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53
14화 – 걸그룹, 시작하다(完) >
– 그댄 — 좋은 – 사람- 하지만 — 그댄 모르죠 —-
‘이거다!!’
한주연에게서 나온 음표들은 일정했다. 음표들이 합쳐져 발하는 빛은 눈이 부실 만큼 밝았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그대에게’라는 곡인 만큼 똑같이 부르니 영향력도 엄청났다.
– 그댄 알까요 — 내 맘속 한 사람 —
강윤은 눈을 감았다. 이젠 이 노래가 강민주라는 가수의 곡인지, 한주연이 부르는 노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박자와 목소리, 호흡까지 완전히 일치시키니 나무랄 곳 없는 모창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한주연이 나오자 강윤은 말없이 녹음된 노래를 재생시켜 주었다.
“이게 제가 부른 거라고요?”
한주연도 이 노래가 자신이 부른 노래인지 의심스러웠다. 강민주의 AR을 튼 것인지 자기가 부른 건지 그녀도 헷갈렸다. 강윤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연습 열심히 했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강윤이 조용히 나간 뒤에도, 한주연은 자신의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오늘의 감격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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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시간.
강윤은 팀원들과 함께 첫 번째로 세상에 나올 한주연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김 과장님. UCC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습니까?”
강윤이 홍보팀의 김정률 과장에게 묻자 그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네. 한주연이 잘해줘서 만족할만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보고 이야기하죠.”
홍보팀의 사원 유창석이 프로젝트를 재생시키자 한주연이 스튜디오에서 노래하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유행가를 부르는데 듣기에 매끄러웠고 거부감이 없었다. 영상을 타고 나와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주연이 열과 성을 다해 부르는
게 느껴져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괜찮군요. 방송이 나가는 날 바로 공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윤은 들어갈 예산, 절차 등을 계속 이야기했다. 팀원들은 자신이 담당한 파트에 맞는 사정들을 이야기하며 강윤에게 의견을 구했고,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며 의견을 조율해갔다. 강윤은 이야기를 수용하며, 때론 쳐내며 회의를 이끌어갔다.
“한주연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강윤의 마무리와 함께, 모두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회사 내에서 준비하던 그녀들이 본격적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바빠질 생각에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회의가 끝나고, 강윤은 소녀들이 연습에 한창인 3층으로 향했다. 오늘은 단체 연습이 없어 개인별로 연습이 따로 있었다. 그는 바로 한주연이 연습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팀장님….”
“내가 방해했나?”
“아니에요.”
한주연은 홀로 방송에 나갈 곡을 연습 중이었다. 그녀는 강윤을 보며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그를 맞아주었다. 여느 때처럼 강윤이 물을 내밀자 공손히 받아들곤 자리에 앉았다. 강윤이 오는 시간은 곧 휴식시간이었다.
“다음 주에 녹화지?”
“네. 긴장되네요.”
“첫 방송이잖아. 떨릴 만하지.”
“혹시 팀장님도 가시나요?”
“나? 글쎄….”
“죄송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날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응?”
강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진경 언니가 팀장님과 함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심할 수 있다고 그랬거든요.
제가 보기보다 간이 작아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부탁드려요.“
“진경이가? 둘이 친한가 보네.”
“연습생 때부터 조언 많이 해준 언니에요. 언니한테 팀장님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팀장님이 있으면 뭘 해도 된다고….”
주아도 그렇고 이번에는 김진경까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윤은 당혹스러웠다. 지금부터는 비상체제였다. 하지만 그 비상체제가 한주연으로 인한 것이니 거절할 명분도 마땅찮았다.
“알았어.”
“감사합니다.”
“나 참…. 애 일도 해야 하는데….”
강윤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떨리는 마음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떨리는 첫 방송에서 강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낫겠지, 싶었다.
강윤은 한주연의 연습실에서 나와 이번에는 크리스티 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한창 외부 강사에게서 이미지 관리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표정이 특히 중요해요, 표정. 웃을 때는 안면 근육을….”
