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122)
신의 천적, 회귀하다 122화
86. 놀이공원(1)
뒤에서 자신을 받쳐준 시현을 본 그 순간.
천유리는 모든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같은 행동을 해도 어딘지 모르게 듬직해 보이는 시현의 모습에.
천유리의 심장이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시현 씨가 왜 여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외모가 잘생겼음은 물론이고.
그는 언제나 당당하고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
이는 곧 ‘든든함’을 의미했다.
이따금씩 과할 때가 있지만, 자신에게 장난치는 모습도 친근해서 좋았고.
냉혈을 치료해 준 점, 아버지와의 사이를 좋게 만들어준 점, 정령왕의 보옥이라는 아이템을 준 점 등.
그에게 입은 은혜도 상당히 많았다.
무엇보다 그와 계속해 붙어 있으니.
천유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성에게 가슴이 설렌다’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시, 시현 씨?”
하지만 그런 몽글몽글한 마음과는 정반대로.
얼떨결에 시현의 품에 안긴 천유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현재 자신은 마력을 전혀 운용하지 않은 채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고 있던 상태.
즉,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는 상태였다.
“으갸아악!”
“……?”
괴성과 함께, 천유리가 시현의 품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시현이 피식 웃었다.
“와, 빠른데요? 훈련 안 하셔도 될 거 같은데.”
“시현 씨!”
“왔나, 주인? 보다시피 육체 수련 중이었다.”
“육체 수련?”
오크쟌의 설명에도 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딘지 모르게 민망해진 천유리가 냉기로 땀을 식히며 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싱크홀에 다녀왔잖아요.”
“네.”
“그런데 제가 부족한 점이 뭔지 잘 알겠더라고요.”
천유리.
그녀는 마법사와 정령사라는 듀얼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싱크홀에 들어가서도 스킬만 쓰는 바람에 지능 스탯만 무지막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만큼 힘, 체력, 민첩 스탯은 낮았기에.
이와 관련한 스킬을 받아들이고 이 스탯들을 올리기 위해 운동 중인 걸로 보였다.
‘그런다고 스탯이 막 올라가진 않을 텐데. 하긴, 운동이라도 하면 위기 상황에서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능숙해질 테니까.’
위급한 순간에 ‘블링크’에만 의지하다 죽어 나간 마법사 플레이어들을 많이 봐온 상태였기 때문에.
천유리의 이런 행동 전략이 이해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적어도 주 스탯에 관련해선, 단점을 보완하는 게 장점을 강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으니.
“훌륭하네요.”
“…….”
시현의 칭찬에 천유리가 고개를 휙 돌려 주변 온도를 낮췄다.
어떻게든 땀 냄새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며 딴청 피우는 천유리를 보며.
시현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천유리가 운동이라……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회귀 전과는 다른 그녀의 매력(?), 모습(?)에.
시현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회귀 전과 달리 아프고 냉정한 모습은 없어서 좋긴 한데…… 뭔가.’
스윽.
천유리는 회귀 전부터 서로 목숨을 맡길 수 있었던 동료였지만.
동시에 시현은 물론 다른 동료들과도 살짝 어색했던 사이였다.
천유리를 위해서라면 많은 걸 해줄 수 있고.
그녀가 여전히 회귀한 이유 중 하나이긴 했지만.
회귀 전과 다른 모습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다른 녀석들도 이렇게 느껴지려나.’
발할라에서 만났던 아담과 종천.
둘은 회귀 전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했다.
‘뭐. 둘은 각각 근육, 검술 바보니까. 그럼 츠키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봤자 의미도 없고.’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바람에 오크쟌의 ‘트레이닝 계획’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이.
무언가가 재빠르게 달려와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
“오라버니!”
고개를 숙이니 양 갈래 머리를 한 꼬마 아이가 한 명 보였다.
“잘 있었어?”
“네! 감사해요.”
장희수가 환하게 웃었다.
“꾸르르릉!(또 어디 있다가 온 거냐? 망할 집사!)”
장희수가 인사하고 있을 때.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가살이 달려들어 머리를 쿵쿵 쳤다.
시현이 자신만 내버려 두고 어디로 가버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녀석. 잘 있었냐?”
“꾸릉!(흥이다.)”
이내 고개를 돌린 가살이 천유리에게 다시 달려갔다.
보아하니 시현에게 단단히 삐진 듯싶었다.
