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54
15화 – 소모임에서 친 사고(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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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15화 – 소모임 밴드에서 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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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가 끝난 일요일.
강윤은 최찬양 교수와 약속한 대로 한려 예술대학을 찾아갔다.
“여기인가….”
최고의 예술대학이라 불리는 만큼 규모도 상당했다. 일요일에도 많은 학생이 연습과 활동을 위해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강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로 연습실이 있다는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강윤은 학생회관 앞에서 최찬양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지하에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로 들어가니 5명의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마이크와 악기를 잡고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검은색….’
강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있었다. 모두가 만들어내는 파란 음표들은 진득한 검은색의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주하는 곡은 결코 이상한 음악은 아니었다. 발라드의 일종이었는데, 처음부터 강윤의 얼굴은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으읔…….’
검은빛의 영향을 받으니 강윤은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저 밴드의 연주가 마치 생기를 갉아먹는 무엇처럼, 강윤에겐 그렇게 다가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못 듣겠어.’
강윤이 견디지 못해 뒤돌아 나가버리자 최찬양 교수가 놀라 뒤따라왔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아…. 아닙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검은빛 때문이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무방비상태에서 접한 검은 노래는 강윤의 컨디션을 확 떨어뜨렸다. 최찬양 교수가 놀라 그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쉬게 하니 강윤은 간신히 회복되었다.
‘뭐야 이게….’
복도에 마련된 의자에서 쉬면서 강윤 자신도 놀랐다. 검은빛의 효과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지 몸이 아직도 반응하고 있었다. 뭔가가 생기를 확 끌어가는 기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간신히 자신을 수습한 강윤은 최찬양 교수와 함께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연주는 끝나고 모두가 모여 악보와 함께 토론하고 있었다.
“잠깐 여기를 봐줄래요?”
그들에게 최찬양 교수가 이야기하자 모두가 돌아보았다. 그는 강윤을 모두에게 소개해 주었다. 물론, 사전에 강윤이 이야기한 대로 MG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야기는 뺐다. 다만 관계사에서 일한다고 가볍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강윤과 최찬양 교수는 이내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긴 마이너한 느낌이 들어가야 한다고.”
“아니라니까. 여기선 좀 더 살아야지. 마이너 하면….”
강윤은 왜 검은빛이 났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갔네.’
이런저런 코드도 넣어보고 음도 막 넣어보니 검은색 회색 다 나왔을 것이다. 강윤은 그런 실험과정에 지나가다 돌을 맞은 격이었다.
‘그래도 재미있네?’
강윤은 서로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아직은 디미니쉬니 어그먼트니 하는 말들이 오가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니 무척 재미있었다. 프로들이 만드는 작곡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으읔…. 저놈의 검은색….’
1시간 동안 토론해서 만든 음악이 검은색이 나와버리니 강윤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좋은 느낌은 당연히 아니었다. 최찬양 교수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두세 번 연주해보며 이건 아니라 이야기하곤 다시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최찬양 교수도 한두 마디 거들었다.
“여기선 샵을 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최찬양 교수의 말에 그가 오선지 음표에 기록된 샵을 지우고, 다른 음계들을 그려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에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김희진은 통기타로 직접 멜로디를 연주했다. 그 음이 만족스러울 때 모두가 확정을 지었다.
그러나 노래와 함께하면 이상하게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아닌데? 오늘 영 아니다?”
문미영이 드럼에서 내려오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베이스를 치던 김희진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 아, 오늘 이상해.”
한편, 강윤은 죽을 맛이었다.
‘읔…. 기운 빠진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음악에서 나오는 검은빛은 강윤의 기운을 쭉쭉 빨아먹고 있었다.
.
.
.
합주 겸 작곡이 끝나고, 모두가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일요일, 학교 근처의 술집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강윤 일행은 술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강윤 씨, 오늘 보시니 어떠셨나요?”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최찬양 교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강윤에게 물어왔다.
“좋았습니다. 좋을 때다,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하하하하.”
강윤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오늘 저희 노래 괜찮았나요?”
강윤이 답을 피하는 걸 알았는지 문미영이 직접 물어왔다. 강윤은 난감해졌다.
“흠…. 좋더라.”
“그래요? 흠. 표정 보니 아닌 것 같은 데요오?”
“에이, 미영아. 너 왜 그래? 오빠 곤란하게?”
문미영은 짓궂은 면이 있었다. 김희진이 그녀를 타박하자 곧 친구들끼리 티격태격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강윤은 피식 웃었다. 한창때의 젊은이들은 참 보기 좋았다.
