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110)
신의 천적, 회귀하다 110화
80. 환영회(2)
저벅. 저벅.
“흐으응…… 흐응.”
‘적응이 안 되네.’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앞서 걷는 천유리를 보며.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만큼 천유리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천유리가 이렇게까지 밝은 모습은 처음 보는 시현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취한 모습’을 처음 보는 그였다.
회귀 전엔 늘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맨날 장난치던 것도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지.’
회귀 전 시현이 유독 천유리에게 장난을 쳤던 이유는.
원래 늘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만을 짓던 그녀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냉혈이 문제였어. 몸이 차갑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곁을 주지 않으려고 더 웃지 않았던 거야.’
씨익.
‘어쨌거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네.’
야밤에 산책을 나서자는 천유리를 보며.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곤 천유리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의 얼굴도 떠올렸다.
시현과 함께했던 4명의 동료들.
한국의 천유리.
일본의 츠키.
발할라에서 봤던 중국의 종천, 미국의 아담.
이들과는 늘 함께 다니며 웃고, 울고, 재앙과 맞서 싸웠었다.
‘결국 다 죽었지만. 그래도 천유리의 죽음의 원인은 없앴으니…….’
시현이 눈을 빛냈다.
‘나머지 녀석들의 죽음의 원인도 없애야겠지.’
나머지 세 동료의 죽음의 원인은 각각 달랐기에.
시현은 녀석들의 ‘죽음의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츠키나 종천의 경우엔 손을 아직 쓰지 못했지만.
아담의 경우 ‘에덴’과 분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초석을 쌓고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꽤 오랫동안 왔는데도 밝고, 시끌벅적하네요.”
앞서 걷던 천유리의 말에.
시현도 웃어주었다.
“그러게요.”
꽤나 출중한 능력과 스탯을 가진 플레이어와 왕이었기 때문에.
시현과 천유리는 금방 깎아내린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즐거워 보여요.”
“……술은 언제 챙기셨어요?”
“후후. 원래 늘 꿍쳐놓는답니다.”
천유리가 건넨 술을 마시며.
시현 역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래서 분위기 좋은 곳은 언제 데려가 주시는데요?”
“모든 게 끝나면요.”
“모든 게?”
“유리 씨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죠? 제가 신과 계약하지 말라는 이유를.”
갑자기 무거워진 주제에.
천유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근데 늘 궁금하긴 했어요. 이유가 뭔가요?”
사실 천유리에게도 수많은 신들의 계약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신과도 계약하지 않았는데.
이는 시현의 조언 아닌 조언 덕분이었다.
“이유라…….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충격적일 수도 있겠네요.”
시현의 말에 천유리가 마력을 운용해 체내 알코올을 전부 태워 버렸다.
불과 물, 얼음의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에 순식간이었다.
“이 재앙을 만든 건 신이에요.”
“……신이요?”
“네. 저희 인류를 전부 죽이기 위해 만든 거죠.”
“그게 무슨…….”
시현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천유리는 말을 삼켰다.
시현은 애당초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그, 그건 말이 되지 않아요.”
“말이 되지 않는다라…….”
회귀 전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과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는 천유리를 보며.
시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신들이 저희를 쓸어버리려면 그냥 간단히 자연재해를 일으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신화에 나온 것처럼……. 굳이 재앙이란 거랑 레벨? 상태창? 이런 걸 만들어서 인류를 성장시킬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죠.”
“인간 된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이해가 안 돼서요. 그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게다가 신들은 플레이어들하고 계약까지 해가면서 인류를 도와주잖아요.”
천유리의 말을 들은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모든 신들이 인류의 멸망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아…….”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걸까?
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도 천유리는 많은 걸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신들도 인간처럼 서로 싸우는 걸까요?”
“맞아요. 그렇다고 인류의 편을 드는 신들을 무작정 믿을 수도 없어요. 녀석들도 인간처럼 약속도 어기고, 배신도 하거든요. 스틱스 강의 맹세를 한다면 모를까.”
