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3)
신의 메스-13화(13/249)
13화 조폭 전쟁 (3)
“실린지(Syringe: 주사기) 줘!”
“지, 진짜 할 생각이야? 자, 잘할 수 있는 거냐?”
천기수가 이마에 흥건한 땀을 훔쳐 냈다.
“걱정 말고 주사기나 달라고!”
“에라, 모르겠다. 자! 여깄어!”
천기수가 박상우 손에 주사기를 쥐여 줬다.
박상우가 박철진의 왼쪽 유두 아래를 솜으로 소독했다.
지금 하려는 건 심장 바로 옆까지 바늘이 들어가야 하는 시술로, 자칫 잘못하면 폐에 손상을 줄 수도 있었다. 절대 인턴이 함부로 행할 수 있는 시술이 아니었다.
‘이쪽이 다섯 번째 인터코스탈 맴브란스(Intercostal membrane: 늑간막)!’
박상우가 손으로 가슴 주위를 만져 보더니 실린지에 특수 바늘을 끼워 넣고는 미련 없이 깊숙이 꽂아 넣었다.
“카테터!”
“여, 여기 있어!”
넋을 잃은 채 카테터를 넘겨주는 천기수. 그는 지금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뚝, 그의 벌어진 입에 침방울이 매달려 길게 늘어졌다.
‘잘못하면 폐를 손상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통로에 박상우는 조심스럽게 카테터를 삽입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손놀림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어! 어어! 지, 진짜 되는 거야?”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그의 손놀림을 보던 천기수가, 벌어진 입에 주먹을 끼워 넣었다.
“됐어!”
쪼르르르, 혈액이 심막에 삽입된 관에서 흘러나왔다. 그 시뻘건 혈액은 박상우가 제대로 심막 천자술을 시행했다는 방증이었다.
“대, 대박! 성공이야. 박상우!”
깜짝 놀란 천기수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수야. 혈압 체크 해 봐!”
“아, 알았어. ……오, 올라간다! 상우야! 혈압이 오르고 있다!”
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한 천기수가 양손 엄지를 추켜올렸다.
“우리 형님은 괜찮은 겁니까?”
그 순간, 이상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상천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시기는 힘듭니다. 환자분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바로 수술실로 이동해서 수술해야 합니다.”
“네?”
“미, 미쳤어? 너 지금 제정신이냐? 네가 무슨 수술을 해?”
그 순간, 깜짝 놀란 천기수가 박상우에게 바짝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미친놈아, 수술은 또 얘기가 다른 거잖아! 인턴이 무슨 수술을 하냐고!”
천기수가 이상천의 눈치를 보며 입을 뻥긋거렸다.
“후후후, 다르긴 뭐가 달라. 우린 그냥 배운 대로만 하면 돼. 가서 스트레처 카나 가지고 와.”
여유로운 표정의 박상우.
“와. 미치겠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냐, 뭐냐? 너 진짜 잘할 자신 있어?”
‘에이, 이런 걸 내가 왜 묻는 거야?’
틱, 천기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주사기를 걷어찼다.
“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어차피 이 환자, 이대로 두면 죽어. 다른 대안이 없잖아. 기수야, 시간 없어. 빨리빨리 움직여!”
박철진의 이마에 줄어들고 있는 시간을 확인한 박상우가 천기수의 등을 밀어붙였다.
“아, 알았어.”
후, 천기수가 가슴을 내밀며 심호흡했다.
“선생님, 진짜 자신 있는 겁니까?”
우려 섞인 표정의 이상천. 그가 박상우 앞을 가로막았다.
“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 가운을 벗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여유로운 표정의 박상우. 그가 자신의 가운을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흐음, 좋은 눈빛이군요. 좋습니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이상천이 박상우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 * *
“야! 너, 거기 서!”
박상우와 천기수가 박철진을 스트레처 카에 싣고, 수술방으로 향하는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나올 즈음.
흉부외과 부교수 한현수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학회 도중 병원의 상황을 전달받은 교수들이 서둘러 서울에 상경한 모양이었다.
‘아 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좆 됐네.’
스트레처 카를 밀고 있던 천기수가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너, 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한현수가 눈을 부릅뜨며 흰자위를 보였다.
“이 환자, 페리카디얼 윈도 오피(Pericardial window operation: 심낭막 개창술) 하려고 수술방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당당히 맞서는 박상우.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뭐, 뭐야? 네가 뭐, 뭐를 해?”
한현수가 입술을 말아 올려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고 수술할 수 있는 의료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저희가 수술을 하려고 했습니다.”
“넌, 뭐야? 같은 생각인 거야?”
한현수가 고개를 돌려 천기수를 응시했다.
“그, 그게, 아……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천기수가 박상우의 눈치를 보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너, 완전히 돌았구나? 인턴 나부랭이가 수술한다고? 너, 페리카디얼 윈도 오피가 뭔지는 알고 지껄이는 거야?”
한현수가 콧잔등에 주름이 잡히게 얼굴을 찡그리며, 보기 흉하게 입을 일그러뜨렸다.
“네. 알고 있습니다. 페리카디얼 이퓨전(Pericardial effusion: 심낭 삼출)이 다시 발생해도 밑으로 배액이 되게 해 놓는 수술로서, 심낭에 창을 열어 놓는 수술입니다. 게다가, 지금 환자는 렁에 서킹 운드(Sucking wound: 흡인성 흉부 상처)가 있어…….”
“그, 그 입 다물지 못해?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한현수가 검지를 들어 박상우를 가리켰다.
“네. 선생님.”
