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36)
신의 메스-136화(136/249)
136화 살려야 할 환자가 둘이다. (2)
“안녕하세요. 담당 주치의인 박상우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어서 오세요.”
장진섭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박상우를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깡마른 체구와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수술하기에 앞서,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해서 먼저 찾아왔습니다.”
보통의 검사는 담당 간호사가 하기 마련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수인 박상우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늙은이 하나 때문에 우리 선생님이 수고가 많습니다.”
장진섭은 옷소매를 둘둘 말아 올렸다. 유난히 마른 장진섭의 팔뚝은 혈관을 잡기 위해 툭툭 쳐 봤지만, 혈관을 잡기 쉽지 않았다.
간신히 혈관을 잡은 박상우가 바늘을 찔러 넣으려 하자, 장진섭은 눈을 찔끔 감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예나 지금이나 주사 맞는 건 참 곤욕이에요. 전 주삿바늘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채혈이 끝나자, 장진섭 대표가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자 제1 야당의 수장답지 않은 소탈함이 보였다.
“수도 없이 주사를 놓았지만, 주사 맞는 건 저도 영 싫습니다.”
박상우는 시험관에 혈액을 옮겨 담으며 환하게 웃었다.
채혈을 마친 박상우는 부드러운 어조로 청진기를 내밀었다.
“대표님, 가슴소리를 들어 볼 수 있도록 윗옷 좀 올려 주시겠어요?”
“그럽시다.”
장진섭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윗옷을 올렸다.
‘소리가 너무 좋지 않아! 생각보다 심각하군.’
소리를 듣던 박상우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눈치 빠른 장진섭이 박상우의 표정을 놓칠 리 없었다.
“연식이 좀 되다 보니 이것저것 갈아야 할 게 많죠?”
“이곳저곳 손 볼 곳이 많군요.”
예전 같았으면 잠시 당황했겠지만, 이젠 박상우도 연륜이 쌓여 적절한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었다.
“그래요? 손 보고 나면, 그럭저럭 굴러갈 순 있겠습니까?”
“좋은 부속으로 숙달된 기술자가 작업하면, 방금 뽑은 새 차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제 몫은 다할 것 같은데요?”
박상우는 장진섭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띠었다.
“하하하, 그것참 반가운 소리군요. 사람이 늙으면 목숨줄을 더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더니, 제가 그 짝인가 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크게 욕심부려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년만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군요.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장진섭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았다.
착잡한 심정의 박상우는 말없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 제가 부탁 하나만 합시다.”
장진섭은 박상우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제가 우리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요. 취업하기 힘들어 노량진으로 내몰리는 내 새끼들, 나이 먹어 갈 곳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내 나이 또래 친구들,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는 임대료에 허리가 휘는 내 동생들까지. 이 사람들에게 꼭 희망을 주고 싶어요.”
내 새끼, 내 친구, 내 동생들!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장진섭의 깊고 그윽한 눈동자에선 분명 진심이 빛나고 있었다.
“…….”
진정성 있는 그의 모습에, 박상우는 가슴이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불가능한 걸 부탁하는 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새끼들,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
장진섭은 박상우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잔존 수명: 32일 3시간 12분 14초, 13초, 12초…….]그가 시선을 옮겨 박상우를 쳐다보는 순간, 장진섭의 잔존 수명이 그의 이마 위에 또렷하게 나타났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난, 이 사람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서 말이야.’
박상우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떼며 제 생각을 말했다.
“저 역시, 대표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대표님의 가족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박상우의 대답에, 장진섭은 환하게 웃었다.
* * *
장진섭 교수의 채혈한 피 일부를 또 다른 시험관에 옮겨 담은 박상우는, 시험관에 라벨을 붙인 후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라이언! 오랜만이야.”
하이 톤의 외국인, 그는 의학 유전자 센터의 에릭 마틴 교수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래. 모국으로 돌아가니 좀 어떤가?”
“다른 건 모르겠고, 교수님이 만들어 주셨던 스크램블이 생각나서 미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럼 다시 이쪽으로 넘어오면 되겠구먼. 스크램블이야, 내가 원 없이 해 주지.”
간만의 통화였기에, 두 사람은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잠시 담소를 나눴다.
“아, IDN2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IDN2는 존스 홉킨스의 의학 유전자 센터가 10여 년간 야심 차게 준비한 신약 프로젝트였다.
“물론이지. 이제 파이널 임상만 남겨 둔 상태야. 이제 FDA 승인만 남겨 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건 전부 자네 덕분이야.”
“정말 잘됐네요.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 혈액 샘플을 하나 보내 드리려고 하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IDN2 케이스에 맞을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IDN2에 맞는 케이스가 한국에도 있었다니!”
