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15)
신의 메스-115화(115/249)
115화 새로운 세계 (1)
“상우야!”
면접이 있고 며칠 후, 천기수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정신없이 의국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박상우의 앞까지 도착한 그는 양 무릎에 손을 얹고 헐떡거렸다.
“무슨 일이야?”
“인마, 너 붙었어. 이번에 존스 홉킨스 파견 의료진에 포함되었다고!”
“와! 축하합니다. 선생님!”
“역시 선생님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천기수의 말과 함께,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알겠으니까 진정해. 그러다 숨넘어가겠다.”
“뭐지, 이 뜨뜻미지근한 재수 없는 반응은?”
천기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러면 일어나 춤이라도 추랴?”
그러나 박상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하여간, 넌 그래서 졸~라 재수가 없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거냐?”
“조 교수님이 귀띔해 주셔서 알고 있었어.”
“아, 김새네. 난 지금 무슨 삽질을 한 거냐. 나 혼자 미친놈처럼 뛰어다닌 거 아냐?”
천기수는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비하할 필요는 없고. 아무튼, 네가 준 족보 덕분에 됐으니까 내가 한턱낼게.”
“당연하지! 한턱으로 되냐? 한 열 턱은 내야지, 암!”
천기수는 팔짱을 낀 채, 짐짓 어른이라도 된 듯 내밀었다.
박상우는 다른 레지던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수야, 너희들도 같이 가자. 오늘 내가 쏠게.”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맨날 속고만 살았냐?”
“와, 만세!”
“아아! 여기서 저스트 어 모먼트!”
그 순간, 천기수는 양손을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레지던트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시추에이션이냐? 어딜 감히, 하찮은 레지들이 나서지?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이거.”
“…….”
기분 좋았던 순간도 잠시, 레지던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야, 망치 좀 가져와라. 저기 튀어나온 주둥이 좀 박아 버리게. 어디 레지 따위가 펠로우와 겸상을 하려고 들지? 자세 원위치!”
“네?”
천기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눈 감고 1년, 입 닫고 1년, 귀 막고 1년 보낸 다음 다시 자동 반복이라고! 모두 20분 전으로 회귀하도록!”
“네…….”
그제야 천기수의 말을 이해한 레지던트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이고. 그만해라, 기수야!”
“아니지! 내가 흉부외과 펠로우로 있는 동안엔, 이런 꼴은 관뚜껑 닫을 때까지는 못 보지. 아무튼, 너희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ER(Emergency Room: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 하냐? 전화 안 받아?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천기수는 짝다리를 짚고 서서 턱짓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서, 선생님, 텐션 뉴모토레(Tension Pneumothorax: 긴장성 기흉) 환자인데 위급하다고 합니다! 빨리 ER로 내려오시라는데요?”
전화를 받은 레지던트 3년 차 박종수는 한 손으로 수화기를 가린 채 박상우를 쳐다봤다.
“응급실 사람들은 기흉 환자 하나 처리 못 하나? 어휴, 답답이들!”
천기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내려가 보자. 종수야, 지금 바로 내려가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기수야, 내려가자.”
“어쩐지 네가 쏜다고 하더라. 우리 주제에 회식은 무슨 회식이냐?”
천기수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으며, 박상우와 함께 서둘러 ER로 향했다.
* * *
“어떻게 된 거야?”
황급히 응급실로 뛰어 내려간 박상우와 천기수는 당직을 서고 있던 레지던트 3년 차 조민중에게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48세 남자 환자인데, 호흡 곤란과 흉통을 계속 호소하는 것으로 보면 텐션 뉴모토레(긴장성 기흉) 같습니다. 게다가 보호자에 의하면 평소에도 기흉을 앓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환자 어디 있어. 일단 내가 봐야겠다.”
“저쪽으로 가시죠.”
조민중은 황급히 응급실 좌측 구석으로 이동하곤 한 곳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곳엔 의식을 잃은 남자 환자가 핏기없는 얼굴로 누워 있었다.
