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74)
신의 천적, 회귀하다 074화
58. 어좌
[열두 번째 재앙까지 남은 시간: 3일.]서울 종로구, 경복궁.
재앙이 터지고 난 후, 특수한 힘을 가진 ‘유물’이 된 궁궐.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곳 어좌(御座)엔.
곤룡포를 입은 한 플레이어가 앉아 있었다.
스스승.
단순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위엄과 피 냄새를 풍기는 그의 이명은 조선왕검.
현재 서울, 인천 지역 랭킹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이원정이었다.
“좋은 일이다. 신하들이여.”
진짜 왕처럼.
아니, 이제는 진짜 왕이 되어버린 양옆으로 주욱 늘어져 있는 신하들을 보며 말했다.
“고영수와 천태수를 제치고 나, 아니, 우리 세력이 랭킹 4위까지 올라갔으니 말이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가 보는 곳 왼쪽에서, 행정을 돌보는 문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축하드립니다!”
뒤이어 오른쪽에서, 마수들을 막아내는 무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원정의 세력, ‘군주’.
대재앙이 끝난 직후엔 고영수의 ‘군부’에 의해 용산구를 잃고 중구 절반 정도를 빼앗겼지만.
이번 열한 번째 재앙을 진행하며 잃었던 땅을 모두 복구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 축하하며 기뻐하고 있을 때.
알현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푸른 한복을 입은 여성 신하 한 명이 뛰어들어 왔다.
“폐, 폐하! 손님이…… 손님이 왔습니다!”
어찌나 급했던 건지, 신하 서진희의 얼굴에 있는 두꺼운 안경이 위아래로 흔들릴 정도였다.
“……!”
“…….”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하들이 호통치며 끌어냈겠지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인물이 서진희였기에.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원정의 왼팔이라 불릴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무슨 일이냐?”
그녀의 모습을 본 이원정이 벌떡 일어났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외교를 하면서도 늘 침착한 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이렇게 급하게 달려오다니.
얼핏 봐도 급한 일이 터졌음이 틀림없었다.
“타, 타락악귀…… 타락악귀가 이곳에 왔습니다.”
“타락악귀? 랭킹 1위?”
“네……. 그뿐이 아닙니다! 랭킹 7위 마녀 박나은, 그리고…… 웬 근육 돼지 오크까지 함께 왔습니다!”
[아이템, ‘밤의 장막(D)’이 드리웁니다.]서진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복궁 한가운데, 어좌가 있는 이곳 알현실이 보랏빛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보랏빛 어둠을 뚫고 걸어오는 플레이어를 보며.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상대는 랭킹 1위.
‘무슨 일이지?’
‘우릴 치려는 건 아닐 텐데?’
‘박나은에 오크까지? 이게 무슨 조합이지?’
신하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눈알만 굴리고 있을 때.
보랏빛 코트, 검은 와이셔츠를 입은 시현이 이원정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스르릉.
그가 찬 일본도가 보랏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그 타이밍에.
“여기까지입니다.”
안경을 고쳐 쓴 서진희가 한쪽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더 이상 옥체에 다가오실 수 없습니다.”
‘너무 가까운 거리는 허용하지 않겠단 건가.’
서진희를 본 시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걸음을 멈췄다.
서진희.
대기업 홍보팀 출신으로 이곳, 군주 모든 행정 중 20% 이상을 담당하는 천재형 플레이어.
하급 신, 고려국 태사(太師) ‘서희’와 계약해 특히 외교와 협상에 능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어.
물론 전투적인 부분에선 그리 뛰어나진 않아 마음만 먹으면 뚫고 갈 수 있었지만.
시현도 이곳에 싸우러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걸음을 멈췄다.
스르륵.
시현이 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박나은과 오크쟌도 걸음을 멈췄다.
“이시현입니다.”
이원정이 다시 앉으며 손을 들어 올리자.
그때서야 무관 플레이어들이 허리춤의 검에서 손을 놓았다.
“다들 물러나라. 서진희와 김강태 빼고.”
서진희와 김강태.
각각 하급 신과 계약한 그들이라면 믿을 수 있었기에.
