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207)
신의 천적, 회귀하다 207화
122. 천일왕 히요리(1)
천일왕 히요리.
그녀의 알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깔끔했다’.
먼지 한 톨 없이 관리되었으며, 주변은 벽 대신 완벽한 생태계로 이뤄진 수조가 있었고.
이따금씩 소나무나 벚꽃들이 늘어져 있었다.
“드시죠.”
“꾸르릉…….(맛있겠는데…….)”
시현을 알현실로 데려온 히요리가 기모노를 입은 시녀들을 시켜 차를 내왔다.
그 모습을 본 시현은 여유로운 척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평범한 시녀 같아 보여도 히요리 주변에서 그녀를 지키는 저들은 ‘쿠노이치’.
저 기모노 속에는 온갖 암기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신기하네요.”
“뭐가?”
“솔직히 한국에서 랭킹 1위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중국이라면 모를까. 사실, 중국도 하나로 뭉친 건 아니라서 제가 랭킹 1위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히요리는 몰랐다.
천마, 천리태가 ‘천마신교’를 중심으로 모은 그 중국 중 ‘일부’가 일본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걸.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국가 간 감정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뭐, 그런 그렇다 치고. 이제 뱅뱅 돌려 말하는 건 그만하지? 밖에 있는 내 부하도 지루할 텐데.”
“그 거대한 오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본론만 말하라고.”
그 모습을 본 히요리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속으로 한 당황을 애써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래요.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타락왕, 이렇게 좀비가 바글거리는 와중에 왜 절 찾아오신 거죠?”
“거래를 하지.”
“거래요?”
“그래. 내가 좀비로 변한 변절자들을 싹 다 찾아줄게.”
그 말에 히요리가 움찔했다.
아주 찰나의 반응이었지만, 시현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역시, 이 녀석들은 변절자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어.’
이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신성력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마당에 변절자를 찾아내는 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죠?”
“보면 알아.”
“…….”
당당한 시현의 말에 히요리가 차를 한 잔 들이켰다.
‘그래. 아무 대책 없이 이곳까지 오진 않았겠지. 적어도 좀비를 확실하게 걸러낼 수단이 있으니 여기까지 나와 협상하러 온 거야.’
“대가는요?”
“불가침조약.”
“불가침조약이라…….”
“모든 재앙 상황이 끝날 때까지 일본은 결코 한국을 침략하지 않는다. 이게 내 조건이야.”
히요리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차피 한국을 침략해서 이득 볼 게 없으니…….’
앞으로 나올 재앙에서 뭐가 나올지도 몰랐기 때문에.
히요리의 입장에선 한국과 싸우는 것보단 협력하는 게 나았다.
그 대가로 시현이 변절자까지 색출해 주겠다니, 나쁠 건 없었다.
“좋아요.”
“좋아. 하지만 구두 계약으로 충분하진 않지.”
[아이템, ‘스틱스의 계약서(S)’를 가져옵니다.]이내 키비시스가 열리더니, 계약서 두 장이 소환되었다.
[스틱스의 계약서(S)]#두 존재의 영혼을 걸고 계약하는 계약서입니다. 계약 내용을 어길 시, 스틱스 강에 그 영혼이 귀속됩니다.
스틱스의 계약서.
상위 플레이어라면 전부 다 알고 있는 계약서로, 이곳에 작성한 계약 내용을 어길 시 저승의 강 ‘스틱스’에 그 영혼이 귀속된다.
이렇게 되면 죽는 건 물론이고, 죽어서도 고통받는 삶을 살았기에.
이 계약서를 어길 만한 담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없었다.
“스틱스의 계약서라…… 이 비싼 걸.”
“뭐, 알다시피 이건 ‘신’들도 얽매일 수밖에 없는 계약서야.”
“확실히 하자는 거군요.”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히요리가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찌른 후, 피를 묻혔다.
“왕이시여!”
“귀하신 몸을…….”
그 광경을 본 쿠노이치들이 경악했다.
심지어 진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미친년들인가?
그 모습을 본 메헨이 혀를 끌끌 찼다.
‘뭐 냅둬, 즐기잖아.’
그렇게 대꾸한 시현 역시 천총운검으로 피를 낸 뒤 스틱스의 계약서에 찍었다.
