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51
13화 – 통하게 만들다(完) >
[기획자는 가수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은 내가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까?]아카바시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강윤의 말은 주아가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강윤에게 와서 의견을 구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원진문 회장도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표정들을 보니 이야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팀장, 지금….”
원진문 회장도 개입하려고 했지만, 강윤의 말이 먼저였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 곡이 이상하다 의견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곡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내가 그 정도 느낌도 없었다 생각하는 겁니까?] [느낌이라는 건 모두 개인적입니다. 이상이 있다없다 함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획자도 사람입니다.] [만약 내 느낌이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내가 이 자리를 지켜왔겠습니까? 자꾸 이런 식이라면 계약을 해지하겠습니다.]아카바시 프로듀서는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막무가내였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해온 자존심에 생채기가 제대로 났는지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다. 원진문 회장도 놀라 그를 잡았다. 그러나 강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느낌대로 기획한 가수들이 모두 성공했습니까?] [그건….] [내가 기획한 스타들이 모두 떴다, 난 성공률 백 퍼센트다. 그렇다 해도 느낌이란 놈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대중과 기획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은 안 드리고 싶지만 최근 기획하신 3명의 앨범이 흥행참패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주아도 이렇게 된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아카바시 프로듀서는 거칠게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자존심은 제대로 상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고 뛰쳐 나가버린다면 회복할 길이 없었다. 이 바닥에 무시당하고 일 때려치운 프로듀서로 소문이 날 게 뻔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놈은 눌러놓든가 좋게 마무리하든가 하는 길밖에 없었다.
[…후유. 그래, 좋아요. 그래서 주아가 당신한테 와서 내 작업에 이러쿵저러쿵하게 한 건 잘한 짓입니까?] [잘못입니다.] [그걸 알면서…. 당신도 뻔뻔하군요. 무례하고, 최악입니다.] [맞습니다.]강윤은 뻔뻔했다. 그 모습에 아카바시 프로듀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くそ!!(제기랄!!)”
그는 회장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소리에 놀라 비서들이 달려왔지만 원진문 회장이 조용히 손짓하자 모두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잠시 후, 약간은 진정된 아카바시 프로듀서에게 강윤이 차분히 말했다.
강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요지를 말했다.
[주아에게 믿음을 심어주십시오.] […..]강윤은 원진문 회장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조용히 회장실을 나왔다.
“허허….”
뻘쭘하게 둘만 남게 된 원진문 회장이 헛웃음을 낼 뿐이었다. 그는 이내 일본어가 되는 비서를 불러 옆자리에 오게 했다. 아카바시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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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사장과 콘서트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강윤은 다시 사장실로 향했다.
강윤이 없을 때 한참 동안 그의 말을 곱씹던 이현지 사장은 콘서트에 대해 생각을 정했는지 서류들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포기해야겠네요.”
물론, 무리하면 할 수는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강윤 말대로 남는 게 없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선언했다.
“알겠습니다.”
“아쉽네요. 옛날 같으면 그냥 밀어붙였을 텐데… 나도 나이가 들었나.”
진심으로 아쉬웠는지, 이현지 사장은 내려놓았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일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다음 기회가 있을 겁니다. 연말에 많은 일이 들어올 테니 그때를 기다려 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겁니다.”
“후. 그때는 우리 애들 데뷔 아닌가요?”
“아…. 그렇군요.”
강윤은 손바닥을 쳤다. 그때가 되면 강윤이 기획하는 걸그룹이 데뷔해야 하는 시기다. 강윤은 그때를 위해 스케줄들을 맞춰놓고 있었다.
“아아. 공연팀도 천천히 운영해야겠군요. 당분간은 걸그룹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요. 이 팀장도 생각해줘야 하니까.”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큰 성과를 기대할게요. 이 팀장이니 일반적인 건 아니겠죠?”
강윤은 말없이 씨익 웃었다. 이런 기대는 부담인 동시에 즐거운 것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아, 저번에 말했던 공부 말인데 9월 초에 개강이에요. 다 말해놨으니 미리 가서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수업만 들으면 됩니다.”
“대학생으로 등록은 못 시켜줘도 과제 같은 것은 봐 주겠다 하네요. 물론, 거기서도 원하는 게 있을 겁니다. 큰 부담은 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건 내가 다 막아 줄 테니.”
“감사합니다.”
음악이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열렸다. 강윤은 이현지 사장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현지 사장은 강윤에게 팸플릿을 내밀었다. 강윤이 들을 강의에 들어올 교수가 한 특강에 대한 팸플릿이었다.
‘최찬양 교수. 38세, 한려 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라….’