“…..”
강윤이 조용히 뒷문을 열고 들어가니 크리스티 안이 잘 활용하지 않는 입꼬리와 눈꼬리를 손으로 들어 올리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외부 강사는 안면 전체를 활용해야 한다며 강조, 또 강조했다. 얼굴만 아름다워 봐야 장식품밖에 안 된다는 말에 크리스티 안은 이를 악물고 외부 강사의 말에 따라갔다.
“잠시 쉬었다 할까요?”
“…네.”
앉아서 듣는 강의였지만 크리스티 안에게는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몸을 추욱 늘어뜨리며 누웠는데 연습실 뒤에 조용히 서 있는 강윤을 발견하고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팀장님!!”
“누워있어. 쉬는 데 방해하러 온 거 아니니까.”
그래도 크리스티 안은 눕지 못했다. 원래부터 어려운 강윤이었지만 주아와 함께 일하는 그를 직접 보면서 강윤이 더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계속 서 있는 그녀에게 강윤은 앉기를 권했고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왜 이런 트레이닝을 받는지 알아?”
“모르겠어요.”
그래도 크리스티 안은 솔직했다. 강윤은 솔직한 답에 마음이 들어 바로 답을 말해주었다.
“주연이가 곧 방송에 나갈 거란 이야기는 들었지?”
“네.”
“다음 차례는 너야.”
“네?!”
원래 동요가 거의 없는 그녀도 강윤의 말에 연습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높였다.
“저…. 저도 방송에요?”
“아니. 방송은 아냐. 주연이가 방송에 나가는 목적이 뭔지는 알고 있지?”
“저희 한 명씩 공개된다 들었어요.”
“맞아. 다음이 네 차례야. 하지만 방식이 조금 달라.”
“저는….”
“잡지광고.”
“네?!”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에게나 들어오는 광고로 공개한다니….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강윤의 말에 크리스티 안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우리 회사가 투자하는 브랜드가 있어. 그 회사 잡지광고에 너를 쓸 거야.”
“아, 디어링하우스요? 거기 화장품 디자인 예쁘던데.”
“그래?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화장품 광고에 나갈 거야.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연습하는 거니까 신경 많이 써야 해. 컨셉은 알고 있지?”
“네. 표정 없는 공주가 화장품 사용 후 표정이 확 밝아지는 거 맞죠? 보고 웃었어요.”
“Before, After를 확실히 보여주는 광고컨셉이래. 그러니까 꼭 ‘잘’ 웃는 훈련을 하도록 해. 알겠지?”
“네!!”
크리스티 안이 힘차게 대답했다. 사실, 한주연이 방송에 나간다길래 자신은 뭔가 없을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표정관리만 죽어라 연습하라니 실망했었다. 그런데 광고라니. 규모가 작든 크든 상관없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이번엔 광고 개런티가 많지 않아. 그냥 나가서 고기나 사 먹고 오는 걸로 생각해.”
“….네에.”
물론, 강윤의 마지막 말에 크리스티 안이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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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서 소녀들의 마음은 싱숭생숭…. 할 틈 따윈 전혀 없었다.
여름에 휴가를 다녀온 게 사실상 마지막 휴식이었다. 그 이후, 그녀들에겐 말 그대로 죽음의 스케줄이 주어졌다. 월화수목금금금 아니, 금금금금금금금의 스케줄이 장마철에 비 오듯 마구 쏟아져 내렸다.
“으아아아아아——–”
모처럼 모인 단체 연습 시간, 정민아는 온몸에 김을 내며 바닥에 철퍼덕 누워버렸다. 평소처럼 그녀의 배를 깔고 누웠어야 할 크리스티 안은 그러기도 귀찮은지 원래 대형을 이뤘던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하하하.. 여긴 어디고 나는 정민아다. 난 연습을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혹독한 연습에 미쳐가는 정민아는 눈앞에 별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강철과 같은 체력을 타고났어도 이런 미친 연습 스케줄을 수행하는 건 녹록치 않았다.
