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natural enemy returns RAW novel - Chapter (78)
신의 천적, 회귀하다 078화
61. 경복궁
“형니임!”
서울 종로구 경복궁.
군주 세력이 있는 곳.
그곳 입구 어딘가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시현과 박나은, 오크쟌에게.
누군가 달려왔다.
“……저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그만 좀 싸워라.”
투덜거리는 박나은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린 뒤.
시현이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왔냐? 내 동생.”
“하하하하! 왔죠. 재앙이 끝나자마자. 형님이 보고 싶어서.”
하이 엘프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하얀 사제복을 입은 채.
서영우가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하얀 포메라니안 같다고 생각하며 시현이 중얼거렸다.
“오크쟌.”
“알았다. 주인.”
쿵!
그렇게 두 팔 벌리고 달려오던 서영우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뭐야 너?”
“주인의 명령이다. 안기려고 하지 말라는군.”
“형니임…….”
“다 큰 사내놈이 왜 그러는 거야?”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에휴.”
서영우가 아무리 하이 엘프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오크쟌은 정복자 오크의 끝판왕.
현존하는 오크 중 가장 강력한 신체를 가진 존재.
녀석이 피지컬로 가로막고 있으니 서영우는 더 이상 달려들 수가 없었다.
“푸하하핫! 저거 봐! 공이 벽에 맞고 튕겨 나오는 것도 아니고.”
“우우…… 너무 하십니다! 형님!”
“너무하긴. 너네 둘 다 보고 배워라, 오크쟌 얘 봐라. 얼마나 의젓하고 든든하냐? 몸도 튼튼하고 말이야.”
“주인. 명령만 한다면 저 둘에게 완전한 근육을 만들어줄 수 있…….”
평소 오크쟌이 하는 근력 훈련을 떠올린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닌 오크.
거기다 절반은 오우거이다.
그런 만큼 근육을 불리기 위해 극한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3대로 따지면 3,000 정도를 들고 있었다.
“아서라. 니처럼 무식하게 훈련하면 쟤들 다 죽는다.”
“서영우. 저 멍청한 놈. 히히히. 탱탱볼도 아니고.”
“박나은…… 차렷. 오랜만에 보니까 정신 못 차리지?”
“까불긴. 랭킹에 이름도 없는 놈이.”
“너도 없잖아!”
“뭐? 카야야악!”
“으르릉…….”
츠즈즉.
강아지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기운을 뽑아내고 있었다.
서영우의 양손으로 검은 안개가 모여들었고.
박나은의 황금 양털이 펄럭이며, 노란 부적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녀석들이 차고 있는 드라우프니르 복제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것들아! 서로 싸우라고 나눠준 아이템이 아니야!”
시현의 말에 그때야 둘이 기운을 누그러뜨렸다.
“흥!”
“쳇!”
서로 고개를 돌리는 둘을 보며.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것들이 나 없이 잘할 수 있을까? 오크쟌 이놈도 힘만 무식하게 세서 믿을 만한 놈은 아닌데.’
후우.
“아니. 옛날엔 말싸움하다가 싸우기라도 했지. 요즘은 그냥 만나자마자 싸우네.”
“그러게 말이다. 주인. 이게 다 기강을 안 잡아서 그런 거다.”
“반말 쓰는 너보단 나아. 인마. 존댓말 쓸래?”
“미안하다. 주인. 나 인간 언어 잘 모른다. 존댓말 잘 모른다.”
“에휴.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시현 씨!”
“꾸르르릉!”
누군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이전보다 밝은 색의 푸른 로브.
창백한 안색 대신 찾아온 환한 웃음, 얼음 결정처럼 투명한 눈동자.
양어깨에 물과 불의 정령을 올린 채 품엔 불가살이를 안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
이젠 랭킹 14위까지 올라온 빙염화(氷炎花) ‘천유리’였다.
‘그래……. 권속들만 놔두기엔 조금 불안해. 다행히 이 녀석들 다 천유리 씨를 잘 따르니까. 믿고 맡길 수 있지.’
시현과 미리 약속한 대로 그녀는 열두 번째 재앙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맡겨놨던 가살을 데리고 말이다.
“천유리 씨. 건강해 보이시네요.”
“그럼요.”
“꾸르르릉!”
“그래그래. 잘 있었냐?”
자신의 품으로 뛰어든 가살을 쓰다듬으며.
시현이 피식 웃었다.
“가살이 데려다줘서 감사해요.”
