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33)
신의 천적, 회귀하다 033화
30. 재앙숲(1)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그 인간이라고요?”
“네.”
“대체 어떻게…….”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납득하기 힘든 말이었기에.
천유리의 표정은 굳은 채 펴질 줄을 몰랐다.
“…….”
그렇게 다시 한참동안 차를 홀짝거린 후.
천유리가 입을 열었다.
“제 가정사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신 건가요?”
“그건 모릅니다. 다만 천유리 씨 아버지인 천태수 씨가 유일하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인물인 건 확실해요.”
“……죽어도 만나기 싫었는데.”
천유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죽기 싫으면 만나야겠네요.”
“…….”
“그 인간과 전 어렸을 때만 해도 사이가 좋았어요. 의사 부모님에 딸 하나. 평범한 가정이었죠.”
이걸로 두 번째 듣는 천유리의 가정사였지만.
시현은 잠자코 그녀의 넋두리를 들어주었다.
“저희 부녀의 갈등은 엄마가 음주운전 사고로 죽고 난 다음부터였어요. 엄마가 죽고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그 인간은 매일같이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어요.”
“…….”
“웃긴 일이죠. 그렇게 술을 입에 달고 살면서…… 온 집안 식기를 때려 부수고.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져 의대에 가지 못할까 무서우면 발가벗겨 쫓아내겠다고 소리치고. 그럴 때마다 전 저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투영하지 말라고 소리쳤죠. 전 의대가 가기 싫다고. 하지만 병원장인 그 인간은 의대에, 꼭 가 자기 병원에 들어와야 한다고 소리쳤어요. 그래서 결국…….”
천유리가 피식 웃었다.
“합격했어요. 엄마 닮아서 머리가 좋았던 덕분이죠.”
“공부 많이 하셨네요.”
“많이 했죠. 그 인간은 그 순간 미칠 듯이 좋아했지만. 전 그다음 날 가출했어요. 성인이 되기도 전에요. 그다음부터 그 인간과 연을 끊고 살았죠. 무려 7년 동안이나.”
“…….”
“다행히 의대 붙은 걸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서울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다른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다른 애들보단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혼자 힘으로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렇게 공기업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해 버렸고요.”
천유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일렁이는 눈물 한 방울을 보니.
시현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천유리와 천태수의 갈등은 보통 깊은 게 아니었다.
천유리는 말과 의대 합격을 포기함으로써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고.
천태수는 폭력으로 딸에게 상처를 줬다.
둘 사이의 간극은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태였지만.
시현은 알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화해한다는 것을.
‘천유리가 죽기 직전에…… 천태수는 그녀와 화해하게 된다.’
한반도를 통째로 집어삼켜 다른 세계로 넘기려던 다섯 명의 거대한 악.
에덴의 서영우.
올림포스의 박나은.
환인의 이원정.
아스가르드의 김현.
서천꽃밭의 천태수.
이들 모두와 박 터지게 싸웠던 적이 있던 시현이었기에.
이들 모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천태수는 동료인 천유리의 아버지이자 식물을 이용한다는 까다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한 번 박 터지게 싸운 후엔 시현의 협력자로서 신들에게 맞섰었기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천태수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주술의 힘이 있어야. 천유리를 완벽히 치료할 수 있어.’
안타깝게도 선택지는 없었다.
“웃긴 사연이죠?”
“……아니에요. 그래도 저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저보고 그 인간을 찾아가라는 거예요?”
천유리가 소리쳤다.
“그 인간이 절 받아줄 거라 생각하세요? 의대 합격증을 버리고 간 저를?”
많이 흥분한 탓일까?
천유리 주변으로 강력한 냉기가 분사되기 시작했다.
천유리가 들고 있던 뜨거운 차가 얼음처럼 굳는 걸 시작으로.
주변 모든 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
“그 인간한테 있어서 자식의 의대 합격증은 모든 것이었어요! 7년 동안 아무런 말 없이 절 찾지도 않은 걸 보면…….”
“그건 아닐 겁니다.”
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천태수는 천유리 씨를 누구보다 그리워하니까요.”
“시현 씨가 뭘 알아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주제에…….”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죠.”
시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희 누나는 제가 유치원생일 때 아빠와 새엄마를 죽였습니다.”
“……네?”
“자는 사이에 식칼로 한 방에 보내 버렸죠.”
시현의 사연을 들은 천유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의 사연이 초라해질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누나는 그러곤 그대로 도망쳤죠. 뭐, 촉법소년이어서 벌도 안 받았겠지만.”
“저, 정말이에요?”
“진짜입니다.”
시현이 피식 웃었다.
“너무 그렇게 보실 건 없어요. 오래전 일이니까요.”
회귀한 세월까지 합하면, 시현에게 있어선 정말 오래전 일이었다.
당시엔 엄청난 충격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창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았다.
“죄, 죄송해요. 제가 실언을…….”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그렇게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시현이었다.
“전 천유리 씨와 약속했었죠.”
“약속이요?”
“정확히는 거래였지만…… 천유리 씨가 무작위 정령석 상자를 대신 구매해 주시는 대신에 병을 완치시켜 드리겠다고요.”
“…….”
“전 제가 한 말은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천유리 씨의 병을 치료할 겁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천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 인간에게 가는 건 내키지 않아요. 아니, 간다고 해도…… 그 인간이 저를 받아줄까요?”
“그건 걱정 마세요.”
“……?”
“받아주지 않는다면 두드려 패서라도 치료하게 하겠습니다. 아…… 상대 아버지한테 할 소리는 아닌가요?”
“후후후후.”
시현의 실없는 농담에.
