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1)
신의 메스-11화(11/249)
11화 조폭 전쟁 (1)
1998년 8월 17일, 조폭들 간의 피 튀기는 전쟁!
박상우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국구 조직인 범 지산파와 신흥 조직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도끼파 간의 혈투.
오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대 전쟁을 벌였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결국, 사시미칼과 야구 방망이, 온갖 흉기들이 난무한 혈전 끝에 범 지산파가 상대 조직을 제압했지만, 결과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범 지산파의 사상자는 80여 명. 조직원들이 세 군데의 종합병원으로 나뉘어 이송됐는데, 그중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명성대학교 병원으로 가장 많은 인원인 45명이 배당되었다. 응급실의 규모를 고려할 때, 감당하기 힘든 인원이었다.
* * *
삐뽀, 삐뽀.
쉴 새 없이 구급차가 들락거렸고 곳곳에서 비명이 퍼져 나왔다. 응급실은 아비규환,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드르륵.
“비켜요! 비켜! 지금 환자 들어갑니다!”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환자가 실린 스트레처 카가 물밀 듯이 응급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좀 비켜 주십시오. 입구를 막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며 환자를 실어 나르던 의료진들이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 안에 범 지산파 보스, 박철진이 있습니다! 놈은 아주 위험한 놈이에요.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신고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경찰들이 외쳤다. 혹시나 조폭들이 도주하지 않을까, 응급실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들에겐 위급한 환자 따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휴, 그 사람이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무튼, 치료에 방해되니 안으로 절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놈은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니까요?”
경찰들이, 그들을 제지하는 의료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지금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입니다. 만약 무단으로 침입하면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할 거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응급의학과 펠로우 김동진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하, 미치겠네. 야! 병력 충원해서 앞뒷문 다 막고, 비상구 쪽도 폐쇄하고 대기해! 너희, 쥐새끼 한 명이라도 빠져나가면 전부 옷 벗을 줄 알아!”
경찰들은 잠시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어쩔 수 없이 응급실 외곽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입구 좀 막고 계시지 마십시오!”
펠로우 김동진이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의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와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응급실.
안은 더욱더 상황이 심각했다. 곳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비릿한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역겨운 냄새가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허억, 허억, 사, 살려 줘!”
“진통제, 진통제를 놔 주란 말이야! 나 죽는다고!”
날카로운 흉기가 목구멍을 통해 폐까지 관통한 스탭(Stab: 자상) 환자. 혈액이 기도에 흘러 들어가 환자가 숨을 쉴 때마다 찢어질 듯한 비명을 토해 냈다. 가빠진 호흡, 공기가 기도 안팎으로 드나들며 혈액과 섞여 거품 끓은 소리를 냈다.
“허억 허억, 우우우엑!”
환자가 밝은 빨간색, 거품이 잔뜩 낀 혈액을 토해 냈다. 가슴팍에 날카로운 회칼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손상된 폐에 서큘레토리 컬랩스(Circulatory collapse: 순환 허탈)까지 온 상태. 환자가 온몸을 비틀면서 고통스러워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阿鼻叫喚),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저 환자, 가만히 두면 피가 폐에 가득 차서 말 그대로 자기 혈액에 익사해 죽을 수도 있다!’
꿀꺽, 응급실에 내려와 주변에 시선을 흩뿌리던 박상우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선생님! 이, 이쪽이요! 이 환자 출혈이 너무 많습니다!”
“알았어! 일단, 안데모라직(Anthemorrhagic: 지혈제) 투여하고 버티는 데까지 버텨 봐. 바로 갈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흰색 가운이 붉게 물들 정도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응급의학과 의료진들. 그들은 물론 각 과의 수련의들까지 총동원돼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지만, 수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으악!”
곳곳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환자들의 팔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링거, 침대가 모자라 바닥에 매트를 깔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모습이 흡사 야전 사령부 막사와도 같았다.
“어레스트! 어레스트! 선생님, 혈압이 떨어집니다!”
“시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식염수에 희석해서 노르에피네프린 1 앰풀 투여해.”
의사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의료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 베드가 모자랍니다.”
“어쩔 수 없잖아. 바닥에 매트 깔고, 수액이랑 진통제 달아 줘!”
이미 응급실 베드는 모두 차 있는 상황이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지상호가 바닥에 매트를 깔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선생님!”
‘저대로 두면 저 환자 바로 사망한다!’
박상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다가, 한걸음에 환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오른쪽 가슴을 땅에 대고 누워 있는 환자를 왼쪽으로 돌려 뉘었다.
“야, 박상우! 너 지금 겁대가리 상실했냐? 인턴 따위가 폐 터진 환자 몸에 손을 대? 미친 거 아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상호가 버럭거렸다.
“선생님, 이 환자 왼쪽 렁(Lungs: 폐)에 스탭(Stab: 자상)을 입은 환자예요. 이렇게 오른쪽으로 뉘어 놓으면 바로 사망합니다!”
“이 새끼가 뭘 안다고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거려! 그 입 안 닥쳐? 아가리를 찢어 버릴까 보다!”
목까지 벌게진 지상호가 험악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떴다.
“아니. 그게…….”
“상우 말이 맞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응급의학과 펠로우 김동진. 그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이 친구야, 왼쪽 폐가 파열된 환자를 오른쪽으로 뉘어 놓으면 어떡하나? 찢어진 왼쪽 폐에 고인 피가 중력에 의해서 오른쪽으로 스며들게 되잖아! 이 한심한 인간아!”
