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39)
신의 메스-139화(139/249)
139화 살려야 할 환자가 둘이다. (5)
“물 한 잔만 주십시오.”
목이 타는지 민정철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그 마음이 공감되어, 박상우는 컵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정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요즘은 죽을 맛이올시다.”
물을 단숨에 마셔 버린 민정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거죠?”
“응급조치는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루하루 살 떨려서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요즘 제 주변에 기자들이 똥파리처럼 들러붙었어요. 이러다 꼬투리라도 잡히는 날엔…….”
민정철은 마른 입술에 침을 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원에서도 최대한 보안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래야죠. 가뜩이나 상대 당에서 우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네. 저희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께서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숨 돌린 민정철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몇 가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대표님을 뵙자고 했습니다.”
“그래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우리야, 모든 걸 선생님께 맡기지 않았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해야죠.”
민정철은 살짝 굽히고 있던 허리를 곧게 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지금 어르신의 몸 상태가 최악입니다. 일단 체력부터 확보하신 후에 이식 수술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무리입니다. 게다가…….”
의학 지식이 전무한 정치인인 민정철에겐 IDN2를 설명해 봐야 알아듣지 못할 터였기에, 박상우는 말을 하던 도중 멈췄다.
“뭐라고요? 수술을 연기하잔 말씀입니까?”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민정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자칫 지금 상태로 수술을 강행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은 어르신의 몸부터 먼저 추슬러야 합니다.”
박상우는 양손을 펼쳐 보이며 민정철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 심장 기증자의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면서요? 그래서 이식 수술을 서두르기로 한 것 아닙니까?”
민정철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박상우는 그의 말에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 잠깐만요. 조금 전에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저희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무슨 문제인지부터 말씀해 주세요.”
민정철은 눈매를 좁히며, 박상우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쏘았다.
“아직 100% 확신할 수 없어서 말씀드리기 어려웠는데, 워낙 급한 상황이니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말해 보세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민정철은 박상우 쪽으로 의자를 드르륵 끌어와 몸을 살짝 굽혔다.
“아직까진 제 추측이긴 하지만, 지금 어르신께서는 심부전증 외에 또 다른 질병을 앓고 계실 확률이 높습니다.”
“다, 다른 병이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조 과장님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박상우의 뜻밖의 발언에 민정철은 살짝 발끈하고 나섰다.
“워낙 생소한 병이고, 아직은 저 혼자만의 추측이기 때문에 과장님께 보고 드리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검사하기 위해서라도 수술 일정을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래요. 추측이니 뭐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게 무슨 병입니까?”
민정철은 긴장한 듯,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물었다.
“IDN2라는 희소병입니다. 이 병의 특징은…….”
박상우는 천천히 그리고 상세하게, 민정철에게 IDN2의 특징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식 수술을 하면 극심한 면역 거부 반응으로 세포들이 괴사한다는 겁니까?”
생각보다 박상우의 설명을 잘 알아들은 민정철은 예상외로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맞습니다. 만약 어르신이 IDN2를 앓고 계신다면, 심장 이식 수술은 극약이 될 수밖에 없어요.”
“돌겠군. 어르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유전병을 앓고 있었다니…….”
손바닥으로 거칠게 이마를 문지르던 민정철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박상우는 순간 움찔했다.
‘유전병? 지금 저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가 맞는 건가? 나야말로 미치겠군.’
박상우는 민정철에게 IDN2가 유전병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아직 학회도 보고되지 않은 이 희소병에 대해서, 의사도 아닌 민정철이 먼저 알고 있을 수 있는 건가?’
어이없는 상황에 박상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네. 그러니 대표님께서 먼저 협조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IDN2가 확진이 된 것은 아니지만 검사부터 해야 해서요.”
장진섭 대표에게 IDN2가 있단 것을 민정철이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기에, 박상우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민정철의 시선을 피했다.
“주치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우리야 그 말에 따라야겠지요. 그 IDN2라는 병이 치료는 가능한 겁니까?”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길 바라는 건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민정철 원내 대표님!’
“아직까진 표준화된 치료법은 없습니다. 다만, 임상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으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죠. 다만 100% 확실한 건, 어르신이 IDN2를 앓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심장 이식 수술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단호한 표정의 박상우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말했다.
“흠, 이거 큰일이군요.”
“수술을 연기할 수 있도록 대표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어르신 가족 측은 제가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순순히 박상우의 말을 따르는 민정철의 반응에, 오히려 박상우가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과장님과 상의해, 향후 일정을 다시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민정철 원내 대표는 탄식을 내뱉으며 아쉬워했다.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민정철 씨!’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박상우는 물끄러미, 민정철의 얼굴을 응시했다.
* * *
“기수야, 내일 보자.”
“입에서 단내가 나는데, 알코올로 입안 소독을 좀 하고 갈래?”
