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0)
신의 메스-100화(100/249)
100화 왕자와 거지 (6)
“신창균 씨……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네……. 저는 흉부외과 과장인 조현오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현오 교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신창균의 외모를 연신 훑어보았다. 방윤석 부회장과 너무나도 닮은 외모에, 조현오 교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과장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건가요?”
“아, 여기 있는 박 선생이 환자분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저도 격려차 뵙고 싶었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비록 신창균 씨가 앓고 있는 병이 가벼운 질병은 아니지만,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입니다. 우리 의료진도 최선을 다할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신창균과 짧은 면담을 한 후, 조현오 교수의 연구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조현오 교수는 연신 눈을 꾹꾹 눌렀다.
“자네 말대로, 정말 놀랍도록 닮았구먼.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두 눈으로 봤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조현오 교수의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도 처음엔 전혀 구분을 못 했으니까요.”
박상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이야. 정말 놀라운 일이야. 좋아, 이 신창균이란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조현오 교수가 신창균의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창균 씨는 크로닉 하트 페일리어(Chronic Heart Failure: 만성 심부전증)를 앓고 있습니다. 심장은 너덜너덜해졌고,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온몸에 부종이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폐부종까지 심각해서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심장 이식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는 환자입니다. BNP(B-type Natriuretic Peptide)와 PET(심근 경색 후 심부전에서 생존 심근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해 봤는데, 더는 시간을 늦출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박상우는 신창균 환자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렇군. 자네 말대로 심장 이식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겠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차트를 꼼꼼히 살피던 조현오 교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내 안타까운 듯, 조현오 교수가 쯧쯧 혀를 찼다.
“맞습니다. 하지만 신창균 환자의 가정 형편상 도저히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보호자라는 사람도 믿을 수 없는 것이, 그 여자는 신창균 씨를 치료할 의지조차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신창균 환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교수님!”
“그러니까, 신창균 씨가 방윤석 부회장이 된다면 수술할 수 있다는 게 자네 생각 아닌가?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방윤석 부회장님 역시, 이번 일로 옥석을 가릴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다만, 약속 하나만 해 줄 수 있겠나?”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들어 박상우를 응시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교수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이 모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획하고 실행한 일이야.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한 것뿐이야.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도록 하겠네.”
“교수님,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되나!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이 계획은 없던 일로 할 테니, 그리 알아!”
단호한 표정의 조현오 교수의 성정으로 볼 때, 절대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게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조현오 교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박상우였기에, 그 또한 더 이상의 말은 삼갔다.
“그래. 자네 말대로, 흙이 묻으면 털어 내면 되고 얼룩이 묻으면 닦아 내면 되겠지. 난 지금까지 너무 나 자신을 과신하며 살았던 것 같다네. 세상을 살다 보면 나 혼자 고고하게 할 수 없다는 게 진리인데 말이야. 내가 그동안 헛살았어.”
조현오 교수는 가슴을 부풀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닙니다, 교수님! 전 교수님 같은 분이 적어도 한 분은 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선 그 고귀한 뜻을 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전부 감당하겠습니다.”
“……고맙네, 상우 군! 자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구먼.”
조현오 교수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박상우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회귀 전에는 그토록 박상우를 증오하고 멸시했던 조현오 교수였지만, 지금은 박상우가 그런 조현오 교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신창균 환자를 교수님 쪽으로 트랜스퍼해야 할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담당 교수와 협의해서 내가 신창균 씨를 맡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제가 방윤석 부회장님을 좀 만나 뵈어도 되겠습니까?”
“부회장님을? 무슨 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두 분은 외모만 닮았지, 살아왔던 환경은 판이합니다. 사전에 준비를 해 두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거든요.”
“그렇겠지, 그래. 내가 연락을 미리 취해 놓도록 하지.”
조현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상우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 * *
박상우는 몇 가지 사안에 관한 협의를 하기 위해 방윤석 부회장의 병실을 찾았다.
