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23)
신의 메스-123화(123/249)
123화 어린 왕자, 크리스 (3)
스탠리 교수는 단상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은 뒤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5세 남자아이 크리스 군으로, 엑토피아 코르디스(Ectopia Cordis: 심장 전위증)라는 희소병을 앓는 케이스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100만 명 중 8명꼴로 발생하는 희소병입니다. 이 병과 함께 태어난 아이 중 90%는 사산되지만, 10%도 출생 3일 이내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면 준비되었습니까?”
“네, 교수님.”
스탠리 교수는 실제 심장 전위증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의 사망 사례를 화면으로 보여 주며 본격적인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애리조나주에서도 심장 전위증의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수술도 잘 끝난 것으로 아는데요?”
심장내과 전문의인 니콜라스가 손을 들었다.
“맞습니다. 애리조나에선 다행히 수술을 통해 회복되었지만, 최근 호주에서 태어난 영아는 수술 도중에 사망했죠. 통계적으로 볼 때 수술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장 전위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연령대가 대부분 출산 직후였는데 반해, 놀랍게도 크리스 군은 5살까지 나름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어느 정도 장기들이 자리를 잡은 시점이라, 수술을 진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
5살이라면 어느 정도 심장이 자리 잡으며 몸 또한 그에 맞춰 성장하기 때문에, 영·유아기 때 수술하는 것과 비교하면 리스크가 높았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반문은 없었다.
“향후 크리스 군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수술은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코자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 따위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 스탠리 교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브리핑을 이어 갔다.
“어떤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하려 하시는 겁니까?”
“지금부터 수술 절차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존스 군, 화면을 좀 띄워 주십시오.”
“네, 교수님!”
레지던트 존스는 스크린에 각종 차트와 도표로 가득한 PPT 화면을 띄웠다.
“수술 절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공 가슴으로 뼈를 생성하고, 그로 인해 생긴 구멍은 대퇴부의 살로 메운 후에 심장을 적출, 정상적인 자리로 복귀시킬 생각입니다. 수술진 구성은…….”
스탠리 교수는 흉부외과 전문의 7명을 포함한 감염내과와 마취 통증 의학과, 정형외과 전문의 등 50여 명의 수술진이 참가하게 되는 대규모 수술임을 강조했다.
존스 홉킨스 병원 개원 이래 몇 안 되는 초대형 수술이었다.
“교수님, 이번 수술은 재고해 주십시오.”
브리핑이 끝나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한 박상우가 진지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박상우에게 고정되는 순간이었다.
“라이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지금은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당황한 마이클이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뭘 재고해요?”
흉부외과 스텝이자 백인 의사인 리암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존스 홉킨스 병원. 그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흉부외과 스탠리 교수의 브리핑에 동양의 풋내기 써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었으니,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 지극히 당연했다.
“제정신이야?”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리암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두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번 수술은 미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이번 수술은 미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박상우는 당당함을 유지한 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십시오! 당신네 나라에선 항상 이런 식입니까?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떠들고 다니더니만, 이렇게 무례해도 되는 거예요? 교수님,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하십시오.”
리암은 박상우의 의견을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타박했다.
“리암 교수, 이곳은 크리스 군의 건강한 몸을 되찾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누구든, 어떤 의견이든 제시할 수 있으며, 그 근거가 있다면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언,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습니까?”
그동안 잠잠히 있던 엔드류 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리암의 의견을 찍어눌렀다.
“아닙니다, 교수님! 동양인들은 항상 말도 안 되는 의견만 늘어놓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권위를 향한 도전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라이언은 일개 레지던트에 불과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또 한 명의 의사, 흉부외과 전문의 에이든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이든 교수님, 정말 유감이군요. 저도 동양인인데, 제가 항상 말도 안 되는 짓만 했습니까?”
엔드류 박이 에이든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 그게 아니라…….”
에이든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이었기에 감히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라뇨? 그 우리라는 범주에 라이언은 들어가 있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라이언은 분명 우리 병원의 정식 레지던트입니다. 듣기에 몹시 거북하군요. 최소한, 왜 이런 의견을 말하게 된 건지 들어는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무턱대고 동양인이라고 매도하는 건, 너무 후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엔드류 박은 에이든을 더욱 몰아붙였다.
“그게 아니라, 라이언은 아직 경험이 너무 부족하고…….”
“엔드류 교수의 말씀이 맞습니다. 라이언, 왜 이번 수술을 연기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앞으로 나와서 설명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에이든이 당황해 말을 얼버무리자, 스탠리 교수가 중간에서 말을 잘라 버렸다.
