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
신의 메스-1화(1/249)
1화 사냥개, 박상우 (1)
H 호텔 정문.
“그럼 살펴 가시게나. 내일 심장센터 개관식인 건 알지?”
“네. 원장님.”
한 사람은 폴더 접히듯 허리를 굽혔고 또 한 사람은 꼿꼿이 서서 그 인사를 받았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센터장 취임사는 준비해 뒀나? 그토록 원하던 자리니 감회가 새로울 텐데 말이야.”
“뭐. 나름 준비해 뒀습니다.”
“후후후, 얼마나 멋진 취임사를 준비했나 기대가 크구먼. 아무튼, 다시 한번 센터장 취임한 거 축하하네.”
끼이익.
그 순간, 멈춰 서는 검은색 세단.
“원장님, 타시죠.”
김준영 원장의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서둘러 우산을 펼쳐 들었다.
“살펴 가십시오.”
기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상우가 문을 열었다.
“그래, 그래. 자네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게나. 허허허, 하늘도 자네의 센터장 취임을 축하하나 보구먼. 이렇게 촉촉하게 비가 내리니 말이야. 아무튼, 운전 조심하고!”
김준영 원장이 창문을 열고는 박상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네. 원장님!”
띠리릭
김 원장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더는 시야에 보이지 않고서야 박상우가 리모컨을 눌러 차 문을 열었다. 빗방울이 광대를 타고 입 주변에 걸렸다. 그 순간, 살며시 치켜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가 인상적이었다.
「명성대학교 부속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박상우. 그는 내일 흉부외과 과장과 심장센터 센터장으로 임명받는다.
지방대 출신, 무족보 의사 출신으로서 최초로, 순혈주의 명성대학교 부속병원 심장센터장으로 임명된 신화 격 존재.
정말, 그는 단 하루도 치열하게 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기라면 기었고 빨라면 원장의 똥구멍도 서슴없이 빨아 재꼈다. 성공하지 못할 수술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잘나가는 놈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기어오르는 놈은 잘근잘근 밟아 버렸다.
성공에 미친 개돼지로 불려도 좋았고 무자비한 독종이라 불려도 상관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남들은 과외다 학원이다, 돈 처바르고 다닐 때 박상우는 영어 사전을 씹어 먹으며 이를 악다물었다.
오로지 성공,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으니까. 그런 박상우가 보란 듯이 국내 최고 대학 병원의 흉부외과 센터장이 되었다.
“됐어!”
볼륨을 높여 음악 소리를 키우는 박상우. 그가 핸들에 대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박자를 맞추었다.
하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면천된 노비. 그렇다고 양반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명성대학교 병원, 이사장실.
김준영 원장과 이준술 이사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나저나 김 원장, 왜 하필 박상우지?”
이준술 이사장의 벗어진 이마가 불빛에 번들거렸다.
“심장센터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난번 조현오 과장 후임으로 그자를 내정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심장센터장까지 맡기는 건 위험부담이 크지 않아? 박상우 그 인간은 야심이 많은 인간이야.”
이준술 이사장이 민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로 그 점이 제가 박상우를 센터장에 앉힌 이유입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
이준술 이사장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되고 싶어 환장한 사냥개! 그게 바로 박상우입니다.”
“사냥개? 지금 박 과장을 사냥개에 비유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사냥개는 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죽자 사자 사냥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주인은 사냥할 때마다 안아 주기도 하고 목을 쓰다듬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놈은 죽을힘을 다해 사냥감을 물어다 줄 겁니다.”
“재밌네. 그래서?”
이준술 이사장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그저 놈이 물어 온 사냥감을 챙기기만 하면 됩니다. 놈의 사냥 기술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을 거고요. 그 어떤 사냥개보다 더 열심히 물어 오겠죠. 그저, 우리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후후후, 그럴듯한 생각이야. 아! 그러다 기고만장해져서 주인 밥상머리에 앉으려고 하면?”
