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1)
신의 메스-101화(101/249)
101화 왕자와 거지 (7)
“그, 아이들이 읽는 동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의외의 이름에 신기하다는 듯, 방윤석 부회장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맞습니다.”
“왕자와 거지라……. 내가 비록 왕자는 아니지만, 제법 그럴듯한 명칭이군요. 좋습니다. 이대로 진행해 봅시다!”
방윤석 부회장은 환한 얼굴로 박상우의 양손을 부여잡으며 의지를 불태웠다.
* * *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며칠 후, 박상우는 신창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병실을 찾았다.
그의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박상우는 병실을 가득 채우는 기침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슴을 찢듯 녹슨 쇳소리였다.
혈액이 울혈로 인해 심장에 정체되면서 심실의 압력이 높아지고, 심장으로 들어오는 폐혈관에 혈액이 머물게 되면서 터지는 기침이었다.
신창균의 병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였다.
“신창균 씨, 몸은 좀 어떠십니까?”
우측 심장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부종, 간 비대, 복수의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박상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신창균의 복부에서 다리 쪽으로 움직였다.
‘부종도 너무 심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박상우는 신창균의 다리를 지그시 눌러 봤다. 가볍게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움푹 들어간 곳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퉁퉁 부어 있는 다리와 볼록 튀어나온 복부를 보면, 신창균에겐 인공 심장 이식 수술 말고는 대안이 없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냥저냥 있을 만합니다.”
신창균이 마른기침을 터뜨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자분, 병원에서 제공하는 음식물 말고는 절대 아무것도 드셔서는 안 됩니다.”
“여보, 이것 좀 드세요.”
박상우가 당부하기 무섭게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신창균의 아내인 한숙영이 보온병에 담긴 정체 모를 음료를 컵에 따라 내밀었다.
“고마워.”
신창균은 아내가 내민 음료를 천천히 마셨다.
“이게 뭐죠?”
박상우가 탁자 위에 놓인 보온병을 들어 올렸다.
“이 양반이 평소에 마시던 거예요. 기침이 심할 때마다 마시면 한결 나아집니다.”
“그래요? 이 물의 성분의 뭐죠?”
탁한 갈색의 음료였다. 박상우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한숙영을 응시했다.
“몸에 좋다는 걸 이것저것 섞어서 달인 물이에요. 왜요?”
한숙영은 박상우의 물음을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언제나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 그녀였다.
“음, 어떤 재료로 만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증되지 않은 한약재를 달여 마시는 것은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러면 내가 이 양반에게 못 먹을 거라도 먹인다는 겁니까? 이거 감초, 대추, 구기자, 뭐 그런 좋은 거로 달인 물이라고요! 유명한 한의원에서 진맥하고 처방받아서 달인 건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한숙영이 코로 숨을 크게 내쉬며 삿대질을 했다.
항상 의료진을 불신하는 태도.
불만을 토로하며 의료진에게 협조하지 않는 그녀였다.
“여보! 의사 선생님께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사과드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창균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니, 아니. 저 의사 선생님이 내가 당신한테 몹쓸 것이라도 먹이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한숙영은 입술을 말아 올려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저 여자, 아무래도 찜찜해! 분명 뭔가 있는데…….’
“알겠습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처방받지 않은 이런 음료는 삼가시는 게 좋습니다.”
“무슨 병원이 이렇게 개떡 같아? 물도 못 마시나?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못 먹게 만들어 놓고 약이나 팔아먹으려는 수작이지.”
한숙영은 몸을 삐딱하게 돌리곤 껌을 쫙쫙 씹으며 중얼거렸다.
“신창균 씨, 검사받으러 가셔야 합니다. 잠시 후에 지하 1층 검사실로 오십시오.”
박상우도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한숙영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네? 무슨 검사를 또 받는다는 겁니까? 피 검사, 엑스레이에다가, 그 뭐야, 심전도 검사까지 다 받았는데 뭘 더 받아요?”
검사라는 소리에 한숙영이 발끈하며 나섰다.
“혈관 조영술 CT라고, 혈관에 조영제를 넣고 하는 검사입니다. 이 검사를 해야 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치료는 안 하고, 허구한 날 검사만 몇 가지를 하는 거야?”
한숙영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까랑까랑하게 말했다.
“보호자분, 전부 필요한 검사니까 하는 겁니다! 신창균 환자분, 30분 후에 검사실로 오십시오.”
“이, 이것도 돈이 많이 들겠죠?”
신창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검사는 의료 보험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자신의 건강보다 언제나 돈 걱정인 신창균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 프로젝트를 바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한숙영의 태도로 볼 때, 더는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 박상우였다.
잠시 후, 신창균이 홀로 병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박상우가 신창균의 팔을 잡아당겼다.
