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
신의 메스-10화(10/249)
10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똑똑.
“교수님, 박상우 선생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 장준호가 자리에 앉자, 조현오 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넨 거기 왜 앉는 거야. 안 바빠?”
“네. 아직은 좀 한가합니다.”
“미쳤군. TS 바이스 치프의 입에서 한가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건가? 당장 안 나가나?”
조현오 교수가 삿대질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그제야 장준호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군. 저런 걸 TS 바이스 치프 자리에 앉혀 놨으니…….”
조현오 교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흠, 상우 군. 오늘부터 TS에서 근무 시작인가?”
그것도 잠시,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를 보더니 반색하며 표정을 바꿨다.
“네. 교수님!”
“어제, 새한 병원 김 교수가 얼마나 자네 칭찬을 하던지…….”
그렇게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조현오 교수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이분이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박상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는 조현오 교수와 세 마디 이상 사적인 대화를 섞어 본 적이 없었기에, 박상우의 입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아무튼, 오늘부터 우리 과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잘해 보자고! 자네한테 거는 기대가 커.”
하하하, 조현오 교수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네. 교수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 오프 때는 진짜 우리 집에서 같이 점심 먹자고. 대국도 한판 두면서 말이야. 자네의 실력이 정말 궁금하다고. 하하하!”
조현오 교수가 연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박상우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따뜻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만 나가 봐.”
조현오 교수가 천천히 손을 내저었다.
* * *
“야. 박상우!”
덜컹, 박상우가 문을 열고 나서자 장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선생님, 지금까지 거기 계셨습니까?”
박상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건 알 거 없고, 너 지금 당장 옥상으로 올라와.”
장준호가 박상우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며 말했다. ‘아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면, 박상우는 장준호에게 바로 그 대상일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박상우가 양손을 가운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천천히 장준호의 뒤를 따랐다.
틱, 삐그덕.
장준호가 거칠게 옥상 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옥상으로 올라온 뒤, 그의 눈매가 더욱 일그러지는 듯했다.
“야. 너, 솔직히 말해. 오늘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왜 아침부터 교수님이 널 부른 건데? 교수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나한테 숨김없이 다 털어놔.”
앞뒤 잘라 먹으며 내던지는, 연속되는 질문. 장준호가 뱁새눈을 뜨며 박상우의 표정을 살폈다.
사실, 장준호는 박상우에게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장준호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장준호는 지난번 대동맥 박리 환자를 근육통으로 오진한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을 터였다. 쉽게 말해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최근에 자신을 향한 조현오 교수의 따가운 눈초리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을 것이다. 조현오 교수가 자신에 대해 어떤 심각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닌가, 미치도록 궁금했을 것이다.
장준호는 박상우에게 그것을 묻고 싶어 했다.
그가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실상 속은 물러터진 겁 많은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에, 박상우의 눈에는 장준호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 오늘 아주 못을 박아 놔야겠어!’
“별것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거면, 전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잠깐! 이게 미쳤나? 너 오늘부터 우리 과에서 일하는 거 몰라? 아주,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게 해 줄까? 지옥이라는 게 뭔지 느끼게 해 줘, 곁가지?”
획, 장준호가 되돌아가려던 박상우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이거 놓으십시오.”
박상우가 날카롭게 장준호를 응시했다.
“뭐야, 뭐야 그 눈빛?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곁가지?”
장준호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두 눈을 부릅뜨며 다그쳤지만, 사실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제 이름은 곁가지가 아니라 박상우입니다. 한 번만 더 곁가지라고 부르시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박상우가 오른쪽 가슴에 파란 글씨로 쓰인 이름표를 가리켰다.
“병신 새끼!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뭘 어쩔 건데? 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네가 아무리 깝죽거려 봤자 넌 영원한 곁가지야. 교수님이 관심 좀 가져 주니까 기고만장해져서, 아주 네 세상이지? 분수도 모르는 근본 없는 새끼.”
장준호가 주먹을 입에 가져다 대며 볼을 부풀렸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제 이름은 곁가지가 아니라 박상우입니다.”
단호한 표정의 박상우.
“경고? 이게 완전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네가 뭘 어떡할 건데, 곁가지!”
붉으락푸르락, 목 밑까지 벌게진 장준호가 주먹을 말아 쥐고는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아악!”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장준호의 외마디 비명.
박상우가 장준호의 팔을 잡아 비틀어 등 뒤로 돌려 잡았다. 그가 장준호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고는 또 다른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놔! 안 놔? 시팔, 이, 이게 미쳤나? 너 내가 누, 누군지 몰라?”
당황한 장준호가 매미처럼 벽에 매달려 버둥거렸다.
“장준호,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넌 잘난 부모 만난 덕에 개인 과외도 받고, 고액을 내며 학원에 다녀서 돈을 처발라 의대 갔지만, 난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참고서 한 권 살 돈이 없어서 친구 책 빌려다 보면서 공부했어.”
“그, 그게 뭐 자랑이야?”