“한유야… 괜찮니?”
“…아뇨. 언니는요?”
“나 녹아….”
에일리 정은 바닥에 누워 조금이라도 한기를 느끼고 싶은지 온 바닥을 굴러다녔다. 서한유는 그와 반대로 우아하게 물을 얼굴에 부으며 조금이라도 한기를 날리려 했다.
그녀 옆에 있던 이삼순과 한주연은 이미 눈까지 감은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녀들의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습실에 제일 높은 분이 난입하셨기 때문이다. 강윤이었다.
“야야, 일어나.”
“우으으으… 누구야아….”
“팀장님.”
“으헥….”
이삼순은 정민아에 의해 번쩍 들려 자리에 앉혀졌다. 강윤은 코끝을 찌르는 땀 냄새에 이미 익숙해졌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들고 온 물을 그녀들에게 내밀었다. 모두가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갈증을 풀 때, 그는 용건을 이야기했다.
“모두 고생이 많다. 휴가 끝나고 단체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치?”
“…..네에.”
그녀들의 답에는 힘이 없었다. 물론, 강윤이 힘찬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너희 지금 개인별로 공개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네.”
“그 후, 이사님들과 관계자분들 초청해서 공식적으로 너희에 대해 알릴 거야. 그때 너희가 언제 데뷔 할 건지, 어떤 컨셉으로 갈 건지도 다 발표할 거야.”
“아…….”
소녀들 모두가 피곤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강윤의 말인즉슨, 이제 너희들을 내놓겠기전, 모두에게 평가를 받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쇼케이스 같은 건가요?
한주연이 묻자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관계자들만 모아놓고 하는거니까 성격은 달라. 방송국에 너희 데뷔과정을 찍어 방송하는 건도 조율 중이긴 한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자…. 잠깐만요. 데뷔과정을 방송 한다고요?”
정민아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강윤의 말을 붙잡았다.
“아직 확정은 아냐. 왜?”
“그럼 저희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는 거에요? 숙소까지 다?”
“확정이 아니라고 했잖아. 조율 중이야. 확정되면 다시 이야기해줄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지금 중요한 건 너희가 무대를 펼쳐야 한다는 거니까.”
“…..”
모두가 침묵했다. 6명이 펼친 무대는 강윤과 함께 보육원에서 공연한 게 처음이었다. 그때 이후 연습만 주구장창 했지 사람들 앞에 보인 적은 없었다.
“힐 신고 춤춰본 적은 없었지?”
“네. 아직은 없어요.”
한주연이 대표로 답했다.
“이제부턴 힐 신고 연습한다. 알겠지?”
“네.”
“그리고 조만간 너희 타이틀곡도 올 거야.”
모두가 이제 ‘올 것이 왔군.’이라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자신들만의 노래라니, 연습생에서 가수가 된다는 게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힐을 신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지만 타이틀곡이라는 말이 그녀들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었다.
공지를 마친 강윤이 나가고, 소녀들은 난리가 났다.
“야야. 힐이래, 힐!! 아, 나 한 번도 안 신어 봤는데….”
정민아는 힐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편한 건 딱 질색인 그녀였다. 반면, 서한유는 자신 있는 눈치였다.
“힐 계속 신다 보면 적응돼요. 그리고 말하면 굽 넓은 거 주니까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걱정이야. 난 발목이 얇아서 균형 잡기가 어렵거든.”
서한유는 정민아를 다독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걱정인 사람은 이삼순이었다.
“난 힐 신으면 정말 안 되던데 어쩌지? 난 분명 높은 거 줄 텐데….”
이삼순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이전에 힐을 신고 연습을 했다가 도저히 안돼서 다시 맨발을 벗고 연습했던 경력도 있었다.
