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10)
신의 메스-110화(110/249)
110화 왕자와 거지 (16)
“지금부터 찢어진 대동맥을 절제하고 인조 혈관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신속하게 진행할 테니,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주세요.”
박상우를 향해 의료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합니다.”
서걱!
“피 흘러넘치는 거 안 보여? 한 선생, 보비!”
“네.”
레지던트 1년 차 한국영이 보비를 가져다 대며 지혈했다.
“이 선생, 김 선생! 가슴 더 벌려야지. 시야가 막히잖아. 석션!”
“네.”
걸려 있던 리트렉터를 두 명의 수련의가 잡아당겼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수련의가 석션을 사용해서 흘러내린 혈액을 빨아들였다.
전쟁터의 야전 병원을 연상시키듯 피와 땀이 뒤섞인 수술복의 모든 인원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 한 번 실수하면 끝장이야.”
박상우는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언제나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그였기에,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회귀 전의 날카로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시야 가린다. 식염수 때려 넣고 석션해.”
“알겠습니다.”
한국영은 수술 부위에 생리 식염수를 넣은 뒤 빨아들였다.
띠띠띠띠!
“환자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괜찮아.”
신정국이 모니터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간호사님, 인트라크라니얼 하이퍼텐션(Intracranial Hypertension: 두개내압 상승) 잘 살펴야 합니다. 40 이하로 떨어지면 바로 콜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은 50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를 살펴보던 정지수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걱서걱!
박상우는 최대한 혈관의 손실이 없도록 빠른 손놀림으로 찢어진 동맥 부위를 절제했다.
“이제 인조 혈관으로 치환합니다!”
박상우는 고개를 돌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10여 분. 10분 안에 모든 수술을 마쳐야 하는 위급한 상황임은 여전했다.
“여기 있어.”
신정국은 지체없이 케이스를 벗겨, 쭈글쭈글한 하얀색 튜브 모양의 인조혈관을 박상우에게 건넸다.
“니들 홀더에 잡아 주세요!”
퍼스트 위치로 자리를 이동한 신정국이 레지던트에게 오더를 내렸다.
“귀먹었어? 지금 니들 홀더에 잡아 주라고 했잖아!”
수련의가 엉뚱한 것을 집어 들자, 박상우는 소리를 높였다.
단 한 번도 수술방에서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던 그였기에, 여러모로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만큼, 지금 순간만은 박상우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있습니다.”
의료 도구함을 뒤적거려 케이스를 벗겨낸 레지던트 2년 차 황규석은 니들 홀더에 실을 꿰어 박상우에게 넘겨주었다.
“잘될 거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박 선생이 잘해 낼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박상우가 엄한 아버지의 역할이었다면, 신정국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이었다. 팽팽한 긴장 속에도 신정국은 후배들을 다독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단한 침착함이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 자칫 경직되기 쉬운 마음의 짐을 덜어 주었다.
“혈관 절개 끝났습니다.”
곧, 박상우는 찢어진 혈관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잘려나간 부위에 인조 혈관을 봉합하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자리 잡았어. 시작해.”
모든 조직이 피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자칫 신경을 건드렸다간 환자가 바로 테이블 데스에 이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신정국은 물컹거리는 심장 위에 인조 혈관을 삽입했다.
“시작합니다.”
박상우가 수술용 실과 바늘을 들고 접합을 시도했다.
박상우는 뜨개질하듯 한 땀 한 땀, 동맥과 인조혈관을 연결했다.
손가락 관절이 따로 노는 듯한 현란한 손놀림, 열 개의 손가락에 이어진 봉합사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였다.
“컷!”
봉합을 마친 박상우가 컷을 외쳤다.
박상우의 오더에 맞춰, 신정국도 적절하게 봉합사를 절단했다. 그는 박상우의 선배이자, 훌륭한 내조자였다.
“컷.”
“컷.”
박상우는 봉합을 마치며 마무리를 지시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수술 과정이었다. 절제된 혈관의 양쪽을 봉합했기에 수술도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다.
박상우는 고개를 돌려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20분 정도 남아 있던 시간은 이제 겨우 5분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성공이야!”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다들 긴장해. 아직 수술 안 끝났어. 심장이 돌아와야 끝나는 거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수련의들의 얼굴이 밝아지자 박상우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박상우의 날카로운 눈매는 레지던트 4년 차 풋내기 써전이 가질 만한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체외 순환기를 꺼야지?”
신정국이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응시했다.
“네.”
박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외 순환기 오프! CBP 위닝(Weaning: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과정) 들어갑니다.”
“체외 순환기 작동을 멈춥니다.”
박상우의 오더에 맞춰 체외 순환기가 멈췄다.
박상우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의 시선이 신창균의 심장에 고정되었고,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잠시 후, 신창균의 심장이 천천히 움직였다.
“우, 움직인다.”
“성공이야!”
