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8)
신의 메스-108화(108/249)
108화 왕자와 거지 (14)
지이이잉!
흉골 절제술로 갈비뼈를 드러내면서 심장 적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지방과 흉선 조직을 절개해 반으로 갈라내자, 베일에 싸여 있던 신창균 환자의 심장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은 이완과 수축을 힘겹게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박상우와 조현오 교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두 사람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는 조현오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맺혔다. 한눈에 봐도 탁한 색깔의 병든 심장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역동적으로 뛰어야 할 심장이었지만, 그 움직임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며 힘겹고 위태로워 보였다.
“체외 순환기 연결합니다. 체외 순환기 온!”
본격적인 수술의 시작을 알리는 조현오 교수의 첫 오더가 떨어졌다.
“네!”
조현오 교수의 오더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심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탁탁탁탁!
간호사들은 가위를 들고 길게 늘어진 체외 순환기의 관을 쳤다. 산소가 유입되게 하면서 혈액이 응고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었다. 모든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는 수술실에선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컷 더 베인(Vein)!”
조현오 교수는 시저를 들고 체외 순환기에 연결할 혈관을 조심스럽게 절개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혈관을 절개했고, 박상우와 신정국은 대동맥에서 대정맥, 그리고 폐동맥 순으로 절개된 혈관에 체외 순환기 라인을 연결했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세 사람은 완벽한 하모니 속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체외 순환기가 신창균의 혈액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신창균의 혈액은 빠른 속도로 체외 순환기 라인을 채우고 있었다.
대관령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에크모 관에 붉은 피가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신창균의 심장이 드디어 모든 모습을 드러냈고, 조현오 교수는 조심스럽게 신창균의 심장을 적출하기 시작했다.
조현오 교수는 의료용 트레이 위에 심장을 툭 올려놓았다. 의료용 트레이 위에 올라온 검붉은 신창균의 심장은 썩어 버린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너희들도 잘 봐 둬라. 이 심장이 CHF에 걸린 환자의 심장이야.”
“네, 교수님.”
조현오 교수는 수련의들을 향해 심장을 확인시켜 주었고, 수련의들은 득달같이 달려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적출된 심장을 바라보았다.
“박 선생, 여기를 좀 봐. 이 정도로 심각할 줄 몰랐는데?”
조현오 교수는 유난히 딱딱하게 굳은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칼시피케이션(Calcification: 석회화)이 많이 진행되었군요.”
탁한 색깔과 탄력을 잃어버린 심근육, 이와 더불어 석회화도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상적인 크기의 심장보다 1.5배는 더 부풀어 있는 비대한 심장이었다.
만약 수술하지 않았다면 1개월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순조로운 심장 적출이었다.
지이이잉!
“교수님, 심장 공수해 왔습니다.”
그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고 공여 심장 적출팀의 김장수 선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멸균 처리한 생리식염수와 얼음을 이용해 심장의 온도를 4℃ 이하로 맞춘 심장을 이송해 온 것이다. 심장 이식은 일반적으로 적출 후 4시간 이내에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심장은 순조롭게 적출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김 선생!”
“장 원장, 지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공여자의 심장이 들어오자, 방준석 회장이 미간을 잔뜩 좁히며 물었다.
“지금 부회장님의 심장을 적출한 겁니다. 그리고 공여자의 심장이 이송됐습니다. 일단은 순조로워 보입니다만…….”
안경을 추켜올리던 장길수 원장이 눈매를 좁혔다.
“장 원장이 보기에 상태가 어떤 것 같아요?”
방준석 회장은 한 손으로 입 주변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육안으로 봐도 상태가 심각합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치료를 안 받으셨던 건지…….”
장길수 원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떻게, 잘될 것 같습니까?”
방준석 회장은 목소리 톤을 더욱 낮추며 물었다.
“글쎄요……. 아마도 잘 마무리될 것 같은데요?”
장길수 원장은 방윤석 회장을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쯤 되면 내가 동생하고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거냐는 걸 묻는 겁니다.”
방준석 회장은 장길수 원장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며, 돌려 말하지 않고 물었다.
“슬픈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디 장 원장을 믿어 봅시다.”
방준석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고, 곧 날카로운 시선으로 수술 장면을 응시했다.
이제, 건강한 심장만 이식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심장 이식 수술(Heart Transplantation)은 인공 심폐기의 도움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심정지 상태 환자를 저체온 상태로 유지해 심장을 적출하고 이식하는 수술이다. 일반적으로는 ‘양대정맥 이식술’이라고 하여 기증자의 우심방을 상, 하대 정맥에서 적출해 공여자의 우심방 및 상, 하대 정맥을 유지한 상태로 봉합하는 수술을 진행한다. 기증자의 건강한 심장만 확보할 수 있다면 타 수술과 비교해서도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다. 특별한 돌발 변수만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교수님, 시작하십시오.”
