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09)
신의 메스-109화(109/249)
109화 왕자와 거지 (15)
퓨슉!
조현오 교수가 저혈당 쇼크로 실신하면서 쓰러지는 순간, 들고 있던 시저로 대동맥을 건드린 것 같았다. 찢어진 혈관에선 마치 상수도관이 터져 물이 쏟아져 나오듯 검붉은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처음부터 교수님을 모시고 나갔어야 했어.’
박상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회귀한 박상우가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이토록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빨리 수습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상호 선생, 빨리 교수님 밖으로 모시고 나가!”
“네…… 네.”
박상우조차 당황스러운 상황에 1, 2년 차 레지던트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뇨병이 있으니까 나가자마자 포도당 주사 놔 드려!”
패닉에 빠진 수련의들을 향해 박상우는 목소리를 높고,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조현오 교수를 챙길 수 있도록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울컥, 울컥!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피는 산 중턱을 타고 용암이 흘러내리듯, 신창균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술포와 수술대는 어느새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거즈 가지고 와. 빨리!”
신정국이 간호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야 해!”
황규석을 포함한 레지 2년 차들과 한지은 간호사가 달려들어, 출혈 부위에 거즈를 올려놓고 필사적으로 지혈했다. 하지만 거즈를 수십 장 올려도 부족했다. 새하얀 거즈들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버렸다.
뚜뚜뚜뚜!
혈압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며, 이제 한계치인 50 언저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박 선생,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어! 이러다간 어레스트 올 것 같은데?”
마취과 조 선생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뚜뚜뚜뚜!
“옥시전 세츄어레이션(산소포화도)도 70 이하입니다!”
계기판 숫자들이 심하게 요동쳤다.
모든 그래프는 마치 추락하듯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렸고, 심전도는 오르락내리락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각종 수치가 빠르게 줄어들며 한계치를 향해 가고 있었다.
“호흡, 맥박, 모든 게 엉망입니다. 어떡하죠?”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치를 확인하던 간호사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뭘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혈이 안 돼요!”
“어, 어떡하죠?”
온몸에 피가 튄 의료진은 모두 패닉에 빠져 허둥대고 있었다.
“정 간호사, 혈액 있는 대로 때려 넣어. 조 선생님은 노르에피네프린(혈압 상승제) 앰플 한 개를 투여해 주시고, 한 선생님은 산소 농도를 높여 주세요!”
박상우는 응급상황에서도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박상우뿐이었다. 모든 의료진이 그의 지시에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도대체 무슨 일이야? 수술방이 왜 이렇게 소란한 거야?”
수술방이 소란스러워지자 조영철 과장은 신경질적으로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김 과장! 내려가서 상황 파악해 봐.”
인터폰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조영철 원장은 수화기를 집어던지곤 수술방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의 지시를 받은 내과 과장 이준술이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그 모습에 방준석 회장이 다가와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잘 해결될 겁니다. 심장 이식 수술이라는 게 워낙 고난도 수술이다 보니 그게, 가끔 사소한 문제가…….”
토마토처럼 벌게진 얼굴을 한 조영철 원장은 두서없는 말로 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사소한 문제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수술에서 사소한 실수라는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저분은 일반 환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황급히 다가온 장길수 원장이 마치 으르렁거리는 강아지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물론, 방윤석 부회장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건 그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호재일 터였다. 장길수 원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경쟁 병원의 실수를 그냥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그만 하세요. 여긴 우리 병원이 아닙니다. 명성 병원 의료진들을 믿고 맡겨야죠.”
방준석 회장은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며, 장길수 원장의 팔을 잡고 그를 나무랐다.
“아, 알겠습니다.”
장길수 원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일단, 좀 두고 봅시다.”
“네, 회장님.”
“큰 문제는 없겠죠?”
장길수 원장을 뒤로하고, 방준석 회장은 앞으로 나서며 부드러운 톤으로 조영철 원장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안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써전인…….”
“됐습니다. 마무리만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준석 회장은 조영철 원장의 말허리를 잘라 버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은 잘 끝날 겁니다.”
조영철 원장은 손수건을 꺼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
조영철 원장은 보지 못했지만, 말없이 뒤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방준석 회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상우야, 도저히 안 되겠어. 출혈이 너무 심해. 어쩌지? 아무래도 다른 교수님을 모셔…….”
필사적으로 터진 혈관을 틀어막던 신정국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반신까지 피로 물든 신정국의 손끝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뇨.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다른 교수님을 모셔 올 시간이 없어요. 게다가 지금 상황에선 교수님들도 딱히 하실 일이 없습니다.”
“지, 지금은 방법이 없잖아.”
“…….”
그 말에 박상우도 잠시 머뭇거렸다.
“빨리 결정을 내리자! 이러다간 환자가 죽는다고! 지금 피가 너무 터져서 찢어진 곳 메우기도 불가능해! 꿰맬 수도 없다고!”
신정국이 다급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어쩔 수 없습니다. 본드를 사용해서 터진 혈관을 임시로라도 막아야겠어요.”
