 했다.
이사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TV는 무심히 드라마를 계속 진행해갔다.
– 오빠.. 병원에서 달리면.. 안돼..
– …수진아..
– 오빠 왜 그래? 누가 죽었어? 그런 얼굴 하지 마.
하얀 얼굴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씩씩하게 웃는 민진서의 모습은 진짜로 병약한 여동생의 모습 같았다. 브라운관을 통한 모습이었지만 이사들 모두를 드라마로 빠뜨리고 있었다.
– 내가 어쨌다고. 또 이런대서 보니까 웃겨서 그랬다.
– 어어? 이거 봐라?
병실에서 쓰러진 여동생에게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오빠와 씩씩한 모습을 보이려는 여동생, 주현진과 민진서는 마치 진짜 남매인 양 모두를 드라마 안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씬이 빠르게 지나가고 드라마는 계속 진행됐지만 둘의 연기는 긴 여운을 남겼다.
‘아, 저걸 놓치다니!!’
‘이강윤, 저런 걸 잡다니.’
이사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놓친 심정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동안 왜 저 보석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런 심정에 가슴을 쳤다.
드라마, 별들의 속삭임은 주현진이 여자 주인공과 부딪치고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찰나에 끝이 났다. 다음 화를 보게 하기 위한 편집이었다.
드라마가 끝이 나고, 원진문 회장은 그제야 이사들을 부른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제 여론을 봐야 알겠지만 난 민진서가 확실히 뜰 거라 생각되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제 생각도 같습니다, 회장님. 저 연기를 보니 안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이한서 이사가 얼른 답했다. 이사 중 가장 눈치가 빠른 사람답게 그는 원진문 회장의 속을 가장 빨리 긁어주었다.
‘아, 씨.. 저 여우 같은 놈.’
이사들 간에도 눈치 싸움이 일었다. 동료 이사들은 그런 간사함에 서로 이를 갈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원진문 회장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배우 연습생을 육성은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키우지는 못하고 있었네. 인프라 부족과 노하우 부족이 원인이었지. 하지만 이젠 배우 1호가 나왔어. 그것도 앞으로가 기대되는 샛별이 말이야. 이사진들은 총력을 다해 민진서를 지원하게. 그리고 앞으로 배우 연습생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지원 결과는 이사회의에서 듣도록 하지.”
용건이 끝나자마자 원진문 회장은 이사들을 모두 내보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였다. 이사들이 작게 투덜거리며 나가는 모습이 밟혔지만, 그는 덤덤했다.
이사들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가자 원진문 회장은 창가에 섰다.
‘민진서 같은 물건을 발굴해서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 여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강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해. 그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방황하다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거야.’
처음 민진서를 달라는 말에, 혹시 연습생에게 딴마음을 품은 것 아닌가 은연 중에 의심까지 했었다. 그러나 강윤의 눈은 정확했다. MG엔터테인먼트에서 상상도 못 할 연기자의 기반을 닦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만 대단한 게 아니지. 이뤄놓은 것을 스스로 놓는 것. 이것도 대단해.’
데뷔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올 때 즈음, 강윤은 민진서에 대한 인수인계를 진행하겠다고 보고했다. 안정화를 핑계로 인수인계를 미루고 성과를 챙겨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그는 나온 말을 칼같이 지켰다. 어설프게 시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드라마 시청률이 안정되게 나오는 7~8화가 방영되는 시기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이로써 이 팀장은 알게 모르게 신뢰를 얻겠지. 적어도 자신이 한 말은 확실히 지킨다는 신뢰. 그리고 민진서 업무를 인수·인계받기 위해 물밑작업도 엄청나겠지.’
민진서 때문에 이사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게 심해지면 회사에 누를 끼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원진문 회장은 민진서는 주아와 같이 직접 관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성과에 따른 압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터였다. 강윤이 잡아놓은 기반을 더 크게 확장해 일류로 만들 생각이었다.
화려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원진문 회장은 강윤이 바꿔놓기 시작한 MG엔터테인먼트를 어떻게 그려나갈지를 계속 구상해갔다.
—————————————————————————-
새로운 일을 받아든 강윤은 프로젝트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에 도착하니 이현지 사장이 이미 커피를 내놓고 강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커피와 다과를 함께하며 이번에 음반을 낼 가수, 디에스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춤은 나쁘지 않군요. 그런데 표정이 살지 않는 것 같군요.”
강윤은 디에스의 방송 영상을 보며 특히 표정을 주목했다. 춤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표정의 변화가 극히 없었다. 또 다른 영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게 비슷한 문제들이 있군요.”