천유리가 표정을 풀고 웃었다.
“고마워요. 말뿐이라도.”
“고맙긴요.”
“그나저나 저희 둘, 비밀 하나 생겼네요.”
“그러게요. 서로 가정사 아는 건 둘밖에 없으니.”
“…….”
“…….”
그렇게 둘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천태수는 천유리의 병을 무조건 치유해 줄 거야.’
시현은 확신했다.
천태수가 늘 천유리를 그리워했던 건 사실이었다.
천유리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가출하고 난 7년 동안 뒤에서 항상 그녀의 소식을 들었고.
회귀 전, 재앙이 터지고 나서 천유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니까.
심지어 자신이 계약한 신과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신에게 맞섰던 인물이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천유리의 유언 때문이었다.
‘해야 할 건 그것만이 아니지.’
물론 천유리의 병을 낫게 하는 게 최우선이긴 하지만.
천태수를 미리 찾아 할 일이 있었다.
천태수가 있는 곳은 서천꽃밭.
온갖 꽃과 재료, 영약.
한마디로 진귀한 아이템들이 넘쳐나는 노다지였다.
[일곱 번째 재앙까지 남은 시간: 13일.]그렇게 재앙이 13일쯤 남은 시점.
시현과 천유리는 짐을 챙겨 떠났다.
사실 짐을 챙길 것도 없었다.
모든 짐은 키비시스 안으로 들어갔으니까.
“나 없는 동안 잘 지키고 있어라.”
“네. 형님! 맡겨만 주세요.”
“에휴…… 꿀잼 시현 씨 가고 노잼 영우만 남겠네. 아쉬워라.”
“크크. 누님 금방 올게요.”
“유리는 긴장해. 너 없는 사이에 내가 요리 실력 추월할 거니까…….”
“언니…….”
천유리가 서지혜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고맙긴. 해준 것도 없는데.”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은 몰랐지만.
시현은 그러려니 하고 갈 길을 떠났다.
“아마 여덟 번째 재앙이 끝나야 올 수 있을 거야.”
“네. 잘 맡아놓겠습니다. 형님! 누님!”
“내가 알려준 마수들 정보들 잘 기억하고.”
“……늘 감사합니다.”
시현은 마수들의 정보를 서영우에게 알려준 상태.
녀석이라면 이 정보를 조금씩 풀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회귀 전, 녀석은 혼자만의 힘으로 거대한 세력을 일궈냈던 능력자였으니.
“그럼 저희도 갈까요?”
“네.”
그렇게 둘이 걸음을 뗐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서울 강남구.
천유리가 나고 자란 곳이자, 현재 천태수가 있는 곳이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이곳은 여섯 번의 재앙에도 거의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이 수많은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게 있었다.
초록빛 넝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가시.
파리지옥과 같은 식충(食蟲), 아니, 식인(食人) 식물.
일부 꽃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독무(毒霧)까지.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물론, 마수들조차 이 주변으로 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선 독무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재앙숲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은 아무리 베고 불태워도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뿐인가?
사방에선 가시들이 비처럼 내렸고.
땅을 뚫은 나무뿌리들이 온몸을 옥죄었다.
그래서 강남구, 그리고 서초구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이곳은 유명했다.
대치역 부근에서 청담역 부근까지 이어진 이 거대한 숲에 붙은 이름은 ‘재앙숲’.
저 안으로 간 마수나 플레이어들 중 돌아온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오는 플레이어들은 종종 있었다.
어떤 한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일 뿐이지.”
삼성역에 위치한 재앙숲 부근.
그 앞에 있는 한 사내가 숨죽여 웃었다.
“재앙숲 깊숙한 곳엔 어떤 병도 고치는 의사가 있다는 건.”
“흐흐흐……. 정말 여기가 개꿀 자리입니다. 형님.”
“그러게 말입니다. 멍청한 새끼들이 전부 여기까지 오고 말이야.”
“하하하하.”
“너무 크게 웃진 마라.”
씨익.
“사냥감이 달아나니까.”
빠지지 않은 뱃살, 수많은 문신, 가학적인 미소.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C등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둘러싼 사내의 이름은 조진성.
그는 사냥꾼이었다.
실제로 활과 석궁을 다루는 사냥꾼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이기도 했고.
재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조폭 생활을 했기에 ‘인간사냥꾼’이라는 B등급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의 특성이 E나 D등급이란 걸 생각해 보면.
조진성의 특성은 상당히 쓸 만한 축에 속했다.
“형님. 저기 옵니다.”
“나도 봤다. 그럼 이제…….”
씨익.
“다들 입 닥치고 대기해.”
조진성.
재앙숲에 있는 ‘의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플레이어들을 속인 뒤 녀석들을 죽여 경험치를 올리고, 아이템을 빼앗는.
일종의 하이에나 같은 남자였다.
‘아직 어린 연놈들이야. 좋아.’
이곳 재앙숲으로 오는 플레이어를 본 조진성이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머리를 매만진 뒤.
부하들은 숨긴 채 혼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그만큼 경험이 적다는 뜻.
그리고 경험이 적다는 건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더욱 잘 걸릴 거란 뜻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곳 재앙숲을 관리하고 있는 문지기, 조진성입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와 여자를 보며.
조진성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문지기라고요?”
그 앞에 있던 남자가 여자를 뒤로 보내며 말했다.
검은 갑옷과 상당히 날카로운 일본도, 이따금씩 튀기는 검은빛 번개, 붉은 주머니.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저 재앙숲에 있는 의사를 찾아오신 거지요? 아무 걱정 마시고.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조진성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통행료로 포인트만 조금 지급하면 말이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