“그래, 본드! 어이, 거기!”
“지금 이 수술방엔 의료용 본드가 없어요. 가져오려면 외과 병동까지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습니다.”
“그러면…… 어쩌려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야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 * *
수술이 있기 하루 전, 박상우만 있던 흉부외과 당직실에 천기수가 들어왔다.
“야! 순간 본드 있어? 안경테가 부러졌는데 새로 할 시간도 없고, 본드로 좀 붙여야겠다.”
“아마 내 책상 위에 있을 거다.”
천기수는 본드로 붙인 안경테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역시 순간 본드가 좋긴 좋네. 이만하면 잘 붙었는데…… 국산인가? 순간 본드는 일제가 좋은데…….”
“국산도 훌륭해. 그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야.”
“그래? 뭐, 훌륭하네.”
천기수는 본드를 이리저리 살펴보곤 박상우의 의사 가운 윗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걸 왜 내 가운에 넣어?”
“인마, 혹시 쓸 일이 있을 줄 누가 알겠냐? 난 바쁘니까 먼저 간다.”
* * *
‘이걸 쓸 일이 생기다니…….’
박상우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박 간호사님!”
박상우가 정지수 간호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탈의실에 가면 제 가운 윗주머니에 순간접착제가 있을 겁니다. 그거 좀 가져다주세요.”
“순간접착제요? 그, 그거로 뭐 하시게요?”
정지수 간호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빨리요. 빨리 가져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정지수 간호사는 황급히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무슨 생각을 그런 이상한 말을……. 너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순간접착제로 찢어진 혈관을 지혈하겠습니다. 적어도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게 말이 돼? 공업용 본드를 장기에 쓴다고? 지금 제정신이야?”
신정국은 박상우의 충격적인 발언에 눈조차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 방법밖엔 없어요. 지혈한 혈관은 바로 잘라내고, ABV(Artificial Blood Vessel: 인조 혈관)으로 치환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지금으로선 이 방법뿐입니다.”
“박 선생, 이제 환자도 더는 못 견뎌! 혈압이 한계치까지 떨어졌어!”
“브레인 프레셔(Brain Pressure: 뇌압)도 위험합니다.”
“옥시전 세츄어레이션(산소 포화도)은 50 이하입니다. 절망적이에요!”
여기저기서 탄식이 나왔고, 모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인조 혈관 치환술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어.”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방법밖에…….”
지금 상황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너, 정말 자신 있어?”
“믿어 주세요. 우리는 민주도 살렸잖습니까? 창고에서 말이에요.”
“…….”
신정국은 말없이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내 눈으로 기적을 목격했으니, 할 말은 없군. 좋아, 한번 해 보자.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박상우, 너 믿는다. 이 모든 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최선을 다해 봐.”
“고맙습니다, 선생님!”
“박 선생님, 본드 가지고 왔습니다.”
그 순간, 정지수 간호사가 순간접착제를 들고 들어왔다.
“이리 주세요.”
박상우는 방수 거즈에 순간접착제를 발랐다.
“황규석 선생, 상처 부위를 최대한 지혈해 줘.”
“알겠습니다!”
황규석은 보비를 들고 찢어진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이제 됐어. 비켜!”
박상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찢어진 혈관 부위에 순간접착제를 묻힌 방수 거즈를 둘둘 말았다.
“이, 이게 말이 돼?”
“미치겠네? 부러진 로봇 다리를 붙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의료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박상우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남은 혈액 전부 때려 넣어 주세요!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의료진은 혈액 튜브를 걸고 수혈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떨어진 혈압이 오르고 있습니다!”
“돌겠네. 산소 포화도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지금 공업용 본드 가지고 환자를 살린 거야?”
EKG 모니터를 응시하던 마취과 한정훈 선생은, 짙은 신음을 내뱉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 * *
“아무래도 혈관이 터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한 이준술이 수술방 상황을 조영철 원장에게 설명했다.
“뭐, 뭐야? 본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조영철 원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준술은 이어서, 박상우가 본드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지혈했다고 설명했다.
“후우,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조영철 원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준석 회장의 눈치를 살폈고, 목소리 톤을 낮춰 이준술에게 물었다.
“일단 지혈은 성공했고, 인조 혈관으로 찢어진 혈관을 치환하겠다고 합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수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치겠네. 일단 알겠네. 하지만, 환부에 본드를 사용했다는 말은 절대 비밀이야. 알겠나?”
조영철 원장이 목소리 톤을 더욱 낮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방준석 회장은 두 사람의 대화가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 문제가 생겼었는데, 일단 해결한 것 같습니다.”
조영철 원장은 어색한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방준석 회장은 굳은 얼굴로 다시금 모니터를 응시했다.
* * *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지금부터 집중하셔야 해요. 찢어진 혈관 절제하고, 인조 혈관으로 치환하는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혈압과 바이탈이 잡힌 상황이었기에 박상우는 의료진 각각을 향해 시선을 준 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여 분. 박상우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은 그 시간 안에 수술을 끝마쳐야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수술방엔 또다시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