“감사는요.”
그렇게 다가온 천유리를 보며.
서영우와 박나은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유리 누님. 역시 상상했던 대로……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십니다.”
“……영우? 많이 바뀌었네? 이제 앞이 보이는 거야?”
“그럼요. 하하하.”
“헤벌레 입 벌리는 거 봐라. 첫째 부인님 예쁜 건 알아가지고. 한심하긴. 첫째 부인님! 저도 잘 있었어요!”
“네에…… 잘 있었어요?”
“푸핫! 박나은 봐라. 유리 누님께선 널 어색해하시잖아! 하긴, 나이도 많은데 안 불편하시겠어?”
“으으으…… 이게 진짜. 뒤질래?”
“뭐? 해보자고?”
츠즈즈즈즉!
화르르륵!
그렇게 둘이 2차전을 시작하려는 찰나.
“명령이다. 둘 다 가만히 있어.”
“…….”
“…….”
시현의 말에 둘이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친하게 지낸다고는 하나, 둘 모두 시현의 권속.
‘명령’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에휴…… 천유리 씨 오자마자 이런 꼴이나 보이다니.”
“주인. 교육을 나에게 맡겨라. 내가 이래 봬도 오크 대군단 수석 조교부터 시작한…….”
“시끄러.”
“푸흡.”
돌아가는 상황에 천유리가 피식 웃자.
세 권속들도 눈치를 보더니 서로 웃어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선 시현도 화를 못 낸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자, 상황은 대충 가면서 설명해 줄게. 우선 내가 어좌에 앉으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해줄 건 단 하나. 나와 어좌를 지키는 거야.”
시현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복궁을 도와줘도 되지만 본인들이 위험해진다 싶으면 지체 말고 발 빼. 저들이 우릴 지켜줘야 하는 거지, 우리가 저들을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어좌만 지키면 돼.”
“알겠습니다.”
“네, 형님.”
“알겠다. 주인.”
“뭐, 경복궁 시설은 좋으니까 즐길 거리도 많을 거야. 잘 지내고 있으라고. 나 없는 동안 천유리 씨 말 잘 듣고!”
두 인간과 인간 곤충, 하이 엘프, 오크 그리고 정령과 불가살이가 그대로 경복궁으로 향했다.
“그럼 가자고. 새 조선의 수도로.”
“오호…… 확실히 거대해졌군요. 옛날에 견학 와본 적이 있었는데.”
“촌스럽긴. 난 주인님하고 며칠 전에도 왔는데.”
“……분하다.”
쉴 새 없이 투덕거리는 서영우와 박나은을 뒤로.
시현이 앞장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를 알아본 플레이어들이 감탄하며 소리쳤다.
“타락악귀 님이다!”
“와아아!”
“영웅이야! 영웅!”
“벌레를 지배한 마충여인도 있어!”
“오오…… 날아다니던 오크다.”
“근육 만져봐도 되나?”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시현은 열두 번째 재앙을 팔짱을 낀 채 클리어해 버린 플레이어.
그 임팩트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다양하네.’
고마움, 걱정, 질투, 경외.
온갖 감정을 담은 눈빛들이 시현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 마수를 사냥하는 건 들어봤어도, 길들이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으니.
‘뭐. 익숙하네.’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지만, 시현은 꽤 오랫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했던 플레이어.
이런 시선쯤이야 더없이 익숙했다.
다만 오크쟌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살짝 고장 나 있는 상태였다.
특히 천유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천유리 씨. 긴장하지 마요. 이 사람들 곧 물러날 거니까.”
“네…… 네네.”
그렇게 일행을 데리고 광화문에 도달했을 때.
“오셨습니까? 타락악귀 님.”
“어서 오십시오.”
“이전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문전박대하던 이전과 달리 이곳을 지키는 군주 플레이어들이 그에게 굽신거렸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어좌로 향하고 있을 때.
“아이고!”
저 멀리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저 여자는 달라진 게 없네…….’
헝클어진 머리, 시뻘겋게 충혈된 눈, 손에 들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 거대한 안경.
열두 번째 재앙이 끝났음에도 대외적인 모든 행정 처리를 도맡아 하는 천재 플레이어, 서진희였다.
“어쨌든! 잘 오셨어요.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서진희가 환하게 웃으며 시현의 손을 잡았다.
“시현 님 아니었다면 업무량이…… 아니, 저희 모두 위험할 뻔했지 뭐예요. 모두들 오시느라 피곤하셨죠? 우선 오늘 하루는 푹 쉬세요.”