이제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는 과정에 돌입했고, 박상우는 건강한 공여자의 심장을 가져와 흉부 중앙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놓았다.
그 순간, 조현오 교수의 몸이 휘청거렸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교수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조현오 교수는 식은땀을 흘렸고, 간호사가 거즈를 들고 그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후, 왜 이러지. 나는 괜찮네. 아나스토모시스(Anastomosis: 혈관 문합) 시작하자고.”
하지만 조현오 교수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어딘가 불편하다는 듯, 양손을 탁탁 털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박상우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흔히 있는 일이니까 걱정 말게.”
조현오 교수의 안색은 창백해져서 딱 봐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네.”
“좋아. 지금부터 문합 시작하지. 가슴 좀 더 벌려 봐. 시야가 흐리네.”
“네.”
리트렉터를 최대한 잡아당겨 시야를 확보하는 신정국의 시선 역시, 창백해진 조현오 교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고했어. 지금부터 혈관 문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니들하고 봉합사…….”
조현오 교수의 몸이 다시 한번, 이번에는 제법 반동이 심할 정도로 크게 휘청거렸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박상우는 재빨리 팔을 잡아 조현오 교수를 부축했다.
“어어, 괜찮아.”
하지만 니들을 들고 있는 조현오 교수의 손가락은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떨리는 다른 손을 움켜쥐었고, 박상우는 그 행동을 놓치지 않고 확인하고 있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으셨는데…….’
박상우는 불안감에 마른 입술위로 침을 둘렀다.
째깍째깍!
도너 심장 리미트 시간은 이제 겨우 한 시간!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스톱워치 소리가 박상우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서, 설마?’
박상우는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교수님, 혹시 식사 거르셨습니까?”
당뇨병이 있는 조현오 교수였기에, 지금 박상우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것은 저혈당 쇼크였다.
“아냐, 아냐. 아침에 가볍게 먹고 나왔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조현오 교수는 손을 쥐락펴락해 보았지만,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변해 버린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저혈당 쇼크가 온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교수님?”
인슐린을 주기적으로 맞는 당뇨병 환자는 식사를 거르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경우, 혈중 포도당 농도가 떨어져 갑작스럽게 저혈당 쇼크가 올 수도 있었다.
“괜찮네. 이제 시간이 별로 안 남았으니까, 빨리 마무리 짓자고. 이쪽에 차단막 좀 설치해. 저 사람들 보지 못하게. 아주 신경이 쓰이는구먼.”
조현오 교수가 턱짓으로 2층의 참관석을 가리켰다.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그였다. 여전히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감각을 찾으려 애쓰는 조현오 교수였다.
“알겠습니다. 조 선생, 김 선생! 수술대 앞에 차단막 설치해.”
“네.”
“그리고, 박 간호사는 밖으로 나가셔서 탄산음료 한 캔만 사다 주세요.”
저혈당 쇼크가 왔을 경우, 신속하게 당분을 섭취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박상우는 비상사태를 대비하고자 흡수가 빠른 탄산음료를 준비하게 했다.
“네.”
자동문이 열리자 간호사 한 명이 수술실 밖으로 허둥지둥 빠져나갔다. 수술실 안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휩싸였다.
“교수님께서 왜 저러시지?”
“글쎄요. 어디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이러다가 사고 나는 것 아냐?”
“천하에 조 교수님이 실수를 하시겠어요? 아닐 겁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모두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의료진들은 하나같이 초조해 보였고,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조 교수!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그래? 빨리 보고하세요.”
조영철 원장은 황급히 인터폰을 누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흉부외과 치프 박상우입니다.”
박상우가 조영철 원장의 인터폰에 응답했다.
“왜 자네가 받아? 조 교수는 어떻게 된 거야?”
조영철 원장은 방준석 회장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자꾸 위쪽이 신경이 쓰인다며, 집중하기 힘들다고 하셔서요.”
“그, 그래?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지?”
“수술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 알겠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조영철 원장은 여전히 찜찜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 모습에 방준석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 교수가 집중이 안 되나 봅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이런 공개 수술은 좀…….”
조영철 원장은 말을 대충 얼버무렸다.
“정말입니까?”
하지만 방준석 회장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럼요! 조 교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흉부외과 써전입니다. 실수 같은 건 있을 수 없어요.”
조영철 원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쿵!
“아아아아악!”
그 순간, 둔탁한 소리와 날카로운 비명이 수술실 안에서 퍼져 나왔다. 마지막 혈관을 문합하던 조현오 교수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교수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푸슉, 푸슉, 푸슉!
마치 합선된 전선에서 스파크가 튀듯, 설상가상으로 선홍색 피가 신창균의 혈관에서 뿜어져 나왔다. 박상우는 순식간에 피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박상우의 관자놀이를 타고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교, 교수님을 당장 밖으로 모셔!!!”
박상우가 찢어질 듯한 큰 목소리를 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