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188)
신의 천적, 회귀하다 188화
115. 폭룡교 성녀(3)
기로온이 문을 연 그 순간.
-어린놈아, 가만히 있어라.
“꾸르르릉?(뭔 일 있냐?)”
메헨의 말에 가살이 시현의 품에 달려와 안기지 않았다.
현재 시현은 완벽히 제압당한 연기를 하고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아는 척을 한다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다행히 눈치 빠른 가살은 그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성녀님.”
신성한 제단을 왕좌 삼아 앉아 있는 인간 여성에게 기로온이 무릎 꿇고 머리를 숙였다.
“완벽하게 제압한 상태입니다. 이제 편하게 심문하고, 원하신다면 노예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가라.”
“예. 폭룡의 폭력이 깃들길.”
그렇게 기로온은 허리를 숙인 채, 뒤도 돌지 않고 뒷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마치 노예가 황제를 마주했을 때처럼 최고의 예를 갖춘 모습이었다.
[아이스 큐브(B)]기로온이 나간 걸 확인한 제단 위의 성녀가 손을 휘저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내 기분 좋은 냉기가 정육면체 형태로 퍼져 나가더니.
‘성녀의 신전’이라 알려진 이곳 제일 높은 곳을 뒤덮었다.
‘이 스킬을 이제 배웠구나.’
스킬, 아이스 큐브.
이 안에선 냉기를 활용한 모든 스킬, 아이템의 효과가 강해지며.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스르륵…….
시현이 그렇게 찾던 ‘폭룡교 성녀’가 제단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허공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기다란 은발, 새하얀 피부, 새침한 입술, 또렷한 눈동자, 아름다운 외모.
무엇보다 주변에 휘날리는 열기와 냉기까지.
그렇다.
폭룡교 성녀의 정체는 회귀 전부터 시현과 함께했던 동료.
천유리였다.
***
“큰일이네…….”
지금 이 방 안엔 아무도 없었기에.
천유리는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 따윈 진작 때려치운 상태였다.
“시현 씨께서 정신을 못 차리시면 안 되는데…….”
“꾸르릉! 꼬로로!(저거 연기다, 2호 집사! 너한테 장난치려는 거야!)”
“그래. 가살이도 많이 걱정돼?”
“꾸? 꾸르르…….(이? 답답이가…….)”
천유리에겐 [만물의 소리>가 없었기에 가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천유리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시현의 눈을 쳐다보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끄구류약?”
눈빛을 원상태로 돌린 시현이 웃으며 천유리에게 말했다.
거기에 놀란 천유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넘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단순히 장난만 칠 목적이었지, 결코 그녀를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시현이 재빨리 천유리의 허리춤을 잡았다.
사르르르…….
특수한 효과를 가진 천유리의 새하얀 로브가 휘날리자, 사방에 서리장미가 피어났다.
그렇게 묘한 자세를 하고 있는 시현과 천유리의 눈이 마주쳤다.
맑고 투명한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이 비치고 있을 때.
-지랄하네. 담배 피러 간다.
메헨이 바닥에 침을 뱉어댔다.
화르륵.
그때서야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천유리가 재빨리 시현의 품에서 벗어났고.
시현은 헛기침하며 애꿎은 메헨을 나무랐다.
“야! 왜 이상한 소릴 해서…….”
-이시현. 네놈 귀가 빨개진 건 처음 본다.
“무, 뭔 개소리야!”
“크흠……! 시현 씨?”
역시나 얼굴을 붉히고 있는 천유리를 보며.
시현이 일단 사과했다.
“그…… 죄송해요. 이러려던 건 아닌데.”
“그, 그러니까 적당히 놀리셔야죠!”
그렇게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려는 찰나.
-그런데 얼음 소녀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메헨이 끼어들었다.
“메헨 님도 오랜만이네요. 제가 여기 오게 된 이유라…….”
“꾸르릉…….(말하자면 길다…….)”
***
시현이 쿤달라를 활용해 일루젼 메이즈를 클리어하고 있을 때.
천유리와 가살이 떨어진 곳은 블랙 투스.
수정궁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이야…… 지지리도 운이 없으셨네요.”
시현이 혀를 끌끌 찼다.
원래 계획했던 건 천유리가 먼저 수정궁으로 가 이곳의 정보를 모으고 퀘스트를 선행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곳 블랙 투스에 떨어져 버렸으니 무슨 방법이 없었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시작 위치는 랜덤 아니에요?”