“그런…….”
사실 ‘효율’만 따진다면 천유리는 신과 계약하는 게 옳았다.
그녀의 랭킹은 9위.
시현을 제외한다면 신과 계약하지 않은 플레이어들 중 가장 높은 랭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과 계약한다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시현의 힘으로 타락시킨다면 더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유리를 포함한 동료들에게는 타락의 힘을 쓰고 싶지 않아.’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였다.
“신들이 왜 이런 번거로운 재앙과 시스템까지 만들어가면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지는 몰라요.”
사실 시현은 알고 있었다.
신들이 이런 번거로운 행동을 하는 이유?
단순히 ‘재미’를 위함이었다.
그 이외에도 성장시킨 인간들 중 쓸 만한 녀석들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 봉사하게 하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제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는 거죠.
“시현 씨는…….”
천유리가 씨익 웃었다.
“영웅이시네요.”
“영웅이요? 영웅이라. 그거랑은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시현의 상상 속 영웅은 언제나 정의롭게 행동하며 인류를 위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달랐다.
그는 정의롭지도 않았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인류 중 일부를 배신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뿐인가?
신들의 아이템을 빼앗아 사용하며, 타락한 마기를 다루기까지 했다.
미카엘의 ‘신성한 영광’을 다룰 때면 모를까.
‘타락한 영광’을 다루는 지금은 영웅과 거리가 멀었다.
“아니에요. 누가 뭐라든 상관없어요.”
천유리가 시현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저한테는 영웅이니까.”
“…….”
“…….”
“……갈까요?”
“네.”
어색한 기류도 잠시.
잠시 웃은 둘은 축제가 벌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현 씨.”
“네.”
“그럼 모든 게 끝난다는 건…… 모든 신들을 죽여야만 끝난다는 건가요?”
“…….”
그 질문엔 시현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목표는 모든 신들을 죽이고 인류에게 자유를 가져오는 게 맞았다.
하지만 신들 중에는 인류에게도 호의적인 존재도 있을 터.
단순히 ‘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녀석들을 죽여 버리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당장 베다의 세 절대신,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도 시현을 돕지 않았는가?
“그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시현이 천유리를 보고 말했다.
“봐야 알겠네요.”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류에게 적의를 가진 채,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신.
녀석들은 모조리 소멸할 것이다.
‘시현 씨…….’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이는 시현의 뒷모습을 보며.
천유리의 동공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일곱 번째 재앙까지 남은 시간: 5일.]“거기! 그렇게 움직이면 안 돼!”
“그래. 이제야 요령이 좀 생겼네.”
“벌레들을 적극 활용해!”
경기도 하남, 남양주, 광주.
주변에 있는 산을 싹 다 밀어버린 후, 분지 형태로 개조된 이곳에서.
가장 바쁜 건 다름 아닌 오인수였다.
그는 목이 다 갈라질 정도로 소리치며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좋아! 그렇게! 들어 올려!”
랭킹 277위, 건축가 오인수.
오영일의 쌍둥이 형제이자 동생인 그의 특기는 ‘건축’.
아이템 제작을 특기로 가진 쌍둥이 형과는 다른 능력이었다.
“잘 되어가냐?”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 감독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 큰형님. 오셨습니까?”
“어. 왔어.”
환영회 이후 시현은 오씨 쌍둥이들에게서 ‘큰형님’이라 불리고 있었다.
으레 남자들이 그렇듯.
술잔을 기울이며 상당히 친해진 덕분이었다.
“일은 어때?”
“예상보다도 완벽합니다. 무엇보다 빠르고요.”
오인수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찬양을 시작했다.
“형님이 데리고 있는 것들. 이 녀석들 정말 대단합니다.”
“오호. 그래?”
