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20)
신의 메스-120화(120/249)
120화 헬프 미, 살려 주세요 (2)
“지금 저 환자를 보세요. 대동맥 박리 정도의 상황이 아닙니다. 자칫 지체하면 대동맥 파열이 올 수 있어요.”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환자의 복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악!”
불룩 솟아오른 복부가 펄떡거리며 뛰는 것은 대충 봐도 알아볼 수 있었다. 복부 대동맥이 부풀어 올라 발생하는 대동맥류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만약 부풀어 오른 동맥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즉사할지도 모를 위급한 상황이었다.
“애브도미널 애뉴리즘(Abdominal Aneurysm: 복부 대동맥류)입니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스티브 역시 곧장 상황을 인지했다.
“네. 내막은 이미 찢어진 상태고, 만약 외막까지 터지면 이 환자 테이블 데스가 될 겁니다. 게다가, 지금 일부는 찢어져서 피가 새고 있어요. 이 CT를 보십시오.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박상우가 모니터를 돌려 스티브에게 설명했다.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세 겹으로 되어 있는 대동맥 막 중 2개가 찢어진 상태였고, 마지막 남은 외막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대동맥이 5~6센티만 늘어나도 심각한 상황인데, 이미 7센티를 넘어 7.8센티까지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당장 대동맥이 파열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수치였다. 일촉즉발, 자칫 파열된다면 환자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순간, 흉부외과 레지던트인 마이클이 콜을 받고 황급히 뛰어 내려왔다.
그는 흉부외과의 유일한 흑인이자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였다. 박상우와는 몇 마디 나눠 보지 않았지만, 의사로서 투철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화면을 보시면, 지금 복부 대동맥이 3.1인치까지 부풀어 올랐습니다. 지금 당장 응급 수술을 해야 해요.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환자 죽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장 응급 수술을 하죠.”
CT를 유심히 살펴보던 마이클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장 박상우의 의견에 동의했다.
“네? 괜찮겠습니까?”
한국에서와는 달리 너무도 담담히 말을 내뱉는 마이클의 모습에, 박상우도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환자가 죽어 가는데……. 이 정도면 30분 안에 환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일단 교수님께 노티부터 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그토록 비난을 받았던 박상우의 선택이지만, 존스 홉킨스는 조금 달랐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병원 내의 위계질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으리라.
“일단 수술실로 옮기죠.”
분명, 한국과는 다른 마인드였다.
“교수님께 노티하고, 저도 바로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환자 먼저 옮깁시다. 빨리요.”
“알겠습니다.”
박상우와 간호사, 그리고 스티브는 스트레처 카에 환자를 실어 응급수술실로 이동했다.
* * *
“빨리 지혈부터 해 주셔야겠습니다. 가슴을 눌러 주십시오!”
환자의 배를 연 순간, 박상우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예상은 했지만 파열 직전의 대동맥과 이미 찢어진 내막, 얇은 외막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고, 일부 외막은 이미 조금씩 피가 새고 있었다.
마치 해수 방파제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라이언!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대동맥 절제하고 인조 혈관으로 교체하기엔 너무 위급한 상황인데…….”
인조 혈관 교체술을 말하는 듯했다. 물론, 마이클의 말대로 인조 혈관 교체술이 표준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급박한 상황에선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어느새 대동맥을 틀어막고 있던 거즈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대퇴부를 째고 스탠트 그라프트로 시술하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길 겁니다.”
“스탠리 교수가 곧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으니까, 그 방법이 좋겠군요. 그러면, 영상의학과 선생을 부를까요?”
대퇴부 동맥에 스탠트를 삽입해 터질 위험이 있는 부위를 감싸는 시술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영상의학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위치에 스탠트를 심어야 했다. 따라서 마이클의 영상의학과 콜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뇨, 영상 보면서 할 시간도 없습니다. 바로 제가 시술토록 하겠습니다. 스텐트 주시죠!”
“그게 가능합니까?”
마이클이 의문을 가지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괜찮습니다. 할 수 있으니까, 절 믿으시고 스탠트 주세요.”
“좋습니다. 한국의 의술을 한번 믿어 보죠.”
자칫 시간이 놓치면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마이클도 박상우의 의연한 태도를 믿고 말을 따랐다.
푸슉푸슉.
박상우는 천자한 대퇴부 동맥 안으로 능숙하게 인조 도관(Main body)을 삽입했다. 한쪽 도관을 삽입한 박상우는 차분하게 반대쪽 대퇴부 동맥도 천자한 후에 도관을 삽입하여 집어넣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다.
