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2)
신의 메스-102화(102/249)
102화 왕자와 거지 (8)
“그건 무슨 차지?”
코를 자극하는 싸구려 화장품과 향수 냄새에 방윤석 부회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새삼스럽게 무슨 차라니요. 맨날 먹는 거면서……. 몸에 좋은 거니까 그냥 군소리 말고 드슈. 자기 몸 생각해서 비싼 돈 들여 끓인 건데 뭘 그렇게 물어봐. 내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
한숙영은 퉁명스럽게 잔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쫙쫙 소리를 내며 경망스럽게 씹던 껌도 그대로였다.
“아, 알겠어. 마실 테니까 매점에 가서 양갱 좀 사다 줘. 병원 밥만 먹다 보니까 단 게 당기네.”
평소에 신창균이 양갱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된 방윤석 부회장은 한숙영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허구한 날 그놈의 양갱은? 아주 지겨워 죽겠어! 알겠으니까, 그가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셔요. 비싸게 주고 달인 거니까.”
“알겠어. 마실 테니까 얼른 좀 사다가 줘.”
방윤석 부회장이 흠흠 소리를 내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얼른, 이거부터 빨리 마셔요.”
자신의 눈앞에서 마시길 바라는지, 그녀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곤 방윤석 부회장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쏟아냈다.
“아, 알았어.”
그제야 방윤석 부회장도 잔을 벌컥벌컥 비웠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저으며 양갱을 사 오라는 동작을 했다.
“하여간 애들도 아니고, 뭔 양갱을 이렇게 좋아해?”
한숙영은 그제야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숙영이라는 여자,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신창균 씨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밖에서 수상한 남자와의 만남도 잦은 편이에요. 혹시 이상한 낌새가 보이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한숙영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박상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방윤석 부회장은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종이컵에 내뱉어,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 * *
한숙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방윤석 부회장은 8층 하늘 정원에서 박상우를 만났다.
“박 선생, 신 선생은 잘 있습니까?”
“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계십니다.”
“각오는 했지만, 이것저것 불편한 게 많더군요.”
“많이 불편하시긴 할 겁니다. 그래도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버티는 건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마도 조만간 삼원 병원에서 의사들이 올 겁니다.”
“삼원 병원에서요?”
“아무래도, 내 건강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고 싶어서겠지요. 아마도 주요 경영진들과 함께 내원할 겁니다. 병문안이라는 명목하에 진위 여부를 가리려 할 거예요. 그쪽 사람들은 저와 상극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군요.”
“삼원 병원은 뼛속 깊이 형님 라인이에요. 신 선생이 실수하지 않도록, 박 선생도 조금 더 신경 써 주십시오. 제가 몇 가지 써 놓은 게 있는데, 이것 좀 신 선생에게 전달해 주세요.”
방윤석 부회장이 무언가 빼곡히 쓴 메모를 박상우에게 주었다.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것 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선생 말대로 신 선생 부인이라는 사람, 영 느낌이 좋지 않아요.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방윤석이 종이컵을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신 선생이 복용하고 있는 음료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상해요. 성분을 확인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역시 마시는 음료를 의심하고 있었기에, 방윤석 부회장으로부터 종이컵을 받아든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간 느낀 건데, 박 선생 말대로 한숙영이라는 여자의 눈빛이 좋지 않아요. 뭐랄까, 섬뜩하다고 해야 할까? 병간호하는 아내의 눈빛은 절대 아니었어요. 분명 뭔가 있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남편이 치료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보통 안타까운 마음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여자는 달랐습니다. 그 순간에도 경망스럽게 껌을 딱딱거리면서 입꼬리를 올리는 아내는 드물거든요.”
“저도 그 부분이 대단히 의심스러웠습니다. 병간호하는 보호자가 그렇게 짙은 화장에 향수까지 뿌리고 병실에 들어오진 않죠!”
“맞아요. 아무래도 수상한 구석이 많아요. 내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겠지만, 보는 눈도 많고 괜한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르니, 박 선생이 확인을 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우리 자회사인 삼원제약 연구실에 미리 언질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예상대로 방윤석 부회장은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신창균 환자분! 여기 계셨군요. 이렇게 찬바람 맞으시면 안 좋아요. 얼른 병실로 돌아가세요.”
그 순간, 담당 간호사가 방윤석 부회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와 신 선생이 정말 닮긴 닮았나 보군.”
방윤석 부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박상우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 그럼 이만 들어갑시다.”
“네.”
박상우와 방윤석 부회장은 앉아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 * *
며칠 후, 삼원제약의 상임 연구원인 유도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윤석 부회장이 건네준 의문의 액체에 관한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었다.
“결과가 나왔다고요?”
“네.”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결과지가 담긴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병원의 환자가 매일 마시는 차인데…… 결과가 어떻게 나온 겁니까?”
박상우가 서류 봉투를 열어보며 물었다.
“네? 이걸 사람이 매일 마셨다고요?”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깜짝 놀라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선생님도 분석 자료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 액체에서 셀레늄이 검출되었어요.”