모든 문, 무관들이 시현 일행을 한 번씩 쳐다보며 자리를 떴다.
“그래.”
다시 어좌에 앉은 이원정이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온 건가?”
“뭐. 우선 이렇게 다짜고짜 와서 미안해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여보내 줘서.”
시현이 조용히 천총운검을 어깨에 올렸다.
“거래 하나 하시죠?”
“……거절할 순 있는 건가?”
“그럼요. 하지만 들어보지 않을 순 없어요.”
잠시 시현의 눈동자를 쳐다본 이원정이 침을 삼켰다.
‘보통내기가 아니야.’
상대는 분명 어렸다.
그럼에도
“그래. 여긴 어쩐 일로 왔는가?”
“거래를 하려고 왔습니다.”
“거래? 무슨 거래를……?”
“여기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뭐?”
상대의 입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말에.
이원정이 입을 벌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여길 지켜준다고?’
왼팔 서진희, 오른팔 김강태의 표정을 보니 잘못 들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가 얕보인 모양이군.”
순간, 이원정의 기세가 변했다.
왕의 위엄.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정도의 기운이 시현 일행을 덮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야.”
하지만 이원정의 기세는 셋에게 통하지 않았다.
시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오크쟌과 박나은도 한가락 하는 플레이어였으니.
“얕본 건 아닙니다.”
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원정과 그가 가지고 있는 세력, 군주.
조선과 고려 출신 중·하급 신들이 모여 형성한 세력이자.
한반도를 지배하는 위대한 신, ‘환인’의 후예들.
그런 저들이 대재앙도 아닌 이런 평범한 재앙 하나에 겁먹을 리 없었다.
저렇게 자존심 상해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다만.
현재 이곳, 경복궁은 ‘진짜로’ 위험했다.
그리고 시현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하나.
언제나 그렇듯 ‘예언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었다.
“봤습니다.”
“뭘?”
시현이 웃었다.
“이원정. 당신이 죽는 모습을요.”
“그러고 보니 자네…… 예언자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나?”
“네.”
“내가 알기론 예언자 특성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진짜로 미래를 보는 건 아니야. 시스템에 한정해서 다음 재앙 상대가 누군지, 어떤 퀘스트가 주어지는지 미리 알 수 있을 뿐이지. 아니면 어떤 신이나 마수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거나.”
이원정의 말에 서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릴 너무 물로 봤어. 타락악귀.”
“뭐, 물로 보지 않았다니까요. 이원정 씨가 말한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예언에 대가가 따르는 건 알고 있습니까?”
“대가?”
그 사실은 몰랐다는 듯, 이원정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보통 플레이어라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변화였지만, 시현은 알아챌 수 있었다.
“다음 재앙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건 공짜가 아닙니다. 뭐, 그쪽엔 예언자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시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전 그쪽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대가를 치르고 예언을 엿봤습니다. 그 예언에선 이곳 경복궁과 이원정, 당신이 위험했고요.”
“…….”
그 말을 들은 이원정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구라지.’
시현이 속으로 웃었다.
시현이 한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그중 일부는 사실이었다.
예언을 보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원정이 이번 재앙에서 엄청나게 위험해지리라는 것.
적어도 이 두 가지는 사실이었다.
물론 시현은 예언을 본 게 아니라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폐하. 완벽한 거짓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몇 가지 정보는 사실입니다.
서주희가 전음(傳音)을 통해 이원정에게 말했다.
그녀의 스킬 중 하나 ‘거짓과 진실’.
그 효과로 인해 상대의 거짓과 진실을 판별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상대가 한 말 중 몇 가지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뿐, 어떤 말이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짓과 진실 스킬이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더 헷갈리는구나. 우리 측에 정보가 아예 없으니 말이야.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예. 폐하. 오히려 좋습니다.
-설명해 봐.
-예언자 특성을 가진 타락악귀가 저희를 이렇게까지 찾아와 도와주겠다고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 녀석의 도움이 없다면 저희가 죽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대재앙이 아니라곤 하나, 재앙 땐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렇지 어떤 재앙 상황에서도 방심할 순 없는 노릇이지.