“아직까진 제 추측일 뿐이에요. 혈액 샘플을 먼저 보내 드릴 테니까, 분석부터 한번 해 주세요.”
“당연하지. 당장 보내 줘.”
“혹시 제가 보내 드리는 샘플이 IDN2와 일치한다면, 최종 임상 과정에 포함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좋은 케이스가 되겠지. 이제 IDN2에선 오류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수천 차례의 임상을 통해서 안정성이 입증된 상태라고. 당연히 가능하고말고.”
“좋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한 일주일은 걸린다고 봐야지.”
“알겠습니다. 오늘 바로 샘플을 보내 드릴게요.”
“그래. 잘 지내다가, 스크램블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티모어로 날아오라고. 아니면, 내가 한국으로 갈 수도 있고!”
“하하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 나오면 연락 주세요.”
“그래. 수고하게나.”
‘장진섭 대표가 IDN2가 맞을까?’
박상우는 온갖 생각으로 피곤함이 밀려와, 두 눈을 꾹꾹 눌렀다.
* * *
그리고 며칠 후, 명성대학교 병원에 또 한 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한 남자와 그의 어머니는 박상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두려운 시선을 옮겼다.
“김정환 씨?”
“네, 선생님.”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빛만은 팔딱거리는 연어처럼 살아 있었다. 분명 보통은 넘는 청년이었다.
초조하게 박상우의 입에 시선이 모아진 청년의 이름은 김정환이었다. 그는 사법 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을 수료하고, 이제 검사 임관을 앞둔 예비 검사였다.
워낙 연수원 성적이 우수했기에 서울중앙지검에 발령받은 상황이었다.
“4년 전에 수술한 경험이 있군요.”
박상우는 김정환의 차트를 살펴보며 물었다.
4년 전, 아올틱 다이섹(대동맥 박리) 진단을 받고 캐비지(관상동맥 우회술)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심장이 안 좋아서 4년 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었는데요. 이후에 특별히 어디가 아프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겨, 결과가 안 좋나요?”
환자의 어머니 김정순은 아들보다 더 애가 타는지, 바짝 마른 입술로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결과가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군요. 그동안 너무 관리를 안 하신 것 같은데…….”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를 계속 확인했다.
김정환의 검사 결과는 심각했다. 대동맥 박리 수술 후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심장 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역시 장진섭 대표와 마찬가지로, 심장 이식 수술 말고는 답이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이고! 선생님, 우리 애 좀 살려 주십시오. 겨우겨우 사법 시험에 합격에서 이제야 빛을 보나 했는데…….”
김정순은 울상이 되어 버린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지금 와서 그런 말씀 하셔 봐야 소용없어요.”
오히려 아들인 김정환이 더 담담하게 그녀의 팔을 잡고 진정시켰다.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당장 입원해야 하나요?”
그녀의 어머니에 반해 김정환은 한결 침착해 보였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긴 했으나, 차분한 목소리였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증세를 완화하는 치료를 병행하면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나요?”
“글쎄요. 제가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다만, 심장 이식 수술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침착하고 심지가 굳어 보이는 환자였기에, 박상우는 환자에게 본인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래요? 심장 이식 수술이라니!”
박상우의 진단에 넋이 빠진 듯 울부짖는 김정순이었지만, 김정환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김정환의 병명은 심장 판막 협착 및 폐쇄 부전. 워낙 상태가 악화되어 있어, 협착된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교체한다고 할지라도 심실 기능 부전이 호전될 가능성은 없었다. 유일한 치료법은 심장 이식 수술뿐이었다.
심장 이식 수술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성공할 확률은 반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치료법은 심장 이식 수술 말고는 없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김정환은 조금은 긴장한 듯,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말을 꺼냈다.
“심장 이식 말고는 대안이 없습니까? 수술 없이 치료할 방법은 없나요?”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심장 이식 수술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되는 수술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입원을 하셔서 도너가 나올 때까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정환의 질문에, 박상우는 단호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일단 검찰청에 보고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어머니, 일어나시죠.”
망연자실한 모습의 김정순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김정환은 박상우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갔다.
[잔존 수명: 29일 3시간 12분 54초, 53초, 52초…….]그 순간, 김정환의 이마에 붉은 숫자가 또렷하게 새겨졌다. 그의 잔존 수명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썩어 문드러진 정치판을 갈아 치울 리더가 장진섭 대표였다면, 장진섭 대표의 청년 시절을 너무나도 빼닮은 사람이 김정환이었다.
‘그래. 어떻게든 난 이 두 사람을 살려야 한다. 아니, 반드시 살려내야만 한다. 난 이 두 사람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돌아 나가는 김정환을 바라보며, 박상우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연구실로 돌아온 박상우는 의자에 몸을 내던진 뒤, 두 눈을 감고 회귀 전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