“상우야, 조 선생 말대로 텐션 뉴모토레 같은데? 이 손가락 좀 봐.”
천기수의 말을 들으며, 박상우는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환자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긴장성 기흉의 전형적인 증상인 청색증이 보이고 있었다.
“…….”
박상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환자의 얼굴을 살폈다.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레지던트 조민중이 천기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조민중의 질문이 답답하다는 듯, 천기수는 소리 높여 말했다.
“뭘 어떻게 해? 천자 박아서 흉막강에 가득 찬 바람부터 빼야지! 가서 바늘 가지고 와! 18G 이상, 굵직한 거로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긴장성 기흉이란 폐가 깡통처럼 찌그러지는 질병이었다. 호흡 시 흉막강 안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배출되지 못해 흉막강 내에 양압이 형성되고, 자칫 바로 안쪽에 있는 심장에 압력을 가한다면 심정지가 올 수도 있는 질병이기도 했다.
천기수가 제안한 응급조치는 쇄골 중간부에서 2-3 늑골직상부를 따라 내려오며 천자하고, 흉막강 내에 가득 찬 공기를 빼냄으로써 흉막 내 압력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지금 시기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 갈비뼈 사이에 천자를 꽂고 ‘새액’ 하는 소리가 나면서 공기가 빠져나가면, 수축된 폐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 선생, 잠깐만!”
하지만 박상우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손을 들어 올려 조민중을 멈춰 세웠다.
“네?”
“왜? 빨리 바람 빼내야지! 이러다 심장 눌리면 심정지 온다고!”
“이 환자, 긴장성 기흉 아니야.”
박상우는 천기수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럼 뭔데? 내가 보기엔 긴장성 기흉이 맞는데?”
천기수는 새파래진 환자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디악 탐폰(Cardiac Tamponade: 심낭 압전)이야. 청색증은 카디악 탐폰에도 나타나는 증세야.”
“뭐라고? 심낭 압전?”
“기다려봐. 조 선생, 환자 혈압은 얼마나 되지?”
”수축기 혈압 60mmHg입니다.“
조민중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말했다.
“지금 수축기 혈압이 60이야. 저혈압에 극심한 디심니어(Dyspnea: 호흡 곤란), 게다가 패러독식 펄스(Paradoxic Pulse: 기이맥)가 잡혀. 이건, 긴장성 기흉은 확실히 아니야.”
박상우가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면 그렇긴 한데…….”
천기수는 여전히 의심의 꼬리를 잘라내지 못했다.
“저기 CVP(정맥압) 상승하는 것 좀 봐.”
박상우가 환자의 팔목에 손을 얹으며 턱짓으로 EKG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 그러네? 어디 봐.”
천기수는 박상우의 몸을 밀치며, 자신도 환자의 손목에 팔을 올려 보았다.
잠시 후, 천기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올려놓고 심장 소리를 확인했다. 제법 전문가 같아 보였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심음도 불규칙해. 게다가 맥박도 날뛰네. 타키카디아(Tachycardia: 빈맥) 펄스가 분당 120은 되겠어! 어떡하지?”
천기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뭘 어떡해?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어.”
“아마도, 심낭 천자(Pericardiocentesis)……?”
“당연하지.”
박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 선생, 심낭 천자 가지고 와.”
천기수는 망설임 없이 조재중에게 오더를 내렸다.
“네, 선생님.”
잠시 후, 조민중은 빨대 굵기의 바늘이 달린 주사기를 트레이 위에 올려왔다.
“네가 할까? 내가 할까?”
주사기를 집어 든 천기수가 물었다.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 내가 할게.”
“흠, 알겠어. 조 선생, 초음파 기계 가지고 와. 빨리!”
박상우의 대답에, 천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민중을 향해 소리쳤다.
“조 선생, 초음파 됐어! 초음파 보면서 느긋하게 찌를 시간이 없어. 프레커션(Percussion: 타진법)으로 할게.”