-설령 저희가 위험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락악귀 이시현의 도움을 받아 나쁠 건 없습니다. 녀석은 랭킹 1위, 박나은은 랭킹 7위입니다. 저 옆의 오크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요.
-도움을 받으면 최소한 경복궁과 건물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피해를 ‘덜’ 입을 거라는 거지?
-네. 안전장치 하나 있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보상을 원하고 왔을 겁니다.
-보상. 보상이라. 그럼 중요한 건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겠군.
-네. 계산기 열심히 두드려 보겠습니다.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이원정과 서진희의 눈동자를 보며.
시현이 속으로 웃었다.
‘예상대로라면 서주희는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일 거야. 예언자의 힘으로 위험을 인식시킨 데다가 내 협력이 있어 나쁠 건 없으니.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지.’
서주희는 회귀 전 군주 세력을 랭킹 2위까지 올려놨던 인재 중 인재.
단순히 힘으로 세력을 다루거나 마수를 상대할 수는 없다는 걸 증명한 최고급 인재였다.
그렇게 합리적이고 똑똑했기에, 시현은 확신했다.
자신이 하는 제안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시현이 원하는 건 저들에게 있어선 너무나 별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몇 분 후.
마음을 굳힌 이원정이 시현에게 물었다.
“그래. 보상으로 뭘 원하지?”
“어좌. 지금 앉아 있는 어좌에 한 번 앉게 해주세요. 대신 이렇게 다른 신하들을 다 물린 상태에서 앉아도 됩니다.”
“어좌…… 어좌라……. 설마. 자네.”
“네. 전 ‘조건’을 만족한 상태입니다.”
“[왕의 시련>을 말하는 거겠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현을 보며.
이원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좌의 주인인 나조차 [왕의 시련>을 진행하기 위한 조건을 알 수조차 없는데, 자넨 그 조건을 이미 다 알고 충족까지 했다라…….”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라 생각하며.
이원정이 다시 한번 서진희와 전음을 나눴다.
-대가가 상각보다 싸군.
-……동의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어좌를 강력하게 원하는 걸 봐선 여기에 담긴 힘. 그리고 [왕의 자격>이라는 히든 퀘스트가 저희 예상보다 보상이 클 수도 있습니다.
-어좌는 특정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어. 그 조건이 뭔지, 그 혜택이 뭔지 아무도 모르고. 그러면.
이원정이 피식 웃었다.
-협상거리가 하나 더 생겼군.
“조건이 더 있네.”
“말씀하세요.”
“어좌에 앉아, ‘진정한 왕’이 되며, 플레이어가 차원이 다른 격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퀘스트, [왕의 시련>. 그 조건을 나에게도 알려주게.”
“좋죠.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대신 저도 한 가지 더 부탁드릴게요.”
“뭔가?”
“[왕의 시련>을 진행하는 동안 어좌가 파괴되거나 손상 입으면 그 위에 앉아 있는 저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왕의 시련>을 진행할 땐 육체는 놔두고 영혼만 떠나거든요.”
“……그럼 자네가 [왕의 시련>을 진행하는 동안은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건가? 그동안 여기 앉지도 못하고?”
“네. 게다가 안쪽과 이쪽의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얼마나 걸릴지도 몰라요.”
“뻔뻔하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라……. 그동안 내가 여기 앉지 못하면 신하들에게 체면이 안 설 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체면 잠깐만 구기고 조건을 알아내서 ‘진짜 왕’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겸사겸사 열두 번째 재앙에서도 살아남고요.”
“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이원정이 웃었다.
“그래. 그래야 랭킹 1위 정도 하겠지. 좋아. 자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뭐. 서로 믿자고요. 제가 우선 이곳을 지켜 드릴 테니. 약속 지켜주세요.”
“좋네.”
어좌에서 일어난 이원정이 시현에게 와 손을 내밀었다.
씨익.
시현 역시 그 손을 맞잡은 뒤 흔들었다.
‘좋아. 그럼 일단.’
시현이 눈을 빛냈다.
‘열두 번째 재앙…… 워 비틀부터 처리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