물론 이삼순만 걱정이 아니었다. 모든 소녀가 그녀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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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데뷔 때문에 바쁜 강윤이었지만 음악 수업 일은 확실히 챙겼다.
업무를 일찍 마친 강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바로 S 대학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에 일찍 도착한 강윤 앞에는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커플들도 눈에 띄었고 남자들, 여자들도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귀 기울여 보니 주로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남자는 어제 만난 여자 이야기, 여자는 그제 만난 오빠 이야기 등 소소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들이었다.
‘좋을 때구나.’
학생들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20대, 삶에 치이며 바쁘게 살아온 자신이 생각났다. 여유 하나 없이 일과 희윤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저런 시간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다. 물론, 다 부질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난 못했어도 희윤이는 대학에 갔으면 좋겠어.’
강의실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보며 강윤은 희윤을 생각했다. 그는 희윤만은 저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진심으로 바랐다. 아니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정각이 되자 최찬양 교수가 딱 맞춘 시계처럼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에 맞춰, 비어있던 강윤의 옆자리도 채워졌다.
“헉…. 헉. 오늘은 안 늦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 그 지각생, 하지연이었다. 그녀는 교수의 출석체크에 힘차게 답을 하고서는 바로 교재를 폈다.
“화음의 종류는….”
수업이 시작되자 그녀는 누구보다 집중했다. 강윤도 그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맨 뒷자리였지만 두 사람의 학구열은 대단해서 주변 사람들이 몰래몰래 쳐다볼 정도였다.
“잠시 쉬었다 하죠.”
최찬양 교수가 잠시 밖으로 나가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강윤이 잠시 기지개를 피는데, 하지연이 그에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 정도야.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강윤입니다. 그쪽은 어떻게 되십니까?”
“하지연이에요. 경영학과에요. 그쪽은…”
“청강생입니다.”
“아….”
그 말에 그녀는 말을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활기를 되찾고 이야기를 계속해갔다.
“저 교수님, 청강생은 무조건 내쫓기로 유명하데요. 대가 없는 수업은 의미가 없다나? 이 수업이 재미있어서 매년 청강생들이 들어왔었거든요. 3주째인데 청강생을 보니 신기하네요.”
“그런가요.”
“네.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오늘 보니까 공부 열심히 하시던데 아깝잖아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아는 분이라….”
“아, 그래요? 어쩐지. 쉽지 않아 보이더라니. 이런, 죄송해요. 제가 주책없었죠?”
하지연은 활발했다. 덕분에 강윤은 쉬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았다. 하지연은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지 옷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들을 하며 강윤의 관심을 끌었고 강윤도 적당히 대답하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시작되고, 강윤은 다시 음악공부에 열을 올렸다. 처음 듣는 화성학의 세계는 새로웠다.
“1, 4, 5, 8도를 완전음정이라 하고 2, 3, 6, 7도를 장음정이라 합니다. 피아노 음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요. 예를 들어, 도에서 미까지는 3도, 도레미, 이렇게 3개는 장 3도가 됩니다. 반면 도레미파, 4개는 완전 4도가 되죠. 그리고….”
강윤은 흑판에 단음과 장음을 그려 보여주는 최찬양 교수의 설명을 모두 받아 적었다. 첫 시간에 기초이론이라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수학과도 같았다. 옆을 보니 하지연은 헷갈리는지 공책에 필기하면서도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찬양 교수의 설명은 빠르지 않았다. 필요한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이 예시도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학생들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화성학 시간에 적절한 예시가 함께 들어가니 모두가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미리 짐을 싸둔 학생들이 썰물과 같이 빠져나갔다. 오늘 콩나물들과 격전을 치른 학생들은 모두 피곤을 안은 채 귀가했다.
“강윤 씨. 저녁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강윤도 썰물에 빠져나가려는데, 최찬양 교수가 짐을 챙기는 그를 불렀다.