“그, 그게.”
지상호가 당황한 듯 눈을 껌뻑거렸다.
“그나마 오른쪽 렁으로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데. 환자가 자기 피에 익사하게 해서 죽일 작정이야? 기본은 챙겨야 할 것 아냐!”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간에, 정신 똑바로 차려. 저 환자들을 봐 봐. 정신 줄 놓으면 바로 끝장이야! 지상호!”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상호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박상우! 너 TS 인턴이지!”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쳐다보는 김동진.
“네. 맞습니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방금 조치 아주 훌륭했다.”
툭툭툭, 김동진이 박상우의 어깨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단,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기 다리 쪽 스탭 환자 좀 봐 줘라.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으니까 바로 수처(Suture: 봉합) 들어가도 될 거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툭툭, 김동진은 손가락으로 응급실 구석을 가리키고는 박상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네. 선생님!”
박상우가 또 다른 환자에게 달려가 상처를 살피고는 능숙한 솜씨로 상처 부위를 꿰맸다.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여타의 인턴과는 확연히 다른 박상우였다.
“너, 뒈지고 싶냐? 이 새끼가 지금 뭐 허냐?”
모든 의료진이 정신없이 치료에 전념할 즈음, 걸쭉한 사투리가 지면을 울렸다.
“그, 그게, 지금 치료를 하고 있긴 한데 워낙 상처가 깊어서……요.”
천기수가 웃통을 벗은 서너 명의 조폭들 사이에 파묻혀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귀밑까지 붉게 물든 천기수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며 비지땀을 쏟아 내고 있었다.
“너, 만약에 우리 성님 잘못되면 너 역시 병풍 뒤에서 향내 맡을 것이여. 뭐 혀? 싸게 싸게 고쳐 놓지 않고!”
조폭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천기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왜소한 체구의 천기수가 거구들 사이에 파묻히자 마치 어린애처럼 보였다.
불끈불끈.
근육을 움직일 때마다 문신이 살결을 따라 꿈틀거렸다. 그들 역시 온몸에 크고 작은 자상이 산재해 있었다.
“그, 그게 제,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그 뭐냐. 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천기수. 그가 벌게진 얼굴로 청진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뭐여? 너 의사 아녀?”
“네. 의사, 의사가 맞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란디?”
“그게, 저, 저는 인턴이라…… 그리고 이 환자는 지금 너무 사, 상태가 나빠서 전문적인 선생님이…….”
천기수가 허둥지둥하며 말끝을 흐렸다.
베드에 누워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저 환자는 범 지산파의 보스 박철진이 틀림없었다. 워낙 유명했던 인물이기에 박상우의 기억 속에도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온몸이 멍투성이로 뒤덮여 있었다. 팔다리 수십 군데에 크고 작은 자상과 열상이 있었다. 게다가 더욱더 심각한 것은 의식까지 잃은 상태라는 사실. 한눈에 봐도 위급한 상황이었다.
공포에 질린 천기수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그려? 이 족제비같이 생긴 새꺄! 왜 지랄을 떨고 앉아 있어? 그럼, 싸게 다른 의사 데리고 와. 얼른!”
조폭들이 잡아먹을 듯 천기수를 향해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다.
“아…… 그게 흉부외과 교수님들은 오늘 콘퍼런스를 가셨고, 다른 교수님들은 이미 수술방에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대전에서 흉부외과 학회가 열렸고 조현오 교수를 비롯한 몇 의사들은 대전에 내려간 상황이었다.
“수술하고 있다고? 그려? 어디여? 앞장서. 나가 당장 가서 끄집어내 올라니까. 시방 우리 형님이 황천길 건너게 생겼는데 그깟 애먼 놈, 수술이 대수여!”
한 조폭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천기수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 손 놓으십시오!”
그 모습을 지켜본 박상우가 조폭에게로 달려갔다.
‘상우야! 아니야. 아니라고!’
조폭의 손아귀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천기수가 양손으로 엑스 자를 만들며 입을 뻥긋거렸다.
“뭐? 너 뭐여? 너도 의사여?”
조폭이 박상우를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네. 의사 맞습니다.”
박상우는 조폭들의 위협적인 행동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듯 보였다. 그가 조폭들을 노려보며 기 싸움을 했다.
“이런 시벌놈이, 의사면 다여? 눈 안 깔아? 얻다 대고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는 겨? 아주 눈깔을 뽑아서 아작아작 씹어 먹어 볼텡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조폭이 벌떡 일어나, 박상우를 향해 험악한 표정으로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그 순간, 박상우의 시야에 조폭 두목 박철진이 들어왔다.
[잔존 수명: 2시간 33분 22초, 21초, 20초…….]벌건 피로 물든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숫자들이 나타났다. 붉은 숫자는 박철진이 미간을 찌푸릴 때마다 출렁였다. 박철진의 잔존 수명은 채 3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나타났어! 이,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박상우가 박철진의 이마에 새겨진 숫자를 응시했다.
‘저 숫자가 남은 수명을 의미하는 게 맞다면, 이 환자는 곧 죽는다!’
“제가 저 환자 살리겠습니다!”
박상우가 이를 악물며 양 주먹을 말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