[아이템, ‘스틱스의 계약서(S)’ 작성을 완료하였습니다.] [타락왕 ‘이시현’ 님께선 천일왕 ‘아라미 히요리’가 지정한 1,000명의 플레이어들 중 변절자를 찾아내 처치해야 합니다.] [*단, 1,000명 중 변절자를 전부 찾아낼 때까지 변절자가 아닌 일본 플레이어들을 살해할 수 없습니다.] [천일왕 ‘아라미 히요리’와 그 휘하 일본 플레이어들은 이제 1,000일 동안 한국을 침공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점은 타락왕 ‘이시현’이 1,000명의 플레이어 중 변절자를 전부 찾아낸 후부터입니다.]아라미 히요리.
그녀가 시현에게 제시한 건 일본을 이루고 있는 1,000명의 핵심 플레이어들이었다.
더불어, 불가침조약의 기간 또한 모든 재앙 상황이 끝날 때까지에서, 1,000일로 협의되었다.
핵심 플레이어 천 명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으나 시현은 드라우프니르를 이용해 그들의 정보를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다.
***
[[진실의 눈>을 발동합니다.] [[폭풍염뢰>를 발동합니다.]콰드드득!
[진실의 눈>을 통해 좀비라고 판단된 일본 플레이어들은 시현이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자, 잠깐…….”
“난 정말로 변절자가 아니…….”
반박은 듣지도 않았다.
스틱스의 계약서가 있는 한 시현은 엄한 플레이어를 죽일 수 없었으니까.
시현이 플레이어 앞에 서고 오래지 않아, 일말의 주저함 없이 베어나가니 정말로 좀비만을 색출하는 것인지 의심하던 주변의 눈초리들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거의 끝인가?
‘맞아.’
그렇게 998명째 플레이어를 판별한 뒤.
사르륵.
발걸음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미소년이 시현의 앞에 와 섰다.
‘이놈…….’
그를 본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깔끔한 외모, 건장한 몸, 찰랑이는 장발.
녀석의 이름은 아라미 아오.
폭풍의 신, ‘스사노오’의 계약자이자 아라미 히요리의 남동생이었다.
“누님…….”
“그래. 아오 왔어?”
녀석이 오니, 히요리가 직접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녀가 직접 일어난 건 처음이었기에 시현은 다소 놀라 분위기를 살폈다.
‘흐음…….’
잠시 츠키의 과거를 떠올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확인 안 해?”
“……알겠습니다. 아오.”
마치 아기 챙기듯이 자신의 남동생을 챙긴 히요리는.
아오를 시현 앞에 데려다주었다.
[[진실의 눈>을 발동합니다.]……
[대상의 종족은 ‘인간’입니다.]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히요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오를 데리고 갔다.
-저놈, 스사노오의 계약자 아니냐?
‘맞아.’
아오의 허리춤에 달린 ‘천총운검’을 바라보며,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 천총운검은 레플리카, 즉 ‘복제품’.
야마타노오로치에게서 뽑아낸 진품이 아니었다.
‘진품은 나한테 있지.’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그렇게 인사하고 나가는 아오를 보며, 시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몰랐지만 시현은 알고 있었다.
저 말끔하고 매력적인 외관과 대조되는 그의 잔혹한 내면을.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렇게 아오가 가고 난 후, 히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가시죠.”
***
저벅. 저벅.
히요리와 그녀를 지키는 4명의 사무라이들을 따라가며, 시현이 남몰래 주변을 살폈다.
‘경계가 삼엄하네.’
몸을 숨기고 있는 닌자와 쿠노이치들의 기감이 잡혔다.
녀석들 나름대로 숨는다고 숨었지만, 시현의 눈을 벗어날 순 없었던 것이다.
‘오크쟌은 따라오지 말라 해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고.’
그럼에도 시현은 웃을 뿐이었다.
‘재밌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지하로 내려간 후.
시현에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달이었다.
‘달? 아니, 저건…….’
달이 아닌 푸른빛을 내는 구체였다.
하지만 능히 달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달 앞엔 한 여자가 쇠사슬로 묶여 있었는데.
그곳에 한참 동안이나 묶여 있었던 건지, 머리는 산발이었고 피부는 푸석푸석했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매가리가 없었다.
“……마지막입니다. 이 여자를 확인해 주십시오.”
꽈득.
그 모습을 본 시현이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빌어먹을 년이…….’
그녀의 이름은 아라미 츠키.
회귀 전, 시현의 동료이자 아라미 히요리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자신의 동료를 이렇게 만든 히요리와 일본 놈들을 당장에라도 때려 부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기에, 시현은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화를 억눌렀다.
그렇게 시현이 츠키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더 이상 접근은 불가합니다.”
“안 됩니다.”