이준술 이사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죠. 사냥개가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방법을 말하는 거야?”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사냥하지 않는 개란 더는 쓸모없는 고깃덩어리일 뿐. 자기가 사람인 줄 알고 설쳐 댄다면 삶아 먹거나 패 죽이는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이사장님!”
김준영 원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허허허, 사람 하곤. 뭐가 이렇게 잔인해? 삶아 먹다니? 패 죽이는 건 또 뭔가?”
이준술 이사장이 주먹을 말아 쥐곤 번들거리는 이마를 두드렸다.
* * *
명성대학교 병원, 구내식당.
“어제 이사장님 생신 때, 박 과장이 안 보이던데?”
“후후후, 그 자리가 어디 아무나 가는 자린가? 한번 곁가지는 영원한 곁가지라고. 어떻게 과장 타이틀은 달았겠지만, 출신 성분은 어떻게 못 하는 거지.”
“이 사람아, 듣겠어!”
신경외과 진충식 과장은 박상우의 모습이 보이자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목소리 톤을 낮췄다.
“뭐 어때? 내가 괜한 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모든 게 사실이잖아.”
흠흠흠, 소화기내과 유정만 과장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박상우를 힐끗거렸다.
“안녕하십니까?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박상우가 두 사람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이고, 우리 병원의 에이스 박상우 과장님 아니신가? 당연하지! 앉게나. 앉아.”
박상우를 쳐다보며 빈정거리는 유정만 과장. 그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팔꿈치로 진충식 과장의 옆구리를 찔러 댔다.
“아뇨. 두 과장님이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에이스 소리를 듣습니까?”
박상우가 민망한 듯 손을 내저었다.
“아니지! 지금 우리 병원에서 박 과장을 따라올 사람이 어디 있나!”
진충식 과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긴,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까 그 자리에 오른 것 아닌가? 아무튼, 박 과장, 아, 아니지. 박 센터장, 그러면 식사 많이 하시게. 우리 먼저 가 볼게.”
진충식 과장이 유정만 과장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판에 담긴 음식이 반도 비워지지 않은 채였다.
“아…… 네. 들어가십시오.”
박상우가 일어나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너무 티 내는 거 아냐?”
자리에서 일어난 진충식 과장이 유정만 과장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뭐 어때? 난 저 인간 얼굴만 보면 밥맛이 떨어져서 말이야.”
들으라는 듯, 유정만 과장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정말 안 되는 건가?’
쾅, 그들이 모습이 멀어지자 박상우가 식판을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그 순간, 식판을 들고 박상우 앞에 앉는 남자. 그는 박상우의 절친, 천기수다.
“아, 아냐. 아무것도.”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 박상우.
“흠, 저 인간들 괜히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니,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천기수가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곁가지 박상우. 그게 박상우의 태생적 한계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를 어쩔 수 없이 끼워 줬지만, 병원 내 사적인 모임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만의 왕국에 절대 단 한 발자국도 허용하지 않는 그들. 박상우는 필사적으로 그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철옹성 같은 그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것이 박상우의 태생적 한계였다. 한번 사냥개는 영원한 사냥개, 박상우는 그들에게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래! 맘대로 찢고, 까불어라. 이 정도에 물러설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하나하나, 차례대로 밟아 주마.’
이 정도에 약해질 박상우는 아니었다. 그가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그, 그래. 먹자.”
후루룩, 박상우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먹었다.
‘이거, 된장국이 구수하니 맛이 죽이네.’
하하하, 박상우가 천기수를 보며 활짝 웃었다.
* * *
하지만, 명성이라는 탑은 박상우가 생각한 만큼 녹록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공식 석상에서 박상우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품 안에 박상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겨 줄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준영 원장실.
박상우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원장실을 찾았다.
“원장님, 이게 말이 됩니까?”
차트를 들고 있는 박상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박 과장! 뜬금없이 무슨 일이야?”
“김상식 환자! 제 환자 아닙니까? 제가 이 환자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원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김상식 환자.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인 한일 그룹의 후계자. 박상우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 줄 그였기에 그토록 공을 들였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 이번에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김 회장님을 말하는 거군. 난 또 뭐라고! 박 과장이 얼마나 이 환자에게 공을 들였는지 모를 리가 있나?”