술자리에서 최찬양 교수는 말이 많지 않았다. 학생들이 노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게 놔두고 필요할 때 간간이 한두 마디씩 화두를 던지는 게 전부였다. 이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흩어지지 않고 뭉쳐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음?’
강윤은 한창 이야기에 참여하다 악보가 나오자 술잔을 들고 슬쩍 거리가 멀어지는 사람을 발견했다. 마이크를 잡던 이현아였다. 모두가 여기엔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었지만, 그녀만은 거리가 멀었다.
‘밴드에 관심이 없나?’
연습실에서도 곡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노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목소리도 좋았는데, 검은빛이 나와 의아해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술자리가 파했다. 모두가 얼굴이 과하게 붉어지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어깨동무를 하며 반대방향으로 흩어졌다. 테이블의 술병들이 과하게 많은 것이 모두가 과음했다.
물론, 강윤과 최찬양 교수는 적당히 마셨다.
“애들이 참…. 이건 보기 민망하네요.”
“아닙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강윤은 최찬양 교수와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일행이 따라붙었다.
“저기, 오빠.”
“응? 이름이….”
“이현아요.”
이현아는 오늘 본 사람 이름도 기억 못 하냐며 타박했다. 강윤은 허허하며 넘길 따름이었다. 두 사람은 가는 방향이 같아 동행하게 되었다.
“나 오빠 누군지 알아요.”
“날 안다고? 우리가 어디서 봤었나?”
“디에스.”
“응?”
이현아는 트위서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디에스의 거리공연과 함께 믹서를 만지고 있는 강윤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아…. 여기 이런 게 있었네.”
“제가 디에스 팬이거든요. 매니저 이름도 다 아는데…. 딱 한 사람은 잘 몰라요. 그게 오빠였는데, 이강윤이라는 사람이었네요.”
그녀는 이제 알겠다는 듯 강윤을 지목했다. 회사 내에서도 정보를 통제하는 존재가 이강윤이었다. 매니저 이름도 알아내는 팬들이었지만 쉽게 알기 힘들었다.
“인터넷이 무섭네. 그래서, 올리려고?”
“오빠만 올려서 뭐하겠어요. 디에스 매니저 아니셨어요?”
그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인즉슨 디에스는 어쨌냐는 말이었다.
“담당이 바뀌었거든.”
“아아. 디에스 요즘 장난 아닌데. 거기 있으면 힘들겠어요. 요즘 디에스 언니들 잠도 못 잔다면서요.”
“그럴걸?”
“완전,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이…. 매니저들은 다 이래요?”
“하하하. 진짜 팬이 여기 있네?”
이현아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녀는 활기찼고, 가끔 발끈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덕분에 강윤의 귀갓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강윤을 따라붙은 이유가 있었다.
“오빠, 아까 저희 노래 어땠어요?”
“좋았지. 왜?”
“에이, 거짓말. 저 다 알아요.”
뭘 안다는 걸까? 강윤은 의아했다.
“오빠 표정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저희가 노래할 때 계속 인상 쓰고 있던 거 다 봤어요.”
“…..”
“많이…. 별로였어요?”
가끔 눈이 마주치더라니, 결국 이현아는 강윤을 계속 봤었다. 강윤은 결국 깊은 한숨을 쉬며 속 이야기를 했다.
“사공이 너무 많아. 그래서 그런지 노래에 너무 많은 걸 넣으려는 것 같아.”
“오빠가 봐도 그래요?”
“내가 뭘 알겠어. 그런데 좀…. 그렇더라.”
강윤은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그들의 자존심까진 건드리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강윤의 말을 알아들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말이 맞아요. 모두가 작곡과이다 보니까…. 에효. 요즘에는 차라리 처음 곡이 나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니까요.”
“그래도 재미있게 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명곡이 나오겠지.”
“전 재미 없어요.”
그런데 이현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느낌은 하나도 없고, 매일 난잡하게 이야기만 이어지고…. 만들어가는 재미가 느껴지질 않아요. 이대로 가면 그만둘지도 모르겠어요.”
“흠….”
“저 이거 계속해도 될까요?‘
강윤이야말로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말이다.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이 이런 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강윤은 그냥 솔직히 이야기했다.
“오늘 처음 나온 사람한테 물어봐야 뭘 알겠어.”
“그래도…. 오늘 뭔가 느끼신 게 있을 것 같아서요.”
강윤이 느끼기에 이현아는 아무나 잡고 속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답을 찾고 있는 아이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이런 답은 신중해야 한다고 느낀 강윤은 섣부른 답은 피했다.
