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109)
신의 천적, 회귀하다 109화
80. 환영회(1)
소내섬 부근, 광주 방면.
이곳에선 거대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영우가 이끄는 타락 군단.
타락 전엔 ‘동산’이라는 세력을 이끌었던 이들은.
종종 행정을 보는 서지혜의 주도로 이렇게 축제를 벌이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15일마다 진행되는 ‘재앙’이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이런 밝은 이벤트라도 없으면 사람들의 정신이 지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쉬어도 정신력은 체력과 별개로 갉아먹히는 법이기에.
이렇게 환기가 필요했다.
척척척.
타락 군단의 솜씨는 대단했다.
병사들뿐 아니라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도 매우 능숙하게 부스를 설치하고, 먹거리를 진열했다.
이미 강동구에 있던 시설을 전부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행정 업무를 보고 있는 서지혜라고 해요.”
웃으며 휠체어를 타고 오는 서지혜를 보며.
일부 대장장이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다리가…….”
“뭐, 이런 지 오래되어서 감흥도 없네요. 하얀 번개를 오래 맞다 보니까 하반신이 마비되어서요.”
“그런…….”
“후후, 걱정 마세요. 제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좋은 휠체어도 많고 시설도 잘되어 있으니까요.”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대장장이들은 서지혜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그래…….’
‘저분은 훨씬 오래전부터 저렇게 사셨는데.’
‘우리도 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어.’
그렇게 서지혜의 안내에 따라.
길드 대장간 플레이어들은 각 부스를 즐겼다.
“마셔! 마셔!”
“크하하하!”
대장장이들은 애초에 제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소주와 맥주로 푸는 이들이었기에.
술과 고기를 먹으니 금세 타락 군단 플레이어들과 친해졌다.
타락 군단의 입장에선 이들은 자신들의 아이템을 만들어줄 고마운 이들이었고.
대장장이들 입장에선 이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고마운 이들이었으니까.
“벌꿀 술도 팝니다! 발할라에서 구해온 귀한 술이에요!”
“포인트 조금 내고 힘 측정 한번 해보세요! 펀치 기계가 마련되어 있어요.”
“신성한 결투장에서 대련하실 분 있으면 오세요! 포인트도 걸 수 있어요!”
각종 상술이 판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게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축제 한복판.
오씨 형제는 다른 대장장이들과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게 벌꿀 술이란 거라고?”
“그래. 타락왕 님이 발할라에서 훔쳐온 거래.”
“크크크. 역시 훔쳐온 게 더 맛있다니까.”
그렇게 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옆으로 검은 깃털을 휘날리는 누군가 다가와 로브를 벗었다.
“응?”
“……엘프?”
기다란 귀를 가지고 있는 상대를 본 오씨 쌍둥이의 표정이 굳었다.
상대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그 또한 엘프.
엘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둘이었기에, 그를 간단히 반길 수만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한번 뵌 적 있죠?”
“아.”
“영우 씨였구나.”
상대를 확인한 둘이 이내 피식 웃었다.
시현이 ‘악몽’을 탐방하고 있을 때 서영우와는 이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원래 인간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후후. 이것도 인연인데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오영일 형님, 오인수 형님.”
둘과 친해져서 나쁠 것은 물론 없고, 운 좋으면 아이템도 얻을 수 있다는 시현의 말에.
서영우는 의도적으로 둘에게 접근했다.
“형님이요?”
“몇 살이신데요?”
“엘프 나이론 수백 살이지만, 인간으론 23살밖에 안 되었습니다.”
“……?”
“…….”
서영우를 본 오씨 쌍둥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늙어 보인다. 이 말입니까?”
“에잉. 이래서 뾰족 귀가 안 된다니까!”
“네?”
“저희 몇 살로 보이는데요!”
“……28살?”
사실 서영우의 눈엔 30대 중후반으로 보였지만.
상대의 반응을 보고 그나마 엄청나게 낮춰 부른 것이었다.
“어휴. 이 눈치 없는 멍청한 뾰족 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박나은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어르신들께 뭐 하는 짓거리야?”
‘어, 어르신?’
‘…….’
“안녕하세요. 삼촌들. 전 마충여인 박나은이라고 합니다.”
