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27)
신의 메스-127화(127/249)
127화 왕의 귀환 (2)
“배가 너무 아파요!”
“우리 아이가 동전을 삼켰어요. 어떡해요!”
수많은 환자로 응급실은 야단법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수선한 건 매한가지였다.
한쪽 구석, 수련의들에게 둘러싸인 천기수를 확인한 박상우는 조용히 다가가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응급 심낭 천자술을 시행하고 있는 천기수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잔존 수명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기수도 잘하고 있나 보네.’
본능적으로 환자의 이마를 살핀 박상우의 눈엔 다행히도 잔존 수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뜻은 환자가 제 명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었고, 천기수가 처지를 제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 선생, 심초음파 연결해. 천자 들어갈 거야.”
천기수가 수련의에게 신속하게 오더를 내렸다.
“네, 교수님.”
“식염수가 준비될 때까지 순환 혈량을 높여야 하니까 한 선생은 정맥 주사부터 하고, 식염수 도착하면 볼륨 리플레스먼트(Volume Replacement: 혈액 대용액) 할 거야.”
‘오호! 제법인걸? 기수는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는 거야?’
박상우는 눈매를 좁히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시술 장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식염수가 준비되기 전까지 정맥 주사를 통해 순환 혈량을 상승시켜 심낭 내압 상승에 대비하는 처치.
제법 태가 나는 천기수의 모습이 사뭇 믿음직스러웠다. 심낭 천자술을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시행하는 천기수였다.
“다 됐다.”
천기수는 심낭 천자 후 심초음파 모니터를 살펴보며 심낭 삼출액이 줄어들고 있는지 확인했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천기수의 눈빛이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아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심낭 압전 환자를 타박상으로 오진해? 왜, 가슴에다 파스나 처바르지 그랬냐?”
카테를 고정하던 천기수는 수련의들을 향해 독설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련의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교수 소리 좀 집어치워! 내가 무슨 교수야? 그냥 선생이라 불러. 듣기 거북하니까.”
짜증 섞인 표정의 천기수가 수련의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교수…… 아, 아니 선생님!”
수련의들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튀어나온 주둥이를 두드리며 말을 고쳤다. 딱 봐도 천기수에게 들들 볶이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박상우는 터져 나오던 웃음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몸을 조금 숨겨 천기수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일단 응급조치는 해 뒀으니까 흉부 촬영해서 카테터 제대로 박혀 있는지 확인해라.”
“네, 교, 아니 선생님!”
“다른 곳에 삼출액(Pleural effusion)이 발생했거나 삐딱지가 들러붙어 있으면 배액이 잘 안 돼. 그러면 오픈 어프로치 시행하고, 이왕 연 거 심막 조직 검사도 해 봐. 할 수 있지?”
천기수는 매의 눈으로 수련의를 노려보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는 자신감이 떨어진 듯 기어들어 갔다.
“목소리가 왜 이래? 피죽도 못 먹었냐?”
“아닙니다.”
수련의들은 부동자세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야, 인마! 최선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 내라고! 의사한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건 최선이 아니야! 치프라는 놈이 천자 하나 제대로 박지도 못하고, 넌 4년 동안 뭘 배운 거냐?”
천기수는 장갑을 벗어 던지더니, 목 밑까지 벌게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어, 이거 봐라.”
불빛에 번들거리는 수련의의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미간을 좁힌 천기수는 머리가 번들거리는 수련의에게 다가갔다.
“이거 뭐냐? 머리에 뭘 처바른 거야?”
천기수는 손끝으로 수련의의 머리카락을 건드려 보았다.
“…….”
“빨리 말 안 해?”
“제가 곱슬머리라서 왁스를 좀…….”
지목당한 수련의는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개념을 삶아 먹었구나. 이런 거 대가리에 처바를 시간 있으면 전공 서적이라도 한 자 더 보라고!”
주먹을 말아쥔 천기수는 치프에게 다가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한심한 놈, 어디서 겉멋만 잔뜩 들어서 쌩 쇼를 해? 흉부외과 써전이 대가리에 왁스 처바를 시간이 어딨어? 요즘 것들은 왜들 저런지 몰라? 어떻게 저렇게 헝그리 정신이 없지?”
천기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수련의들을 다그쳤다.
“난 306호 환자 케비지 들어가야 하니까, 마무리나 잘해 놔. 제대로 안 해 놨다간, 너희들 아주 병풍 뒤에서 향냄새나 맡을 줄 알라고”
“네…….”
“너 지금 네라고 했다. 다음에 뭐 해야 해?”
“네?”
“네??”
“제,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주눅이 잔뜩 들어 있던 수련의는 당황함에 말을 더듬거렸다.
“어휴, 이 멍청이 같은 녀석아. 이게 마지막이니까 잘 들어.”
천기수는 수련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머리 나쁜 의사는 환자를 힘들게 하는 거야. 게다가 너처럼 개념이 없는 놈이 메스를 손에 쥐면 환자를 죽이는 거고. 1분 1초가 다급한 응급실에서 너처럼 넋 놓고 앉아 있다간, 환자만 골로 가는 거야.”
천기수는 정색하며 호통을 쳤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응급조치를 했을 뿐이야. 이퓨전(Effusion: 삼출)이 생긴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심낭 천자는 응급조치가 그 목적이지만, 아주 훌륭한 진단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성상 분석은 필수로 하는 거라고.”
“네, 선생님!”
수련의는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그러니까 플루이드(Fluid) 샘플 검사해 봐. 성상 분석하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대부분 삼출액(Exudate)이겠지만, 간혹 여출액(Transudate)일 수도 있어. 즉, 심부전 때문에 올 수도 있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심각해진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알겠지?”