‘제기랄!’
스탠리 교수가 말을 끊자, 에이든은 이빨을 드러내며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설명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우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단상 앞에 나오자, 스탠리 교수는 선뜻 그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리고, 박상우의 발언은 뜻밖의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리스의 엄마인 다나 씨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습니다.”
“파브리병이요? 유전병을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성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며, X염색체가 불활성화되어 발생하는 유전병입니다. 리소좀에 있는 가수분해 효소의 활성이 취약해서 선천적으로 당지질 이상을 초래하는, 갖가지 질병을 유인하는 치명적인 질병이죠.”
부모 중 아빠가 파브리병에 걸렸을 경우 딸은 100% 유전되고, 엄마가 파브리병일 경우 자식이 그 병에 걸릴 확률은 50%였다.
“확실합니까?”
“여기, 크리스 엄마의 유전자 분석 결과가 있습니다. 크리스의 어머니인 다나는 파브리병이 확실합니다.”
박상우는 의료진들에게 다나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내보였다.
“파브리병이라……. 그거 놀랍군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입니다. 크리스 엄마가 파브리병이라면, 크리스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을 확률은 약 50%! 만약 크리스가 파브리병이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스탠리 교수님?”
긴장된 모습의 엔드류 박은 격앙된 어조로 스탠리 교수에게 설명했다.
“흠, 그럴 수 있지요. 그리고 만약 크리스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면, 수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맞습니다.”
스탠리 교수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브리병을 앓고 있는 환자 중 대략 40~60% 정도는 좌심실 비대, 부정맥 등의 심장 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았고, 신장의 기능이 상당히 저하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게다가 크리스는 심장 전위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기에, 파브리병의 치료 혹은 대비가 없는 수술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있었다.
“크리스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고 확신할 순 없지 않습니까?”
에이든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다나가 파브리병이라 할지라도, 아들인 크리스가 그 병에 걸릴 확률은 50%라는 이론에 근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상우는 단호한 어조로 대응했다.
“아닙니다. 크리스 역시 파브리병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라이언, 근거가 있습니까?”
“이미 크리스에게선 엔지오케라토마(Angiokeratoma: 혈관 각화종)이 진행 중이고, 각막 이상 및 선단지각 이상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파브리병일 확률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엔지오케라토마가 확실합니까?”
“제가 배운 의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물론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말입니다.”
“라이언의 말처럼 엔지오케라토마에 선단 지각 이상, 거기에 각막 이상 증세가 있다면 파브리병일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수술 스케줄을 미루고 유전자 검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엔드류 박은 박상우의 소견에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결론짓기엔 쉽지 않은 결정이군요.”
스탠리 교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매만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고, 온갖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수술이었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안 됩니다. 지금 현재 크리스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는 확신도 없는 데다가, 설사 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이번 수술은 우리 존스 홉킨스의 명예가 걸려 있는 수술입니다.”
에이든 교수는 격렬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루카스 교수 또한 같은 의견을 보였다.
“에이든 교수의 말이 맞습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온 레지던트의 말만 믿고 수술을 연기했다는 소문이 언론을 통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파브리병은 초기엔 별문제가 없습니다. 20대 후반에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30대 이후가 되어서야 두드러지는 병인데, 크리스의 나이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리암 교수까지 포함한 회의실의 의견 대부분은 한결같았다. 일개 풋내기 동양 의사의 말에 존스 홉킨스가 움직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크리스의 병은 진행 속도가…….”
“그만하십시오, 라이언!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파브리병이 불치병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중요한 수술을 연기하라는 겁니까? 이 수술을 위해 우리 병원 최고의 권위자 50명이 모여 몇 날 며칠을 분석했습니다. 이번 수술은 절대로 늦출 수 없습니다.”
존스 홉킨스 병원의 의료진들은 모두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박상우를 공격했다.
“라이언의 말은 일단 크리스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는지 확인부터 하자는 소리 아닙니까? 만약 문제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크리스를 살리는 게 우선이지, 우리 병원의 명예가 우선입니까? 여긴 환자를 살리는 병원 아니에요?”
목 밑까지 붉게 물든 엔드류 박이 핏대를 세우며 격노했다.
그 순간, 쿵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하고, 귀 옆을 타고 내려와 턱 주변까지 덮은 은빛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노신사였다.
“엔드류 교수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이지, 환자를 두고 장사하는 장사꾼은 아닙니다.”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그는 존스 홉킨스의 이사장, 토니 스탠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