강윤이 팸플릿을 꼼꼼히 읽어내려갈 때, 이현지 사장이 추가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 팀장이 음악이론에 문외한이라고 하니까 S 대학에서 하는 기초강의부터 들으러 오라더군요. 저번에 디에스 애들 공연했던 그 학교 기억나죠?”
“네.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성학 기초를 개설한다고 하니까 즐겁게 듣고 오세요. 좋겠네요. 어린애들과 수업도 같이 듣고. 회춘하겠네요.”
“기운 잘 받고 오겠습니다.”
이현지 사장은 강윤을 놀려댔다. 강윤도 그녀의 말에 잘 응수하곤 사장실을 나섰다.
사장실을 나서 사무실로 가니 이번에는 주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하아…. 이번엔 너냐?”
강윤으로선 봉변을 당해 주아가 그리 반갑진 않았다. 주아도 평소와 다르게 당당히 그를 맞이하진 못했다.
“미안. 오늘 회장실에서 한판 했다며?”
“거하게 했지. 너는 왜 사고를 크게 쳐 가지곤….”
“그 자식이 이상한 거야. 자꾸 지 말만 벅벅 해대잖아. 오빠도 이야기해봤으니까 알 거 아냐. 지 고집대로만 밀어붙인다고. 내가 인형도 아니고. 빡친다고요.”
주아는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치는지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강윤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커피를 내밀었다.
“땡큐. 그래도 오빠밖에 없네. 나 생각해 주는 건.”
“그거 마시고 빨리 가서 화해해.”
“싫어.”
하지만 강윤의 말에 주아는 고집을 부렸다. 강윤은 차분히 눈을 깔고 이야기했다.
“네 말대로 그 사람이 고집이 세긴 하더라. 그 사람도 당연히 잘못했지. 그런데 너도 잘못이 있어.”
“내가 뭐?”
“남자는 말이야,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존재야. 그런데 왜 자꾸 비교해? 가뜩이나 요새 3명이나 실패한 사람이잖아. 알게 모르게 강박증이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런 거까지 신경 써줘야 해? 그 사람이 나한테 신뢰를 먼저 줘야지.”
“너는 무조건 받기만 해야 한다는 거야?”
“그건….”
주아도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먼저 줄 수도 있어야지. 물론 네 말대로 기획자는 가수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가수도 기획자를 믿어줘야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 자꾸 선비 같은 소리를 하게 돼서 미안한데,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자기 말만 맞다고 하잖아!! 그런데 어쩌라고!!”
“그 사람에겐 주아 네가 못 미더웠으니까 그랬겠지.”
“잠깐. 그럼 내가 딸려서 그 사람이 밀어붙였다는 거야?”
주아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린 탓에 그녀의 눈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후배들이 보면 난리가 날 만한 눈빛이었지만 강윤은 평온히 말했다.
“생각해봐. 넌 이제 한번 떴어. 그쪽 입장에서 보면 어찌어찌 뮤직 스테이션에 나가 화제가 되었고 대박이 난 가수지. 그런데 2번째는? 원래 처음보다 2번째가 어려운 거 알잖아. 그 사람이 널 쉽게 믿을 수 있었을까? 대박 가수가 다음에 쪽박을 차는 경우가 허다해. 게다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이야. 그 사람의 생고집은 당연히 잘못이지만 이런 면도 있지 않았을까?”
“…..”
주아는 말문이 턱 막혔다. 사실, 계속 강윤과 비교를 해오며 그 프로듀서와 충돌 거리를 만든 건 주아, 자신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게 많았다.
“…쳇.”
하지만 쉽게 인정하기 힘들었는지 주아는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윤에게 서운함이 인 탓이었다. 그걸 알았지만, 강윤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저런 거 보면 영락없는 애라니까.”
주아가 툴툴대며 나갔지만, 강윤은 주아를 믿었다. 이 정도 말했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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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is built of facts the way a house is built of bricks but an accumulation of fact is no more science than a pile of brick is a house. 이 문장에서는 몇 가지 용법이 쓰였을까? 아는 사람 손? 아…. 그래. 자라, 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영어 선생님은 포기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혼자만의 수업을 이어갔다.
물론 완전한 혼자만의 수업은 아니었다. 희윤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그와 수업을 함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설명에 쉽게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
그런데 희윤의 휴대전화에서 약한 빛이 났다.
– 휸휸!! 오늘시간됨?
주아에게서 온 문자였다.
– 오늘???? 언제????
– 밤!!!! ^.^
– 밤외출은 오빠한테 혼나서 안됨…. 흐규흐규..ㅠㅠ;;
– 괜찮괜찮!! 같이 볼 거야. 됨?