대수롭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대하는 김준영 원장.
“그런데, 왜입니까? 왜 이 수술을 한준수 교수한테 맡기신 겁니까?”
“이봐. 박 과장!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잖아? 이번 수술은 자네 말대로 국내외 의학계가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수술이야. 게다가 환자는 국내 최고의 재벌 총수고!”
김준영 원장이 한쪽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공을 들여 지금까지 치료했던 것 아닙니까?”
탁탁, 박상우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렇지! 지금까지 자네가 회장님을 잘 치료했으니까 지금까지 온 것 아닌가? 인정해! 그러니까, 자네 역할은 충분히 했으니 우리 병원과 대한민국 의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이쯤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네. 축구 경기에서 꼭 골을 넣어야만 다는 아니잖나? 그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어시스트하는 것도 의사로서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안 그래?”
미소를 짓는 김준영 원장의 입가에는 조롱기가 머금어 있었다.
“원장님!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이 수술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어허, 이 사람. 쇠고집이군! 이미 이사회에서 결정이 난 일이야!”
“원장님! 대체 제가 뭐가 부족합니까? 우리 병원 TS(흉부외과)에서 저만한 베테랑이 어디 있습니까?”
박상우의 얼굴에 핏기가 오르는 듯했다.
“글쎄, 당연히 부족하진 않지! 아니, 뭐 지금까지의 수술 실적을 볼 때, 준수한 건 맞아!”
“그런데, 왜 제가 안 된다는 겁니까? 저는 수없이 많은 심장 이식 수술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 그걸 내가 왜 몰라. 준수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최고는 아니잖아?”
김준영 원장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박상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자, 이걸 보게.”
드르륵, 김준영 원장이 서랍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 박상우에게 내밀었다.
“이, 이게 뭡니까?”
“한준수 교수의 프로필이야. 박 과장은 단 한 개의 레퍼런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수술을, 한 교수는 3차례나 성공적으로 끌어냈어! 자네가 비디오나 학회지를 보며 흉내나 낼 동안 한 교수는 존스 홉킨스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고! 자네 말대로 이번 수술은 우리 병원의 사활이 걸린 수술이야. 과연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냉소적인 눈빛을 흩뿌리는 김준영 원장.
“워, 원장님! 이 수술에 제 남은 의사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건 원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제발 제게 맡겨 주십시오.”
털썩, 박상우가 무릎을 꿇어앉아 애원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말고는 없었다.
“어허! 지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당장 일어나게!”
김준영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럭거렸다.
“아뇨. 전 절대로 이 수술 포기 못 합니다. 반드시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박상우였다.
“어허, 참!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구먼. 박 과장! 스태프들이나 수련의 애들이 자네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나?”
김준영 원장의 입가에 저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상우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모르고 있었나 보군. 그렇다면 내가 알려 주지. 사냥개! 그것도 주인이 던져 준 뼈다귀를 독식하려고 동료 사냥개들도 물어뜯는 미친 사냥개! 그게 자네의 현실이야.”
“워, 원장님…….”
“곁가지 출신 거둬다가 여기까지 올려 놨더니 아주 겸상하려 들어? 애초에 태생부터 안 되는 거였잖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쯧쯧쯧, 김준영 원장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원장님!”
“흠, 자네 여기 계속 이러고 있을 텐가? 난, 이사장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들은 체 만 체, 김준영 원장이 옷걸이에 걸려 있던 양복 상의를 꺼내 입었다.
“원장님, 이,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박상우가 나가려는 김준영 원장의 팔을 잡아챘다.
“후우, 참 답답한 양반이군. 내가 그토록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나? 다시 한번 충고하지. 적당히 눈치 보면서 살아. 그래야 가늘고 길게 사는 법이야. 이 친구야!”
쾅, 김준영 원장이 박상우의 손길을 냉정히 뿌리치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죽어도, 죽어도 안 되는 건가?’
“으으아악!”
머리카락을 감싸 쥐며 절규하는 박상우. 이것이 곁가지 박상우의 태생적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