“느낌이라. 지금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그 과정이 순조롭기만 할 수는 없겠지.”
“매일 이러니까 문제죠. 매일매일 이러니까…. 하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자꾸 하네요.”
강윤이 쉽게 호응을 해주지 않자 이현아는 이내 화재를 돌렸다. 딱 그 나이에 맞는 여자라는 걸 느낀 강윤은 바로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최근 연예인 이야기를 하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뭔가 답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이현아는 강윤에게 아쉬움이 느껴졌는지 계속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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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바쁜 부서라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홍보팀이었다.
민진서가 확 뜨기 시작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홍보팀이 본격적으로 바빠졌고 이어 디에스가 SNS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그 바쁜데에 숟가락을 얹었다. 거기에 이어….
“아아…. 이번에는 한주연이냐!!”
섭외팀 구도민 대리는 또다시 쌓인 결재서류들을 보며 하늘로 휙 던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이놈의 일들은 해도 해도 끝이 안 났다. 주5일 근무가 도입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이 망할 섭외팀과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구 대리, 한주연 영상 포털들엔 다 올라갔어?”
“네. 기사도 다 나갈 겁니다!!”
지만훈 과장의 말에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한 구도민 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입사원 이희선에게로 다가갔다. 고양이상의 미인이었지만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 이거 뭐야!! 사진이 이상하잖아!!”
“네? 잠시만…. 에에?”
이희선 사원은 첨부한 한주연의 사진이 에일리 정의 사진으로 바뀐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휴…. 너 미쳤냐? 이거 팀장님한테 올라갔으면 줄줄이 다 깨진다고.”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너그럽게 넘겼을 일들도 지금은 날이 단단히 서서 쉽게 넘어가질 못했다. 그만큼 홍보팀의 분위기는 칼날 같았다.
이런 홍보팀이 집에도 못 가고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강윤이 왔다.
“팀장님!!”
강윤을 본 지만훈 과장이 반쯤 풀어헤친 와이셔츠의 단추를 서둘러 꿰려 했지만, 강윤이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고생들 많으십니다.”
강윤은 사온 야식을 내밀었다. 다른 팀들은 모두 퇴근하고 남은 그들을 위한 특제 초밥이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한창 배가 고팠던 이희선 사원이 눈이 돌아선 손을 먼저 내밀었다가 구도민 대리한테 눈총을 단단히 받았다. 그러나 강윤은 이내 풋 하고 웃어버렸다.
“맛있게 드세요. 모두가 열심히 해주신 덕에 한주연 홍보가 잘 되고 있습니다. 걸그룹이 데뷔해야 보상이 나오겠지만, 홍보팀만큼은 제가 특별히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팀장님 만세!!”
당연히 홍보팀에선 만세를 불렀다. 저번 디에스 때도 엄청난 업무량에 비례해 호화 해외여행을 다녀온 그들이었다. 일은 빡빡했지만, 보상이 확실하니 일할 맛이 났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할 말을 마친 강윤은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는 이희선 사원의 눈에는 이미 하트가 가득해 있었다.
“팀장님 완전 멋있어요…. 애인은 있으시려나….”
그러자 구도민 대리가 어이없다는 듯, 초를 쳤다.
“야야. 꿈 깨라, 꿈 깨. 주아나 민진서 같은 애들하고 일해도 눈길 한번 안 주는 사람이야.”
“에이, 대리님. 연예인은 원래 인형 같은 존재잖아요. 우리하고 거리도 멀고….”
이희선 대리의 말이 맞았다. 한 회사의 직원이었지만 그들 사이에 있는 간격은 확실히 존재했다.
“풋. 넌 팀장님도 우리랑 같다고 생각하냐?”
“그건….”
“이러니 맨날 이상한 사진이나 집어넣지. 너 저번엔 주아 사진 대신 진서 사진 넣었지?”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잔소리를 늘어놓는 상사와 두꺼운 신경으로 잘 넘기는 후임의 만담을 들으며 주변 직원들은 훈훈하게 야식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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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암…….”
수학 시간.
정민아는 연습 때의 피로를 보충하기에 바빴다. 이 시간은 그녀에겐 가장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특히 수학에서의 함수 이야기나 공식, 엑스가 어쩌고 등이 나오면 누가 말하기가 무섭게 눈꺼풀이 절로 감겨왔다.
지금 시간이 딱 그랬다.
“그래서 엑스의 값이 한번…. 아, 또….”