“네, 괜찮습니다만….”
“같이 식사 어떠십니까?”
강윤은 최찬양 교수와 함께 강의실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의 고급 세단을 타고 두 사람은 한강 근교의 한강 근교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한 최찬양 교수와는 다르게 강윤은 이런 것들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최찬양 교수와 같은 것을 주문한 강윤은 민망함에 헛기침을 늘어놓았다.
“이런 곳에 자주 오시지는 않으시는가 봅니다.”
“네. 양식보단 한식을 좋아하다 보니…”
“저런. 제가 생각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강윤은 괜찮다고 공손히 말하곤 애피타이저로 나온 빵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최찬양 교수를 따라 하니 레스토랑에서 지켜야 하는 예법도 어렵지는 않았다.
“오늘은 제가 살 테니 편안히 드십시오.”
“이거…. 그럼 염치불구하고 잘 먹겠습니다.”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강윤은 편안히 나이프를 들었다. 곧 오늘의 메인디시 스테이크가 나왔고 이어 와인도 함께 나왔다. 은은하면서 감미로운 와인과 함께 먹는 스테이크는 살살 녹는 것 같았다.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최찬양 교수가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초 이론만 배우려니 지루하지 않으세요?”
“아닙니다. 오히려 차근차근 배워가는 맛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혹시 더 빨리 배워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당연히 빠르게 습득할 수 있으면 시간을 낭비할 걱정도 없고 더 좋다. 강윤은 의아함에 물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지도하는 작은 소모임이 있어요. 그곳에서 곡에 대해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지요. 혹시라도 생각이 있으시면….”
“소모임이라…. 어떤 모임입니까?”
“노래를 만들어 활용하는 소모임이에요. 밴드죠. 5명 정도가 모이는 모임인데 저희끼리 친목을 다지며 곡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곡을 위한 작은 모임이라면 강윤도 크게 부담이 가진 않을 것 같았다. 자주는 나가지 못할 것 같지만,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그들의 자유로운 발상도 배우고 음악이론도 배울 수 있다면 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강윤이 승낙하자 최찬양 교수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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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떡해….”
한주연은 현관 앞에서 거울 앞에서 눈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 쉬었다.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짙은 다크서클이 눈 밑에 깔려 있었다. 밤새 양을 세는 건 기본이요, 잠들게 해준다는 온갖 기법은 다 써봤지만 결국 2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첫 방송이라는 긴장은 그만큼 컸다.
“언니, 눈 장난 아니에요….”
“엄청 심하지?”
“화장으로 가릴 수 있을까요? 티 많이 나는데….”
학교에 가기 위해 교복을 입고 나서려던 서한유의 표정이 한주연의 다크서클에 걱정으로 물들었다.
“원래 그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어제 잠도 설치고 그것도 터졌어…….”
“에엑? 그거요?”
“응….”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그날’의 마수까지 덮친 것이다.
“이거 어떡해요. 어디 아프진 않아요?”
“다행히 그러진 않네. 아, 몰라. 일단 그거 좀 빌려줄래? 나 다 떨어져서. 나중에 갚을게.”
“네. 잠깐만요.”
한주연은 서한유에게 여성용품을 빌린 후,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회사에 들러 강윤과 만나 방송국에 가기려면 시간이 빡빡했다.
방송국에서 하게 될 테지만 외출용으로 눈화장을 짙게 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시선 집중 당하고 싶진 않았다.
회사로 가니 강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
그런데 강윤은 한주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미묘해졌다.
“어제 잠 못 잤어?”
“…네.”
“다크서클이 엄청나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
여드름, 다크서클, 기미 등 얼굴에 관련된 이야기는 여자들에겐 금기다. 그러나 강윤은 돌직구를 서슴없이 날렸다. 그에겐 연예인의 얼굴이란 일이었다. 한주연도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떨려서 잠을 설쳤거든요. 저…. 괜찮을까요?”