“네? 셀레늄이요? 그건 유리 같은 비금속 광물에서 검출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주로 유리나 도기, 반도체 등을 제조할 때 활용하는 건데, 가장 치명적인 건 이산화 셀레늄이나 셀레늄산으로 변했을 때예요.”
“그렇다면, 이걸 마신 환자가 셀레늄 중독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죠. 그렇긴 한데, 반도체 공장 같은 곳에서나 종종 발생하지, 사실 셀레늄 중독은 그리 자주 발생하지 않아요. 하지만 급성 중독이 되면 심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극단적인 혈관 확장을 일으키면서, BP(혈압)를 극적으로 떨어뜨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하죠. 단기간에 급사할 가능성이 농후해요. 게다가,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심각한 폐부종이 일어나서 종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독극물입니다. 절대로 사람이 장기간 복용해서는 안 돼요.”
유도현 상임 연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우리 환자가 급성 중독은 아니겠군요. 아직 그런 증후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박상우는 분석 자료를 펼쳐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어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검출된 양으로 볼 땐, 급성 중독을 일으키기엔 턱없이 적은 양이에요.”
“그러면, 이 정도 양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아니죠. 그렇게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액체 속에 들어 있는 셀레늄 정도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6개월 이상의 장기간 복용을 했다면 얘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심각한 만성 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만성 중독이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 건가요?”
“피부에 홍조가 생기고, 소양성 두피 발진도 있을 겁니다. 머리카락은 점차 가늘어져서 끊어지거나 빠지겠죠. 마늘을 먹지 않아도 입에선 마늘 냄새 같은 게 진동할 거구요. 환자의 증상 중 부분 탈모가 있거나 숨결에서 마늘 냄새가 진동하면 셀레늄 중독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게다가, 민감한 사람은 입에서 자꾸 금속 맛이 난다고도 토로할 겁니다.”
-선생님, 제가 먹는 약 중에 금속 맛이 나는 약이 있습니까? 자꾸 입에서 녹슨 철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피 냄새 같기도 하고…….
-아뇨? 그럴 리가요.
-이상하네요. 분명 약을 먹고 나면 꼭 입안에서 금속 맛이 나는 것 같았어요.
박상우는 예전에 신창균이 지나가듯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약과 함께 마셨던 정체불명의 음료. 분명 그것 때문에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맞아! 그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면 그럴 수 있겠지!’
“그렇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셀레늄 만성 중독 부작용으로 심부전에 걸릴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심부전, 폐부종이 대표적인 셀레늄 만성 중독 부작용이에요.”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만성적인 셀레늄 중독 부작용으로 심부전을 앓게 되고 결국, 진행성 심부전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하죠. 아주 잔인하고 치명적인 살인 방법이 될 수도 있어요. 일단 초기 증세는 위염이나 독감 같은 반응을 보일 테니 디기탈리스나 수액, 아스피린 정도를 처방했겠죠. 셀레늄 중독은 당연히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요.”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상우의 의견에 격하게 동의했다.
“그러다가 점점 상태가 악화하고 결국, 심부전 진단을 받게 되겠네요. 심부전은 흔한 질병이니 사망 원인은 단순한 심부전에 의한 사망일 테고, 누군가가 진짜 사망한 원인을 추적하기 전까지는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겠어요.”
“맞습니다. 간혹 보험 사기에 적용되는 악랄한 수법이기도 합니다.”
유도현 상임 연구원이 손가락을 겹쳐 딱 소리를 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해요. 물론 전제 조건은 그 환자가 몇 개월 이상 꾸준히, 이 셀레늄이 든 음료를 복용했다는 거지만 말입니다. 충분히 개연성은 있어요.”
유도현 상임 연구원이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연구원님!”
“감사하긴요. 부회장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신 건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지금 말씀해 주신 상황으로 유추해 보면, 보험 사기가 아닐까 의심됩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거든요. 일단 그 환자 앞으로 생명 보험이 있는지부터 꼭 확인해 주세요. 이런 경우엔 보험금이 목적일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제가 좀 참고해도 될까요?”
박상우가 서류 봉투를 들고 일어서려 했다.
“그거야 뭐, 문제 될 건 없죠. 다만, 이런 일은 선생님이 나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세요.”
걱정스러운 듯,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 박상우의 팔목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증거를 확보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게요.”
“꼭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은 잘 계시죠?”
그간의 사정을 알 리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유도현 상임 연구원은 넌지시 방윤석 회장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계십니다.”
“다행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회장님께서 복귀하셔야 할 텐데요. 걱정입니다.”
유도현 상임 연구원이 근심 어린 눈빛으로 박상우에게 말했다.
“곧 좋아지실 겁니다. 그러면,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두 사람이 일어나서 각자 떠나려는 순간, 박상우는 움직임을 멈추고 유도현 상임 연구원을 바라봤다.
“잠깐만요!”
“네?”
“셀레늄이라는 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독극물은 아니죠?”
“흠, 글쎄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약물이긴 한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도체 공장이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페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