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11)
신의 메스-111화(111/249)
111화 왕자와 거지 (17)
일주일 후, 방윤석 부회장은 아내 한숙영의 성화에 못 이겨 퇴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무슨 병원비가 뭐 이렇게 많이 나와? 어이가 없네. 밥은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이 식대는 또 뭐고?”
병원 정산서를 살펴보던 한숙영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정산서를 둘둘 말아 가방 속에 욱여넣었다.
“남편이 아픈데 그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게다가, 지금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퇴원하는 거 아닙니까?”
방윤석 부회장은 침대에서 일어나 경멸의 눈초리로 한숙영을 응시했다.
“생전 안 하던 존대는 왜 갑자기 해요? 병원에 오래 있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짐 싸는 거나 좀 도와요! 이 책들은 다 뭐예요! 병원에 들어오더니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예요?”
한숙영은 손가락을 올려, 관자놀이 주변에서 빙빙 돌렸다.
“병원에 고작 한 달 있었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한숙영은 짐을 싸며 투덜거렸다.
그녀는 선반 위에 있던 책들을 내던지듯 가방 속에 던져 버렸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밥을 잘못 자셨나, 혹시 머리라도 다친 거 아니에요? 닭살 올라오니까 말 좀 그렇게 하지 마세요. 평소에나 좀 이렇게 하지…….”
한숙영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서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한숙영 씨 되십니까?”
그 순간, 병실 문을 열며 형사들이 들어왔고, 그중 한 명이 한숙영에게 다가왔다.
“제가 한숙영인데 무, 무슨 일이시죠?”
눈을 동그랗게 뜬 한숙영은 뜻밖의 상황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서까지 같이 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서요? 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잡아간다는 거예요!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당신은 왜 가만히 있어요!”
한숙영은 방윤석 부회장을 쳐다보며 무슨 말이라도 해 달라는 눈치였다.
“한숙영 씨, 순순히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형사는 체포 영장을 펼쳐 들며 말했다.
“내가 왜 경찰서를 가야 한다는 건데요? 왜 생사람을 잡아요!”
“그러면 말씀드리죠. 당신을 보험 사기 및 살인 공모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형사는 순순히 미란다 고지를 했다.
“뭐라고요? 보, 보험 사기? 살인 공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누가 누구를 죽이려고 했다는 건데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안상수 씨가 모든 것을 자백했습니다. 일단 서에 가셔서 말씀하시죠.”
“사, 상수 씨가요?”
한숙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방윤석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술과 턱 주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방윤석 부회장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네. 안상수 씨가 한숙영과 공모해 보험 사기를 공모했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자세한 건 서에 가서 얘기하시죠. 당장 체포해!”
“네!”
형사 한 명이 한숙영의 팔에 철컹, 수갑을 채웠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봐요! 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가 왜 이런 걸 차야 하는 거야!”
수갑을 찬 손을 들어 올리고, 한숙영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경찰들의 손을 뿌리치며 방윤석 부회장에게 소리쳤다.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그녀였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뭐, 뭐야? 다, 당신 왜 그러는 거야? 약을 잘못 먹은 거야?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데!! 서, 설마 당신이 신고한 거예요?”
다리를 바닥에 못 박은 채 버티던 한숙영은 게거품을 물며 신창균을 노려봤다.
“…….”
방윤석 부회장은 아무 말 없이 한숙영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탐욕스러운 한숙영의 잔영이 머물러 있는 듯했다. 이내 그 모습을 지우려는 듯, 방윤석 부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해! 빨리 연행해!”
연행하지 않고 꾸물거리자, 형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형사들이 한숙영의 양팔을 결박하여 끌고 갔다.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아니라고! 내가 무슨 살인을 공모해!”
끝까지 발악하던 한숙영은 경찰들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인과응보인가…….’
그 모습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방윤석 부회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실을 나온 순간, 방윤석 부회장은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박상우와 마주쳤다. 방윤석 부회장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박상우 역시 고개를 숙여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다행이야. 잔존 수명이 사라졌어. 미래가 바뀌게 되는 건가?’
방윤석 부회장의 이마에 써진 붉은 숫자가 사라진 순간이었다.
“자, 잠깐만……. 저 환자, 신창균 환자 맞지?”
부리나케 뛰어온 천기수는 박상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
“지금 경찰은 왜 온 건데?”
천기수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르긴 인마,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터진 혈관을 공업용 본드로 붙였던 넌데…… 무식한 거냐, 무모한 거냐?”
“둘 다 같은 말 아냐? 아무튼, 나도 모르겠다. 죄를 지었으니까 경찰이 왔겠지. 난 조현오 교수님 병실에 좀 가 볼게.”