“할 수 없지. 일단 타자.”
한주연이 차에 오르고, 강윤은 한주연이 들고 온 소품들에 주목했다. 평소에 화장을 즐겨 하지 않아 작은 파우치조차 들고 다니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데 오늘은 여성용 파우치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흠…. 그 날인가?’
매니저 7년은 공으로 한 게 아니었다. 그날이 되면 다크서클이 심하게 지는 여자들이 있었다. 한주연도 그런 부류였다. 게다가 미묘하게 불안해하는 모습 등 강윤은 대번에 확신했다.
강윤은 막바지 짐을 챙기고 있는 코디네이터 유세희를 조용히 불렀다.
“팀장님, 부르셨어요?”
“어떻게 화장을 해줘야 할지는 알고 있죠?”
“네, 팀장님.”
“오늘 주연이 그날인 것 같으니까 특별히 신경 써 주세요. 날이 참 얄궂네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건 어떻게 아셨나요?”
“뭐…. 경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팀장님.”
강윤이 최종적으로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를 마치고, 방송국으로 출발했다.
방송국에 도착해 강윤은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떠나고 한주연과 코디네이터, 매니저는 대기실에서 화장을 시작했다.
“눈화장이 엄청나네요….”
“눈 감고.”
“네.”
한주연은 눈에 포인트를 주는 화장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얼마나 화장을 하는지 벌써 30분이 훌쩍 지났다. 방송용 화장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고대기로 머리를 만지고, 얼굴에는 뭐 그리 그릴 게 많은지 두 명이 달라붙어 바르고 붙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수수한 편인 한주연은 그렇게 천천히 세련된 도시여자로 변모해갔다.
“이 정도면 티 안 나지?”
한참의 시간이 흘러, 코디네이터 유세희가 다크서클이라곤 보이지 않는 한주연의 얼굴을 보며 만족했는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나?!’
한주연은 화장이 완성된 자신을 보며 매우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땀에 절어 김을 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세련되고, 누구나 한 번씩 다시 돌아볼 만한 여자가 거울 앞에 있었다. 아침부터 걱정했던 다크서클 따윈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아아, 힘들다. 주연아. 다크서클 장난 아니더라. 이렇게 짙은 경우도 드문데 말이지.”
“그런가요. 죄송해요. 제가 그 날이라….”
“다 알아, 알아. 뭐, 보람 있었으니 된 거니라. 팀장님 진짜 대단해.”
“네? 팀장님이 왜요?”
여기서 팀장님이 왜 나오느냐며 그녀는 눈으로 물었다.
“대번에 너 그 날인 거 아시던데.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 뭘 알겠어. 감인가? 대번에 아시던데? 어지간히 너희 신경 쓰고 있었나 봐.”
“그래요?”
“응. 그렇게 세심한 거 보면 주아나 디에스나 팀장님만 찾는 게 이해가 가. 소문 들었니? 아, 주연인 진경이랑 친해서 잘 알겠구나.”
“네. 진경 언니가 팀장님이랑 일하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어요.”
“내가 가수라도 그럴 것 같아. 뭘 해도 다 괜찮다니. 내가 가수라도 두근두근할 것 같아.”
정세희 코디네이터는 30대라는 나이에도 소녀처럼 두 손을 모으며 동경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한주연도 강윤의 이런 케어에 놀랐다. 김진경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준비는 다 됐어?”
그때, 인사를 마친 강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는 한주연의 화장한 얼굴을 살피며 다크서클의 여부를 특히 꼼꼼히 체크했다.
“조금만 더 이쪽에 파우더를 찍어주세요.”
“네.”
잠시 동경에 빠져있던 정세희 코디네이터는 강윤의 말에 곧 현실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됐나요?”
“네. 괜찮군요.”
이미 다크서클이 보이지 않는데도 더 꼼꼼함을 요구하는 강윤에 정세희 코디네이터는 바짝 긴장했다. 한주연도 마찬가지였다. 강윤의 이런 모습은 조금은 풀어질 듯했던 그녀를 다시 잡아주었다.