“괜찮은데…….”
시현은 빨리 어좌에 앉아 [왕의 시련>을 처리하고 싶었기에.
서진희의 제안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시현 씨, 한 번 쉬어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겠어요? 맨날 3시간씩만 자면서.”
“맞다. 주인. 한 번씩 환기해야 한다.”
“형님. 저희도 한번 즐겨야죠.”
“맞아요, 주인님. 오늘 하루는 좀 쉬자고요.”
“꾸르르릉!”
이어지는 성화에 이기지 못해 시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오늘 하루만이다.”
그렇게 죽이 맞는 네 사람을 보며.
서진희가 애써 웃었다.
“자자! 좋아요. 전부 다 공짜니까요. 타락악귀 님! 마음껏 즐겨주세요. 확실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경복궁 주변 시설은 말 그대로 호화로웠다.
건축과 수리에 일가견이 있는 플레이어들, 경복궁 중앙에 있는 어좌, 그리고 세금으로 걷는 수많은 포인트 덕분에.
종로구 다른 곳은 몰라도 경복궁 주변은 이미 완벽히 수리한 상태였다.
그리고 서진희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권한으로 인해 이곳 경복궁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공짜였다.
“윷놀이 한 판 해요! 일등 하면 무려 B등급 아이템 증정!”
“본 적은 있으시나? SS등급 팽이치기 도구가 있어요!”
“전통 떡과 약과 있습니다! 원래 임금님만 먹던 거예요!”
경복궁 근처에 생겨난 플레이어 전통(?) 시장.
파팟!
잠시 시선을 부딪친 서영우와 박나은이 재빨리 좌판에 가 섰다.
“여기서 승부 내는 거다. 마충여인.”
“좋지. 타락구원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윷놀이 앞에 가서 섰는데.
좌판 주인장이 마른침을 삼킬 정도로 서로 살기를 흘려대고 있었다.
“윷에 사기 치면 알지?”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지.”
“누구부터 해?”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가 이기니까. 대신 진 사람은 30일 동안 노예 하는 거야.”
“30일이 뭐냐? 남자 새끼가. 300일 해.”
“콜.”
그렇게 눈을 빛내는 둘을 보며, 오크쟌의 눈에도 이채가 띠었다.
“그건 너무 싱거운데?”
“뭐라는 거야? 이 오크가.”
“네가 윷놀이를 알아?”
“알지. 허접한 이종족들.”
오크쟌이 윷을 가져와 흔들었다.
“주인이 싸우진 말라 했으니, 이 전략 게임을 통해 승부를 보는 건 어때?”
“……뭐?”
“여기서 이긴 존재가 주인이 없는 동안 주인 대리를 하는 거지.”
“오호…….”
그 말을 들은 서영우와 박나은의 눈빛이 더욱 짙어지며 이내 서로 마주쳤다.
‘여기서 이기는 쪽이…….’
‘형님 없는 동안 리더가 되는 건가?’
서영우와 박나은의 눈빛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들어와.”
“들어와.”
“들어와라.”
그렇게 셋이 윷놀이 판 앞에 앉아 눈치를 살필 때.
가살이 아장아장 걸어가더니 서영우의 품에 안겼다.
“꾸르릉!”
“그래. 이리 와. 우리 가살이.”
“도마뱀! 나도 응원군 필요해.”
-쉬르르륵!
박나은의 부름에 샐러맨더가 옆에 서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둘 다 불 속성을 다뤘기에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운디네는.
-……던질게요.
하이 엘프와 인간 곤충, 그리고 오크의 성화에 못 이겨 ‘공정하게’ 윷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심판’ 역할이었다.
“으음…… 이렇게 되면 업고 더블로 가!”
“후회할 텐데?”
휘릭!
“아니! 이게 왜 윷이야? 주작 아냐?”
“응. 운도 실력이다. 멍청한 하이 엘프.”
“저걸 견제하라고! 이러다 일등 먹힌다고!”
다소 난폭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에 천유리가 피식 웃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대체 얼마 만인지…….’
그런 그녀의 볼에 무언가 차가운 게 와 닿았다.
“아얏! 시현 씨!”
천유리의 볼에 닿은 건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놀랐어요?”
천유리가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건.
붉은 입술을 올리고 있는 시현의 얼굴이었다.
“뇌물이에요. 부탁할 게 있거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