“네. 오영일 그놈은 모르겠지만 저한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었습니다. 아이템 제작이야 거의 혼자 하는 거라 그렇다 해도 ‘건물’이나 ‘시설’을 짓는 인물은 거의 없었죠. 3,000명 중에 300이나 되었나?”
“그런데?”
“이제 그 300명이 현장 노하우를 살려 현장 감독만 하니까 편하죠. 스파르토이? 그 일꾼들은 지치지도 않더만요.”
오인수의 말처럼 스파르토이들은 지치지 않았다.
마력만 주입한다면 뭘 먹일 필요도, 쉬게 할 필요도, 재울 필요도 없는 최고의 일꾼이었다.
그뿐인가?
마력을 주입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인간 플레이어보다 힘과 내구도도 좋아 굉장히 좋았다.
이따금씩 팔 4개 달린 녀석도 있고, 날개 달린 녀석도 있었기에.
그 건축 기술이 남달랐다.
“살다 살다 이런 노가다꾼들은 처음 봅니다.”
“뭐, 감정도 욕구도 없는 기계 같은 놈들이니까.”
“그래도 문제는 있습니다. 큰형님.”
잠시 숨을 고른 오인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희가 신의 후원을 받는 건 아니라서 시멘트나 뭐 이런 게 굳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큰형님이 아니었다면 시멘트를 구할 생각도 못 했겠지만…….”
“키비시스가 좋긴 해? 그치?”
“쳇. 혼자만 인벤토리 쓰다니. 그거 핵이라고요. 핵.”
오인수가 키비시스를 지그시 쳐다봤다.
오씨 쌍둥이는 오래전부터 유독 키비시스를 부러워하곤 했다.
“영일이 그놈도 자이언트 앤트들 덕분에 원하는 대로 지하 요새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사람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도 만들었으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박나은을 시켜서 결계를 칠 거야. 결계를 치면 이전에 레드 엘프들이 습격했던 것처럼 습격할 순 없어. 다른 마수나 이종족들도 마찬가지고.”
“……감사합니다.”
오영일, 오영수는 원래라면 네 번째 대재앙까지 엘프들의 노예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쌍둥이.
‘이번엔 그렇게 두지 않지.’
녀석들은 시현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이자.
이제는 시현을 따르는 동생이자 신하들이었기 때문에.
시현은 이들이 죽는 미래를 맞이하게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한.
시현의 의지는 현실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어색해 보이는 둘을 뒤로.
시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남은 8일 안에 모든 시설을 뚝딱 만들기란 불가능해. 아무리 늦어도 몇 달은 있어야 하니까.’
다시 소내섬으로 돌아가며.
시현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엘프들의 공격을 최대한 막는 게 목표겠네. 뭐, 서영우, 박나은, 오크쟌이라면 문제는 없겠지. 천유리가 잘 컨트롤해 주기도 할 거고.’
시현이 없는 동안에도 저 넷은 아주 효율적으로 서로 역할을 분담해 버텨낸 플레이어들.
시현이 종종 자리를 비워도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열일곱 번째 재앙까지 남은 시간: 2일.]“유리 누님!”
“네? 네…….”
“말 편하게 하셔도 된다니까요!”
“네. 편하게 할게요.”
“참…….”
새 대장간.
오영일을 찾은 천유리는 여전히 그에게 편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삼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확실히 이 재료는 엄청나네요.”
“SS급이니까요. 화룡의 역린도 재료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화룡의 역린은 이미 천유리의 손등에 피부처럼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제작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누님.”
“부탁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제 최고의 도전이 되겠네요.”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 있어 하는 오영일을 본 뒤.
천유리가 알겠다는 듯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그래. 모든 짐을 시현 씨에게만 맡길 순 없어.’
꽈악.
‘나도…… 나도 더 강해져야 해. 신에게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 운디네와 샐러맨더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치, 아이템, 마법 연구, 정령술.
더 강해지기 위한 모든 수단이 필요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