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5)
신의 메스-105화(105/249)
105화 왕자와 거지 (11)
“왜, 왜 그러는 거야? 사람들 보는 눈도 있어서 이런 건 좀 그런데…….”
신창균이 보인 뜻밖의 행동에 당황한 방준석 회장이 손을 빼려 하자, 신창균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유감이군요. 형님이 그런 말을 하실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신창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방준석 회장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장난 그만하고 이 손 놓지.”
방준석 회장은 허허허 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 사람아, 그만하라니까 그러네.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때 개 목줄을 풀어 놓은 사람은 형님 아니었던가요? 제가 알기론 그런데요.”
“하…… 하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아, 농이 너무 지나치구먼.”
방준석 회장은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붉은 기운이 셔츠 깃 사이를 타고 번져 오르더니 어느새 귀밑까지 벌게져 가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요?”
“그건 오해야, 오해! 내가 그럴 리 있는가? 어느 누가 자기 동생을 일부러 상하게 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방준석 회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신창균에게 잡힌 손목을 빼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여기까지만 하죠. 그 얘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형님은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신창균은 눈에 힘을 주며 방준석 회장을 노려봤다.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안겨 줘도 나무랄 데가 없는 명연기였다.
“그, 그게 아니라…….”
뚜뚜뚜뚜~!
그 순간, EKG 모니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모니터에 뜬 신창균의 혈압과 호흡, 맥박 등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BP(혈압)가 너무 높은데?”
모니터를 확인한 삼원 병원 의료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상우가 그 타이밍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EKG 모니터를 확인하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지금 환자분 혈압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호흡도 불규칙한 게, 어서 조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모두 자리를 비켜 주십시오.”
“지금 방윤석 부회장님은 무엇보다 안정이 필요하십니다. 모두들 밖으로 나가 주십시오.”
초조하게 신창균을 지켜보던 조현오 교수도 박상우를 거들며 나섰다.
“알겠네. 이 사람아, 자네가 왜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실수야. 내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고!”
방준석 회장은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발뺌하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쁘실 테니 얼른 돌아가시지요. 저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창균은 가슴을 부여잡고 쿨럭거리는 거친 기침을 토하더니 자리에 몸을 눕혔다.
“아무쪼록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봄세. 자, 우리는 이만 갑시다. 조 박사, 윤석이 좀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방준석 회장과 그 일행은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방준석 회장 일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박상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창균 씨, 어떻게 된 건가요? 방윤석 부회장님께서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셨던 건가요? 이런 돌발적인 상황까지 예측하시지는 못했을 텐데…….”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박상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아뇨.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신창균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 위험했어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박상우였다.
“방준석 회장의 말대로 방윤석 부회장님이 어릴 때 개에 물린 건 맞지만, 그걸 방준석 회장이 벌인 짓이라는 꿈에도 몰랐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신 건가요? 자칫 모든 것이 수포가 될 뻔했습니다.”
조현오 교수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배운 게 없어서 선생님들만큼 머리에 든 건 없으나, 눈치 하나는 선생님들보다 나을 겁니다. 저처럼 돈 없고 빽 없는 흙수저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이지요. 아니, 필사적으로 갖춰야 하는 생존본능이 맞는 말이겠네요. 눈치 없이 굴다간 굶어 죽기 딱 좋으니까요.”
“…….”
“그래서요?”
박상우는 궁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신창균에게 물었다.
“저 회장이란 사람은 애초에 자기 동생을 다치게 한 죄책감이라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개에 물린 충격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죠. 하긴, 돈 많은 양반들이 그런 고통을 겪을 리도 없지만 말입니다.”
“…….”
박상우와 조현오 교수는 신창균이 말하는 내용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런 자리, 게다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다뇨?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가 정말, 동생을 진심으로 아낀다면 말입니다.”
신창균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면, 동생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을 거란 말씀인가요?”
“무식해서 트라우마가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두려움 정도의 의미라면 맞는 말입니다. 방준석 회장이란 사람, 얼핏 봐도 냉혈한이에요. 그런 짓은 충분히 저지를 만한 인간이죠.”
신창균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게다가, 방 회장이란 사람은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제 옆구리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어요. 처음부터 그 질문을 하려고 작정했다는 게 되겠죠. 사람들 눈빛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밥술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노비처럼 말입니다.”
“노비라니요? 자신을 그렇게 비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창균 씨는 충분히 대우받을 자격이 있으세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창균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너무 위험했습니다. 간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박상우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방윤석 부회장님이 저분의 성격이나 특징을 잘 설명해 주신 덕도 있고,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수포로 될 상황인지라 도박 한번 해 봤습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신창균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문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도왔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쯤 되면, 방준석 회장도 의심하지 않겠지?”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에게 물었다.