박나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 사근사근 다가갔지만.
의도치 않게 오씨 쌍둥이에게 상처를 줄 뿐이었다.
“저희 나이는…….”
“올해로 스물한 살이란 말입니다!”
“으아아! 노안이 죄야?”
“죄, 죄송…….”
‘거짓말.’
‘30대 후반 아니었어? 역시 현장직은 좀 빨리 삭나? 행보관도 그러더니…….’
겉으론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박나은과 서영우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 둘을 쳐다봤다.
하지만 오씨 쌍둥이가 절규하던 것도 잠시.
이내 술 몇 잔을 주고받으니 이들은 가까워질 수 있었다.
“크흠……. 뭐. 저희가 형님 누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죠.”
“네. 좋은 날이니까 저희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부탁요?”
“네. 그 로브 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라도…….”
물론 플레이어에게 아이템을 함부로 보여달라고 하는 건 큰 실례였지만.
오영일은 취한 데다가, 저 아이템이 굉장히 궁금한 상태였다.
“후후후. 멍청한 인간들.”
그 모습을 보던 덩치가 웃으며 다가왔다.
‘크다!’
‘커!’
어디 가서 덩치론 밀리지 않는 오씨 쌍둥이가 작아 보일 정도로.
상대는 굉장히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저딴 A등급 아이템에 홀리다니. 이걸 봐라.”
지이이잉…….
촤르르륵!
오크쟌이 혈기를 불어넣자.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이 찬란하게 변하더니 몸에 딱 맞는 사이즈로 변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선 날개까지 생겨나 허공을 가볍게 날아다녔다.
“미, 미친!”
“형상 변환이라니!”
“게다가 저 무거운 오크의 몸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한다고?”
“저, 저기요! 오크님!”
“아이템 좀 한 번만! 보기만 할게요!”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웃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친해졌어?”
“보기 좋네요.”
“……뭔가 엄청 시끄러워질 거 같은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시현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여왕대행자, 와스넷을 먹어 그 능력을 빼앗은 박나은이 계속해 벌꿀 술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벌꿀 술을 오영일, 오영수, 서영우, 오크쟌과 웃으며 먹고 있었던 것이다.
“크……. 이런 아이템은 대체 어디서 얻는 건지?”
“주인이 줬다.”
“타락왕 님이?”
“……영일아. 우리도 일 열심히 하면 뭐라도 떨어지겠지?”
“재, 재료라도…….”
그렇게 서로 웃으며.
시현의 밑으로 들어온 다섯이 미친 듯이 술잔을 기울였다.
“형님! 오셨습니까!”
“왔지.”
“오, 주인님! 한잔하셔야죠! 유리 동생도!”
“그, 그래요. 언니.”
과할 정도로 자신을 끌어안는 박나은을 보며.
천유리가 마지못해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캬! 이 맛이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술자리가 그렇게 얌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서영우와 박나은이 동시에 있다면 말이다.
“지금은 하이 엘프의 몸이라 그렇지만, 내가 인간일 땐 한 주당 했지. 신입생 때 과 선배가 먹이려 할 때도, 선임들이 외박 나가서 먹이는 술에도 다 살아남았지 하하하.”
“풉. 그래봤자 알쓰지.”
“뭐? 알쓰. 참나, 박나은 너 군대는 가봤어?”
“왜 이래? 나 알티 출신이야. 너보다 군 생활 오래 했다고.”
“뭐? 네가 알티면 대학을 나왔다는 거 아니야?”
“그게 뭐?”
“머리 텅텅 비어 보이는데.”
“이 새끼가…… 공대생을 무시해?”
“으르릉…….”
“캬오옹…….”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오씨 쌍둥이가 눈치를 살폈다.
옆에서 오크쟌은 ‘또 시작이군 한심한 녀석들’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고.
천유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시현과 잔을 부딪칠 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못 참겠다!”
“뭐? 군 부심 박살 난 거?”
“아니? 술 부심 박살 난 거.”
사르륵.
서영우가 손을 한번 휘저으니.
검은 안개가 저 멀리 빈 식탁을 그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쿵.
“들어와.”
사르르륵!
이내 검은 연기를 운용한 서영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몸에 있는 알코올을 전부 날려 버린 것이다.