‘에휴…… 풀어주려면 꽤 걸리겠네.’
천유리에게 부탁해 정령석을 얻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시현이 앞을 살폈다.
“오셨네요. 형님.”
“타, 타락왕 님?”
무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서영우와 장도현이 시현에게 다가왔다.
그중 재빨리 달려온 장도현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장도현은 이미 딸에게 시현이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줬는지 전부 들은 상태.
그는 자신의 딸을 구해줬을 뿐 아니라 다크 엘프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 다른 플레이어들도 구해준 인물이었다.
즉, 장도현의 입장에선 영웅을 넘어선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끼리 도와야죠.”
“…….”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 장도현이 소리 없이 울었다.
“아니. 이 아저씨 또 우시네.”
“저 인간은 울보다. 울보.”
투덜거리면서도 서영우는 추악한 깃털 사이에서 휴지를 챙겨 장도현에게 주었고.
오크쟌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장도현의 이명이 ‘그냥 광대’가 아닌 ‘통곡광대’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눈물이 많기 때문이었다.
“아빠. 그만 울라니까…….”
오히려 장희수가 어른스럽게 손수건을 꺼내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흐그그그극…….”
“…….”
“저랑 제 사람들, 제 딸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살 곳까지 마련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 시현은 밀어버린 광주 땅에 놀이공원 플레이어들을 이주시킨 상태.
새롭게 영입한 건축가, 오인수 덕분에 이들이 살 땅은 충분했다.
“편하게 계세요.”
시현이 웃었다.
시현이 정복한 이곳은 가진 땅의 넓이에 비해 사는 사람이 적었다.
스파르토이들은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았기에 박나은의 연구를 돕거나 계속해 경계를 섰고, 그것도 아니라면 밖으로 나가 아이템을 파밍해 왔고.
벌레들은 알아서 산속에서 살았다.
즉, 시현의 입장에선 어차피 남아도는 땅 몇 평을 줘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통곡광대 장도현에게 빚을 지워놓으면 오히려 이득이지.’
물론 사람을 구한다는 대의명분도 있지만.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시현의 성격상 공짜로 이들을 먹고살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은혜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어떻게든?”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흠칫.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이는 예감일 뿐.
시현에게 너무 큰 은혜를 입었기에 장도현은 얼마든지 은혜를 갚을 생각이 있었다.
“그럼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죠?”
씨익.
“장도현 씨.”
“네. 타락왕 님.”
“그냥 시현 씨라 불러주세요.”
“네. 시현 씨.”
“제가 바라는 게 있긴 한데…….”
“오호…….”
“신기하네.”
“동심 찾기 프로젝트인가?”
“정말 예쁘다! 그치, 가살아?”
“꾸르릉!(그러네. 어린 3호 집사야.)”
소내섬.
아직 싹조차 틔우지 못한 세계수 주변으로 무겁고 거대한 철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쿵!
“이 아이템은 대체…….”
양귀비처럼 활짝 피어난 꽃 주머니에서 수많은 놀이기구가 나오는 걸 보며.
장도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분명 용인의 놀이공원에 있던 놀이기구들이었다.
“뭐. 틈틈이 모았죠.”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로 끝이 아니기도 하고요.”
용인에 있던 놀이기구로도 모자라.
시현이 원래 근무했던 잠실 놀이공원의 놀이기구까지 나오고 있었다.
“오…….”
그걸 본 장도현의 눈이 빛났다.
“확실히 이 정도면…….”
장도현의 특성 ‘어뮤즈먼트(S)’는 놀이기구들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강력한 특성.
당연한 소리지만 놀이기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강력했다.
‘장도현은 멀리 퍼져 있는 놀이기구들로도 엄청난 수비력을 보여줬던 플레이어야.’
키비시스가 쏟아부은 놀이기구를 특성과 스킬을 이용해 하나둘 설치하는 장도현을 보며.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김현이 뒤통수만 안 쳤으면 다콘과 다크 엘프들도 능히 막아냈겠지. 하긴, 철저히 믿는 상태에서였으면 나라도 김현에게 당했을지 몰라.’
오크쟌에게 얻어터지고 제압당해서 그렇지.
김현은 단신의 전투력으로 랭킹 7위까지 갔을 뿐 아니라.
훗날 한반도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하이 랭커였다.
그런 김현이 작정하고 뒤에서 창을 휘두르는데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쿠구구궁!