희윤은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오빠와 함께라면 상관없을 것 같아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 알았어~ *^.^*
주아에게서 온 문자는 이걸로 끝이었다. 희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얼른 핸드폰을 넣고 수업에 집중했다.
오늘은 투석 날이라 희윤은 여느 때처럼 병원으로 향했다.
최근 들어 체력이 붙었는지 투석을 받아도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희윤은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았다.
병원에 가는 길에 희윤은 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희윤아!! 웬일이야?
“바빠?”
– 아니이. 아까 문자 때문에 전화했구나.
“응. 무슨 일 있어?”
– 아니, 별일은 아니고…. 오늘 저녁 먹자고. 괜찮아?
“오빠한테 먼저 말을 해봐야 할 텐데.”
– 오빠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럼 난 OK야. 주아 오랜만에 보면 나도 좋아.”
–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평소와는 다르게 통화는 길지 않았다. 희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
.
.
강윤은 여느 때와 같이 희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책상 위에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봉투를 발견했다.
‘이강윤 친전. 이건 뭐지?’
어제까지만 해도 본 적이 없는 봉투였다. 강윤은 자신에게 온 그것을 개봉했다. 내용물을 보곤 강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초대장이잖아? M 호텔, 8시? 허…. 내 앞으로 온 건가?’
누군가 자신을 초대하기 위해 보내온 것이었다. M 호텔이면 국내 최고급 호텔이었다. 강윤은 이런 초대장을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대체 누가 이런 걸….’
스카우트 제의일까? 벌써? 아니면 뇌물?
강윤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다.
강윤은 초대장을 들고 M 호텔로 향했다. 초대장을 보여주니 안내를 받아 안으로 입장하는 건 쉬웠다. 그런데 안내받아 들어가니 아는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주아, 아니 희윤이도?”
“오빠, 왔어?”
주아와 희윤이 강윤에게 활기차게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강윤은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어…. 초대장을 네가 보낸 거야?”
“아니. 보낸 사람은 따로 있지. 금방 올 거야. 아, 저기 온다.”
주아가 가리킨 곳에서 남자 두 명이 척 봐도 튀는 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주아 앨범의 총기획자 아카바시 프로듀서와 슌지 작곡가였다. 주아는 두 사람이 오는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잘 찾아오셨네요?] [한국 호텔은 서비스가 좋더군요.]아카바시 프로듀서는 주아와 편안하게 대화하며 강윤에게 인사를 했다.
[이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실례를 했죠.]회장실에서의 날 선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서글서글한 모습이었다. 강윤은 아카바시 프로듀서와 악수를 하고 슌지 작곡가와도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호텔 코스요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희윤이 난생처음 보는 호텔 요리에 조금씩 손을 대는 중에 아카바시 프로듀서가 첫 말문을 열었다.
강윤은 놀랐다. 주아의 이번 미니앨범이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저녁 식사 대접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런 대접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실은 일본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만, 동생분이 아직 여권이 없다 들어서…. 다음에 꼭 함께 일본으로 오십시오. 온천까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강윤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강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아를 바라봤다.
“아아. 그렇게 볼 거 없어. 나나 프로듀서님이나 오빠한테 대판 혼나고 화해한 거니까. 곡은 슌지 작곡가님에게 나중에 받은 거로 갔고. 우리 너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었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되는 것들이었는데.”
강윤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서로가 결국 한 발자국 다가간 것이다. 강윤의 말이 계기가 돼서 말이다. 그들이 이번 대박을 친 계기는 결국 강윤이었다. 이건 그 보답이었다.
[이번 앨범 대박이에요. 미니앨범인데도 3판을 찍어내고 있으니…. 흑흑. 저도 덕분에 돈 좀 만졌습니다.]슌지 작곡가도 기분이 좋은지 주아를 보며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이번 앨범 덕에 현재의 이익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이번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 다 엄청나게 좋은 결과였다.
강윤은 손사래를 쳤다.
강윤은 저자세로 나오는 아카바시 프로듀서가 부담스러웠다. 크게 많은 일을 한 건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에겐 큰 영향을 주었다니.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했다.
[PD님. 저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생색도 안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니까요.] [그렇습니까. 대인이시군요.] [칭찬하면 더 민망해할 테니, 우리 밥이나 먹어요.]이젠 주아와도 완전히 친해졌는지, 아카바시 프로듀서는 그녀와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좋게 결론이 난 것 같아 강윤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처럼 좋은 음식을 대접받고, 동생도 좋은 곳에 올 수 있어 강윤도 즐거웠다.