옆 친구가 정민아를 깨우려고 했지만, 수학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포기한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엔 병든 닭처럼 잠만 자는 정민아는 그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도 사실 정민아의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났다.
“쟤는 또 자네.”
크리스티 안은 그런 정민아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영어 시간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반짝였고 펜에는 힘이 있었다. 그런 크리스티 안을 보며 수학 선생님은 힘을 받는지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쿠어어….”
“…..”
하지만 이젠 편안하게 코까지 고는 정민아는 수학 선생님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야!! 정민아!!”
“…..”
결국, 크리스티 안이 정민아를 흔들어 깨웠다.
“아…. 왜…?”
크리스티 안은 졸린 눈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교단을 가리켰다. 그러자 정민아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가!!”
결국, 정민아는 복도에서 벌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아으….”
복도에서도 정민아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도무지 이놈의 잠은 주체가 되질 않았다. 요새 연습이 너무 힘드니 잠을 자도 자도 부족해졌다. 덕분에 집에서 몸보신 하라며 한약까지 지어보냈지만 체력이라는 게 단기간에 붙는건 아니었다.
“아아…. 우리 아저씨, 너무 힘들게 해….”
“내가 뭘?”
“그냥 그렇다고요…. 연습이 너무…. 으헥?!”
무심결에 답을 했건만, 정민아의 눈앞에 진짜가 나타났다. 강윤이었다.
“아…. 아저씨!! 여…. 여기엔….”
“너야말로 뭐하냐? 복도에서?”
“네? 아…. 그…. 그게….”
“졸다 쫓겨났네. 잘났다.”
“…..”
강윤의 말이 사실인지라 정민아는 할 말이 없었다. 그것보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벌을 받는 모습은 말할 수 없는 쪽팔림을 낳았다.
“공부에 충실하란 말은 안 하지만, 벌은 받지 말아야지. 어휴.”
“으….”
강윤은 정민아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앞으로 학교에 빠질 일이 많아질 것 같아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자 직접 찾아왔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라니….
정민아는 정민아대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 강윤 앞에선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고 있는데, 오늘 이 한방은 매우 컸다.
“애들이 이래놔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애들이야 한창 그럴 때죠.”
강윤 뒤의 교감 선생님이 허허하며 사람 좋은 얼굴을 하는 가운데 정민아는 쪽팔려 죽을 맛이었다. 강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편안함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민망했다.
‘너, 이따 보자.’
‘…..’
정민아에게 작게 속삭이곤 강윤은 교감 선생님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복도에 난 창문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티 안은 웃음을 참느라 배를 잡고 책상 위에 엎드려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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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한 주를 보내고 쉬는 날.
강윤은 작곡과 밴드의 연습을 보기 위해 한려예술대학으로 향했다. 학생회관 건물의 지하로 향하니 연습실 입구에 ‘리커버리 연습실’이라는 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교수님도 안녕하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최찬양 교수와 학생들 모두가 강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윤이 최찬양 교수 옆자리에 앉자 다시 모두가 연습에 들어갔다.
“하루 또 하루 — 반복되는 시간 — 내가 찾고 있는 건 –”
이현아의 노래와 함께 화려한 일렉기타 소리가 연습실 안을 가득 울렸다. 드럼과 베이스의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그 위를 신디사이저의 소리가 꾸며주니 묵직하면서 신나는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강윤은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구나….’
강윤은 검은빛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노래, 드럼, 베이스, 신디, 기타들이 만들어내는 음표는 분명 좋았다. 그런데 하나로 합쳐지기만 하면 이상하게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강윤은 억지로 참으며 어디가 문제일지 생각했다. 최찬양 교수와 악보를 함께 보며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을까 분석도 해보고 저 원인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분석도 해보았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밴드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리더 민찬민이었다.
“3번째 마디 들어갈 때 코드가 이상하지 않아?”
그의 말을 문미영이 받았다.
“오빠 생각도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바꿔볼까?”
다시 모두가 모여 악보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한 부분을 수정하니 다른 부분을 거기에 맞춰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강윤은 그들의 작업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최찬양 교수가 도와주니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현아는 활발히 회의에 참여하는 이들과는 달리 침묵하고 있었다.
‘하기 싫다더니, 조용하구나.’
저번에 집에 귀가하며 했던 말 때문인지 강윤은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분명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턱밑까지 올라온 말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는 이현아를 무시하곤 자신들의 말들로 오선지를 그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작업이 끝난 곡을 밴드들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 꿈을 찾아– 이젠 떠나– 볼까 해 —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젊음에 나를 맡기고–”
이현아의 목소리는 저음의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귀여운 인상과는 달리 소리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강윤은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물론…
‘으….’