“다른 플레이어들이면 몰라도…… 전 아니더라고요.”
“아니었다고요?”
시현이 알기론 크리스탈 메이즈에 떨어지는 위치는 완벽한 랜덤.
이는 시스템이 직접 설정하는 값이니만큼 누구도 건들 수 없었다.
“교주…… 바이런트. 그놈한테 특별한 스킬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바이런트…….”
“네. 그놈이 용의 피를 추적해 소환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크리스탈 메이즈에 천유리가 소환된 후, 그 천유리를 다시 블랙 투스로 불러왔다는 건가? 아니야. 메이즈 내에서는 공간 이동이 불가능해.’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천유리가 크리스탈 메이즈와 트레인 메이즈 사이 균열로 갔을 때 빼낸 건가?’
어떤 방법이 되었든 고도의 마법을 익힌 존재만이 가능한 방법.
천유리가 시작하자마자 블랙 투스로 왔다는 정보 하나만으로.
시현은 교주의 수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마그마 플라이트는 물론이고…… 대주교 다섯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감당 못 할 괴물이겠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시현의 눈치를 한 번 본 후.
천유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다음부턴 간단했어요. 갑자기 제 뒷목을 확인하더니 ‘화룡의 역린’을 보고선 성녀라고 추앙하더군요.”
“아……!”
그때서야 시현이 손뼉을 쳤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화룡의 역린의 본 주인. 그러니까 그 화룡이…….”
“네. 맞아요. 이들이 섬기는 ‘폭룡’과 같은 존재였건 거예요.”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룡이라 불릴 레드 드래곤은 단 하나밖에 없지.’
폭룡(暴龍), Tyrant Dragon.
플레어 둠(Flare Doom).
여태까진 폭룡이라 불리는 이 녀석이 어떤 드래곤인지 몰라 정체를 정의할 수 없었지만.
폭룡과 화룡의 교집합에 걸리는 놈은 이 녀석밖에 없었다.
‘플레어 둠씩이나 되는 드래곤의 역린이 무작위 아레나 상자에 있었다니…….’
플레어 둠은 훗날 대재앙의 최종 보스 격으로 나오는 마수.
그 강함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격으로만 따져도 주신급이었다.
신과 싸우느라 약화된 상태만 아니었더라도, 인류는 절대신들이 아닌 녀석과 폭룡군단에게 멸망당했을 것이다.
“자신을 폭룡이라 주장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진짜 폭룡이었군요.”
“네. 어쨌거나 전 이곳에 갇혀서 다른 곳엔 전혀 가지 못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인간을 하나 잡아왔단 소식을 들었고…….”
“혹시나 저일까 봐 잡아오라 한 거고요?”
“네. 교주가 보고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말이죠.”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 바이런트가 기로온을 꽤나 신뢰하나 보네. 아무런 의심 없이 성녀에게 다가가게 할 정도면 말이야.’
어쨌거나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현재 서브 퀘스트, [폭룡교 성녀 살해>를 진행 중입니다.]목표 대상이 바로 앞에 있는 걸 아는 것일까?
아니면 시현이 퀘스트를 깨지 못한다는 걸 아는 것일까?
퀘스트를 클리어하라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시현이 미리 생각해 놨던 대로 이 퀘스트는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실패 페널티가 없었다.
‘천유리를 죽일 순 없지.’
보상으로 아이템을 못 가지는 건 꽤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천유리를 죽일 순 없었다.
“그럼 천유리 씨는 여기서 뭐 하고 계셨던 건가요?”
“후후. 놀라지 마세요. 저 은근히 강해졌으니까.”
“네?”
천유리는 단순히 여기 갇혀 있던 게 아니었다.
촤르르르륵.
별안간 검붉은 비늘이 솟아나더니 천유리의 피부를 갑옷처럼 감쌌다.
진짜 용의 날개에 비해선 작지만 천유리의 몸을 완벽하게 감싸는 날개와 끝에 가시가 달린 기다란 꼬리.
무엇보다 맑았던 눈동자가 포식자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경고! 강렬한 기운이 대상을 바라봅니다.] [아이템, ‘쿤달라(C)’가 왕의 격을 드러냅니다.]‘이건?’
이전에 만났던 용암하늘의 대주교, 마그마 플라이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렬한 시선.
어지간한 마수나 플레이어들은 옴짝달싹 못 할 정도였다.
물론 쿤달라를 가지고 있는 시현은 예외였지만.