추후 조치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천기수에게선 확실히 전문가의 향기가 묻어났다.
“알겠습니다. 삼출액을 먼저 임상병리 쪽에 넘기고, 결과가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우리 잘하자. 우리는 사람의 심장을 만지는 사람들이야. 무조건 알아야 해. 그것도,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아야 하는 거야. 모르면 어떻게든 알아내. 밤을 새워서라도 정확하게 알아내. 우리는 ‘몰라서’, ‘실수로’가 용납되지 않는 써전이라고.”
박상우는 나름대로 확고하게 신념이 잡힌 천기수의 모습을 지켜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 선생님!”
“넌 감도 있고 손기술도 좋아서 내가 믿고 맡기는데, 이렇게 실망만 시키면 되겠어?”
천기수는 수련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다독거려 주었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이제 천기수도 베테랑이 다 된 것 같았다.
“어이, 친구야!”
수련의들이 환자를 스트레처 카에 싣고 중환자실로 이동하며 모든 것이 정리된 순간, 박상우는 큰 소리로 천기수를 불렀다.
“어, 어? 너!”
뒤를 돌아본 순간, 천기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뭘 그렇게 놀라?”
“또, 또라이 박상우 맞냐?”
손가락으로 박상우를 가리키며 천천히 걸어오던 천기수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미치겠네. 또라이는 너지, 내가 왜 또라이야?”
“이 새끼! 언제 온 거야? 싸가지 없는 말투 보니까 내 친구가 맞네. 오늘 온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천기수는 박상우의 말을 듣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박상우를 끌어안았다.
“그래, 반갑다. 이제 제법 의사 티가 나던데? 제법이더라.”
“뭐야,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거야?”
“그래. 천자 하는 것부터 지켜봤어. 예전엔 손 떨린다고 천자를 잡지도 못하던 놈이, 이젠 아주 젓가락질하는 것처럼 능숙하더라. 이제야 나랑 손발 좀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상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천기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새끼, 또 잘난 척이냐? 너처럼 서브자이포이드(Subxiphoid: 하부검상)에서 블라인드(Blind)로 할 순 없어도, 그림 보면서는 잘해, 인마.”
천기수는 응급 상황에서 초음파도 없이 감으로 천자를 시술하진 못해도, 이제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하는 정도는 된다고 자랑했다.
“반갑다, 상우야!”
천기수는 팔을 위로 쭉 펼치며 박상우의 모습을 살폈다.
“나도 너무 보고 싶었다. 인선이는 잘 지내지?”
“당연하지. 우리 최고 존엄님께서 2세를 잉태하지 않았겠니?”
“정말? 와, 축하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너 닮은 2세 낳아서 고생 좀 해 봐라.”
박상우가 미국에 가 있는 사이 천기수와 김인선은 결혼을 했고, 이제 곧 있으면 2세가 태어난다고 했다.
“내가 어때서 인마!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떡할 거야?”
“뭘?”
“뭘은 무슨, 인마. 죽도록 마셔야지! 나 오후에 캐비지 하나 남은 것 있는데, 그거만 마치면 한잔하러 가자.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겁나 많아요, 내가.”
“그러자. 조금 이따 조현오 교수님 만나 뵙고나서 연락하마.”
“그래. 조금 이따 보자. 하아, 새끼. 미국 갔다 오더니 빠다를 얼굴에 처발랐나, 예전보다 더 느끼하게 변했네.”
천기수는 고개를 내저으며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제법이구나, 기수야.”
박상우의 절친이지만 뺀질거리며 실수투성이였던 그가 이렇게 의젓하게 흉부외과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박상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그려졌다.
* * *
‘아, 교수님이랑 기수한테 줄 선물을 놓고 왔네.’
박상우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응급실 문을 나섰다.
삐뽀삐뽀!
그 순간,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앰뷸런스 한 대가 산부인과 병동 앞에 급정차했다.
‘응급 환자인가?’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리 없던 박상우는 산부인과 병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급차 문이 열리고, 환자 한 명이 스트레처 카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호흡이 부자연스러운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만삭의 여자였다.
“만삭의 환자입니다. 지금 호흡 곤란 증세를 호소하고 있어요!”
앰뷸런스에서 내린 의료진들이 스트레처 카를 밀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명성대학교 병원 산부인과 의료진들이 스트레처 카를 인계받았다.
“산모의 자궁경부가 약 6센티 정도 열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호흡 곤란 증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분만 촉진제는 투여했습니까?”
“포도당에 옥시토신을 10단위로 섞어서 분당 5방울씩 투여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지금 당장 태아가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산모는 청색증까지 보이며 심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잔존 수명: 2시간 21분 51초, 50초, 49초…….]그 순간, 산모의 이마에 붉은 숫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녀의 잔존 수명이었다.
‘어…… 저, 저건 뭐지.’
잔존 수명과 더불어, 짙은 불빛이 환자의 오른쪽 폐부 위에 어려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조현오 교수에게서 봤던 그 불빛과 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불빛의 색깔.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사람의 불빛은 노란색이었고, 조현오 교수의 신장 부위에 어렸던 불빛의 색깔은 붉은색에 가까운 주황색이었다면.
지금 환자의 폐를 가리키는 불빛의 색깔은 짙은 붉은색이었다. 얼핏 예상하기로도, 상태가 위급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있는 거야! 저 환자,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이제야 확실히 감을 잡은 박상우가 황급히 산부인과 병동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