장준호는 벽에 얼굴이 눌린 채 겨우 목소리를 냈다. 아직까진 선배 체면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당연히 자랑은 아니지. 내가 자랑하려고 이 말을 꺼낸 게 아니야. 너희처럼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잃을 것도 많지만 나 같은 놈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잃을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야.”
“아아악!”
박상우가 장준호의 팔을 꺾고 있던 자신의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장준호가 어금니를 악다물며 눈을 부라렸다.
“뭐…… 그래서 뭐!”
장준호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나, 여기서 너 반병신 만들어 버리고, 내가 다닌 대학의 병원으로 돌아가도 손해일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그걸 말해 주고 싶은 거라고. 알아들어? 장준호!”
박상우가 장준호와 더욱더 몸을 밀착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 그게 무, 무슨 소리야? 뭐, 뭘 어쩌겠다는 건데……·.”
장준호를 응시하는, 서슬 퍼런 박상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장준호가 말끝을 흐렸다.
“너, 의료 과실이라고 들어 봤지?”
“뭐, 뭐야? 그 말이 지금 여기서 왜 나오는데?”
의료 과실은 바로 장준호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박상우가 그의 공포심에 불을 질렀다.
“잘 들어! 형법 제268조,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이게 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넌 대동맥 박리 환자를 타박상으로 처방했으니 처벌 근거는 충분하다는 말이지.”
“뭐, 뭐라고? 그, 그게 말이 돼?”
“말이 되지. 그 환자가 만약 잘못돼 죽었다면, 넌 충분히 콩밥을 먹었을 거라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그 환자는 수술 잘해서 건강해졌잖아. 그, 그러면 된 거 아냐?”
“그러니까 하늘에 감사하면서 살란 말이다. 하지만, 의료 사고 소송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명심해.”
박상우가 죽일 듯이 장준호를 노려봤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장준호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내가 그 환자분 설득해서 의료 소송을 제기할 생각이거든!”
“뭐, 뭐라고?”
장준호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뭐지, 그 눈빛은? 혹시 설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리가! 너희처럼 온실 속에서 자란 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논밭에서 막 굴러먹은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가다 보면 이상한 신념 같은 게 생기거든.”
“무, 무슨 신념?”
장준호가 겁에 질린 채 눈만 껌뻑거렸다.
“너 죽고 나 죽는 거지. 너희같이 있는 인간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배가 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거든. 그러니까 네 멋대로 해 봐. 내가 막장의 끝을 보여 줄 테니까. 알아들어, 장준호?”
박상우가 더욱더 장준호의 팔을 비틀어 올렸다.
“아, 아 알았다고. 앞으로 아, 안 그러면 되잖아. 아프니까 팔이나 좀 놔 주라고.”
장준호는 완전히 기가 죽어 전의를 상실했다. 한쪽 손으로 겨우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 장준호! 난 너한테 아무런 감정 없다. 그러니까 제발 나를 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팔을 풀어 준 박상우가 한층 누그러뜨린 목소리로 장준호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 주었다.
“아, 알겠다고. 알았다고 하잖아.”
팔이 뻐근한지 장준호가 연신 자신의 팔을 주물럭거렸다.
“나,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싶을 뿐이야. 특별한 것 바라지 않아. 제발 일할 때 태클만 걸지 말자. 부탁한다. 진심으로.”
흐읍,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박상우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장준호가 마지못해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 알았다고! 그러니까, 아까 네가 한 말, 그거, 그거 진짜 지키는 거지?”
꿀꺽, 장준호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물론이야. 너만 날 괴롭히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부탁한다! 앞으로 선배로 깍듯이 모실 테니까, 제발 날 미친놈으로 만들지 마. 제발!”
“아, 알았어. 알았다고! 나, 지금 교수님 회진 모시고 가야 하는데, 이, 이제 가도 되냐?”
장준호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 내며 손가락으로 출입구를 가리켰다.
“네. 물론입니다. 선생님!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무례했다면 사과드립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요.”
그제야 박상우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아, 알았어. 나중에 보자고.”
장준호가 황급히 출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흠, 이렇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하나는 치운 건가?’
허둥지둥 옥상을 빠져나가는 장준호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박상우.
그의 입가에 퍼진 엷은 미소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 * *
“야, 야, 박상우! 그나저나 미친개 요즘 하고 다니는 거 봤냐? 완전, 복날에 주인 피해 숨어 다니는 똥개 같지 않냐? 왜 그렇게 얌전해진 거야?”
“후후후,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편해서 좋긴 하다만 이거 왠지 존나 불안하네.”
천기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우린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자.”
그날 이후, 장준호는 순한 양으로 돌변했고 박상우에게 곁가지라고 부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달 후,
평화롭던 TS 의국에 일대 광풍이 휘몰아쳤다.
“상우야, 빨리 응급실로 와라. 좆 됐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천기수가 TS 의국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가 박상우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뭔데 그래?”
“시팔, 조폭들 수십 명이 떼거리로 응급실에 실려 왔어.”
“조폭이?”
“그래 인마. 용이 꿈틀거리고 호랑이가 째려보는 것 같아서 후달린다, 야. 완전 동물의 왕국이야. 빨리 와.”
천기수가 호들갑을 떨며 앞서 달려나가곤, 박상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