호위라는 핑계로 츠키 주변을 지키고 있던 일본 플레이어들이 도를 뽑아 들며 시현에게 다가갔다.
“그럼 못 보는데?”
“…….”
시현의 표정을 살핀 히요리가 두 병사에게 말했다.
“비켜주세요.”
스윽.
히요리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두 병사가 비켰다.
그렇게 시현이 츠키 앞으로 다가온 그 순간.
시현과 츠키의 그림자가 맞닿아 하나가 되었다.
꿀렁.
그리고 맞닿은 둘의 그림자가 살짝 일렁이는 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진실의 눈>을 발동합니다.] [월녀 ‘아라미 츠키’의 정보를 가져옵니다.] [아라미 츠키>레벨: 51
클래스: 무녀
칭호: 잠겨진 자(S)
[특성>달빛여인(S)
[스탯> [힘 23] [체력 24] [민첩 11] [지능 392] [마력 812] ……(중략) [스킬> [월신강림(SS)] [문 월드(S)] [문 프래그먼트(S)] [환상 방패(B)] [문 스피어(C)]…….#뛰어난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이자, 강력한 신과 계약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갇혀 성장이 멈췄을 뿐 아니라, 건강이 악화된 상태입니다.
‘레벨 51이라…… 근데 마력이 벌써 800대야? 이렇게 갇혀 있어서 제대로 성장도 못 했을 텐데?’
그녀를 본 시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레벨에 비해 지능과 마력 스탯이 말도 안 되게 높은 걸 보니, 회귀 전 그녀가 떠올랐다.
‘하긴 츠키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땐 츠키의 상태창을 보지 못해 어느 정도인지 감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로 보니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좀비가 아니야.”
“그럼 가시죠.”
“좋아.”
사실 [진실의 눈>으로 정보를 확인할 때 이렇게 가까이 붙을 필요는 없었지만.
시현이 노리는 바가 따로 있었다.
“가자고.”
그렇게 히요리를 따라 시현이 다시 위로 올라가고, 그 뒤로 이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나갔다.
끼이이익…… 쿵.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걸 보며, 츠키가 고개를 들었다.
‘난 또 언제까지…….’
주르륵.
츠키의 두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혼자…….’
몇 날 며칠을 갇혀 있는 건지 몰랐다.
그래도 새 사람이 와서 희망을 가졌지만 그뿐.
그 역시 히요리와 함께 온 걸 보니 자신을 구해줄 인물은 아니었다.
‘이제 그만 나가고 싶…….’
그렇게 츠키가 눈을 감은 뒤 다시 한번 떴을 때.
그녀의 앞엔 누군가 서 있었다.
그 누군가는 인간이 아닌 다크 엘프.
다콘이었다.
“다, 당신은?”
“……뭐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파앗!
다콘이 던진 몇 개의 암기들이 어둠 속에서 츠키를 감시하던 닌자, 쿠노이치들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
무려 10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당하는 걸 보며, 츠키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럴 시간 없어요.”
다콘이 단검을 휘두르니, 츠키의 손에 묶여 있던 쇠사슬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화르르륵.
그 트리거로 츠키의 뒤에 있던 거대한 달에 불길이 휩싸여 태양으로 변해 다콘과 츠키를 덮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당할 다콘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하늘에서 땅의 상급 정령, 클레이 두 마리를 소환해 불길을 강제로 억누른 뒤.
다콘이 츠키의 팔목을 잡고 달렸다.
“도망쳐!”
“…….”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츠키는 미친 듯이 달렸다.
‘그래…… 이건 기회야. 언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
“이걸로 계약은 끝났어.”
“네.”
시현이 히요리와 악수했다.
이걸로 시현은 스틱스의 계약을 이행한 상황.
이제 히요리는 1,000일 동안 한국을 침공할 수 없었다.
“오래 기다렸냐?”
“뭐, 시간 금방 갔다.”
오크쟌의 앞엔 10명가량의 사무라이들 머리가 땅에 처박혀 있었다.
“뭘 한 거야?”
“대련.”
“그럼 이제…… 이곳에서 떠나주세요.”
히요리가 시현을 보며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명백한 배척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국인이 여기 있는 게 보기 좋지는 않으니까요. 아직 재앙이 끝난 것도 아니…….”
번뜩.
그때, 히요리의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지하실? 왜 숨겨놨던 태양이…….’
그렇게 히요리를 본 시현의 표정도 순식간에 변했다.
‘다콘이 일을 저지른 모양이네.’
그리고 그 순간.
시현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지하실을 향해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