“아니. 지금은 술잔 들 힘도 없다.”
박상우는 피곤함에 지쳐 녹초가 되어 버린 모습으로 답했다.
“그래, 들어가서 푹 쉬어. 오늘 수술만 해도 3건이었으니까.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
“몸이 천근만근이네.”
병원 정문을 나서자, 천기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몸 상태는 좀 어때? 수술은 받을 수 있겠냐?”
“글쎄다. 워낙 체력이 떨어져서, 수술을 한다고 해도 버텨 내실까 모르겠다.”
“그래도 방법은 그것뿐이잖아. 나도 차트 봤는데, 아주 심장이 너덜너덜해졌더라.”
“넌 입단속 잘하고. 이거 밖으로 새어나가는 순간 우리 병원은 끝장이야.”
“물론이지. 내가 1, 2년 차 애들이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마.”
“그래.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내가 며칠 후에 무슨 행동을 하든, 넌 나만 믿고 내 말에 따라야 해. 알겠지?”
“그건 또 무슨 엉뚱한 소리냐? 너,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천기수는 돌연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거 아니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줘.”
“그니까, 쨔샤! 별거 아니면 지금 말해 보라니까? 무슨 일인데?”
“친구야, 그냥 부탁 좀 하자.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 말해 줄 테니까.”
“이럴 때만 친구냐? 아, 알겠다, 알겠어. 내가 다그친다고 그 입이 열리겠냐? 나야, 네가 까라면 까야지. 우리 병원 에이스의 명령인데…….”
천기수는 입을 삐죽거리며 빈정댔다.
“고맙다. 좋은 일을 만들기 위한 거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어련히 그러시겠지. 천하의 박상우 선생께서 불법을 저지르기야 하겠냐? 알겠으니까 얼른 들어가 쉬어라. 그러다가 다크서클이 가슴까지 내려오겠다.”
천기수가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내저었다.
“쯧쯧쯧, 하루라도 빨리 장가를 보내든가 해야지. 새끼, 청승 떠는 것도 더는 못 봐주겠네. 나 먼저 간다! 우리 집 최고 존엄이 치킨 몇 마리 사오시란다.”
“얼른 사서 들어가. 임신할 때 소홀히 대하면 평생 가슴에 남는다더라. 인선이한테 잘해, 인마!”
“총각 새끼가 별소릴 다 하네. 너나 빨리 여자 하나 데리고 와라. 네 몸에서 벌써 쉰 냄새가 나.”
“노력해 볼게. 그래, 내일 보자.”
“잘 가! 아, 우리 엄마가 시간 나면 김치 좀 가져가라고 하시더라. 시간 내서 우리 집에 한번 들러!”
“그래.”
* * *
그날 밤, 박상우는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에릭 마틴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혈액 샘플 비교 자료는 나왔나요?”
며칠 전, 박상우는 에릭 교수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상우가 장진섭의 혈액 샘플 분석을 보내기 전, 한 건의 IDN2 의뢰가 익명으로 온 것이었다. 흔치 않은 병이었기에, 박상우는 장진섭 대표의 유전자와 대조 분석을 의뢰했었다.
“아니, 아직 최종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놀라운 건, 두 혈액 모두 정황상 IDN2가 의심된다네.”
“그렇군요.”
박상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두 개의 혈액 샘플이 동일인이라는 거야.”
“화, 확실합니까?”
박상우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래. 의뢰인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서 확인할 수 없지만, 두 혈액 모두 동일인이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야.”
‘결국 이렇게 된 건가? 민정철은 장진섭 대표가 심장 수술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왜…….’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린 박상우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천천히 쓸어올렸다.
“교수님, 최종 결과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 곧 나올 것 같은데, 아무래도 48시간은 걸릴 듯하네. 공식 보고서가 나오려면 최소 이틀은 있어야 해.”
‘48시간이면 너무 늦는다! 어떡하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라이언, 뭐 하나만 물어보겠네. 이 혈액의 주인은 대체 누구야? 두 곳에서 분석 의뢰가 들어올 정도면,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에릭 마틴 교수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아직 신분을 밝힐 단계는 아닌 것 같군요.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결과를 받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가 뭘 더 묻겠나. 밤을 새워서라도 최대한 빨리 결과를 전송할 수 있게 노력하겠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에릭 교수와의 전화를 끊고, 박상우는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는 순간, 흐릿하던 회귀 전 기억이 떠올랐다.
* * *
“이번 대선 후보의 경선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 경기, 전라도 지역에서 압승을 거둔 민정철 후보가 우리 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당선되었습니다!”
“와! 브라보!”
“민정철!”
“민정철!”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민정철 원내 대표가 신한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장진섭 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로 인해 그의 자리를 꿰찬 민정철이 당권을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 * *
‘이 모든 것이 우연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눈을 번쩍 뜬 박상우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