“헐, 또 시작이네. 급한 건 알겠는데, 넌 항상 드라마를 너무 봐서 탈이야! 그러다가 애먼 데 찌르면 어쩌려고? 위험해.”
“내가 언제 실수하는 거 봤어? 빨리 주사기나 내놔.”
“후……. 알겠다, 새꺄! 하여간 지만 잘났지.”
천기수는 박상우의 실력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금세 포기하곤, 투덜거리며 주사기를 넘겨주었다.
퉁퉁.
왼손 중지를 가슴에 댄 박상우는 오른손 중지를 이용해 가슴 주변을 가볍게 두드렸다.
손으로 가슴을 가볍게 두드려 보며 그때 손가락 마디에 전달되는 느낌과 소리를 이용해 내부 장기의 상태를 유추하는 방법으로, 교수급 이상의 베테랑 써전만이 가능한 노하우였다.
박상우는 이제 겨우 펠로우 1년 차였지만 이미 베테랑 교수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천기수 역시 이를 잘 알기에 더는 만류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야. 침상 머리 좀 위쪽으로 60도 정도 올려!”
박상우는 천자를 박을 위치를 찾아낸 뒤 조민중에게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조민중은 레버를 돌려 침상 머리를 높였다.
“기수야, 포비딘 좀 발라 주고 국소마취부터 해 줘.”
박상우가 장갑을 끼며 천기수에게 오더를 내렸다.
“알았어.”
알코올 솜을 들고 환자의 가슴을 문지른 천기수는 곧장 마취 주사를 놓았다.
“시작한다.”
박상우는 50cc 주사기가 달린 쓰리웨이 스탑콕(3-way Stopcock)에 천자용 바늘을 연결하고, 가슴 부위에 30도 각도로 푹 꽂아 넣었다.
쭈우욱!
박상우가 꽂아 넣은 주사기를 당기자, 심낭에 고여 있던 심낭액이 주사기를 타고 빨려 올라왔다.
헤파린 처리가 된 셀 디프(Cell Diff: 백혈구 및 백혈구 감별 검사) 용기에 심낭액을 담고 번호와 라벨을 붙였다.
“이거 검사실에 내려보내.”
“알겠습니다. 선생님, 도부타민(승압제)도 걸까요?”
조민중은 스텐트에 도부타민 거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쪼그라든 심장 아예 작살 낼 일 있어? 환자 죽일 거야? 수액이나 하나 걸어 주고 ICU로 옮겨!”
조민중을 향해 박상우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야, 인마! 심낭 압전 환자한테 승압제 주입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앞으로도 명심해!”
천기수가 미간을 좁히며 조민중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조민중이 벌게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검사 확실히 해 봐야 해. 원인이 뭔지 알아야 할 것 아냐?”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심낭 압전이기에, 뽑아낸 액체를 정밀 분석해야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민중은 그저 멍하니 박상우의 조치를 지켜보며 그의 오더에 따를 뿐이었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였다.
“픽시멀로 컴프레션 드레싱 해 주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 나도 바로 올라갈 테니까.”
뚜뚜뚜뚜!
박상우의 시선이 EKG 모니터로 향했다. 혈압이 조금씩 상승하며 맥박은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삐죽삐죽 상어 이빨 같았던 그래프가 부드러운 물결을 그리는, 박상우의 신속한 조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조민중이 곧바로 드레싱을 실시했다.
“이제 끝났네. 상우야, 오늘 회식은 물 건너간 거지?”
천기수는 내심 섭섭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당연하지. 오늘 저 환자 보느라 밤샐 것 같은데?”
“하긴. 우리가 무슨 상팔자라고 술을 처먹냐? 알았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박상우는 천기수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 아닌 위로를 주었다.
심낭 압전은 즉각적인 심낭 천자술을 하지 않았을 경우 거의 90% 이상 사망했다.
그마저도 적절한 조치로 한 명의 응급환자를 살려낸 박상우였다.
이렇게 박상우는 자신의 능력을 하나하나 증명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 3개월 후, 이제 박상우가 존스 홉킨스에 파견될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