“박 선생,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상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이, 방윤석 부회장이 반갑게 그를 맞아 주었다.
“안녕하세요, 부회장님, 컨디션은 좀 어떠십니까?”
“덕분에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한결 밝아진 모습의 방윤석 부회장이 후후 웃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협심증은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병입니다. 관리를 철저히 하셔야 다른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으십니다.”
“물론이죠. 박 선생 말대로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네.”
“조 교수에게 얘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박 선생이 제안한…….”
“두 분은 단지 신분만 바뀌는 것이라, 여러 가지 신경을 쓰실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박상우는 자신의 계획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윤석 부회장도 귀를 쫑긋 세우며 박상우의 말을 경청했다.
논리정연하고 철저한 박상우의 언변에 적잖이 놀라는 방윤석 부회장이었다.
“공부만 하신 의사 선생님이 장사꾼의 묘리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정말, 박 선생이 의사만 아니었다면 우리 회사 기조실에 앉혀 놓고 싶군요!”
고무된 표정의 방윤석 부회장은 침이 마르도록 박상우를 칭찬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두 사람 중 한 명은 적이 될 수밖에 없죠. 부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블러핑’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박상우는 갑작스럽게 포커 용어를 아는지 물었다.
“블러핑? 블러핑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포커 용어 아닙니까?”
방윤석 부회장도 갑작스러운 박상우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습니다. 자신의 패가 상대방보다 좋지 않을 때, 좋은 패를 가진 척 일부러 강하게 나가며 상대를 속이는 포커의 기술 중 하나죠.”
“재밌군요. 그래서요?”
방윤석 부회장이 입술을 일자로 오므리며 박상우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블러핑이라는 건, 상대가 내 패를 좋은 패로 읽어 줘야 먹히는 방법이죠. 하지만 상대가 내 패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밌는 발상입니다. 당연히 제가 역공을 당하겠죠! 계속 말씀해 보세요.”
방윤석 부회장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제가 부회장님의 손에 카드 한 장을 쥐여 드리겠습니다. 상대는 부회장님께서 손에 쥔 카드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결국, 그들은 섣불리 움직일 거고, 그러면 회장님께서 역공할 기회도 반드시 생길 겁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블러핑을 하자는 거군요! 그 카드가 나와 똑같이 생겼다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신창균 씨는…… 아니, 신창균 씨가 앓고 있는 병은 부회장님을 도와줄 히든카드가 될 테니까요. 부회장님께서 만성 심부전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부회장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부회장님께선 옥석을 가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고요. 물론 신창균 씨 역시, 부회장님이 됨으로써 건강한 몸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 장사라면 한번 해볼 만한 비즈니스 아닌가요?”
박상우가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좋습니다. 박 선생 말대로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것 같군요. 나도 밑지는 장사는 별로예요. 하지만 이 정도 거래라면, 투자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상우의 의견에 동의하는 방윤석 부회장의 한결 환해진 표정이 그의 심리 상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부회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박상우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부탁이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드리겠습니다. 이만한 일엔 당연히 대가가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이번 일이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 주십시오. 조현오 교수님과 저의 오래된 꿈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옛날에 현오, 아니 조 교수한테 밥 먹듯이 떠들던 소리군요! 나중에 성공하면 조 교수에게 병원 하나쯤 세워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죠.”
“조 교수님이 가끔 술에 취하면 하시던 말씀이십니다.”
“그래요? 하여간 이 친구, 속 좁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봅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좋아요!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암요!”
방윤석 부회장은 옛일을 떠올렸는지 하하하 소리를 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 약속해 주신 것으로 알고, 프로젝트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사진으로 봐서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지만, 신창균 씨라는 사람을 실제로도 한번 만나 보고 싶긴 한데,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 일말의 의심은 남아 있는 방윤석 부회장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적절한 시기에 두 분이 만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박상우 선생님만 한번 믿어 보죠. 그나저나,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뭡니까?”
방윤석 부회장은 궁금한 듯, 턱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