“뭐 하는 거야? 환영식처럼 좋은 날에 술 배틀이라도 하자는…….”
“쫄?”
“……?”
“쫄았네. 천하의 박나은이 쫄았어. 하긴, 이해는 가.”
서영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시현의 모습을 따라 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해해. 마치 육식 동물을 본 초식 동물이 도망가듯. 자연스러운 이치지. 자존심 상해할 건 없어.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크크크.”
“들어와.”
화르르륵.
박나은의 몸 주변으로 작은 불꽃이 일더니.
그녀의 몸 안에 있던 알코올도 전부 날아가 버렸다.
“한판 붙자고.”
“마기나 마력 같은 건 절대 쓰지 않고. 순수 육체 대결로 가기. 어때?”
“넌 엘프잖아? 더 안 취하는 거 아니야?”
“그러는 넌 벌레잖아?”
“……좋아. 심판은?”
“가살아!”
“꾸르릉……(또 귀찮게 하네. 집사 따까리들).”
서영우와 박나은 사이로.
가살이 투덜거리며 다가왔다.
“마력이나 마기를 쓰면 바로 패배. 가살이가 심판을 봐줄 거야.”
“후후. 좋지.”
말이 끝나기도 전.
박나은이 소주를 한 병 따 그대로 원샷을 때려 버렸다.
“와아아아!”
“화끈하시다! 마충여인!”
어느새 몰려든 주변 타락 군단의 환호에.
박나은도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서영우도 질 수 없다는 듯.
한 병을 그대로 들이켰다.
“와아아아!”
그걸로 시작이었다.
많은 관중이 몰려든 곳에서.
서영우와 박나은은 소주를 잔에 따르지도 않고, 속도를 맞춰 그대로 마셔대기 시작했다.
“걸어요! 걸어! 내기를 걸어!”
“타락구원자 vs 마충여인의 17번째 배틀은 술 배틀입니다!”
“다들 포인트 걸어요!”
한구석에는 이때다 싶어 둘의 대결에 포인트 도박장을 열고 있는 서지혜가 있었다.
“서지혜 누님?”
그 모습을 본 오씨 쌍둥이가 멍청하게 그녀를 불렀다.
“쉿.”
둘을 향해 윙크를 한 서지혜가 웃었다.
‘즐기는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그렇지?’
다른 대장장이 플레이어들도 조금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난 저기 걸래.”
“나도.”
바로 적응해 포인트를 걸기 시작했다.
“원래 둘이 저렇게 싸워요?”
“오늘은 축제라 좀 얌전한 편이다.”
오크쟌의 말에 오씨 형제가 피식 웃었다.
“재밌네요.”
“보고 있으면 저런 멍청이들이 따로 없다.”
“크하하하! 멍청이들이라니.”
“뭘 웃어? 너도 술 개못하잖아?”
“너보단 잘해.”
“쫄?”
“들어와.”
어느새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오씨 쌍둥이도 서영우와 박나은 바로 옆에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하. 역시.”
그 모습을 본 시현이 웃었다.
“개판이네요. 심지어 개판과 개판이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어요.”
“후후.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 나서 전 좋아요.”
어느새 박나은을 응원하고 있는 샐러맨더와.
술을 가져다주고 있는 운디네를 보면서.
천유리가 술을 홀짝였다.
“솔직히 그동안 사람들끼리 서로 싸워대고 죽여대고, 마수들이 몰려와서 좀 그랬는데…….”
“그렇죠.”
왁자지껄한 주변을 보며.
시현이 천유리와 잔을 부딪쳤다.
“유리 씨가 좋다니 다행이네요.”
“이런 모습이야말로 시현 씨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이겠죠?”
“네. 이런 모습도 좋고, 서천 꽃밭처럼 완전히 평화로운 모습도 좋고…….”
시현이 하늘을 쳐다봤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죠?”
“올 거예요.”
천유리가 시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웃었다.
“분명히.”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알딸딸한 알코올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처음 대보기 때문일까?
천유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말뿐만이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시현 씨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밤하늘이 참 예쁘네요. 별도 많이 보이고.”
그렇게 중얼거린 천유리가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산책하고 싶어요.”
“산책이요?”
“네.”
피식.
“알았어요.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