“신창균 씨 덕분에 8부 능선은 넘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긴 이릅니다. 조금 전에 삼원 병원 의료진 중 한 명이 화장실에 들어간 거 보셨죠?”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가?”
“제 예상이 맞는다면,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갔을 겁니다.”
“뭐?”
깜짝 놀란 조현오 교수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마도, DNA를 추출할 수 있는 무언가겠죠.”
“뭐야! 그러면 큰일 아닌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사전에 방윤석 부회장님의 물품들로 교체해 둔 상태예요. 칫솔을 비롯한 세면도구부터 머리카락까지 말입니다. 무언가 가져갔다고 해도, 기껏해야 방윤석 부회장님의 모발을 가져갔을 거예요. DNA 검사도 해 보겠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랬나? 정말 잘했군. 역시 자네는 철두철미한 데가 있어.”
박상우의 설명에 비로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조현오 교수였다.
* * *
방준석 회장의 차 안에선 방윤석 부회장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장 원장, 자네가 보기에 윤석이 상태는 어떤 것 같은가?”
“글쎄요. 만성 심부전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게다가 폐부종까지 왔다면, 수술한다고 할지라도 쉽기 일어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수술 성공률은 10% 미만에, 기적적으로 수술이 잘된다고 할지라도 그룹 내 복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보기에도 윤석이가 확실하지?”
“느낌이 좀 그렇긴 하지만…… 분명 맞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금 전에…….”
조금 전 병실 내에서 벌어졌던 해프닝을 언급하려던 장길수 원장은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말을 거둬들였다.
그의 말에 방준석 회장은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머리카락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리고, 비서실장!”
“말씀하십시오.”
“우리 쪽에 비우호적인 주주들 단속 잘하고, 조심스럽게 윤 상무 쪽을 건드려 봐.”
“알겠습니다.”
윤 상무, 윤호상은 삼원 그룹의 브레인이자 전략기획실의 상무로, 그룹 내에선 방윤석 부회장의 심복으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심부전증이라……. 천하의 윤석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가볍게 주먹을 말아쥔 방준석 회장은 이마를 두드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신창균을 자신의 동생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 * *
며칠 후, 박상우는 흉부외과 508호 병실로 향했다.
“할머니, 가슴 통증은 좀 어떠세요?”
“아이고, 이제야 숨이 좀 제대로 쉬어지는구먼요.”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어요. 혈관 벽에 찌꺼기가 많이 껴서 전부 제거했고, 튼튼한 새 혈관으로도 바꿔 놨으니까 앞으로는 숨 차는 일도 크게 없을 거예요.”
박상우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며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무언가를 끼워 넣는 시늉을 했다. 나이 든 할머니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스텐트 시술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려요? 두꺼비 헌 집 가져가고 새집 준 건가 보네!”
“맞아요. 당분간은 면역 반응이나 부작용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 2~3일 정도 더 입원한 뒤에 바로 퇴원하실 수 있어요”
“아이고! 고맙소, 잘생긴 의사 양반! 이거라도 마셔요.”
할머니는 서랍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 박상우의 손에 쥐여주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박 선생, 나 이상천이올시다.”
지산파의 이인자, 이상천 이사의 전화였다.
“잠시만요.”
박상우는 황급히 병실을 나와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말씀하십시오.”
박상우가 주위를 살피며 나지막이 목소리 톤을 낮췄다.
“흠, 안상수란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요. 이 사람, 인간쓰레기더군요.”
“인간쓰레기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기전과만 해도 4범이에요. 게다가 공갈 협박, 갈취까지 하면 달고 있는 별이 6개나 됩니다. 내용도 악질입니다. 자해공갈단이나 하는 보험 사기에다가, 노약자들 대상으로 무허가 약을 팔지 않나……. 막장도 이런 막장 같은 인간은 없을 겁니다. 변두리 양아치들도 이런 짓은 안 해요.”
“지금, 보험 사기라고 하셨습니까?”
“그게 이 인간 주특기인가 봅니다.”
“그밖에 다른 건 없습니까?”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내연녀가 있더군요. 한숙영이라고…….”
‘역시 예상대로야!’
“확실합니까?”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것 같은데, 한숙영이라는 여자는 유부녀예요. 아, 그 여자 남편이 박 선생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모르셨어요? 이름이 뭐더라…… 아, 여기 있네. 신창균이라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저희 과 환자예요.”
“그렇군요. 그 신창균이란 사람과 연관된 겁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천하의 박 선생이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또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님!”
“하하하, 박 선생 도와드리는 게 제 낙 아닙니까? 언제 한번 가게에 나오십시오. 저랑 찐하게 한잔합시다.”
“알겠습니다.”
‘이제 이 독버섯 같은 사람들을 솎아내야 할 때인가?’
전화를 끊은 박상우는 어금니를 굳게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