검은빛은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노래에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건지 그들의 연주는 계속 검은빛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번과는 달리 강윤은 자리를 비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교수님.’
‘네?’
‘오늘 악보 말인데 저 하나만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강윤의 요청에 최찬양 교수는 알겠다며 승낙했다. 강윤은 이 곡을 활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안심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종일 이어진 밴드의 연습이 끝나고 다시 술집.
힘든 연습이 끝난 이후인지 모두가 왁자지껄했다. 술 한잔이 들어가니 모두가 활발히 자신들의 의견을 활발히 나누기 시작했다. 전에는 곡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지금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때도 이현아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강윤과 활달이 말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언니들, 김희진과 문미영이 그녀를 대화로 끌어들였지만 역시나 잠깐 대화하고는 다시 쑥 빠져나가 홀로 조용히 있었다. 그녀는 최찬양 교수와 간간이 이야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밴드라는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임이 파하고, 귀가시간.
강윤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같이 가요.”
가는 방향이 같은 이현아가 같이 따라붙었다. 강윤은 사양할 것 없어 동행했다.
지하철을 타는데 마침 자리가 남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연습에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던데.”
“재미가 없어요.”
“재미도 없는데 이 모임은 왜 나오는 거야?”
“그것보다, 교수님 때문이죠. 교수님한테 배울 게 많거든요.”
강윤은 바로 수긍했다. 말없이 지켜만 보다가도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채워주는 사람이 최찬양 교수였다. 밴드들도 하다가 잘 모르는 부분은 바로바로 도움을 받곤 했다.
“아아. 그런데 재미가 없어서 고민이에요. 언니들이나 오빠들 노래도 별로고….”
“그래?”
“오빠도 공감하시나 봐요?”
강윤은 순간 찔끔했다. 그러나 이현아는 눈치가 빠른지 킥킥거렸다.
“별로라기 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에이에이. 괜찮아요. 내가 불렀어도 진짜 별로인데요, 뭘. 솔직해도 괜찮아요. 이거 사람들한테 들려주면 돌 맞을걸요?”
이현아는 자신의 밴드지만 점수를 무척 박하게 주었다. 강윤은 그 이유가 궁금해 그녀를 바라봤다.
“맨날 토론만 하고, 바꾼다고 해도 같은 방식만 계속 반복하는데 뭐가 되겠어요. 지금 노래는 이거저거 이어붙인 꼴밖에 안 돼요. 다들 매너리즘에 빠져선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고 있어요.”
“무슨 뜻이야?”
“오늘 제가 불렀던 노래 있잖아요. 거기서….”
그녀는 한 소절을 반복해서 부르며 예를 들었다. 음표가 바뀌며 좀 더 긴 느낌을 주고 음이 높아진다는 둥, 이런 느낌이라는 둥 이야기를 하며 강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소소하게 바꿔봐야 결국 큰 틀이 바뀌지 않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결국, 네 생각은 곡의 분위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구나?”
“맞아요. 지금 꼴을 보면 집 짓는다면서 부실공사한 건물에 리모델링 한 꼴밖에 안 돼요.”
계속 검은빛에만 시달린 강윤은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나 자꾸 불만만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볼래?”
“어떻게요?”
“오늘 연주한 악보 있지?”
“네.”
“그걸 네가 편곡을 해서 모두한테 보여주는 거야.”
강윤의 말에 이현아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에이, 저도 그러고 싶죠. 그런데 전 이제 1학년이에요. 언니들이나 오빠들한테 그러면 하극상이라고 혼나요.”
“그런 게 어딨어.”
“여기가 좀……. 그래요. 위계질서도 강하고….”
강윤은 어이가 없었다. 대학 문화는 잘 몰랐지만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후배 확실한 대한민국이라지만 요즘도 그럴 줄은 몰랐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요?”
“그래도 일단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낫겠지. 너도 작곡과잖아. 선배들이 하는 게 좋지 않다고 말만 하는 것보다 시도를 해보는 게 우선 아닐까?”
“…..”
“뭐, 안되면 할 수 없고.”
강윤이 지나가는 말로 휙 넘어가려는데, 그녀가 답했다.
“알았어요. 사진 찍어서 메일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응. 일찍 보내주면 좋고.”
강윤은 문자로 자신의 메일 주소를 보내주었다.
…이 지나가는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강윤은 이때 상상도 하지 못했다.
—————————————————————————–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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