“드레스 리허설하러 가자.”
“네.”
한주연은 강윤의 뒤를 따라 오늘 녹화가 있는 무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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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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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모창가요제는 말 그대로 전국에서 유명 가수를 잘 따라 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방송이다. 명절특집프로그램으로 파일럿방송이었다. 전국 팔도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사람들이 방송무대, 본선에서 겨루는 방식이다. 물론 지금은 파일럿이라 제작진이 직접 UCC 등을 보내온 사람들을 선발했다.
“팔도— 모창!! 가요제!!”
“오오오–”
사회자 지창석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500명의 관중의 환호가 녹화의 시작을 알렸다. 카메라에 일제히 빨간 불이 들어오며 각종 장치에도 일제히 신호가 들어왔다. 무대 뒤편도 분주히 바빠지면서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떨려….”
비교적 앞쪽에 있던 한주연은 두 손을 모으며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사전에 말을 해서 1번은 면했지만 12명의 참가자 중 5번에 배정되었다. 1명, 2명 순서가 빠질수록 가슴이 더더욱 두근거렸다.
‘아…. 실수하면 어떡하지…. 내가 못하면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거고, 데뷔도 못 하게 되는 거 아냐? 그러면 가수도 못 될 거고, 아….’
한번 안 좋은 생각을 하니 계속 그쪽으로 생각이 굴러갔다. 한주연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생각이란 원래 한번 빠지면 그런 법, 그녀는 결국 무대 뒤편에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강윤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한주연을 따라나섰다.
“주연아.”
“팀장님….”
한주연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을 보며 강윤이 부드럽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그게…. 저……. 잘못하면 어떡하죠?”
“어떤 걸?”
“그냥 다…. 저기서….”
“못해도 돼.”
“네?”
그런데 한주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런 반전에 그녀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네가 저기 올라간 순간, 이미 네 손에서 책임은 떠난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책임은 내가 진다.”
“팀장님….”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잘 못 하면 어떡하지? 잘 못 해서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그러다가 가수라도 못 된다면?”
“…..”
강윤의 말이 정확했다. 한주연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강윤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힘내라는 의미였다.
“끝까지 가자고 했잖아. 날 믿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넌 저기서 최선을 다하면 돼.”
“…..”
“그래도 울진 않아서 다행이다. 어떤 애들은 우느라 화장까지 망가져서 순서도 미룬 적도 있었거든. 자자. 곧 순서니까 마음 추스르고 들어와. 알았지?”
“네.”
강윤은 더 말을 하지 않고 무대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주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알겠네. 언니들이 왜 팀장님하고 일하려고 하는지….”
무슨 일을 해도 강윤이 뒤에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의 힘을 맛본 한주연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이내 무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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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이현아는 방금 부른 노래가 별로였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그녀의 선배 민찬민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차갑게 반박을 했다.
“그러냐. 그럼 이걸로….”
악보를 수정하고, 그는 다시 멜로디를 쳐주었다. 음을 하나하나 기억한 이현아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연신 투덜투덜이었다.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현아의 모습에 베이스를 매고 있던 김희진이 나섰다.
“현아. 어떤 걸 원하는 거야? 루즈하다 싫고, 빨라서 싫다. 이러면 어렵다?”
“삘이 딱… 안 와요.”
이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팀원들이 이어 타박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 다 모여봐.”
결국, 민찬민이 악기를 들고 있던 모두를 모이게 했다. 그는 악보의 한 소절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물었다.
“현아가 여기가 늘어진다며 아닌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좀 더 빠르게 느낌을 바꿔봤는데 이번에는 너무 급하다 그러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민찬민의 물음에 일렉트릭 기타를 담당하는 이형석이 말했다. 그는 샤프로 음표를 그리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여기는 느낌을 이렇게, 이렇게…. 코드는…”
그런데 그의 음표 그리기가 끝나기도 전에 문미영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되면 진행이 안 되잖아. 턱 막히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한 부분의 코드를 수정했다.