[통곡광대, ‘장도현’의 특성 ‘어뮤즈먼트(S)’가 발동됩니다.] [스킬, ‘놀이기구 설치(A)’를 발동합니다.]…….
수많은 메시지와 함께.
놀이기구가 알아서 설치되었다.
마력이 부족할 염려는 없었다.
옆에서 박나은이 마정석과 황금 양털을 이용해 그에게 계속 마력을 부여해 주고 있었으니까.
“좋아.”
츠즈즈즉.
이내 키비시스 안에 있었던 여러 기구들이 뿌리내리듯 철근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와 청룡열차 등의 레일은 소내섬 주변 한강에 설치되어 주변을 완벽히 경계했으며.
자이로스핀, 자이로드롭, 자이로스윙 등 이리저리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놀이기구들은 높은 곳에 설치되어 공중을 막았다.
SF 소설에서나 볼 법한 레이저 총을 들고 있는 마스코트, 퍼레이드 기구들이 경계 및 안내를 섰고.
회전목마 등의 놀이기구가 중앙에 설치되었다.
지금은 14위까지 밀려난 상황이지만.
장도현은 엄연한 하이랭커, 그것도 10위권 안에 들었던 플레이어.
이렇게 많은 놀이기구가 있는 한 ‘특정 영역을 수비하는’ 데에 있어 장도현을 따라잡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세계수가 얼마나 커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때까진 장도현이 있으면 그 누구도 쉽게 침입할 순 없을 것이다.
‘장도현의 놀이기구에 불의 고리까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겠어.’
씨익.
시현이 예전부터 점찍어놨던 수비 전문가.
그는 다름 아닌 통곡광대, 장도현이었다.
그가 진짜 힘을 발휘하고, 레벨을 올리면서 각성하고 강해진다면.
이전에 다콘이 다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회귀 전에도 적으로 돌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었지.’
그만큼 장도현은 든든했었다.
퍼어엉!
폭죽이 터지며 소내섬 주변이 놀이기구로 가득 찼다.
“놀이기구 타는 거 좋아하십니까?”
시현에게 다가온 장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그거 좋아해서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후후후. 제가 있는 한 이 놀이기구는 모두 무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계수 근처에 올 수도 없으니 대기 시간도 없겠네요.”
“와아아아!”
“꾸르릉!(신난다!)”
장도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미 익숙한 일인 듯, 장희수와 가살이 재빨리 회전목마로 달려갔다.
-나도 같이 가!
-시르르르……! 이건 뭐 하는 것들이지?
어느새 나타난 운디네와 샐러맨더가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야! 빨리 와! 멍청아. 저거 타보자!”
“애도 아니고…….”
“나 놀이기구 처음 타본단 말이야. 맨날 공부만 해서.”
“……안 간다니까.”
“쫄았냐?”
“으으으…… 안 가! 진짜 안 가!”
서영우는 보기와 다르게 놀이기구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나은은 무려 장교 출신의 군필 여성.
“안 되는 게 어딨어!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야! 오크쟌!”
“크크크…… 재밌겠군.”
박나은은 오크쟌의 힘을 빌려 서영우를 강제로 끌어다 롤러코스터에 앉혔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히히히힛.”
그대로 수많은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원래 비명 지르면서 타는 게 제맛이지!”
“내려가면 죽었어어어어어어!”
“뭐래애애애애…… 술 배틀도 진 게에에…….”
그렇게 멀어지는 두 남녀의 비명을 들으며.
오크쟌은 강 위에 떠 있는 자이로스핀으로 다가갔다.
“흐음…… 저게 좀 재밌어 보이는군.”
오크쟌은 안전장치도 장착하지 않은 채 혼자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무거운 바위를 들고 스쿼트를 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저것도 ‘훈련’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들 즐거워 보이니 다행입니다.”
그 모습을 본 장도현이 웃었다.
“가셔도 됩니다.”
장도현이 시현과 천유리의 등을 떠밀며 웃었다.
“놀이기구들은 전부 제 통제하에 있으니까요.”
그의 말이 맞았다.
놀이기구들은 장도현의 마력과 뜻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별도의 안내 직원이나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아요.”
장도현이 손을 휘젓자.
동물 탈을 쓴 마스코트가 생겨나더니 솜사탕과 츄러스를 들고 나타나 시현과 천유리의 손에 건네주었다.
“아저씨…….”
“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렇게 시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천유리와 놀이공원 데이트를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