수술 중 저혈당 쇼크로 인해 실신한 조현오 교수는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 볼수록 신기한 게, 신창균 씨랑 방윤석 부회장님이랑 정말 닮았다. 난 처음 신창균 씨를 보고 엄청 놀랐잖아. 그런데 역시, 다시 봐도 저 사람이 방윤석 부회장님 같아. 어쩌면 이렇게 붕어빵이냐?”
멀어져 가는 방윤석 부회장을 가리킨 천기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너,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 알아?”
“지금 상황에 그게 왜 나와? 당연히 알지. 그건 왜?”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싱거운 새끼,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신창균 씨와 방윤석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하여간, 너는 소설을 너무 써서 탈이야. 하긴, 네 인생 자체가 소설이긴 하지만 말이야.”
“두 사람에게 무슨 인연이 있겠어, 그치?”
“당연하지. 그나저나, 조 교수님은 괜찮은 거야?”
“일단은 어느 정도 회복은 하셨는데,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하실 것 같아.”
“하여간 그 노친네도, 수술실에서 쓰러지긴 왜 쓰러지셔.”
“너 윤상부 교수님이 찾던데,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은 있냐?”
계속 입을 여는 천기수를 떼어 놓는 데 천적인 윤상부 교수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유, 윤상부 교수님이? 왜 나를 찾아?”
‘윤상부’란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듯 천기수는 몸을 떨었다.
“그걸 내가 알겠냐? 윤 교수님은 시간 늦는 거 무지하게 싫어하시니까 얼른 가 봐.”
“아, 알겠어.”
천기수는 황급히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며 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제거하는 데는 윤상부 교수가 특효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상우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결국 한숙영과 안상수의 음모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 * *
“자네 왔나?”
박상우가 병실로 들어오자, 조현오 교수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 교수님.”
“방윤석 부회장, 아니 신창균 씨는 좀 어떤가?”
조현오 교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듯이, 수술 후 상황을 물었다.
“지금 회복 중입니다. 아직 이식에 의한 부작용 증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이군. 자네가 이번에 큰일을 했어.”
“큰일이라뇨. 교수님께서 다 하신 수술을 제가 받아서 마무리만 했을 뿐입니다.”
박상우는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네 덕분에 신창균 씨가 살 수 있었어. 자칫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불가항력인 일이었습니다.”
“큰 수술을 앞둔 써전이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분명히 불찰이야.”
참담한 표정의 조현오 교수는 눈을 꾹꾹 눌렀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어쨌든, 결과는 최상의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자네가 네 곁에 있어 든든하구먼. 끝까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 주게나.”
조현오 교수가 손을 뻗어 박상우의 손등을 두드려 주었다.
“걱정 마십시오. 신창균 씨 병실은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되어 통제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2주 후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두 분 다 자신의 자리로 다시 찾아가시겠죠.”
“정말 고맙네. 나나 방윤석 부회장이나, 자네 덕분에 한시름 덜었어.”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빚을 지셨으면, 갚으시면 되죠.”
“내가 어떻게 하면 그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건가?”
“건강하게 일어나셔서 교수님의 그 해박한 지식을 저에게 전수해 주시면 됩니다. 그만한 보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박상우는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신창균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큰 수술을 했음에도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숨 가빴던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었다.
“신 선생,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옥석을 가릴 수 있었어요. 내가 지금까지 헛살았나 봅니다. 사람 하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다니…….”
방윤석 부회장은 신창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부회장님 덕분에 이렇게 건강을 되찾았으니 말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거울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어색하군요.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방윤석 부회장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위독설은 물론이고, 자신의 사망설까지 떠돌던 상황. 그룹 내 후계자 싸움도 치열했기에, 수많은 사람의 이합집산이 있었다. 그중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임했던 윤호상 상무의 배신은 방윤석 부회장에겐 뼈아팠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몇 년 후 일어날 의문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물론, 박상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이번 ‘왕자와 거지’ 프로젝트를 통해 방윤석 부회장은 피아식별이 가능해졌고, 그룹 내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원상태로 복구된 상황. 신창균과 방윤석 부회장도 각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 * *
2주 후, VVIP 병실에는 방윤석 부회장만 홀로 남아 근심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배신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었다. 냉철한 방윤석 부회장이 윤호상 상무를 단죄하는 일만 남은 상황이었다.
“회장님, 저 왔습니다.”
침통한 표정의 윤호상 상무가 방윤석 부회장의 병실을 찾았다.
“그래, 앉지.”
“네, 회장님.”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방윤석 회장의 눈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윤 상무, 이게 최선이었나?”
한동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방윤석 부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