이런 식이었다. 모두가 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좀 더 좋은 곡을 위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시간은 후울쩌억. 저 멀리 흘러가버렸다.
“저…. 배고픈데…”
김희진의 칭얼거림과 함께 토론은 결국 중단되었다.
모두는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한 한 마디를 놓는 토론에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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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순서가 되어 한주연은 무대에 올랐다. 붉은빛이 도는 카메라, 수많은 관객, 조명들까지. 자신을 지켜보는 눈들을 마주하니 진정되었던 가슴이 다시 떨려왔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한주연은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러나 신호가 없어 음악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멈춰버린 찰나의 시간에 웅성거리는 관객, 카메라, PD까지 모든 것들이 무섭게 다가왔다. 이제 열여덟, 어린 소녀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그녀 앞에 보이는 이가 있었다. 무대 뒤에 있어야 할 강윤이었다.
‘팀장님?’
그는 커다란 전지를 들고 있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풋….’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는 너무 자상했다. 이 수많은 차가운 시선 중에 가장 매서워야 할 그 사람은 오히려 가장 따뜻했다. 그 마음에 한주연의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음악 주시겠어요?”
찰나의 시간, 그 말 한마디에 관객들이 이해했는지 차분해졌다. 스태프들이 그녀의 신호를 알아듣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 그댄 — 좋은 – 사람- 하지만 — 그댄 모르죠 —-
가수 강민주와 완전히 똑같은 목소리가 무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이전의 사람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원판인지조차 구별이 안 되는 한주연에 모두 눈을 비벼댔다.
– 그댄 알까요 — 내 맘속 한 사람 —
사회자조차, 아니 그곳에 있는 PD나 다른 스태프들 모두가 강민주가 온 건지 다른 누가 온 것인지 햇갈릴 지경이었다. 원래, 목소리란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의 저 앳된 소녀는 완벽하게 강민주의 노래를 ‘똑같이’ 복사하고 있었다.
강윤은 음표와 빛을 보며 그제야 안심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기 있는 사람 누구냐며 강민주 복사본이냐며 난리도 아니었다.
‘휴….’
한주연이 많이 떨어서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메인 무대가 잘 진행되어 강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이게 잘 안된다 해도 2차, 3차 계획이 있었지만, 시간과 예산이 많이 들어가니 잘 된 일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무대가 끝이 났다. 사회자 지창석은 무대에서 내려가려는 한주연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지만, 낯을 가리는 그녀는 많은 말을 하지 못했다.
‘예능은 확실히 아니네.’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었다. 저 자리에 이삼순이나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강윤은 조금 아쉬웠다.
무대가 끝나고, 강윤은 대기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수고하셨습…. 아.”
한주연은 대기실에 오자마자 다리가 풀려버렸는지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매니저가 얼른 그녀를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수고했어. 좋은 무대였어.”
“팀장님,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겠어. 네가 열심히 한 덕이지.”
강윤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주연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강윤이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 무대를 소화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책임자라는게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녹화가 계속 진행되어 시상식.
녹화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주연처럼 호흡마저 일치한 모창을 소화한 이는 없었다. 1위는 한주연의 몫이었다. 그녀는 상금 200만 원을 받아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강민주 씨의 노래를 거의 완벽하게 부르시던데, 비결이 있나요?”
사회자 지창석의 물음에 한주연은 웃으며 답했다.
“멋진 외조?”
“에에?”
그녀의 말에 참석자 모두가 웃음이 빵 터졌다.
한주연은 상금과 트로피를 받아들고 즐겁게 숙소로 돌아갔다. 물론, 그 돈은 부모님께, 그리고 숙소의 소녀들과 아름다운 고기파티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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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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