“믿기지 않는군! 한국의 의술이 이 정도일 줄이야! 어떻게 레지던트가 이렇게 능숙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이클이 혀를 내두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 한국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박상우가 마이클을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박상우는 CT 영상도 없이 도관을 따라 스텐트 그라프트를 연결했다. 부풀어 오른 대동맥 자리에 삽입된 스텐트 그라프트 덕분에 새어 나오던 피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됐습니다. 일단, 혈액 누출은 막았어요!”
박상우는 찢어진 대동맥 혈관에 벌룬을 사용해 붙인 뒤 혈액이 새는 것을 막아 냈다. 이 모든 것이 10분 안에 이뤄질 정도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세상에!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원래 한국에선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합니까?”
박상우가 완벽하게 혈액 누수를 막자, 마치 서커스를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이클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우선 급한 불은 껐지만, 임시로 스탠트를 덧댄 것이라서 스탠리 교수님이 다시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이이잉!
그 순간, 흉부외과 전문의 스탠리 교수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라이언이 환자를 살렸습니다. 애브도미널 애뉴리즘 환자인데, 부풀어 오른 길이가 3.1인치, 게다가 대동맥 일부분에서 혈액 누수가 이미 발생한 상태라…….”
마이클은 지금 환자가 스탠트 그래프트 삽입술로 목숨을 건진 긴박한 상황을 천천히,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스탠리 교수를 향해 설명했다.
“환자가 아직 살아 있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 마이클 선생이 한 말이 맞습니까?”
스탠리 교수는 근엄한 표정으로 박상우에게 다가갔다.
“환자가 워낙 위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병원 내규를 위반한 것이라면 처벌을 받겠습니다.”
한국에선 언제나 그래 왔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일단, 어디 봅시다. 환자 영상부터 한번 띄워 보세요.”
“네, 교수님.”
스탠리 교수는 팔짱을 낀 채 유심히 모니터를 살펴보며 잠시 미간을 찡그렸지만,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수술을 영상도 안 보고 감으로 했다고요?”
“급한 상황이라…….”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지금까지 경험했던 제 손을 믿었습니다.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치료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고 어떤 분이 말씀해 주셨거든요.”
박상우는 자신감에 찬 의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가슴으로 치료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라……. 한국 의사들은 다 그런가요?”
스탠리 교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써전들은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말이라고 해서 병동을 비우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응급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 옆으로 집을 구하신 분도 있으니까요.”
“아주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스탠리 교수의 얼굴은 민망하다는 듯,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 아닙니다. 무례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요. 맞는 말입니다. 그만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들이 한국에 많다는 뜻이겠죠. 제가 너무 늦게 도착했군요. 어쩌면 제가 당신보다 늦게 도착한 덕분에, 이 환자에겐 이로울 수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스탠리 교수는 자신이 늦게 온 실수를 천천히 인정했다. 대한민국 의료 환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통치기 바빴던 명성대학교 병원의 교수들과는 여러모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스탠리 교수는 완벽했던 응급 조치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라이언의 말처럼, 제가 늦은 건 사실이니 벌을 받아야겠죠?”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박상우는 뜻밖의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닙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어요. 라이언의 말이 내 가슴을 울리는군요. 마이클! 이제 우리가 마무리를 해야지? 한국의 써전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조치를 해 놨으니, 우리도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교수님!”
“아닙니다.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박상우는 거듭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수술하느라 고생했는데, 나가서 쉬세요. 아직 여기 병원도 적응이 덜 되었을 텐데, 무리할 것 없습니다.”
스탠리의 말을 진심이었다. 비록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파견된 보잘것없는 레지던트였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박상우의 출중한 실력을 목격한 이상,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탠리 교수는 박상우의 능력을 인정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헤이, 라이언! 정말 대단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마이클이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박상우가 존스 홉킨스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박상우는 수술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에 아직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기도 했다.
* * *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수련의가 응급 환자를 살렸다는 소문은 존스 홉킨스에서도 이례적인 일이었고, 곧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었다면 의료 준칙을 위반한 대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일이었지만, 이곳에선 박상우를 칭찬하며 그의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에 끝없는 찬사를 보냈다.
“라이언 박이 수잔 씨를 살렸다는군요.”
“복부 대동맥류 환자였는데, 대동맥이 파열되기 직전에 수습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레지던트 수준이 이 정도면, 한국의 의술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죠?”
“그건 알 수 없지만, 라이언 박은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대단하군요. 축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맞아요. 지난 월드컵에 4강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사실, IT 반도체 기술은 이미 세계 정상권이에요.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무섭습니다. 한국 이민자들을 보십시오. 앞으로 한국은 주목해야 할 나라인 듯합니다.”
의료진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국을 칭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존스 홉킨스에서 박상우의 위상은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 * *
며칠 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긴 티모시의 병실에 박상우가 다시 한번 찾아왔다.
“굿 모닝, 티모시! 컨디션은 좀 어떻습니까?”
여전히 환한 표정으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박상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