“역시 시현 씨는 아무렇지 않으시네요. 다른 드워프들은 겁먹어 아무것도 못 하던데.”
“단순히 겁만 주는 건 아닌 모양인데요?”
단순히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
최상위 포식자이자 마수들의 신인 드래곤의 수많은 권능 중 하나.
“그건 조금 조심해서 써야겠어요.”
“저도 정확히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서…….”
“일단 마력의 흐름을 엉키게 하는 것 같고요. 탈진이랑…….”
그렇게 시현은 자신이 방금 당한 척, 드래곤 피어에 대한 효과와 활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회귀 전, 드래곤은 셀 수도 없이 잡아봤고, 녀석들에게 당했기에.
이 정도 팁이야 어렵지 않게 줄 수 있었다.
‘사실 드래곤 피어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정신을 나가게 한다는 거지만.’
쿤달라를 착용했기에, 시현은 평소처럼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천유리를 살핀 시현이 감탄했다.
“그럼 무기력하게 갇혀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네. 바이런트를 설득해서 용의 피를 좀 마셨어요.”
천유리는 시현도 감탄할 만한 방법을 사용했다.
드래곤의 피.
그걸 그냥 원액으로 마셔 버린 것이다.
“한 방울씩 먹어 아직 종이컵 하나 양도 다 못 먹긴 했지만…….”
“잘하셨어요.”
천유리가 마신 건 다른 존재도 아닌 ‘플레어 둠’의 피.
녀석의 피를 무리해서 마시다간 온몸의 혈류와 마력이 타버릴 것이다.
‘종이컵으로 한 잔이 안 되는 양이라곤 해도…… 상당히 강해졌을 거야.’
천유리에겐 여러 가지 마법사와 정령사로서의 호흡법이 있었기에, 용의 힘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령들은요?”
“잘 있죠. 지금은 진화 중이라 함께하지 못하지만.”
“진화 중이요?”
정령이 진화한단 소린 처음 들어봤기에, 시현의 눈이 커졌다.
“네. 아직 잠자고 있어요.”
“흐음…….”
외형이 변할 정도의 강력해진 드래곤의 힘, 새로운 마법 스킬과 정령 진화까지.
당장에라도 그녀의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현재 드라우프니르가 없어 불가능했다.
‘냉기의 힘에 이어 불 속성 레드 드래곤의 힘이라…….’
천유리를 본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엄청 강하시겠네요.”
“실전에서 쓸 일은 없어서요.”
잠시 생각에 잠긴 시현이 그녀를 쳐다봤다.
‘이렇게 되면 천유리와 내가 단둘이서 탈출하는 것도 가능해.’
원래도 천유리가 있으면 이곳을 습격해서 성녀를 죽일 수 있을 전력이었다.
그런데 천유리 그녀 자체가 성녀인 데다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힘까지 얻었으니.
교주가 오기 전 소동을 내며 수정궁으로 가는 게 가능해 보였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수정궁 드워프들은 천유리 씨가 폭룡교 성녀라는 걸 알면 반드시 죽이려 들 거야.’
그리고 현재 수정궁엔 업그레이드 중인 시현의 아이템이 있는 상황.
무작정 천유리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럼 어쩌죠?”
시현에게 모든 상황 설명을 들은 천유리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후, 생각에 잠겼다.
“뭐,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뇨?”
천유리의 물음에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최대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시현이 세운 전략은 이러했다.
우선 시현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해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정궁에 있는 시현 소유 신의 아이템들의 숙련도가 계속 올라감과 동시에.
이곳에서 플레어 둠의 힘을 흡수하는 천유리도 강력해진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은 절대 영원할 수 없어요.”
아직 일곱에 불과하지만, 이제 슬슬 트레인 메이즈나 일루젼 메이즈에서 인간 플레이어들이 넘어올 시기.
그렇게 되면 수정궁에 있는 인간 플레이어들이 이곳, 폭룡교를 습격할 것이다.
원래 최종 보스였던 마그마 플라이트와 프윔이 사려졌기 때문이었다.
폭룡교와 수정궁 드워프들 중 어느 곳 하나가 멸망할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터.
즉,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몰랐기에 최대한 빠르게 힘을 흡수해야만 했다.
“천유리 씨.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탁이요?”
“네. 안 그래도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소중한 시간. 가장 효율적으로 써먹어야죠.”
그렇게 말한 시현이 작은 드워프제 주머니에서 미리 빼놨던 ‘드래곤 하트(A)’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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