모든 의료진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신창균의 새로운 심장이 펄떡거리며 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적을 다 보게 되는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전 지난번 현무도에서도 목격했잖아요. 솔직히 이젠 놀랄 일도 아니에요.”
정지수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극적인 수술 성공을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후우…….”
박상우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다, 상우야. 마무리는 내가 할게.”
신정국이 미소 띤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저는 조현오 교수님에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열어 놓은 가슴 닫는 일인데, 뭐.”
최선을 다한 신정국의 이마에도 피가 섞인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선배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신창균 환자는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니, ICU(중환자실)로 옮긴 후에도 철저하게 통제해 주세요. 외부 사람은 절대로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할게. 걱정 말고 교수님한테나 가 봐. 나도 걱정이다.”
“부탁합니다.”
박상우는 수술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 지금부터 가슴 닫습니다. 황 선생, 플레이트!”
“네!”
플레이트(벌어진 가슴을 고정하는 기구)를 이용해 벌어진 가슴뼈를 고정한 신정국은, 뼈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지혈하기 위해 본 왁스를 골고루 발랐다.
“이제 봉합합니다.”
신정국은 바늘과 수술용 실을 들고 봉합을 시작했다.
기적처럼 성공한 수술이었다.
* * *
“박 선생! 수, 수술은 어떻게 됐어?”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온 박상우의 앞으로 조영철 원장이 다급히 다가왔다.
“일단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다만, 심장을 막 이식한 상태라서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박상우는 얼굴에 묻은 피를 수건으로 닦아 내며 말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나저나, 자네가 공업용 본드로 찢어진 혈관을 붙였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조영철 원장이 박상우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그 방법 말고는 없었습니다. 일단 지혈부터 한 후에, 찢어진 혈관을 제거하고 인조 혈관으로 치환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업용 접착제를 사용하면 어떡하나?”
담담한 박상우의 말에 조영철 원장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의료용 본드를 이용하기엔 시간이 없었…….”
“됐네. 그러니까, 환자는 분명 무사한 거지?”
지금 상황에 의료용 본드의 사용 여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속이 타는지, 조영철 원장은 반복해서 신창균의 안위를 물었다.
“말씀드렸듯이,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장담할 순 없습니다.”
박상우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건 나도 알아. 아무튼, 수술 중에 공업용 본드를 사용했다는 건 비밀이야. 절대로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 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우리 병원은 개망신당하는 거야.”
조영철 원장이 언급한 ‘저 사람들’이란, 삼원병원 의료진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수술 기록에 전부 남게 되는데, 그걸 어떻게 비밀로…….”
“박 선생! 윤석이, 아니 방윤석 부회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순간, 방준석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그의 등장에 조영철 원장은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공업용 본드를 사용한 것을 말하지 말라는 뜻일 터였다. 박상우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아직 안심하실 순 없습니다. 이제 ICU(Intensive Care Unit: 중환자실)로 이동해서 경과를 지켜볼 예정입니다.”
“그래. 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구먼.”
방준석 회장의 표정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수술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조현오 교수는 또 어떻게 된 거야?”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수술은 조 교수님이 잘 진행하셨고, 잠시 현기증이 나신다고 하시길래 밖으로 모셨습니다. 마무리는 저와 신정국 선생님이 했고요.”
“그……그래. 그런 일이 있었군.”
방준석 회장은 씁쓸함을 넘어,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전 그럼 이만…….”
“자, 잠깐만! 방 부회장은 정말 괜찮은 거지?”
방준석 회장은 돌아서려는 박상우의 팔목을 붙잡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 그럼 이만, 일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방준석 회장이 잡은 손을 가볍게 풀며 답한 박상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 우리가 방윤석 부회장님 상태를 좀 확인해 봐도 되겠나? 우리 쪽 의료진이, 아무래도 우리가 부회장님을 한번 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 순간, 돌아서려는 박상우를 장길수 원장이 멈춰 세웠다.
방윤석 부회장의 상태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는 삼원병원이 아니라 명성병원입니다. 방윤석 부회장님은 우리 병원의 환자이지, 삼원병원의 환자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2주 동안은 우리 의료진 외에 그 어떤 외부 사람도 면회할 수 없습니다.”
박상우는 단호한 어조로 장길수 원장의 제안을 묵살했다. 레지던트 4년 차 써전이라고 하기엔 당돌할 만큼 대담했다.
“그래도, 우리 측에서 확인을 한번…….”
“외람되지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저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입니다. 앞으로는 존칭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듣기 거북하군요.”
단호한 어조로 대꾸한 박상우는 냉정하게 몸을 돌려 멀어졌다.
“허, 이 사람이…….”
당황한 표정의 장길수 삼원병원 원장은 목부터 천천히 붉어졌다.
“장 원장님. 원래 써전들이 수술 후에 좀 민감해지는 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상세히 설명해 드릴 테니, 일단 제 방으로들 가시죠.”
일개 레지던트의 한 방.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원병원을 상대로 날린 것이었기에, 조영철 원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장길수 원장의 등을 떠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