즐거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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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 조금씩 가고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산했던 대학교마다 학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2학기가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학기의 시작과 함께 조용했던 광장이나 강의실에 학생들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도서관에도 공강 시간을 때우거나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로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학생들의 틈바구니에, 강윤이 있었다.
“허….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처음으로 희윤의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반가를 쓴 강윤은 강의 시간이 많이 남자,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생증이 없어 일반인 신분으로 안에 들어간 그는 학교가 소장한 수많은 책의 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짜 많네. 어디 있더라….’
강윤은 바로 공연 관련 자료가 있는 코너로 향했다. 강윤의 주 관심사는 그곳에 있었다. 컴퓨터로 자료의 위치를 찾은 강윤은 바로 3층으로 향했다.
‘찾았다.’
강윤은 ‘예술’이라고 쓰인 코너로 향했다. 그곳은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공연 등 수많은 책이 포진되어 있었다. 학기 초라 그런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강윤은 바로 음악과 공연 책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위치가 멀지 않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Concert Produce…. 아, 원서잖아.’
하지만 강윤은 이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관련 서적들이 죄다 원서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영역을 뒤적였지만, 영어, 독일어 등 한국어로 되어있는 책 한 권이 없었다. 결국은 모두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래서 기획 공부하는 애들이 많지 않은 거구나.”
요즘 관련 과가 생기기도 했다지만, 아직은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윤 자신도 결국 현장에서 구르고 구르다 경력을 인정받아 이쪽으로 뛰어든 케이스가 아닌가. 현실을 알게 되니 괜히 씁쓸해졌다.
그런 마음으로 한참을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오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 공연기획 기본서
딱 한 권, 한글로 되어있는 설명서였다. 강윤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프로듀서, 공연장대표, 총괄매니저, 배우 등 100여 명의 뜻을 모아 이 책을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강윤은 서문을 읽어나갔다. 한국에서 마땅한 기본서가 없어 여러 가지 서적들을 참고해서 한국에 맞는 기본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강윤은 기대에 차 책을 넘겼다.
‘뭐야? 예시가 너무 없잖아?’
하지만 이내 강윤은 실망했다. 기본 이론만 딱딱하게 설명되어 있었지 예시가 너무 부족했다. 말 그대로 기본서였다. 그러고 보니 책도 두껍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만 설명된 이론서였다.
강윤이 착잡한 마음으로 책을 거의 다 넘겼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강윤이 뒤돌아보니 처음 보는 웬 젊은 여자가 강윤의 옆에 서 있었다.
“저기요….”
도서관인지라, 그녀의 음성은 작았다.
“무슨 일이시죠?”
“죄송한데…. 그 책, 다 보신 건가요?”
“조금만 보면 됩니다. 무슨 일이시죠?”
강윤을 부른 여자는 짧은 치마에 늘씬한 기럭지를 가진 전형적인 대학생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기있는 머리가 특히 도드라졌다. 강윤은 자신보다 책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바로 눈치를 챘다.
“책이 필요한가요?”
“네, 네. 제본해야 해서요. 빌리실 게 아니라면…. 양보 부탁해도 될까요?”
강윤은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다, 바로 책을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휴…. 이거 별건 아닌데….”
그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가방에서 강윤에게 초코바를 꺼내 주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괜찮습….”
“나중에 봬요.”
그녀는 강윤에게 초코바를 쥐여 주더니 책을 받아들곤 쏜살같이 가버렸다.
“요즘 애들은 기운이 넘치는구만.”
강윤은 학교에서 만난 첫 인연에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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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 강윤은 강의실로 향했다. 교수로부터 허락을 받았다지만 청강생의 신분이라 앞쪽보다 뒷자리에 앉았다. 최찬양 교수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답하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신우진.”
“네.”
“이창연.”
“네.”
같은 목소리가 2번씩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교수는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갔다. 교양과목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었다.
가나다순의 마지막 성씨, 하 씨 성을 부를 차례였다.
“하지연.”
“…..”
“하지연 학생 안 왔나요?”
최찬양 교수가 결석에 표시하려는 그때, 뒷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헉헉…. 죄송합니다.”
“학생 이름이 뭔가요?”
“하지연입니다.”
“다음부터 이러면 지각이에요.”
최찬양 교수는 결석에 체크했던 것을 출석으로 바꿨고, 하지연이라는 여자는 비어있던 강윤의 옆자리에 헐레벌떡 앉았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을….”
교수의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하지연이 강윤을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그쪽은 아까 책?”
“아….”
강윤도 기억해냈다. 옆의 그녀는 자신에게서 책을 가져갔던 그 아가씨였다.
————————————————————————–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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