“이 새끼, 이거. 선무당이 사람을 잡을 기세네. 상황이야 어찌 됐든 인턴이 메스를 잡겠다는 게 말이 돼! 이 환자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한현수가 벌게진 얼굴로 버럭댔다.
흉부외과 부교수, 한현수!
박상우와 같이, 명성대학교가 아닌 타 학교 출신 교수로 처세술의 대가였다.
비 명성대 출신으로,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약삭빠른 인간.
그런 점에서 그는 박상우와 접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한현수는 자제력 없이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에 이른 것에 반해, 박상우는 철저하게 끝까지 자신을 관리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한 선생, 그만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현오 교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아, 네. 교수님! 이 녀석이 지금 병원을 말아먹으려고…….”
“알고 있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같은 식구끼리 이게 무슨 짓이야? 아무리 그래도 내 새끼는 내가 챙겨야지. 이런 식이면 쓰나?”
조현오 교수가 준엄한 목소리로 한현수를 나무랐다.
“네, 과장님.”
한현수가 멋쩍은 듯 고개를 떨궜다.
“박상우, 말해 봐. 지금 자네의 선택이 최선이었나?”
조현오 교수가 천천히 스트레처 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 제 판단으론 이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기도 했지만, 자칫 조폭들이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겠다며 수술방으로 뛰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환자와 의료진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었기에, 무리한 방법인 줄 알면서도 강행했습니다.”
명쾌한 대답. 조현오 교수의 심중을 읽은 듯, 박상우가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조현오 교수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었던 박상우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이건가?”
“…….”
박상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좋아! 가슴은 일단 합격이고, 그렇다면 손을 좀 볼까? 자네가 처음 환자를 진료했을 때 상태를 말해 봐!”
“네. 제가 도착했을 당시 환자는 의식이 없는…….”
나는 차분히 박철진의 상태를 설명했다.
“교수님, 지금 저런 인턴 따위에게 그런 걸 물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이러다 원장님 아시면 난리 납니다. 게다가 블러드 테스트도 없이 제멋대로 카디악 탐폰으로 진단했습니다. 위험천만한 행위예요!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이 책임을 누가 집니까?”
한현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곤 원장을 운운하며 고래고래 침을 튀겼다.
조현오 교수는 듣는 둥 마는 둥, 뒷짐을 진 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현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져!”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고! 여길 봐. 지금 저 환자가 한가하게 블러드 테스트 받고 CT 찍고 결과 기다렸다가 수술할 환자야? 자네, 그렇게 생각해?”
조현오 교수가 만신창이인 박철진을 가리켰다.
“그,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에코도 없이 심막 천자술을 시행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잠시 주춤했던 그가 다시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자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쳐다봤다.
“자네가 이곳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뽑아냈나?”
조 교수는 박철진의 가슴 부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에코도 안 잡고 직접 했단 말이지?”
박철진의 가슴 부위를 유심히 살펴보는 조현오 교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심막 천자를 박을 위치를 말해 봐.”
“네. 천자술을 시행할 정확한 위치는 서브식스포이드(Subxiphoid: 검상 하의) 공간 또는 왼쪽 다섯 번째 늑간막입니다. 바늘 배치를 정확히 하면 심낭에서 피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심낭의 고인 피는 모두 배출시켰습니다.”
박상우가 정확한 위치를 집어내었다.
“좋아! 한 선생, 이쪽으로 와 봐.”
조현오 교수가 한현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네?”
“그래. 여기 한 선생이 자네 말고 또 있나?”
한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조현오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우 군이 시술한 위치를 봐. 완벽해! 내가 보기엔 얼마 전에 자네가 에코 잡고 찌른 것보다 더 정교해 보이는데 말이야. 자네 의견은 어떤가?”
한현수의 자존심을 잔인하게 뭉개 버리는 조현오 교수의 한마디.
“교, 교수님! 그, 그런 말이 어디…….”
펠로우 3년차, 곧 있으면 교수로 임용될 그였기에 더욱더 뼈아팠다. 한현수가 목까지 벌게진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내 말이 틀렸나?”
“아, 아닙니다.”
흔들리는 한현수의 턱.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상우 군! 자네의 조치는 시의적절했고 정확했어. 다만, 상우 군이 직접 집도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현오 교수가 표정을 바꿔 박상우에게 의견을 물었다. 담당 교수가 위급한 환자를 놓고 인턴에게 의견을 구하는 모습. 흉부외과, 아니 의료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도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차피, 교수님들이 안 계셨기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교수님들이 오셨으니, 전 이쯤에서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박상우가 조현오에게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좋아!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다행이군. 그러면 지금부터는 내가 이 환자를 맡을 테니, 자네는 응급실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해. 아직 일손이 부족할 거야.”
조현오 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박상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거, 이거. 자네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것 같아서 머쓱하구먼.”
하하하, 조현오 교수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자, 자! 한 선생, 뭐 해? 환자가 위급하네.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조현오 교수가 멍하니 서 있던 한현수를 불렀다.
“네, 교수님!”
한현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박상우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건방진 놈, 내가 가만둘 거 같으냐?’
* * *
“박상우!”
천기수가 교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박상우의 어깨를 툭 쳤다.
“왜?”
“누구냐, 넌? 너, 내가 알고 있는 박상우 맞냐?”
천기수가 멍한 표정으로 박상우의 얼굴을 응시했다.
“싱거운 놈!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응급실로 가자. 이러다가 독사한테 맞아 죽겠다.”
“그, 그래. 내가 보기엔 네가 더 독사 같다.”
천기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흠, 자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한현수, 그 열등감 충만한 인간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땐, 선제공격만이 살길이다. 내가 먼저 뒤통수를 쳐야겠어!’
박상우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