이현지 사장도 강윤의 의견에 동감했다. 디에스의 멤버, 혜린과 아리스가 여성스러운 섹시한 춤을 추며 무대를 활보하는데 눈웃음이 잘 살지 않았다. 입가의 웃음도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방송댄스는 관객을 유혹하는 댄스에서는 표정이 필수였지만 두 가수에게서는 그런 어필이 부족했다.
“흠…”
영상을 보며 강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귀에 착 감기는 노래는 준수했다. 그러나 춤과 함께 보이는 표정은 문제가 많았다. 더 나쁘게 말하면 질리는 스타일이었다.
“독하게 말한다면 스타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타성이 없다라.. 이 팀장이 보기엔 그런가요?”
“…심하게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강윤은 현재 드는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영상의 두 사람은 강윤의 말마따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었다. 영상의 두 여인은 관객들에게 대게 외면받고 있었다. 야유를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스타성이 있었다면 관객들이 어떻게든 두 사람을 보려 했을 것이다.
공연 영상부터 연습 영상까지 여러 영상을 빠르게 돌려보며 두 사람은 가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부분은 괜찮군요.”
그런데 혹평을 일삼던 강윤이 한 영상에 주목했다. 혜린과 아리스가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Fly to’군요. 이 노래 좋아하는데…”
이현지 사장은 혜린과 아리스의 노래에 눈을 감았다. 무반주였지만 딱딱 들어맞는 두 사람의 높은 화음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재즈잖아. 저런 노래는 부르기가 쉽지는 않은데. 반주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어. 아쉽군.’
강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영상은 끝이 났다.
“자, 영상은 여기까지 하고 일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현지 사장은 이만하면 되었다며 영상을 껐다. 강윤도 이만하면 됐다 생각하고 가져온 서류들을 펼쳤다. 현재의 디에스와 유행 등을 살피며 어떤 컨셉의 앨범을 낼지 생각해야 했다.
“이번 건은 어떨 것 같나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멘트는 항상 똑같군요.”
이현지 사장은 강윤에게 장난을 쳤다. 강윤은 순간 민망해져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이현지 사장이 가볍게 웃었다.
“사장님, 그게..”
“훗. 미안해요. 계속하세요.”
이젠 강윤을 완전히 믿기에 이현지 사장도 여유가 생겼다. 강윤과는 같은 길을 가는 동지였다. 잘 보이지 않는 여유도 보이며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2집까지 낸 가수라지만 인지도가 매우 부족합니다. 다행히 팬클럽은 있지만 소수죠. 300명 안팎으로 알고 있습니다.”
“흥행 참패죠. 이현상 이사가 디에스 기획 이후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이사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이사들은 기획을 책임져야 했다. 이현지 사장이 강윤의 기획의 결과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이사들도 그들과 한배를 탄 기획팀 팀장들이 담당하는 연예인들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들의 이름이 걸린 기획의 흥행 여부에 따라 회사 내의 대우가 달라졌다. MG 엔터테인먼트의 문화였다.
“잘 되고 안 되고는, 음악의 신에게 달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 신에게 잘 보이도록 최선은 다해야겠죠?”
이현지 사장의 말에 강윤은 웃을 뿐이었다.
————————————————————————–
MG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윤혜린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왔다갔다하는 그녀에게 김진경이 물었다.
“혜린아. 그렇게 좋냐?”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겪어온 친구이기에 저 모습이 좋아서 설레는 모습이라는 걸 잘 알았다.
“당근 빠떼루지. 이강윤, 이강윤 팀장님이라니!! 주아 선배 기획해준 그분이잖아!! 완전 좋지!!”
“사실, 난 아직도 꿈같다. 난 계약 끝나면 식당 나가서 접시나 닦아야 하나 그 생각 했는데….”
두 사람은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윤혜린이나 김진경(아리스)이나 회사에서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2집이 완전히 실패한 이후, 스케줄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었다. 기본급만 받으며 눈칫밥을 먹는 치욕은 연예인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혜인아, 진경아. 준비해. 팀장님 오셨다.”
“꺅!!”
매니저 정찬형의 말에 두 사람은 발을 마구 구르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리할 것 없는 테이블을 닦기도 했고 잡지들을 다시 정돈하기도 했다.
곧 문이 열리며 강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디에스입니다!!”
두 여인은 강윤과의 첫 만남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이고 싶어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들어오던 강윤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뭔가를 밟고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김진경과 윤혜린이 되려 놀라 강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이강윤입니다.”
“…..”
강윤은 두 여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민망함에 그녀들의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첫 만남부터, 세 사람은 의도치 않게 재미없는 슬랩스틱을 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