“신창균 씨, 잠시만 볼 수 있겠습니까?”
“네? 말씀해 주신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잠시면 되니까 함께 가시죠. 드릴 말씀도 있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신창균을 데리고 방윤석 부회장의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방윤석 부회장의 병실로 신창균이 찾아온 순간, 모든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럴 수가?”
이미 조현오 교수의 언질을 들었음에도, 방윤석 부회장은 신창균을 본 이후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신창균의 반응 또한 방윤석 부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앉으시죠.”
“그, 그럽시다.”
조현오 교수의 말에 방윤석 부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신창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신창균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부회장님, 그리고 신창균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지금부터 두 분이 왜 이렇게 마주하게 됐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조현오 교수가 방윤석 부회장과 신창균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아, 알겠습니다.”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래도, 상우 군이 설명을 해 드리는 게 좋겠군.”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들어 박상우를 쳐다보았다.
박상우를 연신 힐끗거리며 불안해하는 신창균의 모습에서, 조현오 교수는 자신보다 조금 더 친숙한 박상우가 설명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에 바통을 박상우에게 넘겼다.
“네, 교수님! 그러면, 두 분이 이렇게 만나게 된 이유부터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두 분은 서로의 신분을 맞바꾸게 되실 겁니다. 앞으로 신창균 씨는 방윤석 부회장님이 되시는 거고, 방윤석 부회장님은…….”
박상우는 머릿속으로 그렸던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그러면 제가 부회장님이 되는 거고, 부회장님께서 제가 된다는 겁니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창균은 눈을 쉴 새 없이 깜박거렸다. 모든 것이 뜻밖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그렇습니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대신, 부회장님께서는 신창균 씨 치료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실 겁니다.”
“정말입니까?”
신창균은 반사적으로 방윤석 부회장의 안색을 살폈다.
“네. 박 선생의 말이 맞습니다.”
방윤석 부회장이 온화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 그러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갑작스러운 행운으로 도리어 불안해진 듯, 신창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신창균 씨가 특별히 하실 일은 없어요. 그저, 이 병실에 누워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곧 심부전증 수술을 받으실 거고요. 그게 다예요.”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는군요. 이 좋은 병실에 그냥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니…….”
신창균이 눈을 가늘게 뜨며 콧등을 찡그렸다.
“지금은 믿기 힘드시겠지만, 조만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게다가, 추후 신창균 씨의 건강이 회복되면 방윤석 부회장님께서 일자리도 마련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제가 감히 부회장님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신창균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아무런 걱정도 마십시오. 모든 것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현오 교수가 신창균의 등을 두드리며 그를 안심시켰다.
“알겠습니다.”
흉부외과 과장까지 나서서 하는 일이 최소한 허튼소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요. 지금도 믿을 수는 없지만, 이것도 인연이니 신 선생께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내가 모른 척하진 않겠소. 부탁하오, 신 선생!”
방윤석이 신창균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제 병만 고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야죠. 네, 하겠습니다!”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치료비와 추후 일자리까지 약속받은 이상, 신창균의 처지에서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신 선생!”
방윤석 부회장은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받아들이기도 훨씬 수월했다.
현대판 ‘왕자와 거지’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 * *
신창균의 병실.
“이상효 교수, 신창균 환자는 나한테 인계해 줄 수 있겠나?”
“네? 신창균 환자라면…….”
“그 만성 심부전 환자 말일세. 내가 꼭 좀 살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그렇군요. 하긴, 케이스가 특이한 환자이긴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게 도의에 어긋나는 건 알지만, 부탁하겠네.”
“그렇게 하시죠. 과장님 부탁이신데 제가 안 들어드릴 수 있나요!”
이상효 교수도 흔쾌히 조현오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시작된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방윤석 부회장은 신창균 환자의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비록 신창균으로부터 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했다 할지라도 어색함이 없을 리는 없을 터였고, 방윤석 부회장은 조심스럽게 신창균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어딜 다녀오는 거야. 한참 찾았네. 어딜 가려거든 말이라도 하든가.”
신창균의 아내 한숙영이 보온병을 들고 들어왔다.
“어, 답답해서 잠시 바람 좀 쐬고 오느라고.”
단 한 번도 일반 병실에 입원했던 경험이 없는 방윤석 부회장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침대 위에 몸을 눕혔지만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픈 양반이, 날씨도 찬데 어딜 돌아다녀. 가만히 병실에나 누워 있지.”
한숙영은 보온병 뚜껑을 돌려 딴 뒤, 컵에 물을 따랐다.
“몸 좀 녹일 겸, 차나 한잔해요.”
지